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77화 (77/85)

〈 77화 〉 10. 복수대상이 꿈꾸는 복수방법.

* * *

하영이 처음으로 노린 기연은. 착용한 자의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게 만드는, 기만자의 가면이었다. 가면은 소설 속에서도 소녀가 제일 먼저 얻는 기연일 정도로. 얻는 난이도가 쉬웠고, 장소도 비교적 가까웠다.

‘게다가 사용법도 간단했지.’

가면을 착용하고 가면에 마력을 주입하면 된다. 적은 마력으로 괜찮았다. 사실상 마력만 있다면 누구나 사용 가능했다.

소녀는 이 가면을 활용해서 힘든 초반부를 어떻게든 뚫고 나갔다. 가면은 자신의 재능도 모르던 시절, 소녀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다양한 도구로 도움을 주는 파란색 만능 고양이 로봇 같은 존재였지.”

새태창 위에서, 하영은 거센 바람을 맞으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었다. 소설 초반부에 저 가면만큼 든든한 게 없었다.

단지 너무 든든한 나머지, 중반부쯤. 작가가 강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설정이 붙여 버린 탓에 이도 저도 아니게 돼서, 이후로 언급이 잘되지 않긴 했지만.

‘그럼에도 좋은 아이템인 건 변함이 없어. 단지 설정이 붙기 전이 너무 사기였을 뿐이야.’

하영은 입맛을 다시며 새태창에서 내려왔다. 만약 그런 설정이 없었다면, 하영은 가면을 찾은 직후, 그 가면을 꿀꺽했을 것이다.

“정말 아쉽다. 그런 효과를 가진 아이템은 상점에서도 아직 안 파는 건데.”

하영은 작가의 선택에 아쉬움을 토로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나무, 풀, 돌멩이.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숲이었다.

“정말, 알지 못하면 접근도 못 하겠네. 주인공들은 대체 이렇게 꼭꼭 숨겨 놓은 걸 어떻게 찾는 거야?”

하영은 기지개를 한번 펴, 몸의 긴장을 풀어준 후. 고개를 숙여 땅바닥을 바라봤다. 작은 돌멩이들과 흙이 보였다.

“어디 보자…”

하영은 소설 속에서 봤던 내용을 되새김질하며 흙바닥에 뚫려있는 작은 구멍을 찾아다녔다.

“작은 돌 위에 올라가 있는 더 작은 크기의 돌멩이는…… 혹시 저건가?”

찾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났을 무렵.

지루함에 살짝 감겨있는 하영의 눈에, 작은 바위가 보였다. 하영은 던전으로 가는 입구를 발견하고 후다닥 달려갔다. 힌트가 있음에도, 워낙 숲이 넓은 탓에 꽤 시간이 지체되었다. 오늘 안에 주변에 있는 기연 세 개를 다 털려면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작은 돌 위에 올라간 작은 돌멩이를 치우면.”

하영은 발을 살짝 들어 올려, 작은 돌멩이를 치웠다. 그러자 가려져 있던 열쇠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점심에는 생명력 포션, 저녁에는 마력 포션이었지.”

지금 시각은 점심, 하영은 아공간에서 싸구려 Hp 포션, 생명력 포션을 꺼내 살짝 떨어뜨렸다. 그러자 돌의 크기가 한층 커졌다. 위로도, 옆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바위라 부를 만한 정도가 됐다.

“역시 정답이었구나.”

아침, 생명은 태어나고.

점심, 성장하고.

저녁, 죽어 마력으로 환원된다.

“그리고 마력과 의지 없는 몸이 만나면 다시 생명이 태어나는 거지.”

하영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소설 속에 나왔던 곳에 와보니, 당시 이 부분에서 읽었던 내용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 세계의 연금술사들은, 마력이 생명의 모든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하찮은 생명이라도,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은 없고. 마력은 의지 그 자체이니, 마력은 곧 생명의 영혼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망했었지.”

하영이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나직이 말했다. 연금술사들의 그런 사상은, 신을 모시는 교회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모시는 신이 생명을 관장한다 생각했고, 그들이 사용하는 신성력이야 말로, 생명 그 자체라 여겼다.

교회는 자신들이 선택받은 존재가 되길 원했고, 신성력을 받아들임으로써 마력의 운용이 불가능해진 그들은, 마력이 신성력보다 더 특별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떻게 성전을 벌일 수가 있냐.”

하영은 막장으로 치닫던 소설의 중반부 내용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막장이라 더 재미있긴 했다. 원래 소설은 어느 정도 그런 맛이 있어야 재미있었다.

