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10. 복수대상이 꿈꾸는 복수방법.
* * *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평소처럼 들어온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광고 하나. 하영은 그 광고로 웹 소설을 접했고, 거기서 자신의 취향을 찾았다.
돌아가는 검신.
이것저것 맛을 보던 하영에게 복수물의 참맛을 깨닫게 해준 소설. 그러나 하영은 처음부터 그 소설을 재미있어하진 않았다. 오히려 처음에는 답답해했다. 암울한 내용에 우울한 분위기, 그건 하영이 평소에도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새로움에 이끌려 웹 소설을 읽기 시작한 하영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러나 하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소설을 봤다.
‘와 진짜 아름답게 생겼다.’
소설의 표지에 그려진 주인공이 하영의 타입인 덕분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주인공의 외모에 홀려버린 하영은 무료 분을 전부 볼 생각으로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한계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웹소설에서 강한 사이다를 원하던 하영은, 연속 고구마를 참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인가.
계속되는 암울한 전개에 하영이 지쳐 포기할 무렵, 그간 봐온 것이 있으니 이번 것까지만 보자는 생각으로 들어온 다음 화에서, 하영은 깨달았다. 복수는 달다, 숙성이 된 만큼 쾌감은 배가 된다.
‘복수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나?’
그러나 복수로 얻는 즐거움은 찰나에 불과했다. 즐거워지는 중간에 이야기가 끊기는 것만큼 찝찝한 게 없었다. 하영은 이 찝찝함을 더욱 큰 재미로 덮고자 했고, 하영에게 있어 가장 큰 재미는 방금 맛본 복수물의 시원함이었다.
그때부터 하영은 복수 태그를 찾아 움직였다. 인기가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검신의 연재가 중간에 중단된 이후로는 더욱 그렇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
평범한 시골 마을에 평범하게 낡은 가정집, 그러나 하영에게 있어서는 가장 특별한 장소 중 하나였다.
“선생님들. 어때요? 좀 단정해 보이나요?”
낡은 집 앞, 하영은 그곳에 서서 몸을 단정하게 정리했다. 창날에 자신을 비춰보면서 머리를 만져보기도 했고, 옷에 있는 미세한 주름을 펴기도 했다.
낭만검객: 아니 시발. 빨리 들어가기나 해.
아가리롤스타: 이러다 우리다 굶어 죽어!!!!
니이모를찾아서: 혹시 이 앞에서부터는 유료인가요?
재촉하는 채팅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집 안으로 들어가기는커녕, 오히려 불안에 찬 얼굴로 시청자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선생님들, 이 옷 너무 좀 그렇지 않아요? 대뜸 자신의 집에 들어온 여자가 이런 옷을 입고 있으면 거부감이 조금 들 거 같기도 한데…”
하영의 얼굴이 미세하게 붉어졌다.
낭만검객: 이제 와서?
아가리롤스타: 하영아, 옷을 탓하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렸다.
야스마스터: 오히려 좋은데?
미션석세스: 개꿀이지.
내이름은야스머신: 그럴 때는 감사합니다. 하고 먹는 거야. 그게 예의거든.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군침도는사람: 입안에 군침이 도네요, 감사합니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지만. 하영의 피부가 워낙 하얀 탓에 시청자들에게는 그 변화가 꽤 크게 다가왔다.
방송계의유니콘: 그래서 이 소설 주인공 남자임? 남자면 나 뱀심을 품고 물지도 모름.
애니실수로본사람: 크킄. 오레사마 또 흑화해버린다고?
일부 시청자들에게는 더욱 크게 다가온 거 같기도 했다.
“아니, 선생님들 남자면 제가 표지를 보고 계속 봤겠습니까?”
방송계의유니콘: 아, 그러네.
야스마스터: 이 유니콘은 처녀가 상실되려 하면 뇌가 없어지나?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아가리롤스타: 이딴게… 방송 초기 시청자? 어질어질하네요. 그죠?
전 남자이기에 가능한 반론 한마디에 과몰입 중이던 시청자들이 한방에 정리됐다. 하영은 그 모습을 보고는 다시 몸을 단정히 고르기 시작했다. 지금 하영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우상을 만난 청년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난 소년 같기도 했다.
인방인생하급신: 내가 애 방송을 하루 종일 보는데. 이렇게 외모에 신경 쓰는 건 처음임.
어서가장애들아: 와 옷에 있을지 모를 먼지 터는 거 실화냐?
천신대가리멈춰: 너만 방송 하루 종일 보냐? 나도 하루 종일 본다.
시청자들은 낯선 하영의 모습에 신기하다며 의견을 나누었지만, 그것도 잠시. 한참이 지나도 그러고 있자 다시 채팅창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낭만검객: 지랄하지 말고 빨리 문 열어 씹년아!
“커험, 원래 모르는 사람과의 첫 만남일 때는 첫인상이 모든 걸 좌우하기 마련이에요.”
