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7. 탐정 없는 범인 찾기
* * *
애니실수로본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투창.
귓가에 들리는 여자 목소리. 하영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창을 던졌다.
켁!
즉사였다. 하영은 창에 머리가 터져나간 고블린을 보며 웃었다. 자존심을 굽히고 시청자들에게 굽히길 잘했다.
‘전화위복인가.’
등반자들과 싸울 때는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막상 죽이고 나니 모든 일이 잘 풀려가고 있었다.
하영은 맨 처음 시청자들에게 부탁했을 때, 직접 발로 걸어 다니면서 24시간 사냥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짓궂은 시청자들이 편한 사냥을 하게 해줄 리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등반자들을 학살하던 방식이 마음에 들었는지, 직접 싸우게 하기보다는 투창을 해서 사냥하는 걸 선택했다.
물론 방식의 변화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에 투창을 여러 개 사용하면 마력이 너무 낭비되기에 효율적인 사냥을 위해 하나씩 던졌다.
억빠맨이야님이 100골드 기부.
투창
이어지는 목소리에 하영은 다시 창을 던질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빈손에 다시 창이 생겨났다. 아공간에서 꺼낸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상점에서 구매한 것도 아니었다.
하영의 손에 들린 이 창은, 조금 전에 하영이 던졌던 창이었다.
애니실수로본사람: 어이어이! 회수 스킬 효율 마지카요!
어서가장애들아: 대충 효율 높다는 뜻.
내말대로투자하면잘됨: 내 말대로 하길 잘했지? 내말대로 하면 건물을 사도 대박이남.
공감하면골드줌: ㅇㅈ한다. 5만 골드도 하지 않는 싸구려 스킬로 뽕 뽑는다 ㅋㅋ
시청자들의 채팅에 하영이 미소 지었다. 그들의 말대로 이 회수 스킬은 만족스러웠다.
손으로 투창한 것만 회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거리에 상관없이 사용한 즉시 창을 손으로 되돌리는 것은 사냥의 효율을 배 이상으로 늘려주었다.
검은콩나물님이 100골드 기부.
다음 사냥터로.
고블린의 사냥하는 장소를 바꾼 지 30분 만에 주변에 있던 고블린이 전부 죽었다.
하영은 기부 메시지가 명령한 대로 다음 사냥터로 가기 위해 발로 새태창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새태창이 울부짖었다.
「호에에에! 출발하는 것이 새오!」
하영은 곧 바로 두 팔로 새태창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창은 아공간 주머니에 진작 넣어둔 상태였다.
새태창은 하영이 몸을 고정한 것을 깨닫자마자 바로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갔다.
하영은 빠르게 날아가면서도 고블린이 많은 곳을 찾아내는 새태창의 모습에 감탄했다.
‘역시 상태창 레벨 3. 내 상태 이외에도 내가 보고 느낀 것, 그리고 본 것마저 기억하다. 정말 최고야.’
새태창은 이런 방식으로 사냥하기 시작한 지 3일 만에 사냥에 익숙해졌다.
하영은 제대로 눈을 뜨기도 힘든 속도임에도 새태창의 눈은 주변을 정확히 포착했다.
[호애에! 도착한 것이 새오!]
새태창이 다시 울부짖었다. 하영은 다시 아공간 주머니에서 창을 꺼냈다. 그리고 명령을 기다렸다.
대충지은닉네임님이 100골드 기부.
투창.
명령이 내려오는 대로 다시 창을 던졌다.
필요한 사냥도 하면서 골드도 번다. 거기다 평소보다 사냥 속도가 수십 배는 빠르다.
투창에 필요한 마력이 부족하면, 비싼 MP 포션 값도 시청자들이 내준다.
키엑!
켁.
창의 적중률도 점점 올라갔다.
처음에는 빗나가거나, 빗겨나가 도망치던 고블린들이, 지금은 머리나 몸통을 꿰뚫리고 즉사한다.
“후우.”
도착한 곳에 있는 고블린을 전부 죽인 하영이 숨을 내뱉었다.
창을 던지기만 하는 단순한 동작이지만, 하루 종일 같은 자세를 유지하다 보니 힘이 좀 들었다.
