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51화 (51/85)

〈 51화 〉 6. 탑 대리 등반

* * *

눈을 감고, 귀를 연다.

­ 억빠맨이야님이 100골드 기부.

앞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 어서가장애들아님이 100골드 기부.

앞으로 뛰어.

음성 후원의 목소리는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로 통일되어 있다. 새태창으로 설정을 만지다 우연히 발견한 기능이다. 덕분에 무념무상이 가능해졌다.

­ 애니실수로본사람: 어이어이, 이거 개꿀잼이라고!

­ 느금냥이: 이제 대강 알겠으니 사냥하러 가자.

­ 어서가장애들아: 그래 어서가장 애들아.

눈을 감고 있는 탓에 채팅의 상황은 볼 수 없지만. 기부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걸 보면, 꽤 만족스러운 채팅이 오고 갈 것이라 예상된다.

­ 응기잇님이 100골드 기부.

응기잇!

온화한 여성의 목소리로 저런 짓은 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진 않는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 좋은 분위기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 대충지은닉네임님이 100골드 기부.

왼쪽으로.

­ 포장마차라면도둑님이 100골드 기부.

오른쪽으로.

­ 공감하면골드줌님이 100골드 기부.

왼쪽으로.

­ 탑골공원휠체어도둑님이 100골드 기부.

오른쪽으로.

­ 욕절대안하는성좌님이 100골드 기부.

오른쪽이라 하는 새끼들은 다 대가리 깨짐? ㅈ같네 진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에 입가가 씰룩거린다.

콘텐츠를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났지만. 4층의 시작 지점인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 대충지은닉네임: 아니 ㅅㅂ 뭐함? ㅈ 병신임? 엘레베이터가 오른쪽에 있는데 오른쪽으로 가려함? 사냥 안 함?

­ 포장마차라면도둑: 엄.

­ 공감하면골드줌: ㅅㅂ ㅋㅋㅋㅋㅋㅋ

­ 탑골공원휠체어도둑: 준.

­ 가오중최고는아헤가오: 아니, 엄준은 뭔데 자꾸 치는 거임?

­ 햄버거집케찹도둑: 엄은 살아있다…

­ 욕절대안하는성좌: 뒤졌으니까 빨리 ㅅㅂ 사냥 좀 해보자고

채팅창이 보이지는 않지만. 대강 어떤 상황인지 예상이 돼서 웃음이 나오려 한다.

2명에서 한 개의 컨트롤러를 가지고 게임을 해도 어려운 것이 RPG다. 수십 명의 인원이 한 개의 컨트롤러를 붙잡고 있으니 잘 될 턱이 없다.

게다가 이들은 단순한 사람들도 아닌 자존심이 쌘 존재들이다. 한 명이라도 트롤 짓(플레이 방해)을 하는 순간. 채팅창은 전쟁터로 변할 것이 뻔했다.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점프.

점프라는 여성의 목소리에 맞춰 짧게 도약한다. 아까서부터 간간이 점프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몸이라도 풀라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정말 고맙다. 1시간째 잠깐 움직이다 멈추기를 반복하니 좀 힘들었었다.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점프

­ 느금냥이: 아니, 왜 자꾸 점프하라고 함? 게임 흐름 끊기는 거 안보임?

­ 군침도는사람: 이러면 보임.

­ 푸른하늘583: 뭐가 보인다는 거야? 아무것도 안 보이는 데?

­ 군침도는사람: 점프할 테니 아래 보셈.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점프

­ 느금냥이: 홀리쉣~ 군침 닉값 ㅇㅈ

­ 푸른하늘583: ???

­ 금수저수지: 개꿀이네ㅋㅋㅋㅋㅋ

­ 햄버거집케찹도둑: 이해 못 하시는 분들은 시선을 아래로 변경하고 보셈.

­ 햄버거집케찹도둑님이 100골드 기부.

점프

­ 푸른하늘583: 하얀색…

­ 흑우아닙니다: 100골드마다. 하얀색? 개꿀. 가성비 조지네.

­ 느금냥이님이 100골드 기부.

점프.

­ 심연의불길님이 100골드 기부.

점프.

­ 여자성기삽니다님이 100골드 기부.

점프

­ KMB77님이 100골드 기부.

점프

어느 순간부터 점프하라는 여성의 목소리만 들려온다. 소리가 들릴 때마다 위로 뛰고 있긴 한데. 이쯤 되니 무언가 잘못됐다는 좀 들었다.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높게 점프.

높게 점프? 새로운 명령이다. 하지만 이해하는데 문제는 없다. 백스텝(뒤로 물러나기)이나 높게 점프 같은 건 게임에서도 종종 보이는 단어들이다.

“흐읍!”

하영은 다리에 힘을 주고 최대한 높게 점프했다.

­ 여신의눈물자국: 이게 게임? 이게 극락?

­ 심연의불길: 이건. 나도 인정이다.

­ ghfu2m: 보인다. 보여!

­ 금수저수지: 생존님. 이분 복장은 왜 저런 거에요? 무림인임?

