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84화 (84/85)

〈 84화 〉 11. 소녀가 꿈꾸는 복수방법.

* * *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았다고 해서, 고급 레스토랑이 패스트푸드 가게가 되는 건 아니다.

하영은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약간의 허무함을 종식시켰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지금 당장 골드를 더 당겨올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Q&A는… 더는 안 되겠지.’

Q&A. 아무런 준비 없이 새태창만 꺼내면 만사 오케이라 제일 준비가 편한 콘텐츠다. 하지만 그만큼 하영이 애용했기에 더는 이것으로 분량을 챙길 수 없다.

최근 빠르게 층을 올라오면서 이미 여러 번 써먹었기에 특히 더 그랬다.

‘내 영약은 물론, 소녀의 검도 새로 구해야 하니까. 약간의 골드로는 턱도 없어.’

지금 하영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런 준비 없이, 최대한 쉽고 빠르게 시청자의 골드를 빨아먹을 콘텐츠

하영은 그게 무엇일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조건에 맞는 콘텐츠가 떠오르지 않았다.

“난 잠시 씻으러 갔다 올게.”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을 잃었던 소녀가 일어나며 말했다. 하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입을 열었다.

“…솔직히 진 건 아니다. 인정?”

밑도 끝도 없는 내뱉은 말. 하영은 어떻게 골드를 뽑아야 할지 아직 정한 것은 없었으나. 보는 눈이 사라지자마자 본능처럼 방송을 다시 재개했다.

­ 낭만검객님이 100골드 기부.

진짜 어매가 뒤졌나. 개쳐발려놓고 진 건 아니다 인정? 이러고 있네 ㅅㅂㅋㅋㅋㅋ

근거 없는 하영의 발언에 평소 하영의 말에 태클을 자주 거는 낭만검객이 발끈해서 음성 기부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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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으로 늘어난 골드에, 하영이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을 내뱉었다.

“솔직히 진 건 아니죠. 주력 스킬도 별로 안 쓰고 싸웠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져 준거죠.”

­ 꿀벌아넣을게: ??

­ 공감하면골드줌: ????

­갈고리수집가: ???????????

­ 말이쁘게함: 혹시 양심이 모친과 함께 출타하셨나요?

“아니. 솔직히 정면에서 막으려 들지 말고 약간 흘리면서 파이어볼로 공격했으면 제가 이겼어요.”

­ 정자도둑정하영님이 100골드 기부.

근데 니가 정면에서 막았잖아 십할련아 ㅋㅋㅋㅋ

“그러니까 져 준거죠. 파이어볼을 사용하면 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행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정면대결을 해줬잖아요.”

언뜻 보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개소리다. 하영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영은 당연한 걸 말한 사람처럼 당당하게 행동했다.

‘하. 이 짓도 오래 못 해먹겠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행동뿐. 하영의 얼굴은 창피함으로 이미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하영은 최대한 뻔뻔한 사람처럼 말하며 시청자의 음성기부를 유도하려 했으나, 이미 마음속으로 자신의 안일함과 소녀의 승리를 인정한 하영으로써는 자신의 결정을 반복하는 느낌마저 들어, 영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다.

­ 낭만검객님이 100골드 기부.

이 씹년 너도 창피함을 알았구나.

“…전 원래 창 잘 피해요. 창피함을 모르는 건 소녀죠. 제 창에 거의 다 맞았잖아요.”

유쾌한 척 드립을 날렸으나, 조금 전보다 한결 풀이 죽은 하영의 목소리와 벌게진 얼굴은 감춰지지 않았다. 이에 시청자들은 하영을 놀려먹기에 좋은 타이밍이라는 걸 눈치 채고 하나둘 음성 기부로 하영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 방송계의유니콘이 100골드 기부.

또, 또 지랄 시작됐네. 하영아. 이건 대체 뭔 개애~ 같은 논리냐?

꼬부랑 할아버지가 따지는 듯한 목소리.

