〈 42화 〉 5. 소설 TS 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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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돈을 빼먹는 건 쉽지 않다.
회사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하영은 지금 그 사실 이전보다 더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아가리롤스타: 음… 하영이 말고 쟤네들을 옷 입히는 건 별로 꼴리지… 않는 건 아닌데.
미션석세스: 아니 씹ㅋㅋ 옷 안 입힐 거면 다들 채팅 여무셈.
인방인생하급신: 하영이도 아니고 저딴 년들을 내 골드 주고 옷 입히라고? 하영아 이건 선 넘었다.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모든것은순리대로: 본좌는 구미가 당기는군.
채팅창을 보는 하영은 술이 고팠다.
지난 층에서 술을 전부 마셔버린 것이 통한의 실수처럼 다가왔다. 특히 아델라가 마을에서 술을 구매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기에 더욱 그랬다.
‘몰래 하나라도 사서 올 걸 그랬어.’
하영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술이 처음부터 없었다면 모를까. 한 번 맛보기 시작한 술은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술이 없다고 해서. 오늘 벌 골드를 내일로 미룰 수는 없었다. 내일은 내일의 골드가 하영을 기다릴 테니까.
“자! 선생님들? 그럼 우리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하영이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는 아벨의 옆으로 다가갔다.
“음? 하영님 무슨 일입니까? 혹시. 무언가 필요한 게 있으신 겁니까.”
“아, 방송하고 있거든.”
하영의 대답에 아벨이 굳었다.
“예? 잘 못 들었습니다,”
하영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벨은 현대인이 아니다. 그러니 방송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다.
“방송은 말이지. 음…”
하영은 아벨에게 방송이란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딱히 간단하게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중에 아델라한테 물어봐.”
바로 남에게 귀찮은 것을 떠넘기면 된다는 것이었다.
“네, 네?”
빠른 전개에 혼란스러워하는 아벨을 내버려두고, 하영은 계속해서 방송을 이어갔다.
“자! 제 옆에 귀여운 드레스를 입은 기사가 서 있죠?”
낭만검객: ㅇㅇ
군침도는사람: 군침이 돌 정도는 되네.
내이름은야스머신: 이것은 내 하반신이 적당하게 평가.
야스마스터: 아니, 그래서 어쩌라고~
하영은 채팅창을 살피다 아벨의 옆에 섰다. 아벨은 자신을 미친 사람처럼 보고 있었다. 뭔가 느낌이 좋네. 미녀가 자신을 그런 눈으로 보니 오싹 오싹거렸다.
“크흠.
하영은 이상한 기분을 날려 보내고 다시 방송에 집중했다.
“자! 저랑 아벨. 같이 서 있으니 어떻습니까?”
하영은 채팅창을 주시하며 말했다.
낭만검객: 아벨 남장시키면 잘 어울려서 개꿀잼일 듯 ㅋㅋㅋㅋㅋ
아가리롤스타: 하영이가 작은 게 아니고 재가 멀대같이 큰 거임.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응 아니야. 하영이 땅꼬마 맞아.
꿀벌아넣을게: 응 ㄴㅇㅁ
야스마스터: 응 ㄴㅇㅁ
아가리롤스타: ㄲㅂ
미션석세스: 이 시대 최단기 퇴물 야스마스터
꿀벌아넣을게: 닉언 자제점.
하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정하영이 여자치고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으나, 아벨은 미소년이라 착각했을 정도로 키가 큰 편이었다.
그리고 이 키 차이는 하영이 노리는 것이기도 했다.
“저희는 당분간 이렇게 붙어서 다니겠죠.”
실제로 이렇게 가까이 붙어서 다닐 리는 없겠지만. 사정상 지금은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었다.
“솔직히. 따로 있는 것보다 매력이 좀 많이 떨어지잖아요?”
군침도는사람: 솔직히 좀 매력이 떨어지긴 함. 주로 하영이의 미드가.
야스마스터: 살짝 인정.
하영의 말에 시청자들이 동의했다. 실제로 하영이 입고 있는 옷은 육체미를 뽐내야 하는 옷이었는데, 아벨의 큰 키와 부푼 마음이 하영의 육체미를 가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벨 역시 마찬가지지.’