불타는 채팅창을 본 하영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하영의 말은 과거 하영의 행동으로 반론할 수 있었다.
병신을보면짖는개: 월! 월월!
검은콩나물: 혹시 아델라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십니까?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아 ㅋㅋ 아델라가 누군데 ㅋㅋㅋ 하영이는 그런 사람 기억 못 한다고 ㅋㅋ
낭만검객: 맞지 ㅋㅋ 으딜 감히 문 여는데 10초도 안 걸리는 듣보잡년을 들이대는데~
아가리롤스타: 여기서 듣보잡이란? 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라는 뜻입니다.
tyam442: 설명 감사요.
강한 역풍, 하영은 무안함에 채팅창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이제 진짜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영이 문을 열었다. 민망함에 가차 없이 행동했다. 그러나 몸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실례합니다. 아무도 안 계신 가요.”
창문이 전부 옷감으로 덮여, 동굴처럼 어두워진 집안. 하영은 그 안으로 뻣뻣하게 굳은 목을 들이밀었다.
처음에는 잘 안 보였지만, 어둠 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으니, 눈이 어둠에 적응해 서서히 집 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어둠속에는 부모님의 유품인 낡은 목걸이를 붙잡고, 말없이 오열하고 있는 금발의 소녀가 있었다.
“어……”
하영은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선생님들 저희 나중에 와야 할 거 같은데요.”
하영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아가리롤스타: 그지같은 타이밍이긴 하네.
낭만검객: 하영이가 타이밍을 잘 모르긴 해.
야스마스터: 넣을 때는 넣고 뺄 땐 빼야 되는 게 맞긴 하지.
내이름은야스머신: ㅇㅈ
늘잠수하는남자: 난 잠수할 거니까. 잡담이나 하자.
시청자들의 동의에, 하영은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살며시 뒤로 후퇴했다.
“그럼 아까 본 공터에서 시간이나 때우죠.”
***
주변에 있는 공터, 하영은 그곳에 쭈그려 앉아 시청자들과 잡담을 나누었다. 주제는 어떤 복수가 가장 이상적인가였다.
“복수는 기다린 만큼 통쾌하고 시원해야 해요. 찝찝함이 남거나 어중간하게 끝나면 최악입니다.”
낭만검객: 저 말은 맞는 말인 듯, 어중간하면 정말 최악이더라.
모든것은순리대로: 복수는 처절해야 한다.
대충지은닉네임: 집요할수록 보는 맛이 있긴 하더라.
탑골공원휠체어도둑: 방구석 ㅈ문가 정하영 출격 준비 완료.
하영이 말하면 시청자들이 호응하거나 야유를 보낸다. 시청자들이 채팅을 치면 그걸 보고 호응하던 평소와는 순서가 달랐다. 그만큼 하영은 말을 많이 했다. 복수에 진심이었다.
“복수는 즐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복수 대상의 파멸로 이어지죠, 상대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면 정말 최고! 참고로 반박 시 복알못입니다.”
낭만검객: 와 씨, 말 많아지는 거 봐라. 호응해주니까 신나서 계속 말하는 씹덕같네.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Av촬영: 그걸 네가 말하면 안 되지 ㅅㅂ련아 ㅋㅋㅋㅋㅋㅋㅋ
인사할때는하영: 이거 혹시 자신의 미래를 예언하시는 건가요?
“어허, 예언 아닙니다. 저는 진짜 복수 대상이 아니라 억울하게 사이에 끼인 피해자입니다. 전 진짜 억울해요.”
아기고양이유미: 어? 내가 보던 소설에서도 악당이 자긴 억울하다던데.
“…저는 특별한 경우니까, 논외죠.”
아기고양이유미: 복수 당하기 직전에, 막 자긴 특별하다고 너 같은 거랑 다르다고 소리치던데….
“어…….”
이어지는 채팅에 가슴을 정통으로 맞은 하영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급하게 채팅을 둘러봤다. 눈에 불을 켜고 주제를 바꿀 떡밥이 있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흑우아닙니다: 야는 여기 안 왔어도 언젠가는 크게 혼쭐났겠는데.
야스마스터: 혹시 야설처럼 통쾌하게 복수 당해주시나요?
미션석세스: 아 ㅋㅋ 100층이 끝이니까 99층에서 잡혀주는 거였냐고.
수영장파티정하영: 하영님 앞니에 꼬불꼬불한 털 낀 거 같은데 빼주세요.
방송계의유니콘: 여기 주인공 처녀인가요?
활발한 소통 중인 터라 평소보다 채팅이 많이 올라왔다. 대강 훑어보는 건 가능할 정도지만, 솔직히 자세히 읽기에는 좀 벅찼다. 능력치의 증가가 필요했다. 하영은 시청자들의 눈치를 잠시 살피다 아공간에서 슬쩍 마창을 꺼내 손에 쥐었다.
