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7. 탐정 없는 범인 찾기
* * *
좋은 파티는 구하기 어렵다.
하영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애초에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하영의 눈에 들 만한 이들은 5층에 존재할 리 없다. 저층의 대마법사는 특별한 케이스다.
거기다가 하영은 지금 단순히 던전에 들어갈 이들을 구하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을 파티에 끼워줄 마음씨 착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영하영님이 100골드 기부.
하영아 그냥 아무 파티나 들어가자.
8번째로 파티를 구하기에 실패했을 때. 시청자들이 음성 기부를 활용해 하영에게 말을 걸어왔다.
하영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이었다. 날은 완전히 저물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파티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시청자들과 소통하느냐 미친 여자처럼 혼자서 떠든 탓이 컸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흐른 지금, 하영의 혼잣말을 들은 이들은 대부분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현재 던전의 주변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무기나 방어구를 점검하고 있는 이들은 하영이 도착한 후에 들어온 이들이었다.
‘노점상들은 거의 남아 있긴 하지만. 큰 상관은 없겠지.’
노점상과 친한 거주자도 몇몇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상관없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대부분은 하영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하영의 외모가 열심히 일해준 덕분이었다.
‘하영아 고맙다.’
하영은 씩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하영이 노리는 이들은 중무장한 이들이었다.
‘트롤의 왕국은 분명. 전사계열의 등반자들이 주로 가는 곳이라 했어.’
트롤의 왕국.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클리어한 던전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자 마법 저항력이 높은 트롤이 보스로 나오는 던전.
트롤 이외에도 마법사를 곤혹스럽게 하는 여러 장치가 설계되어 있어 트롤의 왕국으로 가는 이들은 대부분이 전사계열 파티였다.
그리고 하영은 그 던전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 5층에 있는 던전은 총 100개. 같은 던전이 10개씩 있으니까. 적어도 100개의 파티 중 10 파티는 트롤의 왕국으로 가는 파티야.’
하영은 파티에 여자가 있는 이들 위주로 접근했다.
저층의 대마법사가 있는 이상 5층의 치안은 평화롭겠지만, 던전 안까지 평화롭다 생각할 정도로 하영의 머리가 꽃밭에 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영도 보는 눈이 있었다.
여자가 파티에 끼어있더라도 분위기가 이상하거나 트롤의 왕국에 가는 파티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말을 돌렸다.
……그렇게 20번째 파티 모집이 실패로 끝났다.
“어렵다, 어려워.”
하영은 트롤의 왕궁으로 향하는 던전 입구에 기대듯 쓰러졌다.
이제 좀 힘이 들었다.
아무리 여자가 있는 파티를 찾아다녀도, 열에 아홉은 다른 곳으로 가는 파티요, 나머지 1할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니, 도저히 같이 가자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항문맛캔디님이 100골드 기부.
하영아. 왜 우리에게 관심을 안 줘? 넌 우리가 부끄러워?
시청자들도 심통이 난지 오래다. 파티에 들어가기 위해 시청자들의 채팅을 무시하다 보니. 슬슬 시청자들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 선생님. 선생님도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
하영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관심을 받은 시청자들이 계속해서 음성 기부를 날렸다.
정하영제발뒤져님이 100골드 기부.
몰라, 이 씹년아.
억빠맨이야님이 100골드 기부.
하영아.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나. 억빠맨에서 억까맨이 되어버릴 수도…?
아기고양이유미님이 100골드 기부.
하영아… 내 안에 뱀심이 끌어 오르려 하고 있어… 도망가…
음성 목소리의 말은 달라도 내용은 비슷했다.
대충 왜 나랑 안 놀아줘, 또는 왜 쟤 말에만 대답해 이 씹년아였다.
“하아…”
하영은 말을 아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어그로를 끌어 하영의 관심을 유발하려 해도, 그러려니 하고 차분하게 웃어넘겼다.
시청자들의 말에 반응을 하면, 자신은 오늘 안으로 던전에 가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건 절대 안되지.
lolking2027님이 100골드 기부.
아마 잘 곳이 없어서 빠르게 다음 층으로 가려는 게 아닐까요? 하영이 같은 애가 밖에서 노숙하면 남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 아니에요.
오랜만에 보는 마음씨 착한 메시지에 하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었다.
2층의 보상으로 얻은 화폐로 여관을 빌리는 것은 가능하다.
넉넉하게 보상을 받았으니 3개월 정도는 돈을 펑펑 쓰면서 보내도 될 것이다.
그러나 하영은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기가 싫었다.
주인공이 등반을 시작하기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소설의 내용대로라면 천천히 탑을 오를 테니 이 속도 그대로 탑을 오르면 잡히지는 않겠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시청자들이 단숨에 빠져나가 골드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모종의 이유로 원혁이 빠르게 탑을 올라올 수도 있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 증거로 지금 여기서 웃는 얼굴로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이 무법 지대로 변한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건 하영도 마찬가지다. 4층의 투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부적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하영은 이런 경우를 소설 속에서 본 적이 없다.
