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10. 복수대상이 꿈꾸는 복수방법.
* * *
“고맙다.”
하영이 급하게 뿌린 포션의 효과로, 정신을 차린 연금술사가 감사의 인사를 해왔다.
“네가 아니었다면 꽤 큰일을 겪을 뻔했다.”
연금술사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큰일을 겪을 뻔했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는지. 그는 정신을 차리고도 한동안 바닥에 누워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못 움직이겠어?”
정신을 차리고도 가만히 누워만 있는 연금술사의 모습에 하영이 물었다. 연금술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포션 조금 더 뿌려줄게.”
하영은 연금술사의 근처에 쪼그려 앉은 채, 그의 몸에 포션을 뿌려댔다. 그러다 연금술사와 눈이 마주치면 방긋 웃었다. 친절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크흠.”
하영의 웃음에, 연금술사의 볼이 빨개졌다.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지만, 일찍이 야설의 표지로 사용됐을 정도로 뛰어났던 정하영의 외모는 그것만으로도 친절해 보이기 충분했다. 게다가 회사원이었던 하영은 웃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 그만!”
연금술사의 겉옷이 포션으로 흥건해졌을 무렵. 연금술사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제 좀 살만해?”
쪼그려 앉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하영의 모습에, 연금술사가 작게 기침했다. 그리고는 살짝 망설이다, 겉에 걸친 옷을 벗어. 치유되기 시작한 상처 부위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직도 몸에 생명력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지만, 덕분에 몸의 상처는 치유됐다.”
“그래? 그럼 일단 이것 좀 마셔봐.”
연금술사의 말에 하영은 남은 포션을 건넸다. 흔쾌히 포션을 건네는 하영의 모습에, 연금술사는 작게 감탄했다.
설마 포션을 통째로 줄 줄이야. 배포가 크군.
연금술사가 감탄하는 와중에도 하영은 최대한 단정한 자세로 연금술사를 바라봤다. 평소의 하영과의 괴리감이 엄청났지만, 오늘 하영을 처음 본 연금술사는 그 사실을 몰랐다. 오히려 베푼 것에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하영의 모습에 더욱 크게 호감을 느꼈다.
‘외모도, 인성도 뛰어나, 만약 내가 오래 살 수 있었다면 인연을 맺고 싶을 정도야.’
언제 죽을지 모를 목숨, 얼마 남지 않은 재산. 이런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간다. 오랜만에 겪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연금술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유는 있었다. 낯선 인물에게 이리 퍼주는 인물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게 포션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닐 경우 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연금술사는 우연히 들어오는 게 불가능한 구조임에도, 자신의 공방에 침입한 하영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역시 이게 정답이었군.”
연금술사는 자신의 앞에 있는 하영을 슬쩍 보곤 작게 미소 지었다. 연금술사는 과거 자신의 판단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만큼 만족스러웠다. 살짝 본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외모와 인성이었다.
“뭐가 정답이라는 거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연금술사로 살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 온 그였지만, 하영정도 되는 미녀는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런 미녀가 자신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건 꿈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다.
‘이것이 인생인가.’
현재 연금술사에게 하영이 어떻게, 무슨 이유로 이곳까지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 수상해요 하고 말하고 있음에도 굳이 수상한 점을 꼬집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지금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
“얼른 마셔. 괜히 아프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내가.”
하영이 웃으며 말했다. 상념에 잡혀있던 연금술사는 하영의 말에 다 듣지 못했지만. 걱정 가득한 하영의 표정을 통해 자신을 걱정한다는 내용이었다고 대강 예측할 수 있었다.
“정말 고맙다.”
상념을 끝낸 연금술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영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보며 좋아하는 연금술사의 모습에 살짝 기겁하고 있었지만. 이미 웃음에 홀라당 넘어간 그에게는, 그 모습마저 자신을 걱정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정도 피라면. 마음이 약한 여자들은 기겁할 만하기도 하지.’
연금술사는 벗어둔 자신의 겉옷으로 주변의 피를 대충 닦았다.
연금술사. 그는 모태솔로였다. 여자를 보는 눈은커녕 사람을 보는 눈도 없었다.
“그대는 정말 호인이로군. 어차피 곧 죽을 목숨. 거절하고 싶지만. 처자를 봐서라도 이번만큼은 사양하지 않도록 하지.”
연금술사는 받은 포션을 꿀꺽거리며 마셨다.
드디어 처마시네. 속으로 욕하며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하영은, 연금술사가 포션을 다 마시는걸 보자마자 더는 참지 못하고. 궁금했던 것을 바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혹시 저게 뭔지 알려줄 수 있을까?”