하영의 매력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아벨의 매력이 돋보인 다거나 하는 건 또 아니었다. 오히려 뛰어난 하영의 외모가 아벨을 좀 더 미소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아마 가슴만 없었어도 남자라 생각했을 거야.’
한마디로 둘은 서로의 매력을 깎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 아벨에게 왕관 같은 게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드레스도 좀 활동적인 것으로 고른다면?”
검은콩나물: 왕관? 웬 왕관?
낭만검객: 쩝. 남장도 꽤 재밌을 거 같은데.
야스마스터: 오… 드레스 착용한 공주기사 코스프레. 만화에서 자주 애용했지.
야스마스터의 채팅에 하영이 웃었다.
남장도 나쁘지 않지만, 솔직히 공주기사 코스프레가 더 꼴린다.
하영이 생각하기에 공주기사는 아벨의 뛰어난 육체미를 살릴 수 있는 복장 중 하나였다.
내이름은야스머신: 그것은 내 하반신이 높게 평가.
기레기는무슨새일까: 속보) 정하영 꼴잘알 등극.
아가리롤스타: 아니 그러면 오히려 하영이 매력은 더 줄어드는 거 아님?
“정확하게 보셨어요! 확실히 제 스타일은 더 죽어나가겠죠. 마지막 장점인 노출에서마저 패배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 반대로 아벨의 매력이 확 살지 않겠습니까! 선생님들?”
보통 여자라면 자신의 매력을 깎아 먹는 짓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영은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 아니, 하영은 남자였다. 남들에게 예뻐 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그냥 개 무시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2층에서 등반자들의 시선에 좀 쫄렸단 말이지.’
남자의 몸일 때는 신경 쓰이지 않았던 모든 게 신경 쓰인다. 특히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복장이라 그런지 직접적인 접촉은 더 그랬다.
2층에서 어깨를 붙잡혔을 때는… 진짜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질 정도로 싫었다.
단순히 등반자들 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기분이 나쁜 건 이 마을을 돌아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끔찍했지.’
강철 같은 뻔뻔함이 없었다면, 분명 사람들의 시선에 움찔거렸을 것이다. 그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시청자들이 보는 시선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시청자들은 그곳에 있지만, 실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익숙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의 채팅을 본 적이 있어서, 다른 이에게 하는 채팅이다 생각하면 편했다.
하지만 직접 꽂히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게 불가능했다.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이, 눈초리가 하영에게 부담과 묘한 불쾌함을 선사했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줄어들겠지.’
하영은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아벨을 바라봤다. 안 그래도 예뻤지만, 오늘따라 더 예뻐 보였다.
‘나를 가려줄 방패가 2개나 생길 테니까.’
하영이 불길하게 웃었다. 이에 하영의 편인 시청자들이 분위기를 파악했다.
아가리롤스타: 아, 그러네. 코스프레는 인정해야지 ㅋㅋ
꿀벌아넣을게: 이걸 어케 참누? 난 못 참는다!
어린이애호가: 씁. 고런가?
낭만검객: 나중에는 아벨 남장도 하자.
야스마스터: 그러고 보니 나 예전부터 고위 귀족 영애들에게 메이드복을 입히고 싶었어.
내이름은야스머신: 오… 귀족영애 메이드. 와. 강적인데? 내 하반신이 매우 높게 평가.
성공적이었다. 하영의 매력 어쩌고 하는 채팅은 더는 올라오지 않았다. 채팅창의 흐름이 바뀐 것이다.
낭만검객: 아니 ㅅㅂ 남장도 하자고!
바른말만씀: 응 분위기 파악 못 하면 그냥 아갈해 ㅅㅂ련아.
아가리롤스타: ㄹㅇㅋㅋ
일부 시청자의 개인의견이 있었지만, 이미 흘러가기 시작한 물줄기를 막을 순 없었다.
낭만검객: 하 ㅅㅂ롬들.
병신을보면짖는개: 월! 월!
모든것은순리대로: 지금부터 기부하면 됨?