게다가 슬슬 주변이 어두워져서 고블린들이 작정하고 숨으면 하늘 위에서는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애니실수로본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어둠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다.
오른손에흑염룡이있음님이 100골드 기부.
크킄. 피의 축제는 여기까지다.
어서가장애들아님이 100골드 기부.
대강 사냥 여기까지 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자는 뜻.
시청자들도 그 사실을 알기에 오늘 사냥은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욕절대안하는성좌: 아니, 밤눈 스킬 들고 있는 새끼 진짜 없음? 고블린 얼마 안 남아서 오늘 다 잡고 싶은데.
가오중최고는아헤가오: 그런 쓰레기 스킬을 누가 가지고 있음?
하나: 나 하나 있긴 한데, 그건 내가 써야 해서 ㅇㅇ
가오중최고는아헤가오: ㅈㅅ
심연의불길: 솔직히 밤눈처럼 밤에 눈을 밝혀주는 스킬이 있기는 한데. 좀 광범위한 능력이라 하영이한테 주기에는 아까움.
진실은언제나하나: 이게 맞지. ㅋㅋㅋ 쓸모없는 걸 기부하지. 쓸모 있는 걸 기부하겠냐고 ㅋㅋ
하영은 채팅창을 구경하면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직접 뛰어가기에는 엘리베이터와 많이 떨어져 있었기에 새태창을 타고 날아갔다.
채팅창을 보는 것은 새태창이 천천히 날아가 주었기에 문제없었다.
가오중최고는아헤가오님이 100골드 기부.
아헤가오!
“그런 명령어 없습니다.”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다 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하영은 도착하자마자 현재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다.
[4층 최초의 적]
[생존 인원: 46명]
[남은 고블린의 수: 541명]
[보유 포인트: 6,589]
[*다른 등반자를 살해할 시, 그 등반자의 포인트를 전부 획득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1일 남았습니다.]
[*오늘 하루 죽은 고블린의 수는 2,142명입니다.]
“나쁘지 않네.”
처음 사흘 동안 고블린을 한 마리 잡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포인트가 불어났다.
고블린 한 마리가 1포인트라는 것을 생각하면 하영이 얼마나 쉴 새 없이 창을 던졌는지 알 수 있다.
“나쁘지 않아…”
하지만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하영은 잠시 후 벌어질 일을 떠올리고는 눈을 감았다.
탑골공원휠체어도둑님이 100골드.
오른쪽으로 투창!
들려오는 목소리에 창을 오른쪽으로 던졌다. 허억! 그러자 오른쪽에 있던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하영은 눈을 살짝 떠서 창이 날아간 쪽을 살폈다.
‘역시나.’
등반자들과의 결투 중,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간 남자의 옆 나무에 창이 박혀있었다.
하영은 콧물까지 질질 짜기 시작한 남자의 모습에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솔직히 좀 불쌍했다.
“선생님들. 죽일 거면 죽이고 살릴 거면, 그만 괴롭히죠. 3일간 볼 때마다 창을 던졌으면… 솔직히 그만할 때가 됐잖아요.”
LH말대로투자하면잘됨: 그래, 죽이자.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창으로 기습 공격해서 죽은지도 모르게 보내주자.
애니실수로본사람: 어이! 팔다리 하나씩 창으로 찌르면서 구구단 외우게 하는 것이 국롤 이라고?(퍽! 그게 뭔데!)
탑골공원휠체어도둑: 그냥 발로 밟아 죽이자.
내이름은야스머신: 발? 가능.
하영의 말에 시청자들이 각자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하영은 그 모습에 고개를 흔들었다. 살릴 거면 살리고, 죽일 거면 깔끔하게 죽여 달라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 어느새 어떻게 죽일지 결정하기 위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선생님들. 저 상점 안에 잠을 좀 자고 나와도 되겠습니까?”
하영은 서로 싸우기 시작한 채팅창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이미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기 시작한 터라 하영의 말은 쉽게 묻혔다.
검은콩나물: 그동안 해온 것도 그렇지만. 솔직히 저 남자 얼굴이 너무 불쌍함. 살려주죠.
생존게임좋아요: 인정합니다.
푸른하늘583: 솔직히 좀 많이 불쌍하긴 했어요. 특히 얼굴이.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이 시발 새끼들아. 너희가 가장 악질이야.
