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7. 탐정 없는 범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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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벗은 후 약간의 현타를 느낀 하영은 말없이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시청자들이 조용해진 하영이를 채팅으로 놀렸지만, 자기 위로를 한 것 마냥 기분이 차분해진 터라,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허, 선생님들. 그래도 제가 계속 말하니까 재미는 있었잖아요.”
그러나 문제는 현자 타임이 사라지고 난 후에 발생했다.
반응 없는 하영이의 모습에 채팅창은 불타올랐고, 제정신으로 돌아온 하영은 그 채팅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낭만검객: 재미는 ㅆ2발 너랑 야스하는게 100배는 재미있겠다.
야스마스터; 그건 당연한 건데;
하영하영: 방송시청 30년 앰이 뒤진련 어디 갔어?
탑에사는하영: 신생 30년 바닥에 던졌누 ㅋㅋㅋㅋ
탑골공원휠체어도둑: 악질들 특. 뒤에 하영이 붙어있음.
AV촬영: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맞지.
임신최적화여캠만봄:
애니실수로본사람: 아아… 이것은 상식개변이라는 것이다. ‘최면’같은 것이지.
채팅창을 보며 얼굴을 붉히던 하영은 이어지는 성칭찬에 항복했다.
더는 뭐라 반박할 힘이 나지 않았다. 하영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채팅을 무시하는 것뿐이었다.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빠르게 오늘의 목적지로 향해보겠습니다.”
하영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자기 할 말만 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채팅은 난리가 났지만, 하영은 편안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목적지로 향했다. 뻔뻔함이라는 특성이 진가를 발휘했다.
“선생님들, 이제 사람이 좀 많으니까. 채팅에 대답 잘못 해 드립니다.”
목적지인 건물에 가까워졌을 때쯤, 하영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시겠죠. 선생님들?”
하영이 씩 웃었다. 언뜻 보기에는 주변을 의식해서 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단지 유연한 남탓이 시키는 대로 편하게 다른 이들의 탓을 한 것에 불과했다.
그 증거로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하영은 자신이 한 말을 귀로 듣지 못했으나. 시청자들은 그녀의 말을 듣고 언제 주변을 신경 썼었느냐면서 투덜거렸다.
하영은 그런 투덜거림을 뻔뻔한 얼굴로 웃어넘겼다. 그리고는 오늘의 목적지인 건물 속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이야, 줄이 빽빽하네.”
건물의 첫 층을 가득 메운 줄을 본 하영이 감탄을 흘렸다. 사람으로 만들어진 줄이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인구가 한 건물에 들어와 있는 건 한국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장소가 장소인 만큼 그들 중 대부분이 검이나 창 같은 날붙이를 들고 있었으나. 대충 보기에도 축구장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 빈 공간 없이 사람이 바글바글한 것은, 확실히 5층에서 제일 중요한 건물다웠다.
하영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자신이 가진 정보가 맞았음을 확신했다.
소설 속 내용에 따르면, 이 건물의 정체는 던전 관리를 하는 일종의 제어탑이었다.
정확히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탑의 거주자들이 사는 곳이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시발. 그만 쳐다보면 안 되나?’
하영이 얼굴을 푹 숙인 채 대기 중인 줄에 합류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하영이 인파 속에 숨는 다해서 사라질 것이 아니었다.
하영은 주인공이 가장 쓸모없게 보낸 시간이었다면서 투덜거렸던 소설의 내용이 떠올렸다.
‘이 상태로 몇 시간을 보내야 한단 말이지…’
하영이 몸을 떨었다. 눈에 띄는 외모와 복장 탓에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이 많았다.
평소에는 반바지를 입었다고 자신을 속이는 것으로 다리 노출에 대한 생각을 줄였으나.
수백을 넘기는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다리를 보는 것은 하영의 심리 조절을 깨부술 정도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렇게 2시간 정도가 흘렀다.
지루해진 시청자들은 이제 음성 기부를 이용해 하영을 툭툭 건드렸다.
낭만검객님이 100골드 기부.
이제 좀 정신이 들어?
묵묵부답. 하영은 두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러면 채팅창이 보이지 않아서 부끄러움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미션석세스님이 100골드 기부.