­ 천신대가리멈춰님이 100골드 기부.

하영아. 이 암컷 강아지년아. 너 ㅅㅂ 애초에 코앞에 있는 것도 파이어볼로 못 맞추잖아. 아니라고? 응~ 그럼 지금 해봐~

깐족대는 소년의 목소리.

­ 인방인생하급신님이 100골드 기부.

파이어볼이 아니라 물 로켓 아님? 전에 연습하는 거 보니까아. 목표물에 도착하기도 전에 멕아리 없이 불꽃이 꺼지던데.

마지막으로 목에 지방이 가득 낀 듯한 남자의 느릿한 목소리까지.

정말 다양한 목소리가 하영을 놀려오기 시작했다.

‘진짜 저런 목소리는 대체 어디서 구해 오는 거야.’

이미 방송을 하면서 최소한 한 번쯤은 들어본 목소리라 큰 감흥은 없었지만, 샌드백 역할로 계속해서 맞다 보니 꽤 데미지가 축적됐다.

아니 솔직히 창피함으로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하영은 말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어중간한 컨셉은 재미없는 법이다. 그러니 오히려 이럴수록 철판을 깔고 강하게 나가야 했다.

“목표물을 맞히려 하지 않고 불꽃이 사라지기 전에 바로 터트리면 공격은 들어가요. 바로 코앞에 있는 건 저라도 맞출 수 있습니다. 한번 직접 보여 드려요?”

하영은 손에 작은 파이어볼을 만든 후, 바로 터트렸다.

“봤죠?”

불길은 약하고, 금방 사라졌지만. 아직 다 치유되지 않은 손에서 터진 거라 따끔했다.

“으아! 씨. 엄청 아프네.”

고통 내성이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매우 뜨거운 목욕물에 잠시 손을 담근 것 같은 수준의 감각이었지만. 하영은 일부러 크게 반응했다.

바보 같은 자신의 행동을 부각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채팅을 유발하기 위함이었다.

­ 여자성기삽니다: 우린 그걸 맞춘 거라 하기로 한 적이 없어요.

­ 진실은언제나하나: 그냥 만들자마자 코앞에서 폭발시킨 거잖아.

­ 오른손에흑염룡있음: 팩트)다.

­ 낭만검객: 맞추는 대신 너도 맞잖아~ 이 씹년아 ㅋㅋㅋ

“그건 맞지만. 소녀는 피를 많이 흘렸고, 저는 팔팔했잖아요. 같이 맞아도 쓰러지는 건 소녀뿐이었어요. 아니라고요? 어허 상황을 잘 떠올려 보세요 선생님들.”

­ 낭만검객님이 100골드 기부.

에이 시팔. 말하는 꼬라지가 개쳐발려놓고 겜 끝나고 와서 이길 수 있었는데 져 준거라면서 리딸치는 스트리머 보는 거 같네.

채팅을 본 하영이 입을 다물었다. 확 와 닿는 발언이었다. 평소 게임 방송을 자주 보던 하영이었기에 공감이 갔다.

­ 방송시청만30년: 여기서 리딸이란. 리플레이를 보며 자기 위로를 하는 행위를 말함. 리플레이를 돌려보기만 하는 거랑은 다름. 다른 애들은 리플레이로 자기가 못한 걸 보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실력을 쌓지만. 리딸을 치는 애들은…

­ 장문충쳐내: 방장님. 내 닉네임 보셈.

­ 아기고양이유미: 우와 아저씨 진짜 오래 살았나 보다. 어떻게 그렇게 별걸 다 알아요?

­ 방송시청만30년: 유미야 다치기 싫으면 저기 가 있어라.

­ 아가리롤스타: 닉네임으로 할 말 하는 건 좀 신박했다. ㅇㅈ

­ 미션석세스: 진짜 몇 번째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정하영 이씹년. 상태창을 자칭 상태창에게 먹여가지고 강퇴를 못함. 방송 레벨업해서 방송 시스템 나올 때까지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함 ㅋㅋ

­ 장문충쳐내: ??? 방장 ㅂㅅ임?