“현실이 된 지금, 그러면 노잼이겠지만 말이야.”

하영은 남아있는 포션을 아공간안에 집어넣었다. 이제 이곳에서 볼일은 끝났다. 남은 건 마지막 기연을 찾은 후, 다시 이곳에 돌아오는 것뿐.

“새벽이 오기 전에 이곳에 들러 포션을 부어야 하니까. 조금 더 힘을 내자!”

하영은 밝게 웃었다. 그 불길한 미소에 새태창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하얀색 연기가 저렇게 떠니까, 정말 구름처럼 보였다.

“뭐야, 왜 대답 안 해. 힘 안낼 거야?”

역시… 저건 나에게 하는 말이었어! 하영의 말에 새태창이 소리쳤다.

「호에에에. 새태창은 이제 막 태어난 지 2개월 된 아가인 것이 애오! 아가에게는 수면이 필요해오.」

“응 그래, 나도 이렇게 된지 2개월 하고도 며칠 됐다. 내가 선배니까 후배가 노오력 좀 해.”

새태창의 칭얼거림에, 하영이 별거 아니라는 듯 일축했다. 반박은 받지 않는다는 듯한 단호한 표정에, 새태창은 오늘도 슬펐다.

「호에에에…」

**

11시 54분.

새벽이 오기 직전, 하영은 무사히 연금술사의 던전 입구에 도착했다. 하영의 오른손에는 능력치를 올려주는 마창 대신, 조금 전에 얻은 기연인, 수련광의 검이 들려 있었다.

“조금 더러운데.”

하영은 왼손의 손가락으로 수련광의 검을 살포시 들었다. 수련광의 검의 외형은 목검이었다. 오래된 목검임에도 싸구려 창대보다 훨씬 튼튼했다. 척 봐도 관리가 잘 된 게 느껴졌다. 그러나 너무도 오래전에 만든 목검인 탓인지, 이곳저곳에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목검이 튼튼하니,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그래도 효과는 쓸모 있네.”

수련광의 검의 효과는 하영의 특성 중 하나인 창의 기본과 비슷한 효과를 지닌 검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하영의 특성은 창에 대해 생각하거나 창으로 무언가를 할 때 숙련도가 쌓인다면, 이 검은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듣기만 한다면 정말 사기인 무기 같지만, 문제는 있다. 정말 말 그대로 수련광의 성질을 띤 검은, 잠 잘 때도 들고만 있다면 효과가 사용되지만. 말 그대로 검만 들고 있어야 발동이 되기 때문에, 마창을 들고 있을 수가 없다는 큰 단점이 있다.

아닌가? 어차피 내가 사용할게 아니니까, 문제는 없나? …솔직히 잘 모르겠으니 이건 소녀에게 맡기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자 받아라!”

하영은 아공간에서 싸구려 MP 포션, 일명 마력 포션을 꺼내 콸콸 들이부었다. 하루 만에 주변 기연을 다 털었다는 것에서, 기분이 좋아져 한 병을 다 넣어줬다. 사양은 사양했다.

“자자 쭉쭉 마시라고. 특별히 쏘는 거니까 말이야.”

한 병을 다 먹여주니, 바위가 떨리기 시작했다. 하영은 빈 포션병을 아공간에 넣었다. 이건 차후 물병으로 재활용할 예정이었다.

“어 끝났다.”

하영이 새로운 물병을 아공간에 집어넣으니, 때마침 바위의 떨림이 멈췄다. 하영은 소설 속 내용을 떠올리며. 눈을 부릅떴다.

“오… 이건 공 좀 들였는데.”

하영은 푸른색 빛으로 변해 사라지기 시작한 바위를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지금까지의 성의 없는 던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한 멋진 연출이었다.

“그래, 판타지 세계면 적어도 이런 감성 정도는 있어야지.”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거대한 계단이 등장했다. 하영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계단 아래로 향했다. 계단 아래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복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긴 복도가 있다고는 듣지 못했는데…”

낯선 상황에 하영은 잠시 자리에 서서 고민했지만, 생각해보니 어차피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하영은 영약이 먹고 싶었다. 그리고 저 길의 끝에는 영약이 자신을 먹어 달라며 기다리고 있었다.

“영약은 어쩔 수 없지…”

하영은 앞으로 나아갔다. 안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많지는 않지만, 중간마다 빛을 내는 이상한 광석이 벽에 박혀 있는 덕분이었다.

