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7. 탐정 없는 범인 찾기
* * *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단호한 말과 함께 공간이 어그러졌다. 정확하게는 여러 개의 검은 점들이 주변 풍경을 빨아들였다.
“어, 어?”
이변을 느낀 하영이 저층의 대마법사를 잡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어깨에 올려놨던 손마저 목표를 잃고 허공을 휘저었다.
“아니 시발!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
검은 점은 물이 가득한 세면대의 마개를 뺀 것처럼 공간을 빠르게 빨아들였다. 저층의 대마법사와 그가 앉고 있던 의자는 이미 사라졌다. 단지 잔상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만이 비칠 뿐이었다.
“…”
하영은 말을 하는 것도 멈춘 체 세상이 변하는 걸 바라봤다.
이변을 느꼈을 때 바로 투창으로 검은 점을 공격한들 닿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영에게 있어 그의 마법은 자신을 소설에 빙의시킨 모종의 힘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닿을 리 없는 불합리함이었다.
“…무슨 3,4초 만에 사람을 이동시키냐.”
하영이 말을 내뱉었을 때는 평범했던 방안의 풍경도, 대마법사의 잔상도 모두 사라진 후였다.
“진짜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하영은 저층의 대마법사의 어깨에 올려놨던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손이 몸에 맞닿아 있음에도 마법을 발동하는 징조도 느끼지 못했다.
저층의 대마법사는 하영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였다.
“괜히 저층의 대마법사라 불리는 게 아니었어.”
하영에게는 그 점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저층의 대마법사와 하영 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무력의 차이가 있었다.
만약 대마법사가 하영을 죽일 생각으로 마법을 사용했다면, 그 순간 하영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영은 그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
나름 강해졌다고 자만하던 하영에게 있어 그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소설 속 내용을 떠올리면 더욱 그랬다.
‘저 정도의 강자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게 상상이 안 가.’
하영이 겪은 그는 성장 중인 주인공에게 쉽게 깨져버릴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하영의 생각일 뿐. 주인공은 저층의 대마법사의 마법을 전부 파훼하고 살해한다.
하영에게 있어 불합리함을 느끼게 한 존재마저 주인공에게 있어서는 지나가다 밟고 가는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
‘이원혁. 이 괴물 같은 쓰레기 놈.’
괴물은 손 하나 써보지 못하고 건물 밖으로 보내져 버린 자신하고는 다르다.
평범한 등반자와 하영 사이에 큰 격차가 있듯이, 하영과 주인공 사이에는 너무도 큰 격차가 있다.
그렇기에 하영은 아쉬웠다.
저층의 대마법사는 명백히 자신보다 주인공에 더 가까웠다.
그런 그가 대마법사 반열에 오른다면 5층에 막 도착한 주인공과 싸워 이길지도 몰랐다
“햐. 누가 주인공 아니랄까 봐 운도 좋네.”
하영은 주인공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저층의 대마법사가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어쩌면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르렀을지도 몰랐다.
아니, 아마 100% 확률로 대마법사의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하영이 보기에 저층의 대마법사의 재능과 경험은 충분했다.
그녀가 보기에 부족한 건 마력 능력치였다. 하영은 소설에서 그가 마력이 더 있었다면 상황이 바뀌었을 것이라며 한탄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냥 눈 딱 감고 조금만 창피를 본다면 완벽한 대마법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영의 중얼거림에 시청자들이 반박했다.
푸른하늘583: 아까 그 ㅈ같이 잘생긴 놈이 마력이 부족해서 대마법사가 된 건 맞지만. 우리는 게이가 아닙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야스마스터: 아무리 나라도 남자는 좀 그래.
어린이애호가: 우리는 변절자가 아니야.
보직군영: 하영게이야. 왜 그러누…
항문맛캔디: ㅋㅋㅋㅋ여장? ㅋㅋㅋㅋㅋㅋ 미친련이네 이거 ㅋ 난 남자 안 좋아한다.
시청자들의 채팅에 하영은 인상을 찡그렸다. 따지고 보면 자신도 여장한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 저도 남자입니다.”
하영은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다시 어필했다.
사람이 많은 건물 한복판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이 몸은 자신의 몸이 아니며, 정신은 어디까지나 남자이기에.
여장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 정도는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말대로투자하면잘됨: ㄹㅇ?
햄버거집케찹도둑: 저게 사실이면 좀 불쌍한데…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시청자들의 채팅에 하영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TS 빙의자고, 이곳은 그. 소설 안입니다.”
하영은 도시의 뒷골목으로 향하며 말했다.
주변에 사람은 줄어들었으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뒷부분은 작게 중얼거렸다.
하영의 말에 채팅창은 잠시 숙연해 졌다.
