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56화 (56/85)

〈 56화 〉 7. 탐정 없는 범인 찾기

* * *

사람이 5명 이상 모이면 반드시 쓰레기가 한 명 있다. 이는 AOS류 게임에서도 증명될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다.

하지만 하영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믿고 있었지만, 이곳에 오고부터는 그 믿음에 금이 갔다.

­ 정자도둑정하영: 정(자도둑)하영 하이요~

새로운 시청자의 인사에도 하영은 아무 말 없이 채팅창을 쳐다봤다.

[90/90]

방송의 레벨이 오르고 추가 인원을 받을 수 있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추가인원이 전부 채워졌다.

인원이 추가된 만큼 더 많은 골드를 벌 수 있게 됐으니 기뻐해야 하는 게 맞겠지만, 하영은 떨떠름한 얼굴로 채팅창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새로 오신 선생님들. 진짜 그러고 싶습니까?”

4층의 포인트 상점에서 장비를 고르던 하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진절머리가 났다. 지금까지 자신의 방송에 악질들만 들어온다 생각했건만. 이제 보니 비교적 질이 좋은 시청자들이었다.

“90명, 5명 중 한 명이 나쁜 분들이니까. 18명이 악질이어야 하는데…… 저희 방은 왜 그게 아닌 거 같죠? 새로 오신 선생님들. 빨리 해명해보세요.”

하영의 말에 새로 들어온 시청자들이 열심히 채팅을 쳤다.

­ 인사할때는하영: 하영 하영~ (하영이 하이영이라는 뜻)

­ 정착취하영: 해명은 모르겠고, 인사는 다시 해드림. 하영 하영~

­ 노답이영: 하영 하영~ 이 방 노답이영~

­ AV촬영: 하영 AV촬영~ (하영이 AV촬영 하라는 뜻)

­ 애기하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니이모를찾아서: 하영 AV촬영~ 이건 좀 웃겼다 ㅇㅈ

진짜 열심히 채팅을 치기만 했다. 하영의 물음에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시청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영은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쉽게 알려줄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니, 대체 그 주옥같은 닉네임들과 하영 하영이라는 건 어디서 주워듣고 오신 거냐고요.”

결국 참다못한 하영이 직접적으로 질문했다. 하영이라는 이름을 이용한 인사 드립은 한국어를 좀 아는 시청자라면 즉석에서 할 수 있다 쳐도, 처음 방송에 들어온 시청자가 저런 닉네임을 달고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AV촬영: 닉네임을 어떻게 이렇게 지을 수 있었냐면…

­ 애기하영: 네! 알려 드렸습니다.^^

­ 정자도둑정하영: 이메일 확인해보세요~

­ 노답이영: 하영이는 노담(담배안핌). 우리는 노답.

­ 인사할때는하영: 노답은 너뿐이야 이 씹련아 ㅋㅋㅋㅋㅋㅋ 은근슬쩍 모두다 ㅂㅅ으로 만들려 하네 씹련이ㅋㅋ

예상 했던 대로였다. 시청자들은 어떻게 영으로 끝나는 닉네임을 단체로 맞추고 들어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하영은 이어서 올라오는 채팅에서 단서를 포착할 수 있었다.

­ 잼민어경력28년: 아ㅋㅋㅋㅋㅋ 영상으로 보다 생방으로 보니 더 재밌누 ㅋㅋㅋㅋㅋ

영상, 생방. 두 단어에 하영은 윱튜브를 떠올렸다.

‘내 방송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리는 곳이 따로 있는 건가?’

제 생각에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듯했다. 하영이 보던 유명 스트리머들도 모두 윱튜브에 얼굴을 자주 비췄다.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은 직접 윱튜브를 하는 스트리머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상을 올리지 않는 스트리머가 윱튜브에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가끔 팬 분들이 영상을 편집해서 올린 덕에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관련 영상이 올라오곤 했다.

하영도 스트리머를 알게 된 계기 중 하나가 팬이 윱튜브에 올린 영상 때문이었다.

“잼민어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영의 말에 시청자들이 하영에게 힌트를 준 시청자를 향해 마구 채팅을 퍼부었다.

하영은 채팅창을 무시한 채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신기한 모양의 귀걸이를 손으로 집었다.

이 상점에 있는 것 중 유일하게 하영이 아직 확인하지 못한 물품이었다.