아가리롤스타: 하영이가 시작해야지 시작임.
야스마스터: 아니, 잠깐만. 그 아델라인가 아데라인가 하는 애는 어디 감?
인방인생하급신: 아니, 개는 다음 타자거나 내일 하거나 하겠지 ㅅㅂ. 제발 분위기 좀 깨지마. 나 급해.
야스마스터: 뭐가 급함?
하영은 골드 향기를 내뿜기 시작한 채팅창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자! 선생님들 잠시 진정 좀 해주세요. 아델라를 부르지 않은 대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아가리롤스타: 이유가 뭔가요 꼴잘알 선생님.
시청자의 채팅에 하영의 눈이 빛났다. 역시 믿음직한 아군 ‘아가리롤스타’다. 콘텐츠를 진행할 때마다 작은 도움을 주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시청자 한 명당 골드가 2만까지 제한된 상황에 2명을 한꺼번에 다 하려 한다면. 골드가 남아나질 않겠죠?”
하영이 말을 끊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큰 임팩트를 위해 뜸을 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코스프레의 질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부스럭.
말을 하는데 나뭇잎이 밟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탁!
하영은 도망가려는 아벨의 손목을 잡았다.
“읏!”
아벨은 몸에 힘을 줬지만. 하영은 쉽게 팔을 놓지 않았다. 하영의 팔에는 어느새 삼지창이 들려 있었다. 미리 육체를 강화해둔 것이다.
“이거 놓아주십시오! 저는 장난감이 아닙니다! 남장은 안 할 겁니다! 전 여자입니다!”
아벨은 불길함을 감지하고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신하려 했다. 이게 여자의 감인가? 하영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아벨을 보며 씩 웃었다.
“어떻게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걱정 마 남장은 안 시킬 거야…… 자, 선생님들. 아벨이 입을 옷부터 기부받겠습니다.”
하영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빵빠레가 터지기 시작했다. 언제 들어도 듣기 좋은 소리였다.
낭만검객님이 500골드 기부.
크흠. 남장이 안 된다면 왕관을 쓴 메이드 기사는 어떰?
“자! 메이드복 나왔습니다!”
하영은 저번처럼 기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자신들의 의견보다 우위에 있는 의견이 있다는 걸 용서하지 않는 이들이 바로 행동에 나섰다.
야스마스터님이 600골드 기부.
난 최대한 짧은 드레스면 다 좋음.
“최대한 짧은 드레스! 크! 아, 역시 닉값을 제대로 하시네요!”
“이거 놓아 주십시오!”
여신따먹고싶다님이 700골드 기부.
응애. 나 애기 시청자. 공주기사 따위 몰라. 여신 코스프레 해줘.
옆에서 실시간으로 반응을 보여주는 이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하영의 방송이 성장한 것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전 옷 갈아입히기 때보다 더 빠르게 가격이 올라갔다.
방송계의유니콘님이 1,500골드 기부.
야하고 흰색 드레스면 다 좋아.
늘잠수하는남자님이 1,600골드 기부.
노출 높은 기사 제복에 왕관 콜라보 ㄱㄱ
어찌나 빠르게 가격이 올라가는지, 하영이 슬슬 여기서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어느새 가격이 3,000골드까지 올라간 후였다.
“자. 아쉽지만 여기서 마감하겠습니다.”
이변은 없었다. 승자는 공주기사에 어울리는 화려한 드레스가 되었다. 비록 초반에는 각종 취향이 먼저 치고 올라갔지만,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든 것이 공주기사인 만큼, 결과는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영은 도망가길 포기한 아벨의 손목을 풀어줬다. 다행히 흉은 지지 않았다. 아벨이 온 힘을 다해 도망가지 않아 준 덕분이었다.
‘나를 보고 아가씨, 아가씨 거리더니, 기사도라도 발휘한 건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운이 좋았다. 만약 아벨이 온 힘을 다했다면 하영은 그대로 끌려갔을 것이다.
하영은 살짝 고개를 숙여 아벨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채팅창을 바라봤다. 뒤에서 아벨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자! 그럼 대망의 드레스를 구매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영은 새태창을 불러 상점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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