그러나 기존에 있던 시청자들이 악의적인 거짓말을 풀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낭만검객: ㄴㄴ 남자였던 기억이 있다고 우기는 거임. 순혈 100% 여자 맞음.
미션석세스: ㅋㅋㅋ 저렇게 음탕한 년이 남자일 리 없잖아 ㅋㅋ
포장마차라면도둑: 빙의자면. TS빙의 일수도 있는 거 아님?
인방인생하급신: ㄴㄴ 하영이 믿지 마셈, 하영이가 사실 정신에 약간 문제가 있음.
하영역시 그들의 채팅을 보긴 했으나, 스피어걸처럼 잠시 떠들다 말겠거니 싶어서 내버려뒀다.
저런 거에 일일이 반응하기에는 겪은 게 너무 많았다.
거기다가 지금 하영은 저층의 대마법사에게 던전의 들어가는 입장권을 얻지 못해, 상당히 시야가 좁아진 상태였다.
“선생님들. 잠시 제가 원하는 던전이 어디 있는지 찾을 테니까. 문제 일으키지 말고 잘 놀고 계셔야 해요.”
지금 입장권을 얻더라도 순번이 오기까지는 며칠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대마법사에게 도움을 준 후 빠르게 던전에 입장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입장권한을 얻지 못한 지금, 하영은 초조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던전에 가서 다른 파티에 끼어들어 가는 게 더 빠르겠어.’
하영은 소설을 읽었던 기억과 주변 표지판을 토대로 원하는 던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설을 읽은 지도 오래됐고, 초행길인지라 쉽게 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해까지 점점 지기 시작하자, 채팅의 분위기를 신경 쓸 여력은 더욱 줄어들었다.
결국 하영은 중간부터는 채팅을 보지도 않고 집중하며 길 찾기를 시작했다.
바른말만씀: 정박아 맞네.
skaw375: 정박아가 뭔가요?
진실은언제나하나: 정신박약아.
말이쁘게함: 아니 시발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정신박약아. 간단히 말해서 지적장애라 보면 됨. 실제로 지적장애에게 쓰이기보다는 좀 모자라 보이는 애에게 밈으로 쓰임.
하영이 소설에 나왔던 던전을 찾았을 때는 이미… 자신이 남자인줄 아는 불쌍한 여자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어… 최근에 들어오신 분들? 다른분들이 하는 말 믿지 마세요. 저는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제 방의 채팅 수위가 9인 것이고요.”
하영이 뒤늦게 여론을 돌리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시청자들은 하영의 말을 단순한 투덜거림으로 치부했다.
가오중최고는아헤가오: 하영이는 얼굴이 예쁘니까. 자격지심 있는 여자들에게 따돌림당했을 듯. 그래서 남자라고 우기는 거지.
내이름은야스머신: ㅠㅠ 나쁜 년들, 하영아 걱정하지 마! 우리가 도와줄게.
소드마스터거품임: 와, 사람은 ㄹㅇ 대단한 존재들임.
낭만검객: 그들만큼 모순적인 존재는 없긴 함.
대충지은닉네임: 하영이가 불쌍해 ㅠㅠ
참 어이가 없었다. 초기 시청자들은 이제 있지도 않은 과거를 만들어 내서 자신을 여자로 몰아가고 있었다.
“아니, 선생님들도 방송 맨 처음 들어 왔을 때 보셨잖아요. 방장의 출신은 한국 남성이라고.”
하영이 사실이 아니라며 증거를 들이밀었음에도 소용없었다.
주변을 신경 쓰느냐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탓에, 사실을 말할 골든 타임은 이미 지나간 지 오래였다.
낭만검객: ??? 혹시 들어 올 때 보신 분?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악질방송만보는사람: 미투~
여신의눈물자국: 누가 방송에서 나갔다가 들어와서 확인 좀.
응기잇: ㅈㄹ ㄴㄴ 방에서 나가는 순간 다른 신이 먼저 들어옴.
선동은 한마디면 충분하지만, 그 선동을 풀기 위해서는 수천 수백의 증거가 필요하다. 하영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가리롤스타: 진짜 어이가 없네? 이 미친놈들 몰아가는 거 봐.
닉네임은10글자까지: ㅠㅠ 하영좌 이제 그만 둬. 넌 최선을 다했어.
악질방송만보는사람: 괜찮아 하영아! 우리가 있잖아! 힘을 내! 넌 예쁜 여자야! 볼록한 내 아랫도리가 그걸 증명해!
“아니 시발! 선생님들 진짜 왜 그래요! 전 남자입니다! 여자 아니에요!”
하영이 채팅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이러다가는 진짜 꼼짝없이 여자가 될 판이었다.
시청자들은 그런 하영의 반응에 신이나 기부까지 하며 하영을 놀렸다.
공감하면골드줌님이 1,000골드 기부.
