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49화 (49/85)

〈 49화 〉 5. 소설 TS 빙의

* * *

투쟁의 층. 그것은 맞서 싸우기보다, 도망가기를 선택한 하영에게 물음을 던져왔다.

너도 저렇게 인과를 비틀 수 있느냐고.

“어서 가봐. 옷도 갈아입고.”

카루스가 자신을 바라보는 하영에게 말했다.

“처음 너를 봤을 때, 나는 네가 나라가 막 망했을 때의 나와 같다 생각했어. 그만큼 위태로워 보였거든. 허공을 바라보며 떠드는 여자는 말이야.”

이어지는 카루스의 말에 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영이 비슷한 처지의 아델라를 보고 동질감을 느꼈듯, 카루스도 무언가를 느낀 것이 분명했다.

“남은 것이 왕의 성씨뿐인 지금 나는 나라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생각 하나만을 보며 살고 있지만, 나도 한때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평범한 꿈을 꿨어.”

카루스는 그렇게 말하다, 돌연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시선을 돌려 거울을 바라봤다. 카루스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씁쓸함이 드러났다.

“이곳에 있으면 안 될 정도로 바쁘겠지?”

카루스는 손을 뻗어 거울을 엎었다. 하영은 갑자기 거울을 엎는 카루스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씁쓸하게 바뀐 표정과 거울을 엎는 행동에 연관성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하영이 당황에 빠져 있는 동안, 카루스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이윽고 카루스는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라와 아벨에게 작별인사는 하고 가라. 별 말없이 떠나는 건… 괴롭더라고.”

카루스의 말에 시선을 돌려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봤다. 어느 순간부터 시스템 메시지는 그곳에 있었다.

[악녀의 운명에서 빙의자를 구출해내세요.]

[빙의자를 찾아내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1차적인 목표 달성.]

[사용자에게 맞는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 방송 레벨 업. 상태창 성장. 다음 층으로 가는 길 개방.]

“좋네. 좋아…”

시스템 메시지를 본 하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방송에 대한 레벨 업부터, 새태창의 성장까지. 등반자 맞춤 시련답게 시련은 하영이 원하는 보상을 전부 주었다. 하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

다음 층으로 가는 길이 개방되었다는 말은, 이곳 어딘가에 다음 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생성됐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처음부터 나타났었는데?

어떻게 위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한 층에 두 개나 나올 수가 있는 거지?

드르륵. 탁!

하영의 생각이 복잡해지기 직전, 문이 빠르게 열렸다.

“북 대륙, 북 대륙 쪽의 구슬을 확인해 보세요!”

들어온 사람은 아델라였다. 아델라는 급한 사람처럼 가쁜 숨도 참지 않고 계속 말했다.

“몬스터… 몬스터의 대군이…!”

아델라의 말에 카루스는 탁자 위에 놓여있던 잡동사니 중, 커다란 구슬 한 개에 손을 올려다 놨다.

“하영양,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

카루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카루스의 말에 하영의 시선이 구슬로 향했다.

구슬 속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종류는 고블린을 포함한 하영이 아는 괴물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흉포한 모습의 생명체까지 셀수 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 너머에 엘리베이터의 모습이 점처럼 보였다.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감고 다시 떠서 확인했다, 그러나 변하는 건 없었다.

“아니, 나도 가야 할 것 같아.”

하영의 말에 카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곳에 있었구나. 그렇게나 찾던 엘리베이터가.”

카루스는 광대처럼 과장되게 웃었다.

“군대를 모을 게 아니고 위치부터 물을 걸 그랬네. 난 저 마경을 전부 부숴버려야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지 알았거든!”

“거짓말.”

카루스의 말에 아델라가 끼어들었다. 말이 끊긴 카루스가 아델라를 노려봤다.

“혹시 내 계획 미리 다 말한 건 아니지?”

알 수 없는 카루스의 말에 아델라가 방긋 웃었다.

