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썅년의 방송 생존기-63화 (63/85)

〈 63화 〉 8. 등반의 시작.

* * *

잭은 다른 사람에 비해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국경을 건넌 적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 고해서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다거나 한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행동력이 남들보다 조금 남달랐을 뿐이었다.

‘이건. 아까 고블린이 흘린 무기잖아.’

호기심 많은 잭이 튜토리얼에서 처음 무기를 집고, 이능에 눈을 떴을 때.

잭은 이 현상에 대해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서 고블린을 잡고 무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전부 똑같이 생겼어. 심지어 낡아 있는 것마저 같아.’

잭은 살면서 이렇게 똑같은 생김새를 한 낡은 무기는 처음 접해봤다. 어떻게 낡은 부분마저 같을 수 있는 걸까.

시간에 지남에 따라 그 호기심은 무기에 관한 관심으로 변해갔다.

잭은 여러 가지 무기를 수집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무기 수집가라 불렀다.

그 정도로 잭은 여러 곳을 탐험하며 무기를 모았다.

그리고 그건 오늘도 같았다.

잭은 파티를 꾸려 트롤의 왕국이 있는 던전으로 향했다. 목표는 보스가 무작위로 들고 있는 무기 중 하나인 트롤의 검이라는 무기였다.

‘저건….’

그러다 한 여자가 입구에 앉아 있는 것을 봤다.

잭은 파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인 줄 알고 그냥 지나쳐갔다.

그러나 던전을 클리어하고, 잭이 얻는 데 실패한 검을 얻기 위해 다시 파티를 꾸려 도착했을 때도 그녀는 그곳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대체 왜 저런 곳에 앉아 있는 거지? 혹시 여관에 들어갈 돈이 없는 건가?’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던전 입구에 홀로 앉아있는 여자에 대한. 자그마한 호기심.

“저 여자. 마음에 든다.”

그렇기에 던전에 같이 가게 해달라는 필립의 말에 마음대로 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트롤의 왕국으로 간다고?”

필립의 헌팅이 실패하건 말건, 잭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 정도로 작은 호기심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눈빛을 봤을 때.

그 작은 호기심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빨간색. 이라고 하기보다는 진한 갈색에 가까운 그 눈동자에 두려움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권태로움마저 느껴질 정도로 무심한 눈빛이었다.

그건 절대 정상이 아니었다.

무기를 든 건장한 성인 남성 3명이 먼저 다가오는 상황에 저런 눈빛을 내보일 여자는 적었다.

그것이 이 탑을 오르고 있는 등반자면 더더욱 그랬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잭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여자를 쳐다봤다.

검은색 무복을 입고, 허리춤에는 작은 주머니를 단 검은 머리의 미녀.

‘확실히 심상치 않기는 하군.’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때는 몰랐지만. 가까이에서 보니까 알겠다.

긴 검은 머리와 천 사이로 홀로 툭 튀어나와 있는 흰 다리의 매력은, 보는 사람을 달아오르게 할 정도로 관능적이었다.

특히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미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녀의 진가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필립과 나강함의 소개를 듣고 눈웃음을 보이는 그 모습은.

날카로운 성격의 여인일 것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던 잭의 생각을 뒤흔들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기에 호기심은 관심이 되었다.

“내 이름은 잭. 이명은 무기수집가 잭이다.”

잭은 자신의 자기소개를 하면서 여자를 훑어봤다.

5층에서는 나름 유명한 내 이름을 알려주어도 유쾌한 분위기에 변화는 없다.

겉모습이 자랑스러운 컬렉션을 보여주어도 마찬가지.

‘초보자로군.’

오래된 등반자일수록 주변에 관심을 두는 법.

짬이 쌓인 등반자가 자신이 늘 사용하는 무기에 관심을 두지 않을 리는 없다.

그러니 그녀는 5층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등반자가 확실했다.

잭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대체 저 여유로운 분위기는 뭐지?’

여자가 내뿜는 분위기는 이제 막 올라올 등반자가 할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흥미로워. 정말로 흥미로워.’

잭은 자신을 정하영이라 소개한 여자를 알고 싶었다. 이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단순한. 정하영이라는 사람 자체에 관한 관심이었다.

어떤 실력을 갖추고 있기에 그런 분위기를 내뿜을 수 있는 거지?

그런 실력을 갖춘 사람이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던 이유는?

그리고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잭은 관심을 조용히 접어 누른 채 그녀와 던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하영이라는 여자가 무기를 꺼냈다.

그녀의 무기는 창이었다. 아무런 특색이 없는 낡고 평범한 창.

‘으음. 생각보다 그렇게 대단하진 않은 것 같은데….’

무기수집가 잭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잭의 생각은 그녀와 트롤의 첫 접전에서 산산이 조각났다.

그녀의 실력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본능적인 싸움을 추구하는 그녀의 창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무림인로서의 추구하는 무언가도, 살기도, 뜻도.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명령을 받은 인형처럼 창을 휘두르고 적을 죽일 뿐이었다.

“여자 혼자, 남자 3명이랑 같이 들어간다 했을 때부터, 숨겨둔 한 수가 있다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어.”

나강함의 말에 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영, 그녀의 싸움은 특이했다.