쓰니가 너무 불쌍해 ㅠㅠ 여신으로서 나 공감되어 버려 ㅠㅠ
야스마스터님이 500골드 기부.
나도 울고 내 아랫도리도 울었다ㅠㅠ
“하아…”
한눈에 봐도 놀리는 것이 확실한 기부메시지를 보며 하영은 각오를 다졌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정론이 안 통하는 지금 해답은 기존 시청자들을 이용해 새로운 선동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야스마스터님. 선생님께서 방송 초반에 말씀하셨잖아요. 남자니까… 제가 남자니까 꼴린다면서요.”
선동을 이기는 것은 더 큰 선동뿐이었다.
하영은 한국에서 살면서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선생님은 아시잖아요. 제가 평범한 여자 취급을 당하면. 저는 꼴림 포인트가 하나 줄어들어요.”
야스마스터: 어… 그건 맞지, 하영은 평범한 여자가 아닌 것이 매력인데.
낭만검객: ?? 이상한 소리 ㄴㄴ 자기가 남자인 줄 아는 하영이가 불쌍하지도 않음?
미션석세스: 응 꺼져. 정박아년보다는 TS 녀가 더 꼴려. 넌 암컷타락도 모름?
매의 눈으로 채팅을 주시하던 하영은 자신에게 유리한 채팅을 만을 쏙쏙 뽑아내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맞아요. 제가 TS빙의 됐다 했을 때 선생님들이 말했잖아요. 남자를 잘 아는 처녀 비치라면서요. 선생님들. 진짜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예? 꼴림 요소 필요 없어요?”
하영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3층 이전이었다면 부끄러움에 말하기를 망설였을 말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야스마스터: 그래… 맞아. 하영이는 여자가 아니야… 오나ㅎ.
하영이 진심이 통했을까. 하영을 놀리던 시청자들이 하나둘씩 사실을 내뱉기 시작했다.
느금냥이: 여자가 아니면 뭐임?
미션석세스: 하영이는 TS녀고 TS녀는 정박아야… 박아줘야 해.
인방인생하급신: ㅂㅅ임? 여자인데 왜 정박아임? 말이 이상하네.
야스마스터: ㄴㄴ 정박아는 정신없이 박고 싶은 아이의 줄임말이야 ㅠㅠ
대충지은닉네임: ㅅㅂ ㅋㅋㅋ 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거냐?
내이름은야스머신: 아 ㅋㅋ 그러네. 하영아 걱정 마 우리가 박아서 알려줄게!
야스마스터: 박아서 힘내자1 하영이는 박힘 받아야 한다!
하영은 채팅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정신병이 있는 여자가 되는 건 면했다. 그러나 이상한 여론이 생긴 건 막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박아영님이 100골드 기부.
정하영 박아서 응원하자!
가오중최고는아헤가오님이 500골드 기부.
정하영 박아서 응원하자 운동! 지지합니다!
해탈한 하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 선생님? 그 닉네임을 보니까. 믿음이 안 갑니다.”
미션석세스: 우리를 믿지 않으면 대체 누굴 믿음?
야스마스터: 한 번만 믿어봐.
내이름은야스머신: 닉네임으로 신을 판단하지 마. 우린 누구보다 너의 행복을 바라고 있어. 이건 진심이야.
꿀벌아넣을게: 너의 행복(여자로서) 순애.(순순히 애를 낳아라) 감동의 눈물 ㅠㅠ
“선생님들 믿으면 제 인생의 장르가 바뀔 거 같아요.”
하영은 주변을 둘러봤다. 던전 차례를 기다리는 거주자들과. 그런 거주자들에게 장사를 하나 여러 가게의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 됐고. 선생님들 때문에. 던전에 있는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보잖아요. 빨리 책임이나 져주세요. 저 이러다 진짜 주인공에게 잡히면 끝입니다. 끝.”
허공에 대고 떠드는 이상한 여자로 낙인 찍혔다.
이래서야 다른 파티들이 자신을 데려갈 리가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데려가나? 잘 모르겠다.
야스마스터님이 100골드 기부.
걱정하지마 하영아. 아직 너에게는 미인계가 남아 있어. 남자 거주자 몇 명 낚아서 들어가면 돼!
낭만검객님이 100골드 기부.
그리고 ㅈ같이 굴면 일부로 트롤링해서 파티 파멸로 몰아넣자. 그리고 서로 남탓하게 해서 싸우게 하자.
꿀벌아넣을게: 오. 그거 좋다. 범인 없는 범인 찾기 2탄 가자 ㄱㄱ
이어지는 기부에 하영은 축 처진 상태로 파티를 찾아다녔다. 꼴을 보아하니 도움을 얻기는커녕, 평범하게 던전에 들어가서 무난하게 끝을 보는 것조차 어려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