­ 생존게임좋아요: 옷 입히기라고. 콘텐츠 할 때가 있는데. 그때 기부 많이 하면 원하는 옷 입힐 수 있음.

­ 생존게임좋아요: 그런데 옷값도 줘야 함.

­ 심연의불길: 오…?

­ 흑우아닙니다: 혜자네.

­ 공감하면골드줌: ?

­ 금수저수지님이 100골드 기부.

높게 점프.

­ 흑우아닙니다님이 100골드 기부.

높게 점프.

높게 점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계속해서 이어지는 똑같은 명령. 점프를 할 때마다 역동적이게 움직이는 아래쪽 천들. 이쯤 되면 눈감은 장님인 하영이라도 알 수 있다.

‘시발. 역시 시청자들이야.’

하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삽질을 하기 시작한 지도 1시간이다. 이제 그만하고 사냥하러 가자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린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5초마다 100골드씩 쌓이는데 어떻게 그만 하라고 말하겠는가.

‘이번 층만 참자. 참으면 골드가 온다.’

하영은 곧 그만두겠지 라며. 말하기보다는 인내하기로 했다.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더블 점프.

“더블 점프 없음. 그런 거 못함.”

하영이 말하는 순간은 하지 못하는 명령을 내렸을 때뿐이었다. 진짜 게임 캐릭터라도 된 것 마냥. 그 이외의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그런 하영의 모습에 만족했다.

­ 심연의불길: 아ㅋㅋ 이게 ㅅㅂ 진짜 방송이지. 요즘 방송하는 거 보면 몸ㅈㄴ 사려서 노 잼임.

­ 낭만검객: 하영이는 다른 년들하고 다름 ㅇㅇ

­ 아가리롤스타: 남자니까 다르지 ㅅㅂ년아.

­ 진실은언제나하나: 이 방송을 늦게 봤다? 그럼 신생 100분의 1 정도는 손해 본 거다.

­ 방송계의유니콘: 라고 뉴비가 말하죠? 개 웃기죠?

­ 금수저수지님이 100골드 기부.

점프.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높게 점프.

그렇게 하영은 2시간 가까이를 점프하는데 사용했다.

***

고블린이 독침을 쐈다. 초원 지대라 독침을 막아줄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블린을 향해 돌격하던 하영은 옆으로 몸을 구르는 것으로 독침을 피했다.

그리고 곧바로 고블린을 향해 뛰쳐나갔다. 망설임은 없었다. 눈은 감고 있으나. 시청자들이 대신 상황을 알려주고 있었다.

키에엑!

고블린은 달려오는 하영의 모습을 보고 나무 몽둥이를 들어. 근접 전투를 준비했다.

콰직!

고블린의 몽둥이가 창과 닿는 순간. 강하게 잘려 나갔다. 어떠한 기술이 아닌, 강한 힘으로 자른 것이기에 잘려나간 몽둥이의 겉면은 삐뚤빼뚤했다.

고블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잘려나간 몽둥이를 쳐다봤다. 하영은 이 틈을 노려 고블린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그 모습에 고블린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애초에 승부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하영은 지금보다 훨씬 약했던 튜토리얼에서도 고블린을 학살하고 다녔다.

그때보다 더 강해진 하영이 고블린에게 패배할 리가 없다. 하영도 그 사실을 알기에 이런 무모한 콘텐츠를 준비한 것이었다.

‘끝이다.’

하영은 자신의 얼굴 쪽으로 튈, 고블린의 피에 대비해 입을 꾹 다물었다.

멈칫.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하영은 자신을 공격한 고블린을 상대로 끝을 볼 수가 없었다.

움직임을 멈추라는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키에에엑!

고블린은 손잡이부분만 남아있는 몽둥이를 하영에게 날린 후 급히 숲 속 쪽으로 도망쳤다.

얼떨결에 몽둥이의 손잡이 부분을 맞게 된 하영은 멍하니 고블린이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눈이 감겨있기에 볼 수는 없었지만. 1포인트가 날아갔다는 사실이 너무 잘 보였다.

­ 아가리롤스타: 아니. 그 순간에 왜 멈춤? 진짜 머리가 멈췄음?

­ 햄버거집케찹도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천신대가리멈춰: 진짜 대가리가 멈춘 애들이 많네.

­ 탑골공원휠체어도둑: 응~ 고블린 또 놓쳐 버렸죠?

­ 군침도는사람: 님들. 잠시 기부하지 말아 보셈.

­ 공항도둑: 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하는데.

­ 가오중최고는아헤가오: 저분은 믿을 만하다.

­ 억빠맨이야: 군침좌는 인정이지 ㅋㅋ

고블린이 사라져 적막감이 감돌기 시작한 초원. 하영은 공격하던 그 자세 그대로 다음 기부를 기다렸다.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앞으로 뛰어.

하영은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앞으로 뛰어갔다. 창을 내지르던 자세 그대로 오래 있는 건, 몸이 뻐근해서 싫었던 참이었다.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왼쪽으로.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앞으로 뛰어.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오른쪽으로.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앞으로.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앞으로.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두 손으로 잡아.

