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79화 (79/85)

〈 79화 〉 10. 복수대상이 꿈꾸는 복수방법.

* * *

작고 초라한 오두막.

정확히는 작은 오두막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방안. 그 좁디좁은 곳에서, 지금 세 명의 남녀가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애인이야?”

금발의 소녀가 차분한 스타일의 갈색 머리 남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크흠! 대뜸 지목당한 연금술사는 귀여워 보이는 소녀의 언행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녀의 직접적인 말투에 당황해 기침을 연신 내뱉었다.

“뭐…?”

하영은 생각지도 못한 오해에 입을 쫙 벌렸다. 하영의 입장에서 연금술사는 어렵사리 구해온 기연 덩어리였다. 운이 좀 많이 따라주긴 했지만 그를 데려오기 위해 개처럼 번 돈을 개처럼 사용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하게 얻어온 영약제조기를. 소녀가 이런 식으로 생각할지 몰랐다.

“흐음…”

금발의 소녀는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다. 남자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니네. 냄새가 안 나.”

깊은 사이인 남녀의 몸에서는 서로의 냄새가 났다. 소녀의 부모도 그랬다. 그런데 하영이 데려온 남자에게서는 하영의 냄새가 안 났다. 즉 둘은 깊은 사이가 아니다. 소녀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난 피곤해서 먼저 잘게.”

소녀는 방안의 문을 열고 나갔다. 하영이 데려온 남자이기에 어떤 사이인지 궁금했었으나, 깊은 사이가 아니라면 따로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다. 어차피 조력자의 조력자인 관계일 뿐이니까.

“허허. 이것 참… 당황스럽군요.”

연금술사는 소녀가 나간 방문을 바라보다, 작게 고개를 저었다. 연로하다고는 하지 못하나, 하영과 소녀의 비하면 꽤 오래 살아온 그였다.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이 좋고, 빠른 흐름의 이야기보다는 서로 터 넣고 천천히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했다.

“요즘 애들은 다 저런 건가요?”

그렇기에 연금술사는 소녀의 마이웨이적 성향을 따라갈 수 없었다. 연금술사는 소녀가 나가자마자 고개를 돌려 하영을 바라봤다.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연한 보라색의 눈동자. 신기한 일들을 여럿 경험한 연금술사가 보기에도 하영의 외모는 정말 신기하고. 예뻤다.

‘정말 궁금하단 말이야…’

이렇게 예쁜 여자가, 대체 어디서 이런 포션을 가져온 걸까. 그리고 대체 무엇을 노리고 소녀를 돕는 거지? 오면서 이야기는 대강 들었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투성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도착한 지 꽤 지난 아직까지도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연금술사로서 살아온 그에게 호기심은 인생의 동반자나 다름없다. 그것을 참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까닥 까닥.

소파에 앉아 있는 연금술사의 발이 까딱거린다. 일부러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에, 언제쯤 물어봐야 할지 초조해져 그런 것이었다.

‘이걸 어쩐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이라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그건 악수다. 남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억지로 들어 봤자 좋은 꼴은 못 본다. 연금술사는 살아오면서 그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세상에는 조용히 넘어가야 하는 일도 있다.

까닥.

연금술사의 발이 움직임을 멈췄다.

“으음. 하영님도 피곤하신가 보군요.”

호기심을 삼킨 연금술사가 속내를 숨긴 채. 허허, 하고 웃었다. 그럼에도 하영은 여전히 멍하니 앉아서 소녀가 나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금술사는 그 모습을 슬쩍 살폈다. 금발의 소녀는 하영에게 별생각이 없는 것 같았는데, 하영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잘은 모르겠으나… 보통은 아니다. 연금술사는 생각지 못할, 여러 감정과 이야기가 섞여 있다.

‘역시 이야기를 듣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

연금술사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비록 하영이 필요로 의해서 연금술사에게 포션을 제공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연금술사에게 은인이 아닌 건 아니다.

연금술사는 방안을 가득 채운 포션을 보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 낭만검객: 아니 시발 ㅋㅋ 하영이 냄새 맡지도 않고 가는 거 봐. 실화냐 ㅋㅋㅋㅋ

­ 즉석나비탕24시: 연금술사 얼굴 해탈한 거봐ㅋㅋㅋㅋ 이제 좀 정신이 들어?

­ 야스마스터: 하영이가 여러 남자 냄새 묻히고 다닐 거처럼 생기긴 했잖아.