“내 은인이기도 한 사람에게 손을 뻗게 할 순 없죠. 스승님.”

그러거나 말거나. 하영은 아델라의 손에서 아공간을 뺏어 옷을 갈아입고 6개의 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투창을 사용하여 공중에 6개의 창을 띄어 자신의 강함을 카루스에게 보여줬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이번에는 내가 제대로 버스 태워줄 테니까.”

카루스는 하영의 전투 참여 의사를 거절했다. 하영에게만큼은 도움을 받기 싫었다. 이건 하영이 약하고 강하고를 떠나서 자존심의 문제였다.

“좋아! 작은 오해로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한 사죄로. 나도 직접 나서겠어.”

“그럼 이렇게 된 거 저도 거들게요. 언니는 구경이나 하세요.”

카루스의 말에 대화를 듣고 있던 아델라가 입을 열었다.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흘러가는 분위기상 다음 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저 너머에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하아.”

두 사람의 강한 의지에 하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할 생각인 거 같았다.

“그나저나 참 작위적이네. 엘리베이터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 위주로 도시로 돌격해오다니 말이야.”

카루스는 어째서 지금, 그것도 이 타이밍에 몬스터들이 난동을 부리는지 의문이 들었다.

몬스터들의 이유 없는 침공은 난생처음이었다.

“타이밍이 참 묘하단 말이야.”

카루스는 하영을 힐끗 바라봤다. 예나 지금이나 멍하니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역시 이쯤 되면 눈치챈 거겠지.’

그러니 몬스터들이 저리 날뛰는 것일 테니.

카루스가 쓰게 웃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꽤 오래 사실을 숨겼던 거 같다.

이번 층의 방문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카루스는 수정 구슬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속을 알 수 없는 묘한 미소였다.

괜히 악당이 아니네. 하영은 그 미소를 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

도시의 장벽 너머.

하영은 이쪽으로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바라봤다. 진짜 장난 아니네. 몬스터 수가 어찌나 많은지 땅에 모래바람이 만들어졌다.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강한 몬스터는 몇 마리 없어요. 애초에 이 정도 수면 강한 몬스터가 저 정도로 와도 거뜬하다고요.”

옆에서 들려오는 아델라의 말에 하영은 주변을 둘러봤다. 검, 창, 방패, 지팡이, 등.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걸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 큰 걱정 하지 않아도 되겠어.”

“7일간 주변의 모험가들마저 회유했어. 이 정도 사람이 모이는 건 당연해.”

하영의 말에 아델라가 아닌 카루스가 대답했다. 아델라는 자신의 대답을 가로챈 카루스를 째려보며 입을 열었다.

“모험가는 도망쳤겠죠?”

“크흠. 그렇지. 여기 남아 있는 이들은 광산의 보석으로 키워온 병사들이 대부분이야.”

카루스는 군사를 모아온 자신의 혜안을 칭찬했다.

“뭐. 이런 상황은 예상 못 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카루스의 손에 전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주변으로 바람이 흘러들어 갔다. 심상치 않았다.

파지직. 파지직.

전기가 모이면 모일수록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하영은 무거워지는 분위기에 몸이 움츠러드는 걸 느꼈다.

그러나 카루스가 자신의 편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에 몸은 금방 풀렸다.

‘미친. 역시 나도 강력하고 멋진 마법 스킬을 배워야겠어.’

하영은 카루스를 보며 감탄했다.

마법의 부산물인 강력한 바람으로 흩날리기 시작한 망토와 멋들어진 제복의 조화는 남자의 로망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준비해.”

카루스는 하영을 보며 말했다.

“일직선으로 길을 뚫을 거야. 그리고 뚫은 길이 사라지지 않게 병사들이 막아 줄 거야. 그렇지?”

카루스의 말에 그의 곁에 있던 덩치 큰 남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주변 이들에게 버프 마법을 걸 수 있습니다. 내가 있는 한 병사 한명 한명이 일당백의 전사들이 된다. 그러니 아가씨는 걱정할 필요 없다. 이해했나.”

