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5. 소설 TS 빙의
* * *
“누, 누구세요?”
마을에서 구매한 침구류로, 마차 안에 3명의 잠자리를 만들던 아델라는 마차 안으로 들어온 아벨의 모습에 눈을 껌뻑였다.
진짜로 몰라서 묻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런 말을 꺼내야 할 만큼, 아벨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긴 머리 가발에 복장도 달라지고, 이상한 장신구들도 달고 있었다. 특히 머리에 쓰여 있는 아름다운 왕관이 가관이었다.
얼굴은 울상인데. 복장과 옷에서는 품위가 넘쳐흘렀다. 마치 예쁜 사람을 강제로 코스프레 시킨 것 같았다.
“아가씨….”
“푸흡. 진짜 아벨이 맞구나.”
아벨은 심한 꼴을 당했다는 듯 울먹거렸다. 후작가의 있던 ‘기사’ 아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아델라가 웃음을 터트렸다. 묘하게 어울렸기에 더 웃겼다.
“귀여워라. 아벨? 진작 그러고 다니지 그랬어? 그러면 기사단에서도 예쁨을 받았을 텐데.”
진심이 가득 담긴 아델라의 말에 아벨은 볼을 붉게 물들인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주군인 아델라에게 칭찬받은 것은 기사로서 기뻤지만, 그걸 이런 화사한 복장을 하여서 받았다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그, 그만해주십시오.”
“싫어!”
아벨의 반항에도 아델라는 계속해서 칭찬을 건넸다. 참다못한 아벨이 아델라를 피해 마차 안을 돌아다녔다.
“거기서 아벨! 이건 명령이야!”
“저도 싫은 건 싫습니다!”
아델라는 그런 아벨의 곁을 따라다니며 조잘거렸다.
하영은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내가 직접 꾸민 건 아니지만 뿌듯했다. 예쁜 미녀가 자신이 준 옷을 불평 없이 갈아입으니. 마치 잘 키운 게임 캐릭터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게 유열인가?
“선생님들. 제가 봐도 이번 건 인정합니다.”
하영은 코를 쓰윽 만지며 중얼거렸다. 시청자들도 서로 덕담을 나눴다.
미션석세스: 이 복장 고른 놈! 누구야!
아가리롤스타: 바로 접니다.
군침도는사람: 너무 너무 딱 좋다~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이 드레스 추천한 신이 누구?
천신대가리멈춰: 바로 나.
방송계의유니콘: 처녀처럼 붉히는 공주기사 코스프레. 이건 ㅇㅈ이지~
“아, 선생님들.”
채팅창을 본 하영은 기분이 나빠졌다. 뭐랄까 채팅에서 천박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한테는 별소리를 다하면서.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미묘한 차별에 하영은 튜토리얼에서 처음 건 미션의 골드가 50골드, 100골드였다는 것마저 떠올랐다.
‘야스시 100골드였나?’
당시를 떠올린 하영은 순식간에 불만이 가득 찼다. 현대에서 생활할 때는 이것보다 더한 것도 참고 넘어갔었는데.
이곳에 온 후로는 어느샌가 기분이 쉽게 변화되곤 했다.
‘이건 안 되겠다. 좀 피해를 감수해서라도 불만을 토로해야겠어.’
하영은 이번 층의 시련 탓에 안 그래도 심란했던 마음에 먹구름이 가득 찼다는 것을 깨닫고 화풀이를 결심했다.
내이름은야스머신: 왜 야스 하자고?
병신을보면짖는개: 월.
꿀벌아넣을게: 하영아 넣을게~
군침도는사람: 아벨보다 하영이보니 확실히 군침이 도네.
낭만검객: ???
그러나 이어지는 채팅에 바로 현실을 깨달았다. 그래 과거는 묻어두자.
“아. 그게 아니고 12시 넘으면 아델라 메이드복 결정전을 해야 하니까. 골드를 단단히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하영은 자본주의 가득한 미소로 급하게 상황을 무마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렇게라도 도와주고 가는 게 도리인 것 같았다.
즉석나비탕24시: 아아 걱정하지 말라고. 고양이 귀, 귀족 메이드로 만들 테니까.
여신따먹고싶다: 응 꺼져, 십자가 같은 거 달아서 귀족 수녀 메이드로 만들 거야.
성녀혐오함: 수, 녀? 수녀? 수녀? 수녀어?
인방인생하급신: 수녀? 고양이? 선 넘네?
바른말만씀: ??? 아니, 이 새끼들은 진짜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음? ‘귀족 메이드’라는 컨셉으로 가기로 했잖아 왜 시발 자꾸 나중에 와서 딴소리냐?
