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1. 피해자의 시점에서
* * *
저 멀리 맞은편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걸어왔다.
별난 일이네.
이 길은 딱히 지름길이라 하기에도 뭐하고, 밤중엔 어두운데다가 가끔은 냄새나는 쓰레기들도 버려져있는 뒷골목이라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이 근방에 나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뭐, 이 근방이 사람 사는 동네인 이상 이 길에서 행인을 한번도 마주쳐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뒷골목에서 사람을 본다는 게 적어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저 사람이 입고 있는 옷, 뭔가 익숙한데?
뒤늦게 수상함을 눈치챈 순간, 뒤쪽에서 커다란 손이 튀어나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던 남자와 똑같은 옷을 입은 또다른 남자였다.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었는데..!'
납치범은 버스에서 내 앞에 서 있었던 두 남자들이었다. 옷의 같은 로고를 보아하니 확실했다. 그렇다면 버스에서 내린 뒤부터 미행을 하고 있었던 건가?
입을 막고 있는 손을 깨물며 어떻게든 저항을 해보려고 했으나, 근력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우읍!"
초등학생에게도 밀리는 근력을 가진 몸으로 건장한 성인 남성 두 명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쉿. 괜한 헤코지 당하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귓가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기분 나쁜 목소리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저항해봤자 희망도 없을 게 뻔하니까.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척을 하다가 타이밍을 봐서 도망칠 생각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충분히 두 사람에게서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골목길만 벗어나도 사람들이 꽤 지나다니는 거리였으니까.
'차분하게 타이밍을 기다리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다. 진정하자..'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몸의 떨림을 가라앉혔다. 그러나, 전에 말했듯 세상일이 언제나 내 뜻대로 되진 않는 법이였다.
계획이 제대로 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두 남자가 괴상한 액체가 담긴 주사기를 꺼내들었을 시점에서였다.
"야, 약은 제대로 챙겨왔지?"
"여기 있다. 주사기에 미리 넣어 왔어."
우으읍!
"어허, 움직이지 말라니까."
내 입을 막고 있던 남자가 말을 들으라는 듯이 초크로 기도를 압박해 왔다. 호흡을 할 수가 없으니 점차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 나는 그럼에도 발버둥을 멈추지 않았다.
그 이유는...저 주사기 안의 투명하고 반짝이는 액체였다. 난 저 액체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며칠 전에 봤던 뉴스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던 내용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저 액체의 정체는... 유저들 중, 식물형 종족인 알라우네들이 신체에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마취독이었다.
복용하거나 투약하면 그대로 온 몸이 마비되지만 의식은 남아있게 되는, 산 채로 먹잇감을 잡아먹는 거미들이 사용하는 마비독과 비슷한 부류였다.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었어. 잘못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알라우네의 독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약에 내성이 있는 유저들을 납치할 때 쓰이는 약물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뉴스에 따르면 중국 쪽의 인신매매 전문 범죄집단이 주로 사용한다고 했었지.
유저들의 발생과 사회의 혼란으로 발생한 치안의 공백을 틈타, 세계적으로 '무연고자가 된 유저들의 납치 및 인신매매 문제'가 세계적으로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국내에, 그것도 내 주거지 근처에서 활동하고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든 탈출해야 해...'
나는 주변에 지인도 없고, 가족들과도 연을 끊은 사람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납치당한다고 해도 신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월세도 몇개월치를 미리 납부했으니, 찾아온 집주인이 빈 방을 보고 내 실종을 알아차리는 것도 기대해선 안 되겠지. 그러니까,이대로 여기서 끌려가게 된다면 말 그대로 끝장이었다.
뉴스에서 봤던, 납치당해 외국으로 팔려나간 유저들의 끔찍한 모습이 떠올랐다. 팔다리가 없거나, 끝없는 학대 혹은 반인륜적인 인체실험으로 정신이 나가 버린 사람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그러나, 악으로 의식을 붙잡고 있는 것도 슬슬 한계였다. 생물은 호흡 없이 의식을 유지할 수 없는 법이었다.
숨이 점점 막혀 오기 시작했다.
사고가 느려지고, 의식이 흐려지며, 눈앞이 뒤집힌다.
팔뚝의 따끔한 느낌과 함께, 시야가 암전되었다.
성공적으로 범행을 마친 뒤, 두 남자는 차량을 조달하기로 했던 일행을 만났다. 납치 대상이 들어 있는 자루와 동료들을 트렁크에 실은 차량은 시동과 함께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알라우네 종족인 유저들에게서 추출한 마비독이라고 했나? 처음 써봤는데, 다른 것들에 비하면 효과가 확실하긴 하네."