말하는 어투가 수시로 바뀌는 덩치 큰 남자의 말에 하영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겉보기에는 도끼를 들고 야만적으로 돌격할 것 같은 사람이 버퍼라니, 생김새와 능력의 어마 무시한 격차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긴장감을 다 날아가 버렸다.

“준비됐습니다.”

덩치 큰 남자가 카루스에게 말했다. 카루스는 하영을 비롯한 주변인들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전군 돌격 준비!”

카루스가 크게 소리쳤다. 동시에 그의 손에서 번개가 일직선으로 튀어 나갔다. 어찌나 크고 위협적인지 번개로 이루어진 용이 몬스터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멋들어진 번개 마법의 모습에 하영이 감탄하는 사이, 카루스는 번개를 내보낸 것과 동시에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다.

“명령이다! 방패를 든 이들은 빠르게 뛰어가서 몬스터가 들어오는 걸 막아! 창을 든 이들은 방패병 들을 돕도록!”

카루스가 검으로 번개가 지나간 자리를 가리켰다. 그 행동에 방패를 든 이들이 죽자사자 앞으로 뛰어나갔다. 창병들은 방패병들의 뒤를 따랐다.

“무리하지 마! 창을 든 이들은 몬스터의 공격을 저지하는 거다!”

카루스는 주변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하영은 그 모습을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긴장됐다. 사람이 죽고 죽이는 건 봤어도, 이런 대규모 전쟁을 겪는 건 처음이었다.

“언니 저희도 슬슬 출발해요.”

미동도 하지 않는 하영의 모습에 아벨라가 하영의 등을 툭툭 건드렸다. 하영은 고개를 돌려 아델라를 쳐다봤다. 아델라의 곁에는 아벨이 있었다.

하영은 걱정이 됐다. 자신은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면 그만이지만, 아델라는 몬스터들을 뚫고 다시 도시로 돌아와야 한다.

“괜찮겠어? 무리하는 거면 그러지 마. 몇 시간 빠르게 간다고 크게 이득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몬스터를 전부 죽이고 천천히 엘리베이터에 타도 문제없어.”

하영이 물었다. 같이 돌아다녔기에 아델라가 강한 건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 보는 몬스터들을 뚫고 무사히 도시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몸이 약한 마법사니까.

“하영님.”

하영의 물음에 아벨이 대신 말했다.

“저는 단 하루도 손에서 검을 놓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체력도 뛰어나다는 소리입니다.”

아벨은 당당하게 자신이 곁에 있음을 알렸다. 오늘을 위해 노력했다는 듯 담담하게 행동하는 아벨의 모습에, 하영은 아벨이 과의 전투를 떠올렸다.

“크흠, 믿음직하구만.”

“믿으셔도 됩니다. 아델라님은 제가 지키니까요.”

하영과 아벨의 시선이 교차했다. 아델라는 그런 둘을 보며 미소 지었다.

“언니 마법의 준비는 끝났어요.”

아델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4명의 몸에 여러 색의 빛이 들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빛이 하나씩 쌓일 때마다 점점 감각이 뚜렷해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힘이 났다.

‘설마, 이 정도 일 줄이야.’

하영은 아델라의 마법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얼마나 능력치가 많이 상승하는지 육체의 능력치만 따진다면 마의 달의 버프와 비교해 봐도 될 정도였다.

“어서 가죠!”

아델라가 먼저 뛰어갔다. 그 뒤를 하영과 아벨이 이었고, 마지막으로 병사들을 지휘하던 카루스가 따라갔다.

“아니, 너까지 오면 어떻게 해.”

하영은 순식간에 자신을 추월한 카루스의 뒷모습을 보며 따졌다. 그는 아델라의 버프를 받지 않았음에도 하영보다 더 빨랐다. 마법사라 믿지 못할 속도였다.