어지럽혀져있는 방안,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커다란 마법진. 하영은 손가락으로 그걸 가리켰다.
“저건… 실패작이다…”
하영의 손가락 방향을 본 연금술사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하영은 연금술사가 지금까지와 같이, 단답형으로 말을 끝내는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영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라는 실패작을 완성작으로 바꾸게 하려 하던 연구의 실패작.”
분위기를 잡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연금술사의 모습에, 하영이 웃음을 흘렸다. 조금 전 연금술사에게 지어줬던 싱그러운 미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웃음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며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더군.”
연금술사는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느냐, 하영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었다. 이걸로 모태솔로의 환상은 지켜졌다.
“생명력이 몸 안에만 있지 않고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건 나 혼자였다. 깨진 도자기 같은 몸을 가진 것은. 나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나와 달랐다. 나는 7살이 되던 해에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아픔을 달고 사는 건 주변에 나 혼자였다.”
“저런, 너무 안타깝다.”
하영은 연금술사의 말이 끝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그의 말에 호응했다. 물론 연금술사의 인생에는 조금도 관심 없었기에, 영혼 없는 말을 기계적으로 내뱉을 뿐이었지만… 연금술사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만큼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심정은 씁쓸했다.
하영은 어린애처럼 마냥 좋아하기만 하는 연금술사의 모습을 보며, 그가 미녀에게 호구 당하기 쉬운 성격이라 생각했지만. 한발 늦게 아델라 때의 자신을 떠올린 하영은, 고개를 저어 조금 전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아니, 그건 아니지.’
애초에 정하영수준의 미녀가 친절하게 굴면 대부분 남자는 호구 당할 수밖에 없다. 안 당하면 게이다. 그래서 자신도 헤벌레 할 수밖에 없었다. 하영은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했다.
‘아니.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야.’
어쨌든 하영은 큰 힘 드리지 않고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연금술사. 그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함께한 지병이 있었다. 그는 생명력이 담긴 포션을 하루에 하나씩 섭취하지 않으면, 그대로 말라 죽는 희귀한 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포션이 흔하지 않은 세계관 설정상 최악의 희소 병이었다. 게다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의 부모는 그를 사랑했다. 그래서 매일 비싼 포션을 구매해 먹였다. 그 탓에 꽤 부유한 평민의 집안이었던 가계는 무너졌다. 만약 그가 우연히 배우기 시작한 연금술에 뛰어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면 그의 인생은 지금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씁쓸한 이야기야.’
집안이 망해도 자식을 살리고 싶어 한 부모의 심정이 느껴졌다. 대강 이야기를 듣던 하영은 어느새 상념도 멈추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난 내 병을 고치기 위해, 연금술로 모은 전 재산을 털어, 표본으로 삼을 여러 종류의 포션을 구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토대로 내 병을 고칠 포션을 만들기 시작했지.”
“성과는 있었어?”
하영의 말에 연금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포션을 만드는 것에는 실패했다.”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니죠?”
실패를 언급하는 연금술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영은 연금술사의 던전에 한 개의 영약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슬쩍 물어봤다.
“당연하지. 내가 말하기에도 좀 그렇지만. 난 꽤 재능 있는 연금술사다. 중간에 딴 길로 좀 새긴 했지만. 섭취한 자에게 가장 부족한 걸 채워주는 포션이 만들어지기는 했다.”
연금술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러나 잠시 후. 결국,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떠올린 연금술사는, 고개를 푹 숙이며 작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실패작이었다. 효능이 너무 광범위했어. 내게 효력을 보이기에는 한쪽으로 성능을 끌어내야 했지만, 포션을 완성을 하기에는 표본이 너무 적었다.”
“그럼 포션만 충분하면 만들 수 있어?”
“당연하다. 하지만…… 포션의 성능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조정하기 위해서는 완벽히 똑같은 효능을 지닌 포션이 수없이 많이 필요하다.”
연금술사는 인생을 포기한 폐인처럼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 사람이 일일이 만드는 포션이, 완벽히 똑같은 효능을 지니게 된다는 건…. 그래. 내게 필요한 포션의 완성이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연금술사의 중얼거림에 하영은 조금 전에 봤던 상점창을 떠올렸다.
[보유 1,270,953G]
[최하급 HP 포션 1,000G] / HP 100 회복.
[최하급 MP 포션 1,000G] / MP 100 회복.
[최하급 전사의 포션 현재 구매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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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릭서 현재 구매 불가]
뭐야 매우 쉬운 이야기였잖아. 하영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연금술사를 바라봤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완벽히 똑같은 효능을 가진 포션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면?”
