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7. 탐정 없는 범인 찾기
* * *
시청자들은 그들과 같이 파티를 이루자 했지만, 하영은 정색하며 거절했다.
재미있고 유쾌한 파티다. 하지만 유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거절합니다. 차라리 혼자 들어갈게요.’
하영은 고개를 흔들면서 채팅창을 노려봤다.
거절의 뜻을 가득 담았다. 입으로 말하지 않는 이상 사람의 마음은 알지 못한다지만, 저들은 평범한 시청자가 아니니 내 뜻을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탑골공원휠체어도둑님이 100골드 기부.
하영아. 넌 방송인이다. 방송인은 시청자들에게 재미있는 걸 보여 줘야 하는 거야…
그렇게 기부를 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누굴 골드에 미친 사람으로 아나 본데.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나도 성장했다.
어서가장애들아님이 300골드 기부.
어서가장~ 하영아~
이상한 닉네임을 쓰는 사람답네. 하영은 악질 시청자의 끈질김에 혀를 내둘렸다.
내말대로투자하면잘됨님이 500골드 기부.
하영아 저 파티는 뜬다. 미리 연줄 잡아 놓자. 내 말대로 하면 떡상은 쉬운 일인 거 알지? 나 믿고 건물 투자 한번 하자.
하영의 단호한 몸짓에도 기부 릴레이는 이어졌다.
이쯤 되니 솔직히 고민된다. 오랜만에 웃을 만큼 큰 재미도 줬으니. 내가 버스 한번 태워줘 볼까.
낭만검객님이 3,000골드 기부.
못 먹어도 ㄱ
느금냥이님이 1,000골드 기부.
가보자~ 가보자~
받은 골드의 금액 단위가 바뀌자 하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청자들의 마음, 그 깊은 뜻이 내게 닿았다.
“이번만 특별히 해드리는 겁니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골드를 줘도 안 해드려요.”
하영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3인방의 시선이 하영에게 닿아 있었지만, 입을 아주 살짝 움직였을 뿐이니. 뭐라 말했는지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좋아요, 같이 갑시다. 던전.”
하영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당한 하영의 모습에 필립과 나강함이 미소를 지었다.
“이 악마 사냥꾼 필립만 믿으라고. 내가 있는 한 상처 하나 없이 전투를 끝내줄 테니까 말이야.”
필립은 거대한 팔을 잭의 어깨에 올리며 말을 이었다.
“공격은 부탁한다고 잭!”
필립의 말에 잭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조금 전에 꺼낸 무기를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느냐 여념이 없었다.
“아, 알았으니까 좀 떨어져라. 필립. 나 무겁다.”
나강함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웃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훈훈한 모습에 하영도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던전에 들어간 직후. 하영의 미소는 경멸로 바뀌어버렸다.
“아니, 시발 이게 뭐야.”
하영이 중얼거렸다. 눈앞에 있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마창사를 꿈꿨다. 그리고 탑에 올라와 그 꿈을 이뤘지.”
나강함이 마력을 운용했다. 잘 보라고, 이게 내 주 공격법인. ‘마창’이다.
나강함은 하영을 포함한 모두에게 미소를 보여주며 앞으로 돌격했다.
“흐아아아!”
괴음을 지르며 ‘저주로 약화된 트롤’에게 돌진하는 그는 흡사 앞에 나와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을 보는 듯했다.
“죽어라!”
나강함은 자신의 손에 들린 창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의 창은 던전에 입장하기 전과 모습이 달라졌었는데, 이는 나강함의 스킬과 관련이 있었다.
나강함.
그는 마력의 형상화 스킬을 이용해 공격하는 평범한 마법 계열의 등반자였다.
하지만 그는 평범함을 거부한 진짜 남자였다.
소설에서 마력의 형상화를 배운 마법사들은 주로 화살 같은 모양으로 마력을 형상화해서 먼 거리에서 공격하기를 선택했다.
이유는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마력 능력치는 시작이자 끝이었다.
마력만 있으면 방패를 형상화해서 상대방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굳이 가까이 가서 싸워줄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강함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무기에 마력을 휘감았다. 그것은 일종의 강화 마법이었다.
“크윽 꽤 하는구나!”
나강함이 뒤로 밀려났다. 마력이 창을 감싸, 보병의 창보다는 말을 타고 앞으로 돌격하는 기병대의 창에 가깝던 그의 창은 이미 반쯤 부서져 있었다.
그러나 ‘저주로 약화된 트롤’역시 부상을 당한 건 마찬가지였다. 트롤은 나강함과의 격돌로 인해 자신을 지켜주던 질긴 가죽을 다 잃은 상태였다.
“나이스 트라이다. 강함!”
나강함이 뒤로 밀려 나가는 것을 본, 무기 수집가 잭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의 손에는 무기가 들려 있지 않았다.
“받아라. 강력한 일격!”