­ 오른손에흑염룡이있음: 솔직히 내 학창시절에 일진녀 존나 미화시키고 풀 업그레이드 받으면 하영이처럼 생길 거 같긴 함 ㅇㅇ

­ 푸른하늘583: 일진녀가 뭐에요?

하영은 멍하니 소녀가 나간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문과 그 옆에 있는 채팅창을 동시에 보고 있었다.

­ 미션석세스: 이 씹년 우리 버리고, 남자도 막 만들고 다니더니 잘됐다ㅋㅋㅋㅋ

­ 늘불편한사람: 난 애가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는 거 처음 보는데. 뭔가 좀 불쌍하다. 금챙년 하는 짓 보니까 보람 ㅈㄴ 없을 듯.

­ 방송시청만30년: 모야모야? 나 촉 되게 좋아. 연금술사랑 오늘 밤에 뭐하려는 거야.

­ 기레기는무슨새일까: 속보) 하영, 잠시 후 음해라 할 예정.

­ 확정된미래: ???) 어허 음해입니다. 저분은 남자가 아니라 제 전속 연금술사님이에요.

“…잠시만요.”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과, 이어지는 채팅의 후속타에 어안이 벙벙하던 하영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연금술사에게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다.

“연금술사님. 저 잠시만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벌떡!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난 하영은, 연금술사가 뭐라 하기도 전에 바로 방 밖으로 나갔다. 소녀의 행동에 약간 우울해지긴 했지만, 지금은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자신을 놀리고 있는 시청자들에게서 골드를 수급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억울해서 오늘 밤 잠을 자지 못할 것 같았다.

“좀 늦을 수도 있으니까! 먼저 자고 계세요!”

닫힌 문 너머로, 하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예.”

순식간에 방에 홀로 남게 된 연금술사는, 두 여자가 사라진 문을 보며 두 눈을 껌뻑였다. 홀로 오랜 기간 연구에 힘쓴 그의 입장에서, 그가 만나 온 이들은 대부분 의뢰인이었고. 의뢰인의 대부분은 남자였다.

여자와의 만남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만남 대부분이 짧았다. 그렇기에 현재 그의 머릿속에서 여자란. 하영과 소녀 같은 이들이라고 각인이 되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잘 모르겠다더니. 그게 사실이었군.”

어렸을 적 엄마에게 혼난 후, 아버지가 내뱉던 단순한 투덜거림인 줄만 알았던 연금술사는. 아버지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닫고 속으로 아버지에게 사과했다.

“…잠이나 자야겠다.”

피곤하면 별생각이 다 든다지만, 죽은 지 오래된 부모님에 대해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연금술사는 다시 소파에 앉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워낙 많은 일이 있었기에 좀 피곤했다. 내일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잠을 잘 필요가 있었다.

“……”

잠시 후 연금술사는 수마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지나면 금방 잠이 들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잠이 들기 직전,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렸다.

“어 뭐야. 아직 안 잤어?”

하영이었다. 왜 이쪽으로 들어온 거지? 연금술사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다 조금 전 하영이 먼저 자고 있으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설마…

“여기서 잘 생각은 아니겠지?”

연금술사의 말에 하영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아니. 여기서 안자면 어디서 자. 방이 두 개뿐인데.”

“하…”

당당한 하영의 말에 연금술사는 정신이 가출할 것 같았다. 방이 두 개고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당연히 남녀를 갈라서자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게다가 소녀가 자는 방에는 그녀의 부모가 쓰던 걸로 보이던 큰 침대가 있었다. 두 명에서 잔다면 당연히 큰 방에서 두 명이 자는 게 당연하다. 아무리 남들과 어울리지 않던 연금술사라도 그 정도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하영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앉아서 잘 거면. 다리 좀 빌린다.”

하영은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연금술사의 곁으로 다가와 누웠다. 그리고 좁은 방에서 동성의 친구와 자게 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연금술사의 다리에 머리를 올렸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꺼낸 로브로 몸을 덮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망했군.”

순식간에 하영과 붙어 자게 된 상황. 이해 불가능한 현실에 연금술사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려고 눈을 감아도 소용없었다.

지금 고개를 살짝만 내려도 하영이 자는 걸 볼 수 있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 달콤한 냄새가 올라온다. 눈을 감고 혼자 자고 있다. 상상을 해봐도, 하영이 한번 몸을 움직이면 상상이 깨져버리고 만다.

“제대로 망했어.”

연금술사는 자신의 미래를 직감했다. 오늘은 잠을 잘 수 없다.

***

창대도, 창날도 모두 나무로 이루어진 연습용 창. 하영은 연습용 창에 마력을 담았다.

