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67화 (67/85)

〈 67화 〉 8. 등반의 시작.

* * *

누군가는 자존심마저 내다 팔며 생사를 오가는 사투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방안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걸 구경했다.

그 사실에 하영은 머리가 띵했다. 정말 말 그대로 띵했다.

“대마법사의 취미가 초보 등반자를 미행하는 거였다니 의외네. 아 혹시 목욕실이나 강가에서 목욕하는 것도 구경하는 건 아니죠?”

하영이 크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대마법사가 흠칫 몸을 떨었다. 하영은 몰랐지만, 지금껏 신에게 쌓인 분노도 하영의 말에 포함되어 있었다.

­ 낭만검객: 커험, 난 목욕하는 건 안 봤다.

­ 아가리롤스타: 머리 박을까요?

­ 야스마스터: 목욕실? 박아? 뭘?

­ 인방인생하급신: 방송 초기가 ㄹㅇ이었지 그때는 하루 방송 시간이 24시간으로 되어있어서 강가에서 샤워하는데 ㄹㅇ 개꿀이었음.

­ 닉네임은10글자까지: 그 좋은 걸 왜 너희끼리만 봐? 그 좋은 걸 왜 너희끼리만 봐? 그 좋은 걸 왜 너희끼리만 봐? 그 좋은 걸 왜 너희끼리만 봐?

­ 방송계의유니콘: 방송 하루 이틀 봐? 왜 늦게 들어와서 그래. 꼽으면 일찍 들어오던가!

하영의 말에 간접적인 데미지를 입은 시청자들이 뭐라 채팅을 치기 시작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하영의 눈은 오로지 대마법사를 향해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번에는 우연히…”

“오, 우연히 미행을 해버렸다. 그거 굉장하네요. 그 비결 좀 꼭 배우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우연히 미행할 수 있는 겁니까.”

대마법사의 말에 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겹게 보스몹을 잡고 나왔더니 금발의 미소년이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상황. 이 개 같은 상황에 하영의 기분이 팍 나빠졌다.

차라리 미소녀였으면 참아 보기라도 했을 텐데. 미소년이라 더욱 용서가 안 됐다. 이건 유죄가 나올 수밖에 없다.

“미행이라니, 단지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라네.”

이어지는 대마법사의 변명에도 하영은 계속 째려봤다. 정신이 나가, 너 죽고 나 죽자 인 상태라 가능한 일이었다.

“크흠. 물론 몰래 지켜본 건 미안하네. 그 대신 내 자네가 원하는 걸 하나 주겠네.”

원하는 거? 공짜로 무언가를 준다는 말에 하영의 정신이 돌아왔다.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그런 말에 휘둘릴 정도로 가벼운 남자가 아니었다.

“혹시, 마법사가 되고 싶나?”

대마법사의 말에 하영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마법사. 남자라면 한 번쯤은 꿈꿔본 위대한 이름.

‘하지만. 난 마법은커녕 마법 스킬도 제대로 못쓰는데.’

게다가 제아무리 대마법사가 자신에게 마법을 가르쳐 준 다해도, 이원혁이라는 인간말종에게서 도망쳐야 하는 하영의 입장 상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내어 줄 수는 없었다.

‘차라리 간단한 마법 관련 스킬을 받는 게 나을지도 몰라.’

지금 하영에게 필요한 건 능력치를 올려주는 영약, 스킬과 특성. 그리고 식량이었지만. 식량은 쉽게 구할 수 있었고. 특성은 약간 꺼려져서 배제, 영약은 조건만 해금하면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었다.

‘애초에 골드만 있으면 대부분 해결된단 말이지.’

대마법사가 골드를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니, 그가 줄 수 있는 것들 중에서 하영에게 필요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역시 마법 스킬이 들어있는 스킬 석을 받아가는 게 맞겠지?’

저층의 대마법사라 불리는 그라면 마법 스킬이 들어있는 스킬석 정도는 몇 개 모아 놨을 게 분명했다. 저층에 불과한 곳이라 하영이 원하는 좋은 스킬석은 없겠지만. 그중에서 비교적 쉽게 다룰 수 있는 걸 추천받아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렇게 하자.’

하영은 저층의 대마법사에게서 스킬석을 받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대마법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재능을 주겠네. 마법사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재능.”

“스, 스승님!”

재능이라는 말에 하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재능, 이 얼마나 달콤한 울림이란 말인가. 하영은 자신도 모르게 저층의 대마법사를 스승이라 불렀다.