“아까 그 덩치 큰 친구가 대신 지휘를 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괜찮아.”

카루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반응에, 하영은 그의 행동이 충동적이지 않은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부담스럽네.

“아니, 부담스럽게 왜 이렇게 잘해줘.”

하영이 물음에, 카루스가 호쾌하게 웃었다. 처음 듣는 큰 웃음이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데 이유가 필요하겠어?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냥 마음에 들었어. 나랑 같은 검은 머리카락도, 남자다운 행동도… 그 모든 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거든.”

카루스의 말에 하영은 응접실에서 카루스가 유난히 거울에 집착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하영은 이제야 퍼즐이 제대로 맞춰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통해 과거를 보고 있었구나.”

하영이 씁쓸하게 웃었다. 남자들에게 애교나 떨면서, 남들 등쳐먹고 올라간다며 정하영을 욕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언니 저희는 원래 악역입니다.”

그런 하영의 모습에 아델라가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그건 언니도 마찬가지고요.”

아델라의 말에 뭐라 반박하려던 하영은, 자신과 다르게 아델라가 운명을 비틀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경험이 담긴 14개월 선배의 말이다. 어찌 토를 달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날로 먹을 때는 그냥 아무 말 없이 날로 먹어도 돼요. 스승님도 그랬으니까요.”

“14개월 차라 그런가. 묘하게 설득력 있네.”

하영은 아델라를 바라봤다. 숨을 고를 정도로 열심히 뛰는 와중에도, 메이드복이 많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천이 날뛰다 못해 서로 꼬이기 시작한 자신과는 달랐다.

“그럼 이제부터 언니가 저를 언니라 불러주세요.”

“그건 아니지.”

아델라와 대화를 하면서도, 병사의 벽을 뚫고 이쪽으로 들어오려는 몬스터를 본 하영은. 망설임 없이 창을 꺼내 투창을 사용했다.

슈웅

날아간 창은 삼지창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삼지창은 딱 하나뿐이다. 튜토리얼에서 처음 구매한, 내 최초의 무기.

하영은 날아가는 삼지창을 살짝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미 몬스터의 얼굴에 박힌 창이 손에 닿을 리 없었다.

“언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알았다 알았어.”

하영은 몬스터들 사이로 사라져 버린 창을 두고 계속 앞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병사들이 만든 길은 좁아졌다. 안쪽으로 향할수록 몬스터가 많은 탓이었다.

“여긴, 내가 맡지.”

하영의 뒤에서 달리던 카루스가 멈춰 섰다. 몬스터들의 맹공에 병사들의 줄이 중간에 끊어지려 했기 때문이다.

“스승님.”

“우리 스승님 잘 모시고 가라. 스승으로써 명령이다.”

“마지막인데 능글스러운 모습이 안 보이시네요.”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솔직해 져보겠어. 안 그래? 스승님.”

카루스는 그렇게 말하며 하영의 뒤를 쳐다봤다. 이윽고 카루스의 온몸에 파란색 기운이 몰아쳤다.

“스승님? 내가?”

하영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카루스를 바라봤다. 창을 쥐고 있는 하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하영의 발이 천천히 느려졌다. 그리고 멈춰 서려는 순간. 생각을 깨는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은인님이 맞았군요. 스승님의 스승님.”

아델라의 말이 들려온 것과 동시에 뒤에서 몬스터가 하늘을 날았다.

“스승님의 스승님.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어서가요!”

아델라의 말에 하영의 발걸음이 다시 빨라졌다.

병사들이 점점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델라가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 앞으로 가다 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코앞에 있었다.

“너흰 이만 돌아가 봐.”

“언니.”

하영의 말에 이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예감한 아델라의 걸음이 느려졌다. 이대로 보내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어떻게 만남을 마무리해야 더 오래 기억될까? 아델라는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아직 ‘이름’을 교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니 마지막인데 우리 서로 첫 인사라도 할까요?”