아가리롤스타님이 100골드 기부.
하영아… 빨리 뭐라도 해봐! 시청자들이 심심해 죽으려 한다.
익숙한 닉네임에 하영의 상념이 끝을 맺었다.
방송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더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다.
하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시청자들이 더 지루함을 느끼기 전에 몸을 풀었다.
“선생님들 다시 한 번 파이팅입니다! 아자 아자!”
하영은 슬슬 다시 파티를 찾아다닐 준비를 했다.
지금 하영이 있는 트롤의 왕국으로 가는 던전 입구는 열 개중 한 개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에 사람이 없다고, 다른 던전 입구에 사람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아가리롤스타님이 100골드 기부.
여차하면. 보는 사람이 없을 때 혼자 슬쩍 들어가자.
기부 메시지에 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5층의 던전 정도는 혼자서도 클리어할 자신이 있다.
지금까지는 남아있는 양심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호소해서 참고 있었지만.
여차하면 혼자 들어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내가 던전에 무단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늦춰지는 순번들? 내가 최대한 빨리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으로 무마할 수 있다고 본다.
저층의 대마법사에게 벽을 느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약한 건 아니다.
하영은 비장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졌다.
그 순간이었다.
“아가씨. 트롤의 왕국으로 간다고?”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에 하영이 고개를 돌렸다.
3명의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야기는 들었다. 트롤의 왕국에서 꼭 얻고 싶은 물건이 있다고? 좋아. 이 나만 믿어라.”
그들 중 제일 앞에 나와 있던 남자가 말했다.
그는 다른 일행이 갑옷으로 무장한 것과 다르게, 상반신을 노출한 자신의 팔 근육을 보여주며 하영에게 다가왔다.
“하아.”
그 모습에 하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지도 않은 사연이 뒤에 붙어 있는 건 그렇다 쳐도, 설마 이런 평화로운 층에서까지 헌팅을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자꾸 이런 일을 당하는 건… 역시 이 노출이 많은 옷 때문이겠지.’
하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거한을 노려봤다. 거한은 앙칼진 하영의 모습에 크게 미소를 지었다.
“이 악마 사냥꾼 필립에게 걸리면. 악마도 아닌 트롤쯤은 한 끼 식사로도 부족하지.”
“풉…”
필립의 말에 하영이 입을 틀어막았다.
분위기를 잡는걸 보니, 무언가 멋진 말로 자신을 꼬시고 싶어 하는 거 같기는 한데. 단어 선정이 좀 많이 나빴다.
“내가 이곳으로 떨어지기 전… 나는 왕국에서 몇 안 되는 악마 사냥꾼으로 이름을 날렸지.”
필립은 입을 막는 하영의 모습을 보고 씨익 웃었다. 내 배려에 감동했나 보군. 그가 읽었던 순정 소설에서는 감동한 여자들이 저렇게 입을 막곤 했다.
“너무 감동할 것 없어. 나는 신사니까 말이야.”
필립의 가슴 근육이 요동쳤다. 그 모습에 하영이 눈웃음을 지었다. 이놈 강적이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개그맨으로 이름을 날리기 충분하다. 하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낭만검객: 악마 사냥꾼입니다. 그런데 이제 악마에게 작업을 거는…
바른말만씀: 갑옷 착용 안 한 근육 전사들은 늘 저러던데. 가슴 근육 움직이면서 미소 짓는 건 시발 대체 누가 알려준 거냐?
소드마스터거품임: 근육 쟁이 소드마스터가 독을 푼 거임. 확실함. ㅅㅂ놈들. 소드마스터처럼 ㅈ같은 새끼들이 없음.
여신따먹고싶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라이 씹련아 차라리 천사 사냥꾼이라고 소개를 했어야지 ㅋㅋㅋㅋ
공감하면골드줌: ㅋㅋㅋㅋㅋ 어떻게 보면. 이것도 일종의 악마 사냥임. ㅋㅋㅋ 하영이 보셈 웃겨 뒤지려 하잖아 ㅋㅋㅋㅋㅋ
박아영: 이게 악마 사냥이 아니면 뭐임!!!
악마사냥꾼이라며 주장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도 아니고 하영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 웃겨 죽을 것 같은데. 하는 행동도 저질스럽다. 그 말도 안 되는 조합에 시청자들의 웃음보따리가 펑 터져버렸다.
“합!”
필립이 두 팔을 모아, 가슴 근육을 강조했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봤을 때. 일부러 웃음을 유발하려는 건 아니겠지만. 바보스러운 미소와 펌핑하기 시작하는 가슴근육의 합동공격은 하영으로서도 버티기 힘든 것이었다.