하영이 입을 멈추자. 기적같이 이어지는 잡담. 그중에서 방송에 관한 설명이 나오자 하영은 하던 생각을 접고 바로 집중해서 채팅창을 보기 시작했다.

‘과연… 그렇구나.’

골드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방송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중요했다.

***

계속해서 이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하영은 목이 마른 걸 느끼고는 채팅창에서 시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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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샌드백 역할을 하면서 음성 기부를 유도했기에, 꽤 큰 금액이 쌓였다. 하영은 망설임 없이 민첩의 영약을 구매해 마셨다.

무언가를 마시는 감각도 없어,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으나 영약을 향한 욕망은 살짝 해소되었다.

‘하나만 더 마시면. 하급 민첩의 영약은 졸업이다.’

하영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소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하영은 소녀가 오기 전까지 조금 더 골드를 벌어놓기로 했다.

“아니. 솔직히 연출이 오졌잖아요. 잔잔하던 숲에 바람이 막 부는데 어떻게 시선이 안 가요. 선생님들도 다 봐놓고 이러면 섭섭합니다.”

물고기에게 떡밥을 던지듯, 최대한 큰 소리로 말한 하영의 말에 서로 잡담을 하던 채팅창이 하영에 관한 이야기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 낭만검객: 바람 분다고 멍하니 처 보고 있는 것도 ㄹㅇ 멍청했지.

­ 탑골공원휠체어도둑: ㄹㅇㅋㅋ 주인공이 변신하는데 기다려주는 ㅂㅅ이 여기 있었음.

­ 아가리롤스타: 아니, 솔직히 내가 저 상황에 닥쳐도 구경했을 듯. 하영이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해.

­ 수영장파티정하영: 응 너만 그래.

하영은 빠르게 채팅창의 분위기를 살펴봤다. 조금 전에 한 대화 덕분인지 아직 자신을 까는 채팅이 많았다. 이건 아직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그렇죠. 솔직히 연출이 넘 오졌어요. 잔잔하던 숲에 바람이 막 부는데 어떻게 시선이 안가겠어요.”

하영은 일부러 자신에게 옹호적인 채팅만을 읽어 자신을 괴롭히고 싶게 만들었다.

­ 의문의소드마스터장인: 대련에서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대련에서 무엇을 얻어가는 가다.

“아. 이번에 새로 오신 선생님이 뭘 좀 아시네요. 맞아요. 전 이번 대련으로 알아차렸습니다.”

하영은 말하는 와중에도 채팅의 분위기를 실시간으로 살폈다.

“투창은 미리 공격지점을 정해놓고 사용하니까. 제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적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저보다 근접전이 강한 상대가 목숨을 버리겠다는 각오로 돌격을 해오면 막을 방법이 없어요.”

하영의 말에 채팅창이 하영의 발언과 관련된 이야기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하영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하고, 그에 반하는 상대방의 의견을 깎아내려 가는 채팅들뿐. 하영이 유도한 대로 방송이 흘러가지는 않았다.

­ 심연의불길: 스킬이 아닌 마법을 배워, 육체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하면 좋을 듯. 생각지도 못한 공격으로 돌격해오는 상대를 한 번만 뒤로 물리게 할 수 있다면, 꽤 큰 이점이 있을 거 같음.

­ 포장마차라면도둑: 솔직히 내가 말한 방식이 하영에게 가장 어울릴 듯.

­ 어서가장애들아: 그게 딱 니들 수준임ㅋㅋㅋ

­ 주문쟁이보면던짐: 주문쟁이 만능 주문설 떴냐? 떴다!

­ 마도학자는세계제일: 그냥 아이템이나 바꾸자. 무기와 비교하면 방어구가 너무 초라하다.