실력이나 능력치 자체는 그녀의 무기처럼 비교적 평범했다.

물론 5층에 막 올라온 등반자들이 아닌, 15층에서 생활하던 잭의 주변 등반자와 비교할 때 나온 평가였다.

그러나 그녀는 잭이 봐온 이들과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지금껏 잭이 봐온 이들은 다음을 생각하며 전투를 하는 이들이었다.

단지 그다음이 가까운가 먼가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 다 똑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을 퍼붓는다.

부서진 창의 파편에 자신이 맞아도 상관하지 않는다.

단지 적의 공격을 막고 공격할 뿐. 그 공방에서 나오는 자신의 피해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싸움과 그로 인해 나오는 피. 그녀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녀의 적이 있는 곳을 향해.

“효율적이군.”

필립의 중얼거림에 잭이 끄덕였다.

전투 자체는 인간과 몬스터의 전투라기보다는 몬스터와 몬스터의 전투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렇기에 효율적이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얻은 효율이었다.

무기도, 자신도, 심지어는 적을 죽이고 나와야 하는 부산물마저 포기하고 얻은. 극한의 효율.

‘저렇게 싸우면 대체 무엇이 남는 거지?’

잭은 부서져 버린 트롤들의 몽둥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

압도적인 효율 앞에 던전은 순식간에 클리어 되기 시작했다.

잭과 일행은 그녀를 쫓아 그나마 남아 있는 부산물을 챙겼다.

“그래도 나강함 네가 싸우는 것보다는 낫다야.”

필립의 말에 나강함이 웃었다.

“나와 비교하면 섭섭하지. 내가 수비를 포기하고 상처를 내면서 전투를 해도 저 정도 속도는 못 나온다고.”

그 말에 잭은 동의했다. 저건 따라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피해를 의식하기 마련이다.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아도 눈에 무언가 날아오면 눈을 질끈 감는 것처럼.

그러나 눈앞에서 싸우는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전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온몸으로 트롤의 공격 대부분을 맞거나 막았다.

그것이 자신을 죽일 공격이건, 다음 수를 위한 거짓된 몸짓이건 상관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하영은 전투에 나선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보스 방에 도달했다.

16층에 오르며 많은 등반자를 봐온 잭이 봐도 압도적인 속도였다.

그리고 그녀의 진짜 진가였던 눈웃음처럼. 그녀는 보스의 방에 다다랐을 때 새로운 모습을 잭에게 보여줬다.

“하… 말도 안 돼. 저런 무기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영의 마창을 본 잭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지금껏 사용한 창을 집어넣고 새로운 창을 꺼냈다.

나무가 아닌 이름 모를 검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창대.

찌르기와 베기를 모두 포기하지 않고 설계된 넓고 무거운 창날.

그리고 보기만 해도 식은땀이 흐르는 묘한 분위기까지.

그건 평범한 창이라고 보기에는 보는 것만으로 꺼림칙했다.

보고 싶지 않았다. 닿고 싶지 않았다.

타칭 무기수집가로 불리는 잭마저 관심을 두고 싶지 않은. 보는 것만으로 살기가 느껴지는 진짜 ‘무기’였다.

콰앙!

하영이 창대의 끝을 바닥에 내려쳤다.

단순하게 내려쳤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큰 소리가 들려왔다.

듣기만 해도 위협적인 소리에 잭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필립과 나강함 역시 뒤늦게 뒤로 몸을 뺐다.

무기를 손에 쥔 하영의 분위기는 이전과 전혀 달랐다.

눈웃음을 짓던 여인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하영은 위협적인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자. 그럼 보스 잡으러 가보겠습니다.”

잭과 일행이 분위기에 순간적으로 압도당하는 사이.

하영이 한 손으로 보스방의 문을 열었다.

크어어!

동시에 안에서 트롤들이 쏟아져 나왔다.

잭은 그 모습을 보고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재빨리 아공간을 열었다.

오늘 전투에서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 그건 바로 지금을 위해서였다.

‘…보여주마. 내 진짜 컬렉션을.’

그러나 그 보다 한발 앞서 나선 이가 있었다.

바로 정면으로 트롤을 마주한 하영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속도로 트롤들을 공격했다.

그녀가 한번 찌를 때마다 트롤이 한 마리씩 죽었다.

트롤이 몽둥이나 팔로 공격을 막아도 소용없었다.

공격 한번 한번이 묵직했다.

약화된 트롤은 자신의 재생을 세상에 보여주지도 못한 채 죽어갔다.

‘말도 안 돼.’

잭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벌렸다.

적을 죽이고 무기를 바꿀 때마다 버프를 받는 잭.

그런 그가 풀 버프를 받아도 저런 공격을 매번 날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잭이 지금껏 봐온 그 어떤 등반자도 저런 퍼포먼스를 뽐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규격 외의 존재였다.

크아아아!

하영이 트롤을 전부 처리한 순간, 듣기만 해도 우렁찬 굉음이 보스 방 쪽에서 들려왔다.

보스와의 싸움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보스의 마지막 순간이기도 했다.

쉬이익! 쾅!

아무런 전조 없이 날아간 하영의 검은 창이 보스와 방의 벽을 함께 꿰뚫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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