뿅가는데 일 초도 안 걸린 것 같은데. 맞나?
확실히 돈 값은 하네.
이거면 앞으로 꼬리가 잡힐 일은 없겠어.
납치범의 일행, 그러니까 검은 옷을 입고 있던 사내들 모두가 그 의견에 동조했다.
"현존하는 약물 중 가장 직빵인게 이거라니까. 덕분에 작업이 확 쉬워졌어. 늑대인간이든 수인이든 한방에 뻗으니까."
일행 중 유일하게 같은 마취제를 사용해 본 적이 있던납치범이 으스대며 자랑스러워했다. 이 약물을 써보자고 제안한 사람이 그였고, 결과도 나름 좋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뭐, 효능은 대충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이년 종족이 뭐지? 뿔이 달려 있으니까 악마 쪽인가? 종족을 확실히 알아야 가격을 제대로 부를텐데."
운전석에 있는 동료의 질문에 남자는 커다란 자루 안에서 얌전히 누워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의 지갑 속에서 민증을 꺼내들었다.
대충 신장을 가늠했을 때 미성년자, 어리면 중학생까지도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이가 많았다. 이 얼굴에 성인이었다니. 뭐, 겉으로 보기에는 어린 나이니까 팔 때는 나이를 낮춰서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나이가 어릴수록 돈은 더 받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몰래 올려친 값으로 남는 차익은 나누지 않고 자신이 꿀꺽할 예정이었다.
'외견이 젊고 예쁜 걸 보면 외국 갑부들 유희용으로 비싸게 팔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그녀의 몸값을 속으로 가늠해 보다가, 머리 위에 달린 뿔로 시선을 돌렸다.
악마라기엔 너무나 커다란 뿔, 그리고 악마족 특유의 흑발이 아닌 백발.
막상 이렇게 보니, 뿔이 있는걸 보고 단순히 악마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악마는 특별히 염색을 하지 않는 이상 검은 머리색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여자는 백발이었다. 거기에 눈동자 색도 렌즈를 쓴 건지 부자연스러웠다.
뭐, 악마가 맞는지 아닌지는 나중에 다 벗겨놓고 꼬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면 알 수 있으니, 딱히 지금 알아내야만 하는 건 아니었지만...
궁금한 건 못 참지.
악마들 특유의 긴 꼬리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몸을 더듬거리던 남자는 무언가 까슬까슬한 감촉을 느꼈다.
'이게 뭐지? 비늘?'
자루를 열어 손이 닿았던 부위를 확인해보니, 그녀의 쇄골 안쪽에 희미하게 비늘 같은 것이 나 있었다.
그것의 정체는, 모든 용이 가지고 있다는 급소인 '역린'이라고 불리는 부위였다.
'이거 설마 말로만 듣던…'
남자는 사업을 위해서, 유저들의 종족 간의 특성과 종류에 대해 빠삭하게 공부한 사람이었다. 그의 지식에 따르면, 이런 인간에 가까운 모습에 피부 일부에만 비늘이 나 있는 종족은 하나뿐이었다.
용족. 유저들 사이에서도 몇 없다는 희귀종족들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종족으로, 인어나 하이엘프 급으로 귀했다. 당연히 가격은 그 희귀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아마 이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일평생 풍족하게 먹고살 돈을 받을 수 있으리라.
땡 잡았다. 복권 중에서도 1등짜리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남자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뭐야. 왜 갑자기 처웃고 지랄이야. 미쳤냐?"
갑작스런 남자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동료가 투덜거렸다. 그러나 남자의 웃음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동료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갈 무렵, 겨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통제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야. 이거 용족이다. 드래고니안. 반인반룡. 다들 한 번씩은 들어봤지?"
"이런 미친, 진짜로?"
다른 일행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용족이라면 다른 종족의 유저들과 비교가 미안할 정도로 매매가가 말도 안 되게 높았다. 이대로 무사히 중국 본토의 인신매매 시장까지 도착할 수만 있다면 말 그대로 복권 당첨이나 다름없었다.
"바로 항구로 가자. 원래는 몇 탕 더 뛰어야 원칙에 맞겠지만, 지금은 이 한 명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이니까. 모두 동의하지?"
이의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임시 주거지로 향하던 차가 방향을 돌려, 한적한 항만의 항구로 향했다.
아마 그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앞으로 들어올 돈의 액수와, 그걸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꿈과 같은 생각들.
그런 생각에 정신이 팔려, 그들은 밧줄로 단단히 묶어놓은 자루 안에서 새어나오는 푸른 빛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