“하나 더 간다.”

소녀에게 통보하는 것과 동시에, 투창을 발동했다. 하영의 명령을 받은 연습용 창은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흐읍!”

소녀는 날아오는 창을 피했다. 그러자 뒤이어 창이 하나 더 날아왔다. 하나 더 간다는 뜻은. 두 개를 던진다는 뜻이었나! 콰직! 손에 들린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창을 막았다.

“이제 두 개까지는 가뿐한 건가.”

하영은 약간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소녀의 행동을 모두 지켜봤다. 그리고 아침에 처음 연습하던 소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소녀는 하루 동안 검을 휘둘렀다고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수준 높은 검술과 기본 체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녀에게는 실전 경험이 없었다. 하영이 보기에 소녀의 검술은 통 비어있었다. 그렇기에 소녀에게 자신의 투창을 막거나 피해 경험을 채워보자고 권유했고. 소녀는 그를 받아들였다.

“이 정도면 이제 진짜 창을 사용해도 되겠는데.”

처음에는 실전성을 높이기 위해 진짜 창을 던지려 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연습용 창을 만들어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소녀에게 투창했을 때, 하영은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소녀는 홀로 연습하던 검술 실력의 절반도 채 꺼내지 못했다. 투창을 막기는커녕 피하지도 못하고 몸에 맞았다. 창에 몸을 가져다 되는 수준이었다.

정말 보기 민망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잠깐 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녀의 성장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던지는 나무창의 개수를 늘리는 것으로 훈련 계획을 짠 하영은 그 일정을 철회해 해야만 했다.

“정말 대단한 성장 속도야.”

하영은 저 멀리에서 소녀가 창을 막는 걸 지켜봤다. 이번에는 하영이 던진 창의 개수는, 하영의 최대 숫자인 6개. 그러나 소녀는 이번에도 별 어려움 없이 날아오는 창을 전부 막았다.

노련했다. 한두 개쯤은 막는 걸 포기하고 몸을 피하거나 맞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소녀는 날아오는 모든 창을 막았다. 비록 나무로만 만들어진 창이고, 마력도 최소한으로 실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날아오는 창을 쉽게 막을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소녀가 2일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소녀였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영도 비슷한 처지였기에 그걸 뼈저리게 알고 있다. 전투에 익숙해지는 건 어렵다.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다르다. 탑을 오르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난 하영도, 검투사의 의지를 끄면 아직도 전투에서 미흡한 부분을 자주 보인다.

하지만 소녀는 아니었다. 땀을 닦을 때, 투창으로 기습으로 해도 쉽게 대응한다. 날아오는 창에 익숙해졌다. 아니, 익숙해졌다기보다는 하영의 투창의 밑천이 다 털렸다는 게 맞을 것이다.

“마창의 능력치 뻥튀기나 부가적인 스킬 없이는 이제 한계인가.”

하영은 계속해서 소녀에게 투창을 사용했다. 만들어진 창이 다 떨어지면, 직접 창을 모아서 다시 했다.

하영이 창을 주우러 다닐수록, 다음 투창을 막는 소녀의 움직임은 더욱 깔끔해졌고. 바닥에 떨어진 창들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녀의 주변에 떨어져 있던 창들이, 점점 하영의 근처 쪽으로 날아온다. 그만큼 힘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최소한, 연습용으로 즉석 해서 만든 나무창은 더 이상 소녀의 연습 상대로 적합하지 않았다.

“이제 저녁 먹고 하자.”

하영은 투창하는 것을 멈췄다. 아침, 점심.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연습했다. 그럼에도 하영의 정신력은 멀쩡했다. 비록 최선을 다한 투창은 아니었으나. 투창할 때마다 조금씩 정신력이 깎인다는 걸 생각해 봤을 때. 하영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한 개… 겨우 완성했습니다.”

소녀와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연금술사가 초췌한 몰골로 다가와, 영약을 건넸다. 영약은 하영이 건네준 포션의 병 안에 담겨있었다.

“고생 많았다!”

영약을 받은 하영이 벌떡 일어나 연금술사를 맞이했다. 하영은 수프에 담가놓았던 빵을 수프 째로 건네며 말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직도 눈에 다크서클이 있어! 진짜 고생 많았나봐.”

하영의 말에 연금술사가 허탈하게 웃었다. 하영은 그 웃음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예상이 됐다.

“좋아. 오늘은 네가 누워서 자라. 내가 앉아서 잘게.”

“오늘도 우리는 같은 방인가?”