“…예 맞습니다.”
하영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입을 부여잡고 말했다. 웃음으로 교화된 날카로운 눈매와 정중한 말투. 그 조합에 필립이 얼굴을 굳혔다. 멀리서 봤을 때도 예뻤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더 대박이었다.
“크흠. 필립 그만해라. 창피하다.”
필립의 뒤에서 창을 들고 서 있던 남자가 말했다. 그는 필립을 슬며시 뒤로 물리며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 그리고 용서해주길 바란다. 그가 한 말의 절반은 거짓말이다. 저 친구가 악마 사냥꾼인 건 맞지만. 그가 잡은 악마들은 최하급 악마에 불과했어.”
창든 남자의 말에 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필립이라는 남자가 자신에게 이성으로써 호감을 품은 거 같긴 하지만. 지금까지 파티를 구하며 봐온 성욕의 시선하고는 약간 달랐다.
남자로서 미녀에게 호감을 품는 건 당연하니. 이 정도는 봐줄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
하영이 웃으며 말했다. 이들을 만난 지는 별로 되지 않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따뜻한 게 뭔가 정감이 갔다.
“덕분에 즐거웠으니까요.”
하영의 미소에 창을 든 남자가 미소로 답했다.
“좋게 봐줘서 고맙다. 난 나강함이라 한다.”
“네?”
“나강함이다.”
남자의 이름을 들은 하영이 벙쪘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나강함일 수가 있지?
“성함이… 나강함이라고요?”
“그래. 나강함이다.”
강함의 말에 하영이 남자의 모습을 살짝 훑었다. 바짝 마른 체구, 근육질 몸매인 필립 옆에 있어서 그런지 더욱 볼품없어 보였다.
“내 이름을 들은 이들 중. 대부분이 그런 표정을 짓더군.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닌 법이야.”
나강함은 몸을 살며시 틀어, 유일하게 하영과 대화하지 않는 남자를 강조했다.
“저 자의 이름은 잭. 이곳에서 만난 친구지.”
강함의 말에 하영이 잭이라고 불린 남자를 쳐다봤다. 필립처럼 근육질 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르지도 않았다. 얼굴도 평범했다.
“특별함이 없어 보이는 친구지만… 달라. 저자는 거주자가 아니라, 등반하기를 선택한 친구야. 최대로 올라간 층은 16층. 5층에서는 꽤 유명한 친구지.”
나강함은 잭에게 다가갔다.
“어이, 잭! 보여줘라! 너의 컬렉션을!”
나강함의 말에 잭이란 남자가 웃었다. 잭의 손에 아공간 주머니로 보이는 주머니가 생겨났다.
“어쩔 수 없군. 친구의 부탁이니 특별히 보여주지.”
잭은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그러자 수많은 무기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내 이름은 잭. 이명은 무기수집가 잭이다.”
자세히 보니 아공간 주머니로 보이는 주머니를 여러 개 차고 있었다.
“……”
하영은 그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감탄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고, 웃겨서 그런 것이었다.
“괴, 굉장하네요.”
하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당연하지. 내 최고의 컬렉션들이니까 말이야…”
자랑스러운 표정의 잭이 입을 열었다. 하영은 자신감 넘치는 잭의 얼굴을 보며 몸을 떨었다.
지금 잭이 자신 있게 보인 무기들은 모두 10,000골드도 이하로 판매 중인 싸구려 무기였다.
하영은 심심하면 어떤 창이 있나 아이쇼핑을 했기에 그 사실을 알았다.
낭만검객: ㅋㅋㅋ 장비자랑좌 떳냐?
군침도는사람: 격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아가리롤스타: 하영아. 얘내랑 던전 가자. 콘텐츠 대박이다.
하영하영: 씨발ㅋㅋㅋㅋ 한명 한명이 다 주옥같다. 트롤짓 한 범인 한 명을 고르라 하면 누굴 골라야 하는 거냐 ㅋㅋㅋㅋㅋ
꿀벌아넣을게: 예 다 범인입니다.
대충지은닉네임: 싹 다 구속시켜!
오른손에흑염룡이있음: 뉴비에게 마창맛 함 보여주자
수영장파티정하영: 하영아 400만 장비 보여줘 봐라 ㅋㅋㅋ 아주 자지러질 거다 ㅋㅋ
Av촬영: 올 타임 레전드네 씹련들 ㅋㅋㅋ
빗발치는 채팅들 사이로, 나강함이 웃었다.
“어떤가. 이제 좀 알겠나? 사람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걸 말이야.”
“네! 잘 알겠습니다!”
강함의 말에 하영이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방심했다가 웃음이 터져버린 지금, 그녀는 웃음을 참느냐 눈물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흐읍!”
“필립 가슴 근육 좀 그만 움직여라. 슬슬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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