“재능이라기보다는 재능이 부족한 나를 반이나마 대마법사의 자리로 올려준 마법 보조 스킬이지만 말일세. 아! 참고로 내가 확인해본 바 이 스킬은 마법이 아닌 단순한 마법 스킬에도 유효하더군.”

“역시 스승님. 위대하십니다!”

대마법사의 말에 하영이 눈을 반짝였다.

조금 전까지 얼어붙었던 분위기와는 다른 모습에 대마법사가 움찔했다. 그는 일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채롭게 변화하는 하영의 표정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마음에 들었다.

“단. 사죄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죽은 이후일세.”

대마법사가 하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영은 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뭔 개소리지.’

죽은 후 어떻게 스킬을 전달해 주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너무 오래 살아서 노망이라도 난 건가?

“노망이 난건 아닐세. 난 아직 팔팔한 60대니까 말이야.”

하영의 표정에서 하영의 생각을 대강이나마 읽은 대마법사가 차를 마시며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 하영은 더욱 떨떠름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 대마법사 할아버지 스승님? 역시 노망이 오신 게 아닌지.”

진심이었다. 탑에 들어오면 정상적인 생식활동이 멈춰 노화가 잘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미소년의 외모를 가진 대마법사의 연세가 60살을 넘었을지는 몰랐다.

그런 건 탑에서 나오지 않은 이야기였다.

“미래를 본다 말한 자네라면 알겠지만 스킬이란 건, 남에게 쉽게 양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닐세. 스킬석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마법사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하영을 이해시켜주기 위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즉. 말년에 내가 얻은 스킬을 남에게 양도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조건이 있어야 한단 말일세.”

“과연, 조건이 스승님의 죽음이라는 뜻이군요. 스승님. 이 불초의 제자 이제야 스승님의 깊은 뜻을 알았습니다.”

대마법사의 설명에 하영이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 지 얼마 안 된 상대라 슬프거나 감동하지는 않았지만, 제자로서의 스승의 예우를 해주기 위함이었다.

“아니, 그건 아닐세. 애초에 내가 그대에게 주려는 것은 스킬이긴 하나, 스킬 보다는 내 깨달음이 탑의 힘을 빌려 실체화한 것에 가깝네. 스킬을 주는 것과는 거의 별개의 일이란 말이지.”

이어지는 대마법사의 부연 설명에 하영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시청자로 단련된 그의 강인한 정신력도, 완전히 고갈된 상태에서는 그 힘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뭐하는 놈이지.’

하영은 입술을 무는 것으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초인적인 인내심이었다.

“왜 죽고 나서 주신다는 지, 제가 알 수 있을까요? 빈약한 제 머리로는 대마법사인 스승님의 생각을 따라갈 수 없어서 말입니다.”

입술을 물고 있는 탓에 말이 엉성하게 나갔지만, 대마법사는 그런 하영이 말에 대뜸 눈을 위로 올렸다. 그 모습에 소설 애청자인 하영은 깨달았다. 이건 과거 회상 파트가 시작될 징조다.

“옛날, 한 마을에 마력을 개화시킨 어린 소년이 있었네.”

대마법사는 차를 마시며 과거를 회상하는 듯 우수에 젖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소년은 시골 마을에서는 유례없는 천재로 특별한 존재였지만, 큰 대륙에서 본다면 단순히 마력을 빨리 개화시킨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지.”

그리고 그건 탑에서도 마찬가지일세.

대마법사는 처음 탑에 들어온 순간을 이야기해줬다. 전혀 다른 언어로도 서로 소통이 된 것에 놀란 경험이나, 사랑에 눈이 멀었던 일 같은 재미없는 일들뿐이었지만. 하영은 어째서인지 그의 이야기에 집중이 됐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자넨 특별한 존재야. 그러나 동시 평범했던 시골 소년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한 존재지. 안 그런가?”

대마법사는 차를 잔에 따른 후, 공중에 띄워 하영에게 건넸다. 하영은 잔을 두 손으로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존재는 늘 눈에 띄지. 그리고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그 증거로 벌써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가.”

하하하. 대마법사는 즐겁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금발 미소년이라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호탕함 웃음이었다.

“평범한 이들은 특별함을 원하고 동경하지, 그러나 정작 특별해진 이후에는 과거 평범했던 시절을 자주 떠올리고 그리워하게 돼.”

