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7. 탐정 없는 범인 찾기
* * *
낭만검객: 아니 이건 또 뭔 개소리임?
입질이 왔다.
낭만검객의 채팅에 하영이 바로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시도 때도 없이 계속 웃는 게 수상했습니다. 아! 발뺌은 하지 마세요. 여기 증인이 있습니다.”
하영은 손가락으로 채팅창을 가리켰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낭만검객. 그는 웃을 타이밍이 아닌데도 웃곤 했다.
당시에는 미친놈이 미친 짓 하는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웃을 이유 없이 웃었을 거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아가리롤스타: 웃는 게 수상하다 싶더니 뒤에서 흑막 짓 하고 있었네.
꿀벌아넣을게: 딱 들켜버렸죠?
늘잠수하는남자: ㄹㅇㅋㅋ
야스마스터: 찾았다 범인!
확신하는 듯한 하영의 말에 초기 시청자들이 채팅을 쳤다. 주로 낭만검객을 좋게 보지 않는 이들이었다.
분위기 괜찮네. 하영은 이때다 싶어 물고기를 몰아붙이기로 했다.
“낭만 선생님 억울하시면. 왜 웃었는지 말씀 좀 해 주시죠.”
평소보다 어감이 강한 하영의 말에 채팅창이 요동쳤다.
천신대가리멈춰: 찾았다 범인!
인방인생하급신: 범인은 바로 너야!
꿀벌아넣을게: 딱 들켜 버렸죠? 아웃이죠?
닉네임은10글자까지: 찾았다 범인! 찾았다 범인! 찾았다 범인! 찾았다 범인! 찾았다 범인!
미션석세스: 딱 들켜 버렸죠? 아웃이죠? 딱 들켜 버렸죠? 아웃이죠?
아가리롤스타: 검객아. 나가라 이 씹련아~
낭만검객: 아니 시발 어이가 없네 ㅋㅋ
이러다가는 진짜 범인이 된다. 낭만검객은 이미 반쯤 자신을 범인이라 단정 지은 시청자들을 보고 급히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낭만검객: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더 하영이 방송을 쉬지 않고 지켜본 사람이 어디 있냐?
강퇴도 당하지 않는 현재, 범인으로 몰려봤자 불이익은 별로 없겠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은 싫었다.
낭만검객: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습긴 하지만. 솔직히 나 말고 다른 새끼들이 더 의심스러움. 다 같이 나 하나 잡고 몰아가는 게. 딱 봐도 바람잡이가 있는 거 같음. 아가리롤스타라던가.
아가리롤스타: 아니 ㅂㅅ아 꼽으면. 왜 웃었는지에 대해 이유를 말하라니까?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방송계의유니콘: 찾았다 범인! 딱 들켜 버렸죠? 아웃이죠? 찾았다 범인! 딱 들켜 버렸죠? 아웃이죠?
시청자들은 질문과 상관없는 대답을 한 낭만검객의 채팅을 보고 더욱 그를 몰아쳤다.
하지만 하영은 낭만검객의 채팅에 고개를 끄덕였다.
몰아가기 보다는 평소 행실이 돌아온 것 같긴 하지만, 낭만검객 보다 더 방송을 오래 본 사람은 없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낭만검객: 진짜. 나는 하영이 방송이 노잼일때도 꾹 참고 봐온 참 시청자다. 이 십발련들아. 몰아갈 걸 몰아가라.
이어지는 채팅, 하영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의 말은 옳았다. 3층에서 목적을 잃고 방황할 때도 낭만검객의 채팅은 간간이 보였다.
다른 이들이 다른 방송을 보러 가거나, 다른 할 일을 할 때도.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올라가라고 계속 조언을 해주었다.
‘의리가 있는 시청자긴 해….’
성격이나 그가 하는 채팅의 수위 탓에, 개인적으로 꺼려지는 시청자였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쁜 시청자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렇기에 하영은 난장판이 되기 직전인 채팅창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진정시키기로 했다.
“자자, 시청자 선생님들. 제가 지목한 시청자 빼고는 채팅 금지에요, 진정 좀 하세요.”
하영은 채팅창으로 손을 뻗어, 싸움을 말리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애초에 지금 하영의 목적은 진짜 범인을 찾는 게 아니었다. 하영이 원하는 것은 범인 찾기 콘텐츠로 벌어들일 골드였다.
채팅을 치지 말라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면 최근에 들어온 시청자들이 자기 생각을 골드로 표현할 거로 생각했다.
아가리롤스타님이 100 골드 기부.
아니. 하영아 저 새끼는 진짜 ㅈㄴ 수상하다니까?
