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6. 탑 대리 등반
* * *
“목적이 뭡니까.”
하영은 제일 앞에 나와 있는 덩치 큰 남자에게 물었다.
덩치 큰 남자는 하영의 물음에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마법을 쏜 걸로 추정되는 이도 어느새 다시 손에 얼음조각 같은 걸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에 하영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말하는 사이 새태창을 소환해서 도망치려는 계획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빈틈이 없어.’
겨우 한 명을 상대하는데도 방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서서히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다.
하영은 그들을 바라보며 슬그머니 오른손을 등 뒤로 숨겼다. 그러자 살짝 투명한 연기 같은 게 손에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해.’
손에서 나오고 있는 연기. 그것의 정체는 새태창이었다. 저번 층의 보상으로 레벨업한 새태창은 다양한 방식으로 손에서 나올 수 있게 됐다.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포기하고 돌아간다면, 목숨을 뺐지는 않겠습니다.”
하영은 찡그려지려는 눈썹을 최대한 막았다.
지금 여기서 감정을 보이는 건 좋은 선택이 못됐다. 최대한 여유로운 척을 해야 한다. 상대가 방심을 하지 않으니, 최대한 그 긴장감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상대가 잠시라도 주춤거릴 것이다.
하지만 하영의 생각과 달리, 이들은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목책 같은 것을 설치하며,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작전을 조금 수정해야겠어.’
하영은 재빠르게 등반자들의 덩치와 얼굴을 스캔했다. 최대한 약하게 생기고, 덩치가 작은 사람, 거기다 성격도 유약해 보이면 최고다.
‘저 사람은 순박해 보이는데 덩치가 너무 커, 저 사람은 덩치가 작은데 얼굴에 칼자국이 있네?’
하영은 빠르게 사람들을 체크했다,
4층에 올라온 등반자답게, 다들 무거운 분위기를 풍겼지만. 다행히도 맨 마지막 줄에서 작고 얍삽해 보이게 생긴 남자를 찾았다.
‘팀의 분위기를 망가트릴 얼굴 상! 딱 내가 찾던 인재상이야.’
하영은 목표가 된 남자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런 후 손가락으로 남자를 가리키며, 최대한 얄밉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거기, 못생기고, 덩치가 작은 아저씨. 아저씨는 불쌍하니까. 특별히 살려 드릴게요. 가셔도 좋아요.”
하영은 특별히 양보해준다는 듯, 말을 했다.
최대한 약을 올리려 한 것이지만, 정하영의 예쁘장한 외모와 초탈한 하영의 특유한 분위기가 합쳐져, 남자를 내려다보는 도도한 여자의 시선이 완성됐다.
“오냐, 계속 그렇게 해봐라. 내 물건으로 네년을 가게 해주마.”
하영에게 지목당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남자의 말에 몇몇 이들이 동의한다는 듯 잡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크, 난 저렇게 앙칼진 게 좋더라.”
“거기서 딱 기다려라. 내가 남자의 맛을 알려주마.”
분위기가 흐트러졌다. 하영은 아공간에서 창을 7개 꺼냈다.
하나는 왼손으로 잡아 버프를 받았고, 나머지 6개는 허공에 띄어 놨다.
“아저씨. 내가 살려 줄 때가. 괜히 목숨 버리지 말고.”
하영은 말하면서 창 하나를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이들에게 날렸다.
정확히는 그들의 너머에 있는 나무에 맞췄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의 얼굴 같은 곳에 날리고 싶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들에게 큰 상처를 주면, 역으로 흥분해서 덤벼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쾅.
날아간 창이 나무를 뚫고도 땅에 반쯤 박혔다. 나무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그 광경을 보고 침을 삼켰다.
“무림 출신인 년답군…,”
하영에게 지목당한 남자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지금이라도 도망가는 게 좋지 않은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저 남자로 지목하길 잘했다.
“아저씨. 빨리 가. 다음은 없어.”
하영은 자신이 지목한 남자를 흘겨보며 말했다.
“내가 죽더라도 아저씨들 반 이상은 죽이고 죽어.”
최대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 생각을 머릿속에 유지한 체 등반자들을 노려봤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창 안 보여?”
하영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창들을 그들 쪽으로 슬며시 움직였다.
방금 사용한 한 개의 창은 아공간에서 새로 보충해놓은 상태였다.
움찔. 창이 그들 쪽으로 향하자 등반자 몇 명이 주춤했다.
덩치 큰 남자가 주변에 있는 이들이 살짝 뒤로 빼는 걸 느끼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다들 정신 차려! 저 여자만 제압하면, 저 아공간 주머니도, 이 층의 숨겨진 보상도. 저 여자도 우리 거다!”
덩치 큰 남자의 외침에 주변 이들의 기세가 바뀌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하영에게 지목당한 남자를 포함, 창이 지나간 위치에 있던 이들은 어느새 자리를 이탈한 상태였다.
등반자들은 뚫려버린 포위망을 다시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덕분에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해 졌다. 선동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리더로 보이는 덩치 큰 아저씨! 말이랑 몸이랑 따로 놀잖아. 왜 그렇게 외치면서 몸을 뒤로 빼는 거야!”
하영이 크게 소리쳤다. 실제로 덩치 큰 남자가 뒤로 몸을 뺀 것은 아니었으나. 하영의 외침에 몇몇 등반자들의 시선이 남자에게로 향했다.
포위망도 대충 완성 됐는데, 왜 먼저 돌격하지 않고 말만하냐며 째려보는 느낌이었다.
“쯧.”