“아, 걱정하지 마. 오늘은 반대로 잘 거야. 앉아 자느냐 고생 많았어.”

하영의 말에 연금술사가 미소 지었다. 입꼬리가 귀에 닿을 것처럼 올라간 것이. 엄청 행복해 보였는데. 그와 반대로 눈은 매우 슬퍼 보였다.

­ 아가리롤스타: 난… 이해한다. 저 마음….

­ 낭만검객: 차마 싫다고는 하지 못하는 게. ㄹㅇ 공감된다.

­ 야스마스터: 그래도… 행복하시죠?

“……그렇군요. 그것참, 기쁜 소식이네요.”

시청자들과 연금술사의 생각이 통했지만, 연금술사는 채팅창을 보지 못하기에, 그들이 마주 보고 웃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저는 이만…”

연금술사는 하영에게 받은 음식을 들고 씁쓸하게 홀로 방안으로 들어갔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할 걸 생각하면. 밥을 먹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잠을 자는 것이 맞다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게… 원작에서 나온 그 영약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이거지.”

방안으로 들어가는 연금술사를 지켜보던 하영은, 그가 사라지자마자 자신의 손에 들린 영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붉은색. 하영이 건넨 HP 포션과 비슷한 색이었다. 영약을 담고 있는 통도 HP 포션 병이었기에 언뜻 보면 헷갈릴 수 있으나, 자세히 보면 영약과 포션 사이에 다른 점이 몇몇 보였다.

“포션보다 색이 영롱하고, 빛나는 무언가가 곳곳에 있네.”

마치 붉은 루비를 갈아 만든 것 같았다. 하영은 잠시 영약을 쳐다보다, 영약을 먹기 위해 뚜껑을 열었다.

“무슨 맛이려나.”

원래대로라면 주인공인 소녀에게 양보할 생각이었으나. 영약의 제조자를 손에 넣어, 여러 개를 만들 수 있게 된 이상. 굳이 첫 영약을 양보할 필요는 없어졌다.

“뭐. 맛은 먹어보면 알겠지.”

하영은 영약을 그대로 들고 마셨다. 맛은 딸기 맛이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지 영약에서 딸기 맛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맛이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하영이 영약을 전부 섭취했을 때. 하영의 앞에 오랜만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영약 ­ 부족한 자에게 필요한 것을.]

[단명할 운명 속에, 절대 등장할 리 없는 영약.]

[누군가가 이 세상에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조가 가능한 자들에게 저주를 걸고 있다. 그가 있는 한 세계에 이 영약이 드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생에 단 한 번, 선택된 자들만 먹을 수 있는 영약. 섭취자는 가장 부족한 것 중 가장 필요한 것을 얻는다.]

[복용 완료 시간까지 앞으로 24시간.]

메시지를 본 하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영이 읽었던 원작의 내용과 달랐다. 원작 속에서는 바로 이루어지던 영약의 흡수가 지체됐다. 그리고 영약의 효능도 바뀌었다. 주인공이 소녀가 먹었을 때는 이런 효과가 아니었다.

소녀는 영약을 흡수하고, 탑의 상태창으로 본다면 모든 능력치 +10 정도에 해당하는 효과를 봤다. 소녀의 능력치가 낮아, 능력치가 필요하다 쳐도 뭔가 묘했다. 아마 영약이 미완성이 아닌 완성이라 그런 거 같았다. 하영은 그만큼 더 효능이 좋아졌으리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다음 것은 차마 넘길 수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담…”

연금술사가 몬스터로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하영은 마음이 심란했다. 이 사실을 연금술사에게 알려야 하나 고민이 됐다.

“……자신에 대한 일이니까. 역시 알리는 게 좋겠지?”

하영이 결정을 내리려 할 때쯤, 하영의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 《 상점에 등록되지 않은 영약 섭취 [1/1] 》

「이제부터 영약 구매가 가능해집니다.」

「더 좋은 영약을 얻기 위해서는 더 힘을 내야 합니다.」

「당신에게는 여러모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디 선을 넘지 말아주세요.」

시스템 메시지를 읽던 하영은,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건 하영이 여태껏 봐온 시스템 메시지가 아니었다.

“확실히 달라.”

이질감을 느끼자마자, 시스템 메시지를 주의 깊게 살피던 하영은 지금껏 보던 메시지와 다른 점을 찾았다. 메시지창이 불투명한건 같았으나, 테두리의 색이 달랐다.

하영은 이게 무엇인지 즉각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이건 탑의 시스템 메시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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