[생명의 기운이 담겨있는 귀걸이]

[가격 2,200포인트]

[착용시 체력 능력치를 4 증가시켜준다.]

“능력치를 올려주는 장신구라. 이건 또 귀하네.”

하영은 쉬고 있는 새태창을 깨워, 생명의 기운이 담겨있는 귀걸이를 검색했다.

[15,400G]

똑같은 귀걸이를 골드 상점에서는 7배 더 비싼 가격에 팔고 있었다.

하영은 골드 가격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포인트로 귀걸이를 구매했다.

“나이스! 골드 이득 봤다!”

4층 포인트 상점에서 판매 중인 것들은 전부 골드 상점에서도 판매 중이었는데, 유독 가격의 차이가 큰 게 있었다.

하영은 그런 것 중에서 자신이 쓰기 좋은 것들을 위주로 물품을 구매했다.

“어디 착용해 볼까.”

하영이 자신의 귀에 달린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다행히도 귀걸이는 귀를 뚫지 않아도 착용이 가능한 형태였다.

“크으…”

하영은 구매한 귀걸이를 귀에 착용했다. 그러자 조금 뻐근했던 몸이 파스를 붙인 것처럼 시원해 졌다.

“최대한 이득을 보는 나! 너무 자랑스럽다!”

하영은 그 짜릿한 감각에 몸을 떨었다. 싸게 구매해서 그런지 더욱 기분이 좋았다.

­ 방송계의유니콘: 아니, 그냥 필요한 거 아무거나 막사면 안 됨? 어차피 너 부자잖아.

­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 악질방송만보는사람: 포인트도 백만 단위로 벌었으면서 ㅋㅋㅋㅋㅋ 고작 몇천 포인트 아끼려고 별짓을 다 하네 ㅋㅋㅋㅋㅋㅋㅋ

“어허, 무슨 소리를! 선생님들께서는 아무리 부자라도 돈은 아낀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시는 것입니까!”

시청자의 비판에도 하영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알뜰한 쇼핑으로 골드를 아낀 만큼 기분이 좋았다. 웬만한 것은 다 참고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하영이의 발언에, 평소 하영이에게 불만이 쌓여있던 몇몇 이들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 낭만검객: 골드를 아낄 시간에 더 골드를 벌면 되지 않음? 어차피 너 골드 잘 벌잖아.

­ 말시키면삼행시함: ㄹㅇㅋㅋ

­ 바른말만씀: 진짜 리액션은 ㅈ 도안하면서 그냥 꽥꽥 소리 질러주고 공감하면 골드가 벌리잖아.

그들의 채팅을 본 하영이 침음을 삼켰다. 좀 짜증 나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400만골드 짜리 창을 사고도 아직 4만 골드 가까이 골드가 남았다.

이런 귀걸이 따위는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양의 골드다. 그리고 하영은 그런 골드를 하루 만에 쉽게 모을 수는 형편이 됐다.

“으음… 맞는 이야기긴 하네요.”

하영은 어깨를 추욱 늘어트린 채 상점 밖으로 나갔다.

상점에서 무언가 더 구매할 포인트는 없었다. 4000이 넘는 포인트는 이미 다른 물품을 구매하는 곳에 사용해 버린 지 오래였다.

[지구인 출신이 헤드 마이크 모형]

[지구인 출신의 장신구 명장이 만든 마이크 모형이다.]

[착용시 방송을 진행할 때 더 매끄러운 진행이 가능하게 해준다.]

[착용자가 벗기 전까지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하영은 자신의 귀 위를 만졌다. 이전에는 없던 매끈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포인트 상점에서 구매한 마이크 모형이었다.

‘익숙지 않아서 그런가. 자꾸 신경 쓰이네.’

하영은 자신의 입가에 있는 마이크를 툭툭 건드렸다.

모형이라 마이크의 기능은 하지 않지만. 마이크가 있다고 생각하니 진짜 지구에서 방송하는 것 같아 부담감이 느껴졌다.

“……”

왠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선생님들. 제 마이크 어떻습니까? 어울려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러 걷던 하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 낭만검객: 갑자기?

­ 어린이애호가: 착용한 지 30분은 지났는데. 이제야 어울리는지 물어진다고?

채팅창의 말에 하영의 볼이 살짝 빨개졌다.

“그, 뒤늦게 시청자의 의견이 궁금해질 수도 있죠.”

하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얼굴에 부채질했다.