하영은 그 모습을 보고, 말없이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 같았으면 계속 말을 해서 시청자들에게 동의를 구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나하나 의견을 묻다가는 날 샌다.
작은 거 하나하나에 의견을 나누면서 방송을 하는 건 시청자가 적을 때나 가능한 소통 방식이다.
초기 시청자의 3배가 넘는 인원이 모인 지금,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하면 최소 10분간은 멈추지 않는다.
특히 서로 어떤 의견에 대해 말하거나 떡밥을 물고 뜯고 있을 때는 진짜 엄청난 말을 하지 않는 이상은 쳐다도 안 본다.
“그래도, 오늘 채팅은 비교적 재미있네.”
하영은 상점 바닥에 누워 채팅창을 바라봤다.
포장마차라면도둑: 하영이 너무 착하다.
여신따먹고싶다: 하영이는 원래 이 약간 모자라 보이는 맛으로 보는 거임 ㅇㅇ
아가리롤스타: 착하다 하니까, 생각난 건데. 하영이 초창기가 착하고 순둥 순둥한 게 ㄹㅇ 귀여웠음.
낭만검객: 그건 ㅇㅈ
아가리롤스타: 넌 닥치라고 ㅅㅂ새끼야.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악질방송만보는사람: 하영이가 빨리 성장했으면 좋겠다.
포장마차라면도둑: ㅇㅈ 영상후원으로, 하영이 변천사 영상 기부하고 싶긴 해.
햄버거집케찹도둑: 아니 영상후원. 왜 레벨 제한 걸림?
공항도둑: 그거 어떤 미친놈이 뉴비 스트리머에게 크툴루 관련 영상 보여줘서 그런 걸 거임. 그걸로 뉴비 스트리머 죽고. 난리도 아니였음.
탑골공원휠체어도둑: ㄹㅇ 악질이네.
가오중최고는아헤가오: ㅅㅂ 악질새끼들 때문에 선량한 우리 시청자까지 욕먹고 손해 보네.
악질방송만보는사람: ㅇㅈ ㅋㅋㅋㅋㅋ 착한 우리만 손해임.
현재 상황에서 시작한 이야기라 그런지, 채팅에서 하는 이야기 모두 자신과 관련되거나 관련될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어제는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만 해서 재미없었는데…….’
하영은 채팅을 구경하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
다음날.
하영은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소리 질렀다.
“선생님들! 씨발! 초기 시청자분들 다 집합해보세요!”
[하루 동안 최대 시청자 수 유지 달성.]
[방송의 레벨이 증가합니다.]
[방송 LV.4]
[방송 : On]
[시청자 수 : 71/90]
[하루 최소 방송 시간 : 8시간/14시간]
[일일 기부 한도 : 인당 80,000]
하영은 시스템 메시지를 손가락질했다.
“최대 시청자 수 하루 동안 유지? 이걸 지금 달성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예? 누가 봐도 제일 먼저 달성할 수 있는 내용 아닌가요?”
하영의 말에 기존에 들어온 시청자들은 서로 자긴 아니라며 남 탓을 했다. 새로 들어온 시청자들은 흥미로운 상황에 채팅을 멈추고 방송에 집중하고 있었다. 덕분에 채팅창은 서로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며 호소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아, 이거 괘씸하네요.”
하영은 분함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크, 크흠.”
하영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막기 위해 얼굴에 힘을 줬다.
그러나 골드를 왕창 버는 상상에 입가가 계속 올라갔다. 덕분에 의도치 않았지만, 분노로 입 주변이 파르르 떨리는 표정이 완성됐다.
자! 모두 조용!”
하영이 쌔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채팅창에 채팅이 느리게 올라오다, 뚝 하고 올라오는 게 멈췄다. 원하는 분위기였다.
“이 안에! 저희 방송의 성장을 늦추기 위해서. 방송을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한 범인이 있습니다!”
하영은 여러 매체에서 봐왔던 탐정처럼 손가락으로 채팅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부터, 시청자 재판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지목한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채팅을 멈춰주세요.”
4층 마지막 하루를 앞에 두고, 추리게임이 시작됐다.
“첫 타자는. 바로 당신입니다. 낭만검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