대마법사의 말에 하영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깨달았다. 대마법사의 이야기에 집중이 잘된 이유. 그건 그가 하영과 비슷한 점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특별했다면 모를까. 후천적인 요인으로 특별해진 어중간한 사람은 결국 어떻게 해서든 비극적인 끝을 맺더군.”

대마법사가 차를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차를 다시 따르기 위해 주전자를 기울였다.

“내가 창조한 스킬은 특별함을 동경했던 평범한 존재의 발악이자 놓쳐버린 특별함에 대한 집착. 아직 완성되지 않았네. 아직 완벽하게 특별함 사람을 보지 못했거든.”

그러나 주전자에서는 차가 나오지 않았다. 대마법사는 주전자를 내려놨다.

“뭐 그대의 말이라면 곧 특별한 일을 겪고 완전히 특별해진 존재가 날 보러 오겠지만 말이야.”

껄껄. 대마법사는 이번에는 노인 같은 웃음을 내뱉었다. 이 역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소년의 껍질을 쓴 노인을 보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도 난 저렇게 보이는 건가.’

특별한 껍질을 뒤집어쓴 평범한 존재. 그 문장이 하영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벨의 때와는 달랐다. 대마법사의 말은 하영에게는 이해가 너무도 잘됐다.

“난 천재가 아닐세. 대마법사라 불릴 정도로 특별한 이는 더더욱 아니지. 그래서 그런가. 특별한 이를 한 번쯤은 더 보고 싶더군.”

대마법사의 말에 하영이 홀린 듯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영 역시 정하영이 아니었다. 죄 없는 누군가를 위기로 몰아가며 즐기는 성격도 아니었고, 미녀로서 세상을 살아간 이도 아니었다.

하영은 다른 이들처럼 꿈을 놓아버린,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특별한 이를 보고 스킬을 완성할 테니 기다려주게. 기다린 만큼 특별한 스킬일 테니.”

그러나 하영은 이제 회사원이 아니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특별한 존재로 거듭나야 하는 방송인에 불과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난 너무 어중간했어. 시골 소년이 어린 시절 마력을 개화한 건 특별한 일이지만. 내 재능이나 생각은 범인에 불과하더군, 특별한 일에 휘말린 평범한 존재는 늘 고달픈 법이야.”

대마법사의 눈이 하영을 응시했다.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미소년의 모습이었지만, 하영은 정체 모를 압박감을 느꼈다.

“탑에 적응했듯이. 특별함에 적응하게나. 그리고 내 특별함을 이어 더 특별한 존재로 거듭나 주시게. 모두가 우러러볼 만큼.”

대마법사의 눈이 붉게 빛나는 것만 같았다. 하영은 살며시 뒷걸음질했다. 그러다 책상에 있는 작은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거울 속, 하영의 눈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미쳤었구나. 아니 이미 미친 건가.’

하영은 뒤로 물러나던 것을 멈췄다. 대마법사는 하영을 보며 웃었다.

“누구에게나 끝은 찾아오지. 난 세상에 내가 존재했다는 것을 남겨, 후세에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몰라.”

“…누구에게요?”

하영의 질문에 대마법사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가, 곧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그거야 당연히 재능 없다고 날 버리고 간 팀원들과 이 세상이지. 특히 먼 훗날 퍼플클랜의 해럴드와 그의 여자 친구를 마주하게 된다면 부탁 좀하지.”

대마법사의 말에 하영이 대마법사 쪽으로 걸어갔다.

“좋은 쪽으로는……. 아니겠네요.”

하영은 하던 말을 멈췄다. 대마법사의 대답은 필요 없었다. 그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거주자는 무슨 수를 쓰든 층을 오를 수 없더군. 꽤 오랜 시간 평판을 올렸어도 위층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했어.”

대마법사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하영은 대마법사의 말뜻을 이해하고 침을 삼켰다.

‘뭐야. 악역은 악역이잖아.’

소설에서 억울한 표정으로 끝을 맞이했던 대마법사, 하영은 그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평범한 엑스트라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는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듯, 특별함 그 자체인 주인공을 막을 어엿한 악역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특별한 것을 받았으니, 받은 만큼은 일은 해드릴 테니까.”

하영은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마법사의 방에서 직접 문을 열고 나갔다.

“…기대하지.”

대마법사는 하영의 표정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과연 그녀는 알고 있을까? 방을 나가기 직전, 그녀 또한 자신과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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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하영은 6층으로 올라갔다. 본격적인 등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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