닉네임은10글자까지: 아 ㅋㅋ 진짜 부모가 다 뒤졌나.
검은콩나물: 난 자연 생성된 거라 부모가 없는데?
닉네임은10글자까지: 어.
싸우기 시작한 채팅창. 하영은 무사히 상황도 넘기고, 서로 싸우게 하였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꼈다.
천신대가리멈춰: 애들아. 천신 코스플…(경고 6회)
여신따먹고싶다: 그 신 발언 ㅋㅋㅋㅋㅋ 컷! 컷컷!
마차로 가는 하영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
“언니! 아벨에게 주신 옷 감사합니다!”
하영을 발견한 아델라가 감사의 인사를 해왔다. 두 손을 꼭 잡고 말하는 것이 꽤 만족스러웠나 보다.
“음. 뭐 이 정도야…”
하영은 아델라의 손을 살짝 밀쳐냈다. 딱히 자신이 한 건 아무것도 없는 터라 쑥스러웠다.
그러나 아델라는 포기하지 않고 마을에서처럼 끈질기게 손을 잡아왔다.
아델라는 생각보다 끈기가 있는 성격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특전도 없이 살아남았던 거겠지.
“그, 그만해. 딱히 별거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하영은 아델라의 그런 행동이 부담스러웠다.
남자였다면, 아니 아델라가 미녀가 아니기만 했다면, 대강 알았다고 넘겼겠지만, 그녀는 이야기의 주역답게 너무도 아름다웠다.
“언니 이 옷 너무 마음에 들어요!”
라고 말하며 날카로워 보이는 미녀가 웃는데, 입꼬리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델라가 남자가 아니었다면 솔직히 좀 위험할 뻔했다. 아니 지금 도 좀 위험할지도.
“어, 그, 그렇지.”
결국 하영은 고개를 돌렸다. 그런 하영의 모습에 아델라가 더 기승을 부렸다.
창피해 하는 하영의 모습에 아벨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아벨의 말을 듣자하니. 언니가 주신 것들 하나하나가 다 마도구라고 하던데…정말인가요?”
마도구. 이 로판 소설에서 마력이 붙어 있는 것들을 통칭하는 말로, 그냥 아이템이라 보면 된다.
“거기다 저 왕관! 특수한 능력이 붙어 있는 거 맞죠! 아! 거짓말은 하지 마세요! 아벨이 무언가 느껴진다고 이미 말했었어요!”
아델라의 말에 하영이 살짝 놀랐다. 과연 아벨이다. 벌써 눈치챘나. 하긴 옷을 입기 전에는 볼을 부풀리던 아벨이 옷을 입자마자 눈이 동그래졌을 때부터 무언가 낌새가 느껴지긴 했다.
‘나는 모든 피해 감소 효과가 붙은 스타킹을 입고도 별로 효과를 느끼지 못했는데…’
하영은 씁쓸하게 웃었다. 몸의 감각부터가 이렇게 차이가 났다. 평범한 사람과 범재는 이렇게 큰 격차가 있었다.
‘그럼 천재인 주인공하고는 대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거야.’
자신과 주인공의 성장세를 비교해본 하영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 천재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자신을 노린다는 사실이 너무 암담했다.
“저 왕관은 그냥 언니가 사용하는 건 어때요? 솔직히 옷만 해도 꽤 좋은 거잖아요!”
기가 죽은 하영의 모습에 아델라가 호들갑을 떨었다. 계속 침울해 있으니 상황을 오해한 것 같았다.
하영은 손을 좌우로 흔들며 급히 말했다.
“아니,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네가 오늘 놀아준 덕분에 피로는 싹 풀렸어. 그리고 그만 고마워해도 돼. 그 건 전부 시청자가 선물해 준거거든.”
“헉! 이걸 선물해준다고요?”
아델라가 소리쳤다. 옷은 몰라도 저 왕관은 후작가에서도 보기 힘든 수준의 마도구였다. 그런데 이걸 단순히 ‘선물’ 받았다고 말했다. 그 모습이 아델라는 너무 부러웠다.
“마치 일하지 않는 여왕벌 같아서 부러워요!”
일벌에게 얹혀사는 여왕벌. 예쁜 여자로 변한 이후 아델라가 쭉 바라왔던 삶이었다.
“어, 어 그런가?”
아델라의 외침에 하영이 자신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아델라의 반응이 좋으니 좋긴 한데. 뭔가. 뭔가 좀 그랬다.
“에! 진짜 오지고 지리십니다! 아! 또 말해버렸다.”