“무슨 소리야! 인사는 이미 옛날 옛적에 했잖아!”

하영은 자신의 뒤로 뒤처진 아델라에게 소리쳤다. 차분하게 말할 시간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몬스터들은 우리를 노리고 있었다.

“빨리 돌아가!”

하영은 이쪽으로 뛰어오는 몬스터에게 투창을 사용하며 소리쳤다. 그 말에 묵묵히 몬스터를 베던 아벨이 말했다.

“제가 나서서 시간을 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직후, 아벨의 검에 기운이 몰아쳤다. 검기였다.

“멋진 이별로 인연의 끝을 장식해 주십시오.”

아벨이 몬스터들을 향해 돌진했다.

하영과 아벨라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이쪽으로 오는 몬스터는 없었다.

“결국 엘리베이터까지 마중을 왔네.”

하영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말했다. 하영의 말에 아벨라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언니 제 진짜 이름은 김석현입니다. 나중에 탑에 올라가서 소원을 빌면, 잊지 말고 저랑 아벨도 좀 챙겨주세요.”

“김석현인가…”

아델라의 말에 문득 처음 아델라와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왜 빙의 된 몸에 이름을 말했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저 몸에 그 이름은 안 어울렸다.

떠오르는 생각에 하영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별하는 자리에서 이런 생각이라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싶었다.

“반가웠다. 난 정하영이라고 해.”

하영은 아델라가 처음 인사했던 대로, 육체의 이름을 대었다.

“허…”

하영의 인사에 아델라의 눈이 커졌다. 하영이 정하영의 이름을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큭큭. 아델라가 상스럽게 웃었다. 누가 봐도 점수가 영애 점수가 까일 것 같은 괴팍한 웃음이었다.

“전 아델라 폰 클로비스라고 합니다.”

아델라는 치마의 끝을 살짝 들어 올리며 다시 인사했다.

“그 인사를 설마 나에게도 할 줄 몰랐어.”

이제는 익숙해진 인사 방법이자, 아델라의 아이덴티티. 우아한 인사를 정면으로 받게 된 하영이 히죽 웃었다.

“히히, 그렇게 웃으시면 좀 창피스러운데요?”

그런 하영의 웃는 얼굴에 아델라가 눈웃음을 지었다.

하영도 웃고 아델라도 웃었다. 정말 미소가 가득한 이별이 아닐 수 없었다.

“난 갈 테니까. 몬스터가 오기 전에 빨리 돌아가.”

하영은 여우처럼 눈웃음 짓는 아델라의 등을 한번 치며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아델라의 눈에는 하영의 몸이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

그렇게 두 빙의자 간의 인연이 정리되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기 직전. 기적적으로 종이가 2장이 날아들었다.

“이건……”

하영은 그 종이를 들어 올렸다.

두 장중 한 장은 낯선 언어로 된 편지였다. 그러나 묘하게 익숙했다.

“설마.”

하영은 이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건 하영의 기억 속에도 있는 종이. 아니 편지였다.

“그럼 또 하나는.”

하영은 다른 종이도 확인했다. 두 번째 종이는 지도였다. 후작가의 비밀통로를 세세히 적어놓은.

“와 미친. 그게 거짓말이었어?”

종이의 정체를 확인한 하영이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충격적인 반전이었다.

하영은 쓰러지듯 엘리베이터의 기대 종이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둘 다 그대로였다. 다시 봐도 변한 건 없었다.

그러나 새롭게 발견한 건 있었다.

“이건.”

후작가의 비밀통로가 세세히 적혀져 있는 종이 뒤편에는 어딘가 엉성한 한글로 된 메시지가 작게 적혀있었다.

[잊어버린 물건 가져가십시오. 그리고 다시 후작님께 돌려주러 오십시오.]

[저는 지긋지긋한 뒷골목에서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전 남장은 싫습니다. 전 여자입니다.]

[아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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