꿀벌아넣을게 님이 100골드 기부.
추객아. 검하다.
하영은 간간이 올라오는 기부메시지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 층에서 골드를 너무 많이 뽑아 먹어서 그런지 시청자들이 기부를 잘 하지 않고 있었다.
‘너무 욕심이었나.’
하영은 어젯밤 잠이 들기 전에 확인했던 골드의 총 금액을 떠올렸다.
[ 보유 골드 3,951,428G]
약 400만 골드. 토룡의 포효를 여러 개 구매하고도 끄떡없을 거금으로, 지금껏 손에 쥐어 보지 못한 엄청난 금액이었다.
‘하지만. 이거론 부족해.’
하영은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적당한 금액을 벌었으면 모를까. 이런 엄청난 거금으로 100만 골드도 안 되는 싸구려 창을 여러 개 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영은 최대 금액은 400만 골드로 설정해 놓은 채, 토룡의 창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비싼 창을 검색했다.
「이름 없는 마창 4,000,000G」
모든 능력치 + 12
창수집가 그렌이 만든 투창용 창.
초기의 작품으로, 내구도가 좋지 못하나. 사용자의 마력을 이용해 자력으로 수리가 가능하다.
마기를 가진 자가 이 창으로 투창할 경우. 사용자의 모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이전에 하영이 구매하려던 창인 ‘토룡의 포효’보다 이름은 멋지지 않지만. 자그마치 400만 골드에 달하는 엄청난 가격의 창이다.
지금껏 상점에서 여러 물건을 구매하면서, 비싼 것에는 비싼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하영이었기에 자연스레 기대되었다.
게다가 마기를 가지고 있는 하영에게 이 창의 마지막 줄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나와 상성이 좋을 것 같은 창. 성장이 더딘 나에게 빠르게 탑을 올라갈 방법은 좋은 장비뿐이야.’
하영은 소설에서 읽었던 탑의 상황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 선생님들? 지금은 재판 중이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기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영은 기부 부분에 일부로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초기 시청자 중 눈치 빠른 인물이 하영이 지금 범인을 찾는 척하며 골드를 벌 속셈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중에는 하영 방송의 죽돌이인 낭만검객도 포함되어 있었다.
낭만검객님이 10,000골드 기부.
이게, 차암. 억울한데. 설명할 방도가 없어서 뭐라 할 말이 없네.
4층에서 생활했던 6일간. 수천 번도 더 들었던 빵빠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시 방송을 헛으로 본 게 아니네, 하영은 입꼬리 올리며 말했다.
“좋습니다. 일단 보류하도록 하겠습니다.”
낭만검객: 하영아 난 진짜 아니다. 나 믿지?
“음… 선생님의 간절함이 느껴지긴 하는데. 좀 약해서…”
낭만검객의 채팅에 하영이 말끝을 흐렸다. 만 골드, 거금이긴 하지만. 배부른 하영을 만족하게 하기에는 부족했다.
낭만검객님이 10,000골드 기부.
이 씹련은 진짜 레전드네.
낭만검객은 하영이 말끝을 흐리자마자 바로 만 골드를 추가 기부해왔다.
하영은 그 모습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골드가 필요한 이 순간에, 이 정도 골드라면 그가 왜 웃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건 넘어가 줄 수 있었다.
“커험. 이제야 좀 간절함이 느껴지네요. 낭만검객님은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땅땅땅!”
하영은 낭만검객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기부를 가장 적게 한 시청자가 누구일지 떠올려봤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골고루 골드를 빼먹었기에, 딱히 노릴 시청자가 떠올려지지 않았다.
음. 하는 수 없겠네.
“초창기에 들어오신 선생님들. 대체 누가 범인일까요?”
하영은 채팅창의 스크롤을 위로 올리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진지한 표정으로 시청자들의 채팅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아가리롤스타님이 1,000골드 기부.
하영아…
꿀벌아넣을게님이 100골드 기부.
이 씹련은 편을 들어주면 안 됨.
성녀혐오함님이 1,000골드 기부.
난 아님. 난 아님. 난 아님. 난 아님.
어린이애호가님이 100골드 기부.
뭔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 알겠습니다.^^ 진짜 대단하다 정하영!
생존게임좋아요님이 500골드 기부.
저는 범인이 아닙니다.
하영이 시청자들의 닉네임을 눈동자에 담을 때마다. 눈동자 근처에 있던 이들이 자신은 아니라며 기부를 해왔다.
‘쏠쏠하네.’
시기가 시기인 만큼. 큰 기부는 없었지만. 오늘 자 채팅을 전부 봤을 때는 꽤 많은 금액이 쌓여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부족했다.