최대한 촘촘하게 포위한 후, 일제히 돌격해 피해를 줄이려던 남자는, 그 시선에 혀를 찼다.
최대한 많은 수를 급하게 모으느냐 아무나 받아 준 게 문제였다.
머리수를 최대한 땅겨오려다. 별생각도 없는 것들까지 받아 들어버렸다.
그 탓에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원하는 것을 얻은 후 서로 배신의 눈초리를 쳐다보는 건 봤어도, 이렇게 시작도 전에 서로를 견제하는 건 난생처음 본다.
“안 되겠군. 꽤 하잖아.”
잠시 상념에 잡혀있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하영은 그 모습에 손뼉을 쳤다.
“이야, 역시 흔들리지 않는 거 봐. 역시 리더다워! 아저씨가 최고야!”
하영의 말에 덩치 큰 남자가 코웃음 쳤다.
“겁을 줘서 우리의 급조한 우리의 결속을 깬 건 칭찬해줄 만하다. 하지만 그래서 어쩔 거지? 내가 보기에 너는 마력 능력치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데 말이야.”
창을 한번 날렸을 때, 마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가고 있는 걸 봤다고. 남자는 그렇게 말을 덧붙이며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남자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다른 이들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뒤에 있는 땅을 얼리고, 뾰족한 나무 막대기를 설치하면서 포위망을 좁혔다.
하영은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신감 있게 나를 노리던 이유가, 마력을 보는 눈 같은 걸 가지고 있어서 그랬나 본데… 참 다행이었다.
“응~ 이미 끝났어.”
하영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에게 중지를 세워 엿을 한번 먹여줬다.
그런 후 바로 낭떠러지로 몸을 던졌다. 주변에 있던 창들도 하영을 따라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미친!”
“이봐! 이야기랑 다르잖아! 아래로 몸을 던지지는 않을 거라며!”
갑작스러운 하영의 행동에 등반자들이 당황해 하며 덩치 큰 남자에게 따졌다. 덩치 큰 남자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대답했다.
“닥쳐! 아까 그년은 육체 능력치는 우리 중 최악이야! 낭떠러지로 떨어진 이상 그년의 몸은 반병신이나 다름없어! 우린 당장 아래로 내려가서 누가 체 가기 전에 그년을 손에 넣기만 하면 돼!”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급히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비록 땅의 일부가 얼려져 있고 목책이 세워져 있긴 했지만. 얼려져 있는 땅은 피하고, 목책으로 세워둔 말뚝을 검으로 잘라내면 그만이었다.
“어허, 어디를 가려고.”
그러나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듣기 좋은 미성, 그러나 귀에 익은 목소리. 이 목소리의 정체는…
“투창맛 좀 봐라!”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창이 떨어져 내렸다. 덩치 큰 남자는 목소리가 들린 것과 동시에 검을 휘둘러 창을 빗겨나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비하지 못했다.
“커헉.”
창들이 등반자들의 배를 뚫고 나왔다. 일격에 즉사한 이들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어중간하게 몸을 피해 죽음을 피한 이들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투창.”
하영은 그런 이들에게 다시 한 번 투창을 사용해서 편하게 만들어줬다.
“선생님들. 괴롭지 않게 보내주는 거 봤어? 나 너무 착한 거 같아.”
가증스러운 목소리, 덩치 큰 남자는 이를 갈며,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구름? 아니… 새인가…? 저건 대체 정체가 뭐지?”
구름으로 뭉쳐 만들어진 새 같은 것이 하늘 위에 있었다. 크기는 자신의 배는 컸으며, 여자는 그 정체불명의 물체의 머리 부분에 누워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6명 죽였으니. 1,200골드 맞죠? 선생님들.”
남자는 허공으로 돌린 체 뭐라 이야기하기 시작한 하영을 보며 이를 갈았다.
우리를 농락한 주재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해맑게 웃는 게 너무 가증스러웠다.
“어떻게 그런 것을 가져왔는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덩치 큰 남자는 하영에게 소리친 후,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이들에게 저 새의 몸통을 노리라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멍청아, 주변을 좀 둘러봐 봐라.”
자신을 비웃는 하영의 말에, 덩치 큰 남자는 하양에게서 시선을 잠시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살아남아 있는 자들은 모두 몸을 떨고 있고, 죽은 자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근처에 활이 떨어져 있었다.
활이 떨어져 있지 않은 단 한 명은. 빙결계 스킬을 사용하던 남자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이런, 얍삽한 년이!!”
원거리 공격 수단을 전부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뭐라고? 탈것도 없는 찐따라 안 들리는데!”
하영은 새태창의 머리 위에서 남자가 내뱉는 욕설을 듣다가 크게 소리쳤다. 공격받을 위험은 없었다.
화살을 만들어내는 스킬을 가지 못한 이들은 활을 주워봤자 사용도 못 했다.
“이야, 이게 다 얼마야.”
하영은 도망치기 시작하는 등반자들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등반자들이 도망칠까 걱정은 되지 않았다.
멍청한 이들이 자신의 목을 조른다는 것도 모른 체 목책 같은 것을 세워둔 덕분이었다.
“응 가두리 양식 개꿀이죠?”
하영은 도망치기 시작한 등반자들에게 투창을 선사해줬다.
“왜, 왜! 스킬을 사용하는데 보유한 마력이 줄지 않는 거냐!”
죽기직전, 온 힘을 다해 소리치는 덩치 큰 남자에게는, 파란색 액체가 든 물병을 흔들며 친절하게 저승인사까지 해줬다.
“응 MP 포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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