“하나, 양쪽 벽면을 세트로 하면은…… 두 개가 하나니까. 양옆으로 하나씩 떼어가도 모르지 않을까?”

하영은 잠시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검을 내려놓고, 창을 꺼내 벽면에서 광석 두 개를 캐기 시작했다. 그러나 창이 망가질 때까지 했음에도 벽면은 살짝 긁히기만 할 뿐 부서지지 않았다.

‘그냥 창으로는 역부족인가.’

어쩔 수 없네.

하영은 아공간에서 검은색 창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캐기 시작했다.

“오. 캐진다!”

오늘도 400만 골드짜리 마창은 유용했다.

­ 낭만검객: 시벌 낭만 다 뒤졌네.

­ 생존게임좋아요: 왜요?? 낯선 곳에 왔으면 파밍하는 건 기본 아님?

­ 꿀벌아넣을게: 그건 맞지 새로운 곳에 들어왔으면 파밍부터 해야지ㅋㅋㅋ

­ 공감하면골드줌: 님들은 무슨 게임 세계에서 살고 있음?

­ 신생나락감: 그러고 보니 다들 어디서 삼? 나는 뒤틀린 황천에서 생활 중인데.

­ 야스마스터: 파밍? 그게 바로 야스다 ㅋㅋ

­ 하영하영: 난 하영이 마음속에서 삼~

­ 탑에사는하영:

­ 낭만검객: 아 ㅈ같네. 진짜

빛나는 광석 두 개를 전부 캔 뒤, 하영은 채팅창을 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혼자 이 길을 걸었으면 조금은 심심했겠지만, 시청자들과 함께라면 1시간도 1분 같았다. 비록 정신은 약간 고통스러웠지만. 그만큼 역동적이고, 묘한 중독성이 있어,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좋았다.

­ 야스마스터: 하영아 혹시 M이니? 나 S도 가능한데 나 어때?

­ 미션석세스: 하영) 인생 접음@@@@ 처녀 급처함 @@@@@@

­ 소드마스터거품임: 지랄하는 놈들이 전부 소드마스터는 아니지만, 소드마스터들은 전부 지랄함. 소드마스터는 정신병임 즉 지금 지랄하는 놈들은 전부 소드마스터임.

­ 기레기는무슨새일까: 속보) 주문쟁이새끼들 전부 ㅇㅁ뒤짐.

­ 미션석세스: 응 나 궁수야~

­ 성녀혐오함: 이 시각, 제일 문제 인 새끼들 ) 신에 자리에 오르고도 뭐만 하면 신 찾는 무친 년들.

­ 탑골공원휠체어도둑: 지구 문제 ) 문제가 선 안에 있으면? 문제 인. 그럼 문제가 선 밖에 있으면? 문제 아웃! ㅋㅋㅋㅋㅋㅋㅋ

­ 아가리롤스타: 넌 그냥 문제 내지 마라. 네가 제일 문제다.

“악!”

한참 채팅창에 집중했을 무렵. 하영은 길의 끝에 있는 나무문에 머리를 박았다.

“아 머리야.”

하영은 채팅창을 구석으로 치워놓고, 자신과 머리 박치기를 한 나무문을 바라봤다. 던전의 끝에 있는 것치고는 너무도 초라한 문. 흡사 버려진 오두막의 문을 그대로 들고 와 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문을 보자마자 하영은 감탄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던전 안으로 들어가고 처음으로, 원작에서 본 것과 같은 내용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 안에는 분명, 이 던전의 보스인 불안전한 생명력 덩어리가 있었지.”

불안전한 생명력 덩어리는 약한 시절의 주인공에게 죽을 만큼 내구가 약했지만, 그렇다고 존재 자체가 약한 것은 아니었다. 공격력만큼은 하영이 잡았던 저주받은 트롤을 압도했다.

‘물론 소설 속의 내용대로 흘러 갈 경우도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소설대로 흘러갈 거야.’

하영은 소설의 내용을 상기시키며 문을 열었다. 잡고 있는 마창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전투의 준비를 했지만… 보스의 방안에는, 소설 속의 내용과 달리 몬스터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몬스터가 지키고 있던 영약도 없었다.

대신 죽어가고 있는 남자가 한명 있었다. 남자는 복장부터가 자신이 연금술사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저건… 피?”

연금술사로 추정되는 남자의 주변에는, 뿜어져 나온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추측되는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뭐지, 버근가.”

아무래도 뭔가가 이상했다. 하영은 남자에게 정보를 캘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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