두 손으로 잡아? 처음 듣는 명령에 잠시 주춤하면서도 의심 없이 앞으로 손을 앞으로 뻗는다.

‘이건… 돌? 아니. 크기로 봐서는 바위인가?’

방금까지 들고 있었던 창대 대신, 차갑고 단단한 바위의 감촉이 손에 느껴졌다. 이걸 대체 왜 잡으라는 거야. 하영은 투덜거리면서도 팔을 움직여 돌의 양 끝을 잡았다. 돌이 옆으로 큰 돌이 아니었기에 하영의 작은 손으로도 무사히 잡을 수 있었다.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위로 올라가.

하영은 여성의 목소리에 따라 발을 들어 올렸다. 표면이 매끄럽지 않은 덕분에 쉽게 바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이는 근력 능력치가 올라가면서 겸사겸사 오른 악력 덕분이었다.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천천히 더 올라가.

하영은 명령 받은 대로 바위를 올라갔다. 눈을 감은 탓에 몰랐는데 내가 잡은 바위는 동그란 바위였다.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멈춰.

동그란 바위의 경사가 진 부분에 배가 닿았을 때, 멈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영은 아무런 생각 없이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올라가는 것을 멈췄다.

그러자 명령이 아닌, 평범한 기부가 터져 나왔다.

­ 애니실수로본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어이어이! 네녀석 ‘천재’ 인가?

­ 탑골공원휠체어도둑님이 100골드 기부.

와. 시2벌 이건 진짜 레전드네.

­ 여신의눈물자국님이 100골드 기부.

자세 봐라 시2발! 하영이! 오늘 거기서 움직이지 마!

­ 느금냥이님이 100골드 기부.

ㅜㅑ 끝내준다. 이게 게임이지!

천재? 레전드? 자세?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던 하영은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음성 메시지에, 현재 자신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설마.’

하영은 떠오르는 불길한 예감에 가늘게 몸을 떨었다.

확신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안했다. 자유도 넘치는 게임에서 여자 캐릭터를 고르면 가끔 해보는 짓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 여자성기삽니다님이 100골드 기부.

왼쪽 다리 좀 살짝 들어 올려봐. 암벽 등반하듯이.

예상이 들어맞았다. 들려오는 음성 메시지에도, 하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선생님들. 여기서 그렇게 움직이면…”

­ 가오중최고는아헤가오님이 100골드 기부.

게임 캐릭터가 어떻게 말하누!

“하지만….”

­ 여신의눈물자국님이 100골드 기부.

정보) 단순히 암벽 등반하는 모션을 취하라고 한 것일 뿐이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하영이 적극적으로 시청자들을 말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트롤 하던 이들도, 정상적으로 플레이하던 이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기부를 해왔다.

‘이게. 업보인가?’

쏟아지는 기부에, 하영은 결국 포기하고 다리를 살짝 올려 바위의 경사면에 살짝 걸쳤다.

­ 대충지은닉네임: ㅜㅑ

­ 가오중최고는아헤가오: 이분 하체가 좋으시네.

­ 공감하면골드줌: 임최몸.

­ 건강한언어습관짝: 순산~ 아니 오타입니다. 순방~

­ 욕절대안하는성좌: 순산 ㅇㅈㄹㅋㅋㅋㅋ

­ 군침도는사람: 님들 저쪽에 다리 걸치기 좋은 나무가 있던데 어떰?

­ 응기잇: ㄴㄴ 상점에 있는 탁자에 엎어지는 모션 시키자

­ 말이쁘게함: 아니지 ㅂㅅ들아. 이 몸매면 바닥을 기게 만들어야지.

­ 가오중최고는아헤가오: 그냥 하나하나 다 해보자.

체감상 다리를 걸 친 지 10분은 지난 것 같다. 하지만 다음 명령은 오지 않는다. 하영은 쪽팔리는 자세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아델라보다는 내가 낮지. 적어도 여자처럼 움직이거나 말해야 하지는 않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달랬다. 그리고 방송사상으로 크게 골드를 벌어들이고 있다며, 이런 콘텐츠를 생각해낸 자신의 머리를 칭찬했다.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뒤로 점프.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부 메시지다. 하영은 음성을 듣자마자 뒤로 점프했다. 착지는 시키지 않았지만 자동으로 했다. 안하면 아프다.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앞으로 뛰어.

­ 여자성기삽니다님이 100골드 기부.

움직임 멈춰!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앞으로 뛰어.

이어지는 기부에 하영은 이제 드디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며 속으로 좋아했다. 유저들이 단합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기부해온다면. 하영은 큰 골드를 벌 수 있었다.

‘이거 잘하면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찜해둔 창을 구매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나 하영은 몰랐다. 현재 향하는 곳이 나무 위고. 하영은 거기서 고양이 비슷한 자세로 나뭇가지 위를 움직이게 된다는 사실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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