하지만 빨개진 얼굴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방송 콘텐츠를 진행할 때 빼고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던 하영이었기에 창피함이 크게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 애니실수로본사람: 하영짱은. 뭐든지 어울린다능.

­ 억빠맨이야: 얘! 정도면 지구 가서 아이돌 해도 된단다!

“…아니. 뭐 외모로 칭찬을 들으려 한 건 아닌데… 감사합니다.”

손 부채질을 하면서도, 힐끔힐끔 채팅창을 보던 하영은 올라오는 칭찬에 고개를 숙였다. 3층 이전 같았으면 별생각 없을 상황이었지만. 이 몸이 자신의 몸이 됐다는 현실과 마주하고 나니 별것이 다 부끄러웠다.

터벅터벅.

하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골드 좀 아꼈다고 좋아했다가 역풍을 맞은 것과, 이번 30분 나 예뻐 사태로 인한 부끄러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빰빠밤.

하영이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는 순간. 빵빠레가 울렸다.

­ 보직군영님이 10,000골드 기부.

범하고 싶을 정도로 잘 어울림. ㅇㅇ

음성 후원이었는지. 소녀처럼 보이는 귀여운 목소리가 기부 메시지를 읽어줬다.

“아. 보직군영님 통큰 칭찬 감사합니다.”

살짝 피로했던 하영은 별생각 없이 감사 인사를 했다. 기부 메시지가 좀 그렇긴 했지만. 저 정도면 양반이었다. 피곤한 지금 굳이 뭐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 보직군영님이 10,000골드 기부.

ㄴㄴ 감사 할 필요 없음. 그만큼 하영이가 예쁘다는 거니까. ㅎㅎ

이어지는 음성 기부에 하영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방송에 온 첫날, 이렇게 큰 금액을 한 번에 기부한 건 ‘아가리롤스타’ 딱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시청자 중 하영이 가장 편애하는 시청자다.

그런 시청자와 비슷한 점이 있는 시청자가 새로 들어왔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리 없었다.

‘그립구만.’

잠시 과거를 추억하던 하영은, 방송에 처음 들어왔던 아가리롤스타가 음성 후원을 하기 위해 만 골드를 사용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 시청자도 오늘 처음 온 시청자겠지.’

만 골드가 음성 후원의 기본 최젓값인 점, 그리고 처음 보는 닉네임으로 추정했을 때. 지금 기부메시지를 날린 시청자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시청자인 게 틀림없었다.

하영은 만 골드를 기부받은 다음날, 이렇게 착한 시청자가 아가리롤스타라는 기묘한 닉네임을 사용하는 이유가 뭔지, 고민하던 것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겼다.

‘보직? 군영? 아가리롤스타처럼 뭔 생각으로 지었는지 잘 모르겠네. 어디 군대에 말뚝이라도 박았나?’

시청자가 군대에 관련된 신 인지는커녕, 그가 사는 세계에 군대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끝에 영이라는 글자가 있는 걸로 봐서는 글자에 맞춰서 닉네임을 만든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잘 사용하지 않는 두 단어를 굳이 합쳐서 닉네임을 만들 리는 없을 테니까.

“보직군영. 처음 보는 닉네임이네요… 이번에 영상을 보고 새로 오신 분인가 봐요.”

하영은 누가 들어도 호의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 보직군영님이 10,000골드 기부.

맞음. 뒤에 영을 붙여야지 팬 닉네임이라기에 큰 골드를 주고 특별히 맞춘 닉네임임.

“크. 어쩐지. 그 닉네임이 너무 좋더라고요.”

몇 시간 전까지, 닉네임이 왜 그따위느냐고 투덜거렸던 하영이지만. 이어지는 통 큰 기부 앞에 그런 사실을 중요하지 않았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보직군영님.”

하영은 그가 제2의 아가리롤스타가 되기를 빌며, 최대한 아부를 떨었다.

그리고 그 아부는 5층으로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선생님들도. 우리 보직군영님을 본받도록 하세요. 거 새로 왔다고 이렇게 크게 쏴주기도 하고. 얼마나 훈훈합니까?”

기분 좋은 하이톤의 여성 목소리와, 묘한 닉네임의 조화. 하영은 자신의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도 모르는 채 계속 닉네임을 언급했다.

시청자들은 하영의 그런 어리바리한 모습에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 낭만검객님이 100골드 기부.

그만해 시발! 나 웃겨 뒤지겠으니까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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