하영의 물음에 연금술사가 피식 웃었다. 농담치고는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이 착한 아가씨는 진짜로 완벽히 똑같은 효능을 가진 포션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라고 표본을 적게 구한 게 아니다. 최대한 많이 구했어. 거의 작은 도시에서 연간 소모하는 포션의 수만큼 모았지. 하지만 소용없더군. 그렇게 많이 모았음에도 표본으로 사용할 수 있는 포션은 극 소수였다.”
연금술사는 하영의 말을 믿지 않았다. 웬만하면 믿어주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허망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으로, 하영의 말이 무리라는 것을 에둘러 알려주기로 했다.
“저 마법진이 뭐냐 말했지. 저건 내 생명력을 늘려주거나,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구멍을 고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야.”
유지시켜주거나, 막는 것이 아니다. 저건 새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영혼이 없는 인조생명체를 창조하고, 그 몸에 내 영혼을 담는다. 저건 그런 종류의 위험한 마법진이야. 연금술에 흑마법이 첨가해 만들었지.”
연금술사의 말에 하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드디어 원작에서 이곳이 왜 던전으로 나오는지 깨달았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이왔다. 눈앞의 연금술사. 그가 이 연금술 던전의 보스다.
“아! 그렇다고 내가 흑마 법사인 건 아니니까 안심해. 누군가에 도움을 좀 받은 거뿐이니까.”
심각해진 하영의 표정에 연금술사가 뒤늦게 부족한 내용을 보충 설명했다. 그러나 하영의 표정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이 깊어져, 정하영이가진 원래 인상이 드러났다.
‘던전에 나온 잡몹들은 그가 창조한 실패작들, 그나마 성공한 성공작도 영혼이식은 실패하거나, 문제가 생겨 이지를 잃었던 거겠지.’
영혼을 옮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모르지만, 현대에 살던 하영은 작은 오차 하나가 얼마나 큰일을 일으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작은 문서 작업에서도 0을 하나 빼거나 하면 일어나는 게 참사다. 그런데 자신이 아닌 남이 만든 마법진을, 잘 모르는 걸 가지고 무언가를 하려 한다? 성공하는 게 더 말이 안 된다.
“저 마법진 그냥 폐기해. 그리고 이곳에서 도망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널 도와준 흑마법사 썩 좋은 녀석은 아니야.”
하영은 소설 속에 등장했던 몬스터들의 잔혹한 묘사를 떠올리며 말했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저게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야.”
하영의 말에도 연금술사는 단호했다. 콩깍지가 씌워졌음에도 이 정도다. 평소에는 얼마나 고집스러울지 안 봐도 뻔하다.
“무슨소리야. 연금술사 선생. 희망이라면 여기 있잖아.”
하영이 연금술사에게 다가갔다. 연금술사가 침을 삼키고, 얼굴이 빨개져도 멈추지 않았다. 저벅, 저벅. 어느새 바로 옆으로 온 하영은. 연금술사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슬쩍 올리며 말을 이었다.
“자 봐봐. 이 정도라면 어때.”
하영은 아공간 쪽으로 남은 손을 가져다 댄 후, 포션을 꺼냈다. 정확히는 꺼내는 척하면서 상점에서 포션을 구매했다.
1개, 10개, 100개.
수의 단위가 달라질수록 연금술사의 눈도 더욱 크게 흔들렸다. 이윽고 하영과, 연금술사. 둘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포션으로 가득 찼을 때.
연금술사가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일반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연금술사인 그는 알았다.
지금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포션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됐다. 있을 수 없었다. 연금술사는 그제야 하영의 웃음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 봤던 미소와는 다른 고혹적인 미소, 탐욕으로 붉게 빛나는 눈동자, 놀리는 것에 성공했다는 듯한 매력적인 몸짓까지. 그건 흡사 장난에 성공한 서큐버스를 보는 것 같았다.
당신은 대체…
연금술사의 생각은 이어지는 하영의 말에 그대로 멈췄다.
“어때? 이정도면, 성공할 수 있겠지?”
자신을 믿는 다는 듯한 하영의 말에 연금술사가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하영이 자연스레 반말을 하고 있지만, 연금술사는 그것에 별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좋아. 그럼 챙길 거 챙겨서 가자. 흑마법사가 오기 전에 빠져나가자고.”
“너, 너는 대체…”
“나? 나는 뭐 당신만 챙겨 가면 다 챙겨 간 거지 뭐.”
그렇기에 자신을 챙겨가겠다는 하영의 말에도 연금술사는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거절하기에는 포션이 너무 많았고, 외모가 너무 뛰어났다. 남자이자 동시에 연금술사인 그는 그 제안을 절대 거절 할 수 없었다.
“자 가자.”
그건 악마의 속삭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