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73화 (73/85)

〈 73화 〉 10. 복수대상이 꿈꾸는 복수방법.

* * *

[9층 ­ 투쟁]

[9층 ­ 관련된 투쟁 탐색 중.]

시스템 메시지를 본 하영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암담했다. 8층의 난이도가 비교적 쉬웠기에 더욱 그랬다.

어떤 시련이 걸릴지 도저히 볼 자신이 없었다. 8층은 비교적 난이도가 쉬웠다. 미션도 받을 만큼 여유가 넘쳤다. 그러나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층은 아니었다.

8층은 투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느슨해지려는 하영의 긴장감을 다시 한 번 꽉 잡아주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자신의 전투를 보고 기술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줬다. 추격하는 그림자를 보며 복수의 대상이라는 것에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튜토리얼을 진행할 때의 절박함은 성장과 시간 속에 무뎌졌지만, 지금의 하영은 적어도 그 시절보다 시야가 넓어졌고, 견고해졌다.

“투쟁의 층이라니…! 투쟁의 층을 클리어하고 왔는데, 또 투쟁의 층이라니!”

하영이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처럼 울먹였다. 실제로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하영이 하는 건 일종의 쇼였다.

“선생님들 솔직히 이건 좀 너무한 거 같아요, 그죠?”

하영이 불쌍한 척하면서 말했다. 동시에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의 틈으로 채팅을 바라봤다.

­ 오른손에흑염룡이있음: 2연속 투쟁 실화냐~ 2연속 투쟁 실화냐~ 2연속 투쟁 실화냐~

­ 낭만검객: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 꿀벌아넣을게: 6층, 7층 꿀 빨았으면 슬슬 고생할 때 되긴 했지.

­ 아가리롤스타: 살짝 ㅇㅈ

아, 이건 텄네.

채팅을 본 하영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더 불쌍한 척 해봤자 얻을 건 없어 보였다.

“아니!! 선생님들 제가 언제 꿀을 빨았다고 그러세요. 진짜 나만큼 열심히 등반하는 사람 없는데!!”

하영이 빼액 소리쳤다. 조금 전까지 측은한 분위기를 내뿜던 사람과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밝고 쾌활한 목소리였다.

­ 낭만검객: 튜토리얼= 여왕벌메타. 1층= 새태창날먹. 2층= 수련하다가 마지막에 막타. 3층=놀러 다니다가 버스탐. 4층= 멍하니 명령대로 움직이기만 함. 5층= 뒤에서 구경하다가 마지막에 방심해서 추하게 도망쳐서 이김. 6층=마차 안에서 하루 종일 명상만 함. 7층= 여왕벌 메타 시즌2. 반박 가능?

­ 꿀벌아넣을게: 장문충 컷! 이라고 하고 싶은데 사실이라 참는다.

­ 악질방송만보는사람: 반박 불가 빼박 캔트.

­ 아가리롤스타: 이미 컷이라고 다 말해놓고 참으면 그게 참는 거임?

­ 기레기는무슨새일까: 속보) 정하영 당선.

­ 탑골공원휠체어도둑: 네~ 당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반 정도는 맞는 말이긴 하네요.”

낭만검객의 채팅을 본 하영은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다. 장문의 채팅이라 금방 올라가서 다 못 읽었지만, 절반 정도는 읽었다.

­ 낭만검객: 반 정도? 미쳐버린 건가 드디어.

­ 대충지은닉네임: 반복해서 보여 드림. 몇 번 보면 완전히 인정할 듯.

­ 낭만검객: ㄹㅇㅋㅋㅋㅋ

­ 대충지은닉네임: 튜토리얼= 여왕벌메타…….

­ 꿀벌아넣을게: 장문충 컷!

­ 낭만검객: 튜토리얼= 여왕벌메타…….

끝없이 반복되는 채팅 도배에, 하영은 결국 채팅을 전부 읽었다.

“아니, 이거 다 음해에요 음해! 참나, 평소에 빠르게 올라가던 채팅도 이럴 때는 늦게 올라간다니까.”

음해로 가득한 거짓 정보에, 하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말이 반 정도는 사실이 맞긴 한데, 아무튼 음해였다.

“여왕벌 메타한 적 없습니다. 명상이 아니라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또 기존에 있는 스킬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생각한 겁니다.”

­ 낭만검객: 뒤에서 놀다가 막타친 건 어떻게 생각함.

“트롤의 왕국때는 미션 때문에 지켜본 거고, 뒤에서 논적은 없습니다. 2층에서는 악마를 방심시키기 위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척한 거예요.”

­ 인방인생하급신: 추하게 도망친 것도 작전이었나요?

계속되는 음해에 하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솔직히 말해서 선생님들보다는 열심히 살았던 거 같습니다. 선생님들은 제 방송을 보는 것 빼고는 하는 것도 없잖아요.”

하영의 말에 올라오던 채팅이 멈췄다. 싸늘했다. 건들면 터질지도 모르는 폭탄이 발아래에 있는 기분이었다.

“농담입니다. 농담! 하하하”

­ 낭만검객: 아하!

­ 어린이애호가: ㅋㅋㅋㅋㅋㅋ 방금 채팅 멈춘 놈들은 양심에 찔려서 그런 듯 ㅇㅈ?

­ 꿀벌아넣을게: 맞지 맞지.