“그렇죠? 슬슬 바꿀 때가 됐죠?”

­ 모든것은순리대로: 낭자는 내가 구매한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넝담입니다 하하!”

하영은 슬며시 채팅에 참여하면서 방송의 흐름을 살펴봤다. 억지로 원하는 대로 방송을 할 생각은 관뒀다. 애초에 하영이 하란다고 하고, 하지 말라 한다고 하지 않을 이들이 아니다. 이들은 자기 엄마가 와도 말리지 못할 이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상황이 하영에게 손해를 가져다준 것도 아니다. 비록 하영이 샌드백이 되어 기부로 뚜드려 맞는 것 정도는 아니지만. 하영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치고는 기부가 꽤 많이 터졌다.

­ 늘불편한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응 그건 니가.

­ 하영하영님이 100골드 기부.

뭐냐. 왜 말을 하다 말어.

특히 점점 채팅이 과열됨에 따라서, 큰 기부로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 정하영제발뒤져님이 500골드 기부.

그걸 이제 알아? 넌 그냥 나가 죽어라.

­ 낭만검객님이 1,000골드 기부.

어? 수상할 정도로 하영이 죽는 걸 바라는데… 너 혹시? 구매할 생각이냐? 애 속은 남자인데?

­ 야스마스터님이 1,500골드 기부.

그게 꼴리는 거다. 성별이 여자인 남자, 그것도 수준 높은 미녀다. 아랫도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을 쏘냐!

­ 미션석세스님이 1,600골드 기부.

하영이 넘보지 마라.

하영은 기부메시지를 보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뭔가 조금 불길한 메시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영의 사후에 무언가 하려는 이는 아무래도 주인공인 이원혁뿐만이 아닌 거 같았다.

‘아직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기부메시지와 시청자들의 닉네임을 보니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짐작이 가네…’

방송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하영에게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 추가로 해금 되는 것일까. 시청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방송에 대한 것들을 조금씩 하영에게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꽤 노골적인 발언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경지에 이르렀다. 채팅 하나하나가 예전 하영이 보면 깜짝 놀라 뒤로 백덤블링을 할 만한 것들이었다.

­ 보직군영: 게이는 아닌데, 솔직히 최면으로 사랑하게 만든 다음 행복한 시간을 보낸 후, 기억을 지우고 최면 영상을 보여주면서 정신이 나갈 때까지 범하는 걸 생각해보면 좀 끌림 ㅋㅋ

­ 임신최적화여캠만봄: 벌써 기대되네 ㅋㅋㅋㅋ

그 중에는 이 탑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봤으면 좌절할 만한 발언들도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며 조용히 넘기거나, 유쾌하게 맞받아쳤다.

‘그게 내 생존방법이니까.’

하영은 지구에서의 자신은 생각지도 못할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지금껏 탑을 오르면서, 있을지 모르는 미래보다는 눈앞에 있는 골드가 더욱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지.’

재능이 없고, 노력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도. 하영에게는 그것을 모두 덮고도 남을 만큼의 골드를 벌어들일 수단이 있었다.

­ 주문쟁이보면던짐님이 100골드 기부.

응 아니야. 존나 필요해.

“…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도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 하영의 상념에 타이밍 맞게 들려온 기부 음성에 하영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빠르게 채팅을 확인했다.

­ 심연의불길: 아니긴 뭐가 아니야 씹년아! 마법이 무공보다 뛰어난 건 사실인데!

­ 무공혐오함: 진짜 무공인지 뭔지 하는 애들은 방송도 보지 마라 소름 돋는다.

채팅을 본 하영의 눈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아. 아직 싸우고 있었군요. 선생님들. 하하하.”

기부 음성이 단순한 우연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은 하영은, 상황을 파악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타이밍 한번 끝내주네.’

하영은 액땜했다며 피식 웃어넘겼으나. 그녀는 몰랐다. 그것이 일종의 플래그였음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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