무기수집가 잭이 주먹을 휘둘렀다. 무언가 특별한 스킬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저주로 약화된 트롤’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다. 잭, 그는 보기와 다르게 육체 능력치에 모든 걸 투자한 육체 계열의 등반자였다.
“너무 쉽군.”
잭이 중얼거렸다. 그는 산산이 부서진 트롤의 시체를 보며 몸을 풀었다.
“수고했다.”
필립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잭과 나강함에게 다가가 힐을 사용했다. 힐을 사용할 때마다 가슴근육이 요동쳤다.
하영은 그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하영이 생각했던 싸움 방식이 아니었다.
***
던전에 들어온 지 7시간이 지났다.
“와. 진짜 어질어질하네요.”
뒤에서 그들의 전투를 구경하던 하영이 중얼거렸다.
시청자들은 그녀의 중얼거림에 장난기 가득한 채팅을 연달아 도배했다.
낭만검객: 나강함. 이름 값했다. 쩐다 ㅋㅋㅋ
욕절대안하는성좌: 유일한 정상인 줄 알았는데 나강함 이 새끼가, 범인계의 다크호스였네.
아가리롤스타: ㅅㅂ. 왜 마법사가 마법 저항력 높은 트롤이 사는 던전에 오는 거야.
말이쁘게함: 봐라. 이게 ‘마창(마법으로 강화한 창)’이다. ㅋㅋㅋㅋㅋㅋ
푸른하늘583: 아니, 왜 마법사가 근접전을 펼치는 거야. 육체 능력치도 안 좋으면서…
악질방송만보는사람: 필립 이새기는 어떻고, ㅅㅂ 그렇게 험악하게 생겼으면서 쓸데없는 살생은 지양한다면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거 보셈 ㅅㅂ 우리 팀 서폿 새끼들 보는 거 같네.
인방인생하급신: 무기자랑좌, 무시함? 그는 지금껏 단 한 개의 무기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냐? 무기를 드는 순간 세계가 멸망하기 때문임 ㅋㅋ
“선생님들. 이제 만족하십니까?”
낭만검객: 만족? 난 만족을 모르는 남자야.
AV촬영: 하영이가 AV촬영하면 만족함 ㅇㅇ
하영하영: 그건 안 됨. 하영이는 모두의 것임.
보직군영: 그래 ㅅㅂ 하영이는 공공재라고!
내이름은야스머신: 깨달았다. 동정의 야스가 가장 재미있듯이. 싸움도 ㅈ밥 싸움이 가장 재미있다.
군침도는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 하영이 방송을 보고 깨달음도 얻어간다? 이거 완전 히트 아닙니까?
시청자들의 채팅에 하영이 고개를 저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직접 나서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현재 하영에게는 미션이 있었다.
금수저수지님이 100골드 기부.
하영아 참아. 내 미션 알지? 보스방까지 넌 연약한 척 구경만 해야 해. 안 그러면 5만 골드 날아가는 거야~
“아, 알아요 알아.”
나서지 말라고 경고하는 기부 메시지에, 하영이 대답하며 앞으로 걸었다.
3인방은 트롤을 잡고 나온 아이템을 줍고 있었다.
“다들 대단하시네요.”
하영이 트롤에서 나온 아이템을 주우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잭이 웃었다.
“16층도 클리어한 나야. 이 정돈 문제가 되지 않아.”
자신을 자랑하는 듯한 잭의 말에 하영을 의식하던 필립이 입을 열었다.
“어이 잭! 무기도 좀 사용하라고! 죽을 때 무기를 가지고 갈 것도 아니잖아!”
“거절한다. 무기는 소모품이다. 즉. 무기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무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말이야.”
잭의 대답에 필립이 하영을 보며 웃었다. 하영이 자신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걸 안 필립은, 하영이 팀원과 친해지려는 것 같으면 이렇게 팀원의 단점을 말해왔다.
‘덩치에 비해 뭔가… 하는 짓이 순박하네.’
뭔가 묘하게 팀원들의 견제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정작 강압적으로 나오거나 노골적으로 팀의 사이를 안 좋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냥 덩치가 큰 시골 청년의 투정 같은 느낌이었다.
“잭, 그래도 보여줄 땐 제대로 보여주라고. 그래야지 수집하는 보람이 있잖아!”
“걱정 마라, 수집의 끝은 자랑이다. 보스방에서 오랜만에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마.”
잭이 음침하게 웃었다. 응 어림도 없어, 보스는 내가 처리할 거야.
하영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아이템을 주웠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양손에 아이템이 꽉 찼다.
하영은 던전에서 나온 템을 보관하는 보관 주머니를 들고 있는 나강함에게 걸어갔다.
“음. 마력이 조금 더 강해지는 느낌이야. 역시 트롤의 왕국. 마력 능력치를 올려주는 장신구가 나온다는 소문은 사실이었어.”