­ 아가리롤스타: ㅇㅈㅇㅈ

하영의 빠른 인정에 채팅창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아니 되찾기보다는 뭔가를 숨기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서로 으르렁거리던 시청자들이 한마음이 되어 채팅을 칠 리 없었다.

“선생님들도 농담이었죠?”

­ 아가리롤스타: 당연하지. 난 언제나 하영이 지지한다.

­ 낭만검객: 대깨하영은 ㄹㅇ 나가 죽어라.

­ 꿀벌아넣을게: 하지만 승자는 대깨하영이죠?

전부터 느꼈지만, 이 방송은 뭔가 뒤가 구렸다. 분위기만 봐서는 큰 해가 되는 것 같지 않아서 모른 척 넘길 뿐이었다.

“아. 이것 참 쉽지 않네요.”

하영이 손으로 뒷머리를 만지려다, 손에 느껴지는 긴 머리카락에 반사적으로 손을 뺐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긴 머리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됐다. 집중하고 있을 때는 시야에 들어와도 의식하며 피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만지면 그대로 흠칫 놀라버리고 만다.

“……”

아직도 평소의 활기를 못 찾은 채팅창과 갈 길을 잃은 하영의 손.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현 상황은, 단순히 민망한 분위기를 넘어서 뻘쭘하기까지 했다.

‘…이제 슬슬 다음 층이 정해질 때가 됐는데.’

하영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빌었다.

[투쟁이 선택되었습니다.]

간절한 하영의 기도 덕분이었을까, 분위기가 더 뻘쭘해지기 전에 다음 층이 결정됐다.

“아! 네! 때마침 다음 층이 결정됐네요. 자자 선생님들 모여 보세요. 어디 어떤 시련이 투쟁으로 등장했나 한번 봅시다.”

하영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최대한 밝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꽤 고음에 속한 목소리였지만, 하도 자주 말하다 보니 긴 머리카락과 다르게 이제 자신의 성대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익숙해졌다.

“선생님들 다들 오셨죠? 이제 곧 나옵니다.”

하영의 말과 함께, 다음 층을 알려주는 엘리베이터의 화면에 새로운 글자가 적혀지기 시작했다.

[9층 돌아가는 검신]

돌아가는 검신. 그 글자에 하영의 입이 멈췄다.

“어…”

하영은 눈을 껌뻑이며 글자를 다시 확인했다. 그래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영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들, 지금 저기에 돌아가는 검신이라 적혀있는 거 맞죠?”

­ 악질방송만보는사람: 그럼 니 눈에는 저게 돌아버린 검신으로 보이냐?

­ 낭만검객: ㅋㅋㅋㅋㅋ

채팅창의 반응에 하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난생처음 보는 하영의 격한 반응에 시청자도 서서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아가리롤스타: 돌아가는 검신이 뭔데 시발.

­ 즉석나비탕24시: 24초 안에 말하지 않으면 나비탕 재료로 씀.

­ 금수저수지: 알려주면 500골드.

시청자의 채팅에도 하영은 멍하니 엘리베이터를 바라볼 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 꿀벌아넣을게: 얘 뭐냐, 멈췄는데?

­ 낭만검객: 돌아가는 검신이 뭐기에, 이 씹년이 골드도 마다하고 멈춰있냐.

­ 야스마스터: ㄹㅇ 나 얘 방송 초창기부터 보는데 이러는 건 처음 봤다.

­ 정하영제발뒤져: 그냥 죽을 때가 와서 그러는 거 아님?

채팅창의 도발에도 하영은 묵묵부답이었다. 시청자들은 굳어버린 하영의 모습에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궁금하긴 하지만 애원할 정도는 아니었고, 무시당한 게 조금 기분 나쁘긴 하지만, 그만큼 나중에 괴롭히는 걸로 값아 주면 됐다.

­ 낭만검객: 그래서 돌아가는 검객이 뭐임?

­ 낭만검객: 갈 땐 가더라도 궁금한 건 알려줄 수 있잖아.

­ 낭만검객: 시청자 무시 하냐?

­ 낭만검객: 이 썅년아! 대답하라고.

물론 극히 일부의 시청자는 이를 갈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침묵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면 자연스레 풀릴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 미션석세스: 시스템 메시지. 떴냐?

­ 아가리롤스타: ㄴㄴ 아직

­ 포장마차라면도둑: 이제 곧인 듯.

­ 하영하영: 떴다!

­ 기레기는무슨새일까: 속보) 떴다.

약간의 기다림의 끝에 시청자들이 원하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9층 돌아가는 검신]

[우연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신의 부모님을 찾았지만, 그녀가 있는 시간대에는 이미 전부 돌아가신 후인 상황.]

[소녀는 방황 끝에 복수를 다짐합니다.]

[하지만 그 다짐은 미래가 되지 못한 채 멈춰버렸습니다.]

[당신은 멈춰버린 이야기의 끝을 맺어야 합니다.]

[갈색 비수 오크 부족에게 복수하기 0/1]

[부모님을 함정에 빠트린 흑막에게 복수하기 0/1]

[소녀의 만족스러운 복수 0/1]

[보상 : ? ]

시스템 메시지를 본 하영의 얼굴에 기쁨이 서렸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내용을 보니 이제 확실해졌다.

돌아가는 검신.

저 시련의 무대가 되는 건, 한때 하영이 봤었던 소설이자, 작가가 도망가 버린 소설 중 하나였다.

그리고 동시에 하영이 복수물에 입문하는 계기를 마련한 소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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