아델라가 반짝이는 눈으로 하영을 쳐다봤다. 자신의 우상이 거기에 있었다.
“저도 이 모습으로 한국에 가면. 방송으로 돈 좀 당길 겁니다. 그리고 아벨과 평화롭게 인생을 보낼 겁니다!”
아델라는 자신 있게 과거와 미래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영은 갑자기 애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아델라가 이렇게 말하는 대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델라에 빙의하고 난 14개월은 그녀에게 있어서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남자였던 아델라가 여자 귀족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그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아델라는 매일 노력했다.
무력, 돈, 믿음직한 동료. 얻으려 하지 않은 게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대부분 실패 사실상 특전이 없었으면 원작대로 이미 목이 잘려 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렇게 고통받았으니, 이제 저도 한국에 가면 막 방송으로 놀고먹고 할 겁니다.”
“그랬구나.”
이야기를 들은 하영이 아델라의 이야기를 되뇌었다.
저택에서 큰 부분을 단편적으로 들었을 때랑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껏 하영이 본 아델라는 유튭브에 올라간 동영상과 같았다.
그러나 아델라의 일생은 유튭브에 올라간 영상이 아닌 실시간 다큐멘터리였다.
“이야기하기 힘든 일들이었을 텐데. 말해줘서 고맙다.”
하영이 고개를 숙였다.
아델라는 손을 파닥거리며 괜찮다 해왔지만. 하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을까?”
하영의 말에 아델라가 기다려왔다는 듯 눈을 빛냈다.
“언니도 방송에 대해 좀 알려주세요! 제가 그런 거에 좀 약해서.”
“겨우 그런 걸로 괜찮아?”
“네.”
“진짜 진짜로?”
“당연하죠!”
하영은 아델라의 눈에서 진심을 느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지금도 왜 방송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받은 게 있으니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럼. 내가 방송하는 거에 정식 게스트로 나와 볼래?”
잠시 생각해본 결과. 현대로 갈 수 있냐, 없냐를 떠나서, 일단 꿈의 단편이라도 맛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됐다.
그래야지 더 명확한 꿈을 꿀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감사합니다. 언니! 열심히 할게요!”
하영의 말에 아델라가 자신의 두 손을 꽉 잡았다.
시청자들은 그 광경을 보며 그러지 말라고 채팅을 쳤지만. 채팅을 보지 못하는 아델라에게 닿을 리 만무했다.
방송계의유니콘: 뭐라는 거야 시발! 당장 멈춰!
인방인생하급신: 에반데…
아가리롤스타: 어, 어어… 저렇게 순수한 애를? 왜?
건강한언어습관짝: 방장님. 어린 새싹에게 이상한 거 가르쳐 주시지 마세요.
방송계의유니콘: 방송은 지옥이다.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씨발! 아델라! 도망가!
낭만검객: 아니, 하영아. 딱 봐도 한국 여캠식 방송을 원하는 거 같은데. 낄끼빠빠하자.
하영은 채팅을 보고 중지를 올렸다. 괘씸하네, 누굴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려 하고 있어. 다 자기들이 만들어 놓고.
“그럼. 오늘 잠자는 순번은 아벨부터 자게 하자.”
하영은 중지를 내리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아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니! 제가 지금 당장 가서 말하고 올게요!”
아델라는 그 말을 끝으로 아벨에게 달려갔다.
“아벨!”
그리고 아벨에게 설명한 후 허락을 받았다.
“안됩니다! 절대 안 돼요! 방송은 안 돼요! 그건 멀쩡한 여성이 할 것이 아닙니다!”
“난 남자였으니까 해도 된다는 거지? 고마워 아벨!”
“그게 아닌 걸 아시지 않습니까! 아가씨! 당신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후작가의 막내딸입니다! 그런 천한 짓은!”
“후작가의 딸이 아니게 됐으니까 해도 된다는 거지? 고마워! 역시 아벨뿐이야!”
강제로 허락을 받았다.
아벨은 격렬히 저항했으나. 기사인 그녀가 주군의 뜻을 거부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달이 하늘 높게 뜨고, 마을 근처 숲에는 벌레가 울었다. 그리고 아벨이 잠들었다.
“아가씨! 그런 길로 가면 안 됩니다!”
아니. 벌레가 잠들고 아벨이 울었었나? 잘 모르겠다.
어차피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도 않다.
지금 중요한 것. 그건 바로.
아가리롤스타님이 1골드 기부.
12시 ON
수금의 시간이었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들~ 오늘이 아니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어요~ 고위 귀족 영애의 야한 몸뚱이에 자신의 취향을 남길 절호의 기회! 놓치면 백프로 후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