나강함은 조금 전에 트롤을 잡고 얻은 반지를 자신의 손에 껴보며 착용감을 느껴보고 있었다.
“응? 5층에서 거주 중인 거 아니었어요?”
나강함의 중얼거림에 이상함을 느낀 하영이 말했다.
5층에 있는 던전은 100개,
주인공이 클리어 하는 숨겨진 던전까지 포함하면 좀 더 되지만. 같은 던전이 여러 개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던전의 종류는 십여 가지에 불과했다.
십여 개, 적은 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수는 아니다.
말하는 걸로 봐서는 5층에 거주 중인 거주자들로 보이는 이들이 5층의 던전에 대해 잘 모르는 게 이상하다 느껴졌다.
“음, 아! 오해할 수도 있겠네. 나랑 필립은 13층까지 클리어해놔서 말이야. 우린 10층에서 거주 중이야.”
10층? 나강함의 말에 하영이 물었다.
“거주층을 지나면 다음 층까지 선택을 못 하는 거 아니었어요?”
“선택을 안 하고 올라가면 되지.”
하영의 물음에 왜 그런 걸 물어보느냐는 듯, 나강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당황한 듯한 하영의 표정에 그는 추가로 설명을 덧붙였다.
“선택하라고 했지, 지금 당장 선택하라고는 말하지 않았잖아?”
그 말에 하영이 넋을 놓았다. 주인공, 그러니까 이원혁이 주인공인 소설에서는 그런 내용은 서술되어있지 않았다.
한번 선택하면 끝이다. 이런 식으로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갔을 뿐이다.
‘이게 99층까지 오른 사람의 여유?’
하영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래서 주인공들은 안 된다. 특히 회귀하거나 한 애들은 대부분 자신감 가득하다. 게네들은 진짜 필요한 것만 서술해준다.
‘시발. 여유고 나발이고 이런 것들은 세세히 설명하고 넘어가라고.’
약자에 빙의하는 우리 같은 이들을 위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라고. 망할 치트 새끼들아.
“솔직히 시스템 메시지가 졸졸 따라오는 게 거슬리긴 하지만. 죽을 거 같을 때 거주자로 선택하면 5층으로 곧바로 이동하니까. 여분의 목숨 줄이 있는 거나 다름이 없어. 그러니 그 정도 거슬림은 참아야지.”
나강함의 말에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14층에서 등반에 실패했어, 그래서…”
필립이 무어라 말하긴 했지만, 하영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는 채팅창을 보며 헛웃음을 삼키기 바빴다.
낭만검객: 설마, 설마 하던 1인칭 소설의 폐해. 이거 강력한 범인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생존게임좋아요: 뒤에서 힐 만하는 사제? 윽… 머리가.
성녀혐오함: 이래서 내가 성녀를 혐오함. 십련.
미션석세스: 뒤에서 구경만 하던 사제도 위험할 때 도와줘서 1킬 챙겼는데, 우리의 마창좌는 0킬 달성. 이 정도면 탱커 아님? ㅋㅋㅋㅋㅋㅋㅋ
애니실수로본사람: 어이어이, 무기자랑좌의 무기는 던전을 돌 때마다 계속 쌓여만 간다고? 크킄.
꿀벌아넣을게: 무기자랑좌, 넌 무기 좀 써 이 씹련아ㅋㅋㅋㅋ 말만 하지 말고.
방송계의유니콘: 와 씨발 거를 타선이 없다 ㅋㅋㅋㅋㅋ
하영하영: 하영아 이제 좀 정신이 들어?
축제가 열린 듯, 계속해서 올라오는 채팅들.
누가 봐도 자신을 놀리는 것이 확실한 채팅의 내용에 하영이 입을 열었다.
“이제 곧, 보스 방이죠?”
하영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생기가 넘쳤으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서늘했다.
마법 안티 던전에 들어와 딜 넣는 근접 마법사,
무기를 사용하면 무쌍도 가능한 육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진짜 무기 수집만 하고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무투가.
쓸데없는 살생은 최대한 지양한다며 멀찍이 떨어져 상황을 보는 근육 사제까지.
온갖 암 덩어리들을 보며 버텨오던 답답함의 감정이, 억울함 때문에 터져 나왔다.
“앞으로는, 범인이라고 몰아가서, 골드를 벌지 않겠습니다. 선생님들. 이제 좀 봐주세요.”
낭만검객: 아니ㅋㅋㅋ 그래서 범인이 누구냐고.~
방송계의유니콘: 범인은 바로~~~~~~~
“접니다. 시발. 파티랑 돌아가는 꼴을 보니, 제가 제일 주변과 안 맞아요. 제가 제일 나쁜 놈이에요.”
던전에 들어온 지 10시간.
잠도 못 자고 지루한 싸움을 보던 하영이 드디어 무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