욕절대안하는성좌: 어어. 임마 왜 창을 꺼내누. 자살은 안 된다! 함 참아라!
항문맛캔디: 주인공 보니까, 예쁘던데 위로 안 해줘도 됨?
방송시청만30년: ㅅㅂ 그 어두운 곳에서 잠깐 동안 본 걸로 벌써 외모를 파악했어. 이 녀석 진심이야.
찾았다.
채팅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하영이 쓸 만한 떡밥을 구했다. 조금 만족스럽지 않긴 했지만, 저 정도라면 시선을 돌릴 정도는 되어 보였다. 하영은 떡밥이 식기 전에 빠르게 말을 이었다.
“선생님들 복수물 주인공이 괜히 주인공인 게 아니에요. 불행한 과거를, 무너질 것 같은 상황을 이겨내고 통쾌한 복수를 하니까 주인공인 겁니다.”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저게 맞지.
정하영제발뒤져: 으응 어쩔티비~
가오중최고는아헤가오: 혹시 물어본 시청자?
금수저수지: 그럼 팝콘 먹으면서 복수나 지켜보죠.
지켜본 다라……. 하영은 그 선택도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시간이 촉박하지만 않았어도 시청자의 말대로 따랐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럼 너무 오래 걸려요. 원작에서도 방황을 좀 오래 해서…”
늘불편한사람: 내 알빠임?
아가리롤스타: 알빠는 아닌데 ㄴㅇㅁ는 맞는 듯.
복수의복수귀: 복수 맛집이라 해서 왔습니다.
반응이 좋지 않았다. 잠시 가만히 채팅창을 응시하던 하영은, 오랜만에 낯선 닉네임을 발견했다. 이건 기회다. 하영은 최대한 반갑게 인사했다.
“아 새로 오신 분들 반갑습니다. 혹시 새로 오신 분 중에 잠수 아닌 분들은 채팅 좀 쳐주세요.”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모습을 취했다. 그리고 살며시 웃었다. 이런다고 아무 말 없던 시청자들이 채팅을 할지는 미지수지만, 이런 건 자세가 중요했다. 웃으며 부탁하면 몇몇 시청자들은 호응해줄지도 몰랐다.
주문쟁이보면던짐: ㅎㅇ
신살자: 반갑.
무공혐오함: 무림인? 무공씀?
복수의복수귀: ㅎㅇ
마도학자는세계제일: 내 인사는 세계제일!
“어서 오세요, 다들 반갑습니다.”
낯선 닉네임을 본 하영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방송의 레벨이 오르고, 최대 시청자가 늘었음에도 채팅창에 새로운 닉네임이 보이는 건 극히 적었다. 방송이 커지니 슬슬 채팅에 비중을 두지 않는 시청자도 속속 출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애초에 채팅을 자주 치는 시청자가 많은 게 이상한 거긴 해.’
비록 복수물에 맛이 들린 후에는 좀 뜸해지긴 했지만. 하영이 자주 보던 방송에서도 방송 시청중인 시청자 수에 비해, 채팅을 치는 시청자들은 극소수였다.
대부분은 아무 말 없이 방송을 보거나, 방송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느냐 채팅을 치지 못했다.
낭만검객: 뉴비들 어서 오고.
늘불편한사람: 요즘 뉴비들은 개념이 없네. 나 때는 들어오면 어디 세계 출신 땡땡땡 입니다. 하면서 먼저 인사했는데.
주문쟁이보면던짐: 응 너희 부모님 만수무강.
어쨌든 이만하면 분위기가 좀 환기가 됐겠지. 크흠. 하영은 목을 살짝 가다듬고 원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연중 되고 난 후, 다시 소설을 재탕하며 이렇게 복수를 했으면 어떨까 하며 몇 번이고 생각해왔습니다. 저만 믿어주세요. 제가 원작을 초월한 복수를 보여 드리는 것으로 이상적인 복수를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러웠지만, 의문이 드는 말은 아니었다. 하영이기에 할 수 있는 말에 시청자들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복수물을 너무 많이 본 나머지, 자신마저 복수 대상이 된 사람의 말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생존게임좋아요: 좋아. 어디 얼마나 재미있게 복수하는지 보자.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재미는 모르겠고 얼마나 집요하고 악랄할지가 궁금하긴 하다.
소드마스터거품임: 복수 대상이 꿈꿔온 복수 방법이라… 좀 끌리는데?
시청자들의 채팅에 하영이 히죽 웃었다.
“기대해주신 만큼 제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복수의 대상이 주인공을 돕는, 기묘한 방송의 시작이었다.
“우선 주인공의 감정을 폭발시킬 희생양을 구하러 가보겠습니다.”
하영의 눈이 욕망으로 붉게 반짝였다.
[욕망의 꽃이 성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욕망의 꽃(중급+)]
[특성의 등급이 재조정 됩니다.]
[욕망의 꽃(중상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