이 년은 눈깔이가 뒤집혀도 골드만 주면 정신이 말짱해지네? 이 씹련이.
하지만 자신을 놀리는 목소리에 창피함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영이 뒤늦게 귀를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귀를 막는다고 해서 음성 기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는 하영이의 내부에서 들려왔다.
인방인생하급신님이 100골드 기부.
하영이는 초심 찾을 필요가 없음 왜? 진퉁 스피어걸이거든.
야스마스터님이 100골드 기부.
하지만 상태창이 하영이 처녀라고 했음.
방송계의유니콘님이 100골드 기부.
심기체 처녀론에 의하면 하영은 처녀임. 반박 시 처알못.
바른말만씀님이 100골드 기부.
M2 뒤진 년들 ㅋㅋㅋ 대체 처녀이야기는 왜 자꾸 꺼내는 거냐? 어차피 내가 가져갈 건데 ㅋㅋㅋㅋ
음성 기부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하영의 심기를 갉아먹었다. 시발, 부끄러움에 몸이 달아올랐다. 그 탓에 주변 사람들 시선이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남자인 내가 이런 주옥같은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하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대부분은 살짝 흘겨보는 정도지만, 일부 사람의 시선은 따갑다 못해 몸이 타들어 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특히 다리 부분이.
‘이제 옷 갈아입히기 콘텐츠는 폐지다. 아니, 최소한 나한테는 하지 말자.’
하영은 옷을 바꿔 입을 필요성을 느꼈다.
이제 와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웃기지만. 솔직히 정하영 같은 여자가 이런 복장을 하고 있었다면, 나라도 눈이 빠져라 쳐다봤을 것 같다.
‘그리고 과격한 이들은 보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지.’
하영은 4층에서 자신을 덮쳐온 이들을 떠올렸다. 솔직히 그때는 좀 위험할 뻔했다.
‘운이 좋았어.’
새태창이 진화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나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일제히 공격을 해왔더라면.
포션이나 창을 마구 구매할 정도로 골드가 많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험한 꼴을 봤을 것이다.
“시발.”
어떤 꼴이 됐을지 잠깐 생각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는다.
지금까지는 골드 덕분에 성장이 빠르게 이루어진 탓에 위험한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앞으로는 모른다. 탑을 빠르게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하영의 실력은 등반자들의 평균에 가까워질 것이다.
하영은 그것이 두려웠다.
지금에서야 양학이 가능하지만, 중반쯤 가면 평균에서 약간 강한 정도로 그칠지도 모른다.
반면에 탄력을 받은 주인공은 더 빠른 속도로 탑을 오를 것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하영은 주인공이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확인했다.
그는 과거의 전투 경험과 여러 정보를 토대로 빠르게 성장을 이루었다.
골드로 만들어낸 기연을 다 소화하지도 못하는 하영과는 급이 달랐다.
“빨리 앞으로 가라.”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하영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죄송합니다. 빨리 갈게요.”
하영은 뒷사람에게 사과한 후 앞에 있는 사람 쪽으로 붙었다.
1층에서 줄을 서던 하영은 어느새 2층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하영은 고개를 슬쩍 돌려 2층의 모습을 살펴봤다. 사람이 빽빽이 들어 차있는 것이 1층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영은 그 모습이 신기했다.
사람이 이리 많음에도 시끄러울지언정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거기다가 하영처럼 멍하니 있는 사람이 몇몇 있음에도 새치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틈만 나면 새치기가 이루어지는 한국하고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신기했지만 의문을 품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용한 주변의 분위기에 하영은 안도하고 있었다.
5층의 던전 관리소 내부가 시끄러울 때는 새로운 등반자들이 처음으로 5층에 도달했을 때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5층까지 오른 자신의 힘에 과한 자신이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새치기를 하는 둥 소란을 일으키곤 했다.
다른 이들보다 능력이 뛰어난 등반자들은 특히 더 그랬다.
하지만 지금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최근에 들어온 등반자 중 하영이 제일 앞서 가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나보다 빠르면 말이 안 되긴 하지.’
하영은 시련에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멈추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심은 금물이다.
진짜배기 실력을 갖추고 있는 등반자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바로 나처럼.’
