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7화 (7/59)

〈 7화 〉 3. 브레스!!!피해욧!!!

* * *

맞는 것은 익숙했다. 그러나 도통 고통에는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스텟 보정치의 적용으로 허약하기 짝이 없는 몸을 벗어났다고는 하나, 결국 물몸 마법사의 신체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흐윽, 그만, 그만 때려요. 제가 잘못했으니까...”

“야, 이제 슬슬 항구에 도착할 시간이다. 그쯤 하고 끝내라.”

리더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 나서야, 무자비한 구타가 멈췄다.

‘아파...’

상처나 멍은 들지 않았지만, 맞은 부위가 심하게 욱신댔다. 상처를 안 내고 패는 것을 잘한다는 남자의 자랑은 좋지 않은 방식으로 사실로 밝혀졌다. 아마 내 시장가치 역시 떨어지지 않겠지.

마비독의 효과는 여전히 건재해서, 아픈 부위를 어루만질 수도 없었다.

‘꼴에 마비독이면 통증이라도 완화시켜 줄 것이지...’

정확히 근육에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계만 마비시키는 알라우네의 독 탓에, 통증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누워있는 자세를 고칠 수 없다보니, 바닥에 닿아 있는 부위의 통증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진짜 뒤질 것 같아...’

스텟 보정의 적용으로 조금 나아졌던 몸 상태가, 방금 전의 구타 때문인지 점차 악화되고 있었다. 아까 전보다 속이 더 울렁거리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파왔다. 아무래도 심하게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몸이 점차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중국의 해안가에 위치한, 한 작은 암시장.

가면을 쓴 채로 무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화려한 음식과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무도회의 한쪽에선, 경매가 열리고 있었다.

­싫어, 이대로 팔려가고 싶지 않아..

­가만 안 있으면 네 동생의 모가지가 날아갈 거다. 무대에 나가선 얌전히 있도록.

같은 인간을 매매하는, 끔찍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관중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당히 반항하는 상품들의 모습을 안주 삼아 고급스러운 술을 목 뒤로 넘기고 있었다.

“4만 달러, 4만 달러, 4만 달러! 낙찰되었습니다. 열아홉 번째 상품의 주인은 194번의 신사분이십니다!”

­짝짝짝...

품위에 떨어지지 않는 박수소리가 경내에 울려퍼진다. ‘열아홉 번째 상품’이라는 명칭이 지칭하는 대상은 하나뿐이었다. 무대에 홀로 나와 서있는 쿠거 수인 소녀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이리로 따라와라.]”

무대 뒤에서 대기하던 남자의 명령대로 얌전히 뒤를 따라가니, 그녀의 눈 앞에 ‘194번’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던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가만히 서서 그녀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턴 내가 너의 주인이다.]”

철컥. 금속과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턱 밑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자신의 목에 채워진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목줄.’

목줄, 그것도 인간용 초커 같은 것이 아니라, 순수히 개에게 채울 목적으로 제작된 목줄이었다.

그가 이쪽을 보고 말한 중국어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선물이 의미하는 바는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때, 잘 어울리는 것 같나?]”

그녀의 주인이 될 사람이라던 신사가, 작은 손거울을 건넸다. 값비싸 보이는 손거울의 표면에 상이 비쳤다. 그 상은 작고 귀여운 수인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녀린 목에 달린 목줄이 이질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전혀 안 어울렸다. 패션에 관심이라곤 전혀 없고, 패션 감각 없다고 놀림을 받았던 전적도 있었던 소녀였지만... 이건 좀 아니었다. 애초에 사람한테 고급 강아지용 목줄을 달아놓고 뭐가 잘 어울린다는 건지.

습관대로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려던 소녀는, 얼마 전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 떠올라 멈칫했다. 얼마 전에 강제로 헤어졌던, 어린 여동생에 대한 기억이었다.

짧은 외출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던 자매는, 검은 옷을 입은 남성들을 만나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아마 후드티 바깥으로 삐져나온 귀 때문에, 범죄 대상으로 수인만을 선택하는 그들의 타겟이 되었을 것이라고 그녀는 추측했다.

­한 놈은 꽝 같은데?

­그렇다고 풀어 줄 수는 없잖아. 어디에든 쓸 수 있는 곳이 있겠지.

유저로서 수인으로 변이한 그녀와 달리, 여동생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정확히는, 그녀 역시 '판타지아 온라인'의 유저였으나­ 사용하던 캐릭터의 종족이 현실의 사람들과 크게 차이가 없는 '인간'이었다.

‘상품 가치가 없다, 라고 했었어.’

그녀의 여동생에게 메겨진 가격은 없었다. 상품 가치로서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상품’이 되어야 할 수인 소녀가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그녀의 여동생이 대신 구타를 당했다. 가격을 매길 가치도 없는 물건은, 상해봤자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으니까.

‘그런데, 내가 팔려나가면...동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녀의 머릿속에, 커다란 자루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인신매매 조직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커다란 자루들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딱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인 자루. 그리고 인신매매와 마약상을 겸하는 거대한 범죄조직.

‘...설마...’

자신의 여동생이 그 커다란 자루 속에 담긴 알 수 없는 무언가들을, 그들은 ‘쓰레기’라고 불렀다. 그리고 종종 자매를 괴롭히던 조직원들도, 어눌한 중국어로 그녀의 여동생을 '쓰레기'라고 부르곤 했다.

순식간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수인 소녀는 194번 신사의 옷깃을 붙잡았다. 지금 그녀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그녀가 이곳에 와서 배운 어설픈 중국어를 써서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리려던 찰나, 무대 위 사회자의 경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신사 숙녀 여러분!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오늘의 메인 상품! 그건 바로...

두구두구두구...

식상하면서도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효과음 소리와 함께, 무대 위에 나타난 것은 새하얀 무언가였다.

‘...사람?’

검은 무대의 배경 탓에 더더욱 대비되는 백발, 그리고 그 백발 위에 자리한 이질적인 뿔.

이어지는 사회자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희 업계 처음으로 출품된 드래고니안, 흔히 반인반룡으로 불리우는 용족 여성입니다!”

용족, 백발, 그리고 눈에 띄는 아름다운 외모. 이 세 가지의 특징에 부합히는 유저는, 그녀가 알기로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통합 서버 pvp랭킹 3위를 자랑하는 원소 마법사, [뿔잡고아기만들기].

닉네임은 조금 그렇긴 하지만, 실력이나 매너 모두 좋은 사람이라 제대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수인 소녀는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도 그녀를 발견했는지 이쪽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죽은 눈을 하고 있던 그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거기 너!”

오랜만에 듣는, 선명한 한국어가 귓가를 강타했다.

“나 알지? 우리 같이 파티 플레이 했었잖아!”

“...”

애처롭게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사뭇 안쓰러웠지만 지금 당장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당장 동생의 생사가 오락가락 하는 참이었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그를 무시해야 할 때였다. 운이 좋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냉정한 판단에 따라, 다음을 기약한 그녀는 다시금 신사의 옷깃을 붙잡았다. 신사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박혔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녀는 동생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새하얀 섬광이, 눈앞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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