‘조금만. 진짜 조금만 더 모으면 되는데.’
그 조금을 채울 방법이 없었다.
직접 조종해서 하는 콘텐츠는 지금 해봤자 였다.
사냥할 고블린은 오늘 아침 기준으로 백 마리도 남지 않았고, 이 층에서 몸으로 할 수 있는 기묘한 자세들은 이미 다 해봤다.
그렇다고 투창을 금지하고 고블린을 잡자니. 휙 던지면 억하고 죽던 초고속 사냥을 하던 이들이, 볼 것이라고는 풀 때기뿐인 이곳에서, 숨은 고블린을 잡는 것으로 재미를 느낄 리 만무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하영은 400만 골드를 채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현 상태에서 골드 빼먹기 좋은 건, 이미 전부 해놓은 상태였기에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종국에는 시청자들에게 골드를 달라고 직설적으로 말할까도 생각도 해봤지만. 시청자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실천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으음…’
그러다 문득 자신의 손에 있는 파란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이 새태창을 선물해주신 분이 보이질 않았다.
“아아. 새태창을 주신 선생님. 혹시 계십니까.”
하영은 말끝을 흐렸다. 낭만검객때는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린 것이었으나. 이번에는 새태창이란 큰 선물을 받고,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skaw375님이 80,000골드 기부.
저를 믿는 자들에게 새태창을 나눠주느라. 바빠서 채팅을 잘 못 칩니다. 그래도 소리는 늘 듣고 있습니다.
속으로 핑계를 늘어놓으며 말을 이어서 하려던 하영은. 일일 한도의 금액을 기부 받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상상 이상의 골드를 받았다는 것에서 큰 기쁨이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선생님의 진실 된 마음! 제대로 느껴졌습니다!”
하영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낭만검객보다 더 유력한 용의자임에도 더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이 채팅을 마구 치기 시작했다.
“어허. 다들 음해는 그만둬 주세요. 375 선생님의 그 마음. 저는 정확히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무죄! 땅땅땅!”
꿀벌아넣을게: 씹련아! 재판이라며! 둘 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했는데 왜 봐주는 거야!
하영이 나서서 중재하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아가리롤스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냥 웃으라고 ㅋㅋㅋ 재판 이미 끝났다고.
성녀혐오함: 와. 씨. 이년은 무슨 골드만 주면 빨아 주냐.
군침도는사람: 기억하십시오. 하영은 ‘스피어걸’입니다.
낭만검객: 끝나긴 뭘 끝나 씹련아.
아가리롤스타: 니 신생 끝났다고 엠이 없는 련아 ㅋㅋㅋㅋ
비교적 적은 금액을 기부했던 낭만검객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의 차이. 꿀잼인 줄 알고 긴장하며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배신감.
그 두 개가 합쳐져서 상황은 난장판이 됐다.
아가리롤스타님이 50골드 기부.
속보) 낭만검객. 부모 미아.
낭만검객님이 100골드 기부.
정보) 아가리롤스타. 부모 원래 없음.
내이름은야스머신님이 111골드 기부.
솔직히 지금 제일 수상한 새끼. >>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악질방송만보는사람님이 150골드 기부.
저 엠뒤련은 옷 한번 못 입게 방해했다고 이 악물고 나 건드네. ㅂㅅㅋㅋㅋ 난 시발 중간에 온 시청자다 ㅋㅋㅋㅋㅋ 초창기 아님.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에, 서로가 서로의 채팅을 확인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자. 시청자들은 채팅창 대신 기부 메시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과 궤를 달리하는 이들이기에 조금만 집중해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의 속도였지만.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었다.
군침도는사람님이 1,000골드 기부.
기억하십시오. 하영의 무기는 창이고. 그녀의 성별은 여자입니다. 즉 ‘스피어걸’입니다.
“어허. 스피어걸이라뇨. 말이 좀 심하시네요.”
군침도는사람님이 500골드 기부.
스피어걸이면 500골드 더 줌.
“네. 검사가 영어로 소드맨이니까. 저는 스피어걸이 맞긴 하죠.”
군침도는사람님이 500골드 기부.
무친련…
처음에는 말릴 생각이었던 하영도. 시청자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기부 금액의 단위가 커지자. 큰 금액의 기부 메시지 위주로 기부 메시지를 읽어주며 골드를 수급하기 시작했다.
[층에 존재하는 모든 고블린이 죽었습니다.]
[7일까지 남은 시간 확인 중…]
[약 11시간 후부터 엘리베이터 이용이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