하영이 자만심에 취해 입꼬리를 올렸다.
괜히 먼저 올라온 사람들이 조용히 있는 게 아니다.
이곳에 제일 먼저 정착했던 거주자들은 벌써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에서 살아왔다.
저층인 이곳에서의 성장력은 위층에 비할 것이 못되겠으나,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성장한 그들의 무력은 막 5층에 올라온 이들이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주인공은 그런 거 없이 자신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만.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예외다.
‘주인공인 이원혁은 괴물이니까.’
압도적인 성장력과 그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분노를 바탕으로.
수많은 피를 뿌리며 탑을 오르는 그는 괴물 그 자체였다.
그는 던전의 배정받는 시간을 기다리는 게 귀찮다는 이유로 5층에서 제일 강한 거주자인 저층의 대마법사를 죽였다.
그 탓에 그가 온 후부터는 5층이 무법 지대로 변해버린다.
‘묘사가 참 끔찍했지.’
대마법사의 죽음 이후.
기존에 있던 규칙과 새로운 질서 사이에서 5층으로 올라오는 등반자들이 큰 피해를 본다.
물론 주인공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거주자를 죽인 후 빠르게 원하는 던전에 들어가 챙길 것을 챙긴 후 빠르게 다음 층으로 향한다.
하영은 주인공의 그런 쿨한 모습에 재미를 느꼈다. 그때는 그런 게 통쾌했고 읽는 맛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이 된 지금은 그냥 두렵기만 했다.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의 이원혁은 힘이 강한 미친놈 그 자체였으니까.
미소 짓던 하영의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이제 곧 주인공이란 이름의 괴물이 등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괴물이 원하는 것은 정하영의 몸이다.
다른 이들보다 빠르다며 자만을 해봐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괴물의 목표는 자신하나 뿐이 아니며, 복수의 우선순위가 비교적 낮다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복수 대상 중 가장 가까운 것이 바로 정하영이다.
실제로 주인공이 과거의 정보를 토대로 기연을 전부 집어먹으며 꽤 천천히 올라왔음에도, 정하영은 10층을 넘기지 못하고 주인공에게 잡힌다.
미래를 알고, 좋은 장비가 있고, 좋은 스킬이 있어도 평범한 사람은 그의 분노를 따라잡을 수 없다.
하영에게 주인공이란 그런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하영은 주인공의 적들이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길 원했다.
그들은 대부분이 평범에서 벗어난 인물들이었으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정하영씨.”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하영은 정신을 차렸다.
주변은 조용했고, 눈앞에는 잘생긴 청년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깜짝 놀라셨나 보군요.”
청년은 정하영을 보며 웃었다.
그는 처음 이곳에 온 등반자들이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에 놀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취미였다.
“이런… 몸이 굳으셨나 보네요.”
청년은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무림인 같은데.
대마법사는 무림에 마법이 없다는 걸 알았다.
처음 으로 공간 이동 마법을 당했으니 얼떨떨할 가 보군.
대마법사가 작게 미소 지었다.
“안심하세요.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니에요. 저는 거주자입니다…그리고.”
하영은 대마법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가 이렇게 나오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장난기 많은 청년. 그가 바로 하영이 방금까지 생각했던 5층의 강자이자, 이곳의 주인. 정하영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본 소설 속 등장인물.
추정나이 50+α인, 저층의 대마법사였으니까.
“…라고 말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당신은 놀라서 멈춰 있는 건 아닌 거 같네요.”
저층의 대마법사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하영을 보며 정색했다.
“제가 이 직책을 맡게 된 지 10년,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입니다. 흥미롭네요.”
저층의 대마법사의 오른쪽 눈이 살짝 빛났다.
그것은 저층의 대마법사가. 반쪽짜리 대마법사라는 것을 뜻했다.
“대마법사가 되기에는 경지가 조금 부족하시네요.”
저층의 대마법사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하영은 방긋 웃으며 저층의 대마법사에게 다가갔다.
외모가 곱상한 게 시청자들도 좋아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여장할 생각 있습니까? 제가 좋은 분들을 아는데.”
하영은 그의 어깨에 슬며시 손을 올렸다.
“분명, 대마법사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뭐지 이 미친년은.
대마법사는 그날 광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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