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8화 (8/59)

〈 8화 〉 3. 브레스!!!피해욧!!!

* * *

당신이 게임을 어느 정도 즐겨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딴 스킬을 도대체 어디다 써먹으라고?’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스킬이나 기술들을 보면서 투덜거린 경험, 또는 그런 스킬들의 설명을 읽어내려가며 이런 기술을 개발한 게임사의 의도를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려 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모 유명 AOS 게임 속 정글러 챔피언의 궁극기 스킬이라던가, 그와 비슷한 부류의­ 딜이라곤 전혀 안 나오고, 부가적인 효과 및 CC기는 형편없고, 그렇다고 다른 장점이 있는 것도 아닌 것들 말이다.

‘판타지아 온라인’, 한창 피시방 순위를 갱신하며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던 시절의 그 게임 속에도 그러한 스킬들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킬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패시브, 버프에 가까웠지만.

‘종족 특성.’

판타지아 온라인의 늑대 인간 종족들은 보름이 가까워지면 [광폭화] 상태가 되어 근력, 민첩성, 지능 등의 스텟들이 말도 안되게 껑충 뛰어오른다.

그 대신, [광폭화]가 발동한 캐릭터는 플레이어가 조종할 수 없게 된다. 아군을 학살하든, 적군을 학살하든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와 비슷한 경우로, 수인들의 경우는 한 달에 한 번씩 [발정기]가 찾아온다.

발정기가 찾아온 수인들의 경우 동성 간에는 입힐 수 있는 데미지가 두 배가 되고, 이성 간에는 입힐 수 있는 데미지가 반 토막이 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관에 가야만 한다.

엘프를 고른 유저들은, 기본적인 민첩 스텟이 높지만 평범한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종족 특성을 통해 캐릭터 자체의 민첩 스텟을 높여주는 대신, [엘프 전용]으로 만들어진 음식만 먹을 수 있다는 제약이 걸리는 것이다. ‘판타지아 온라인’에서 음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버프의 비중을 생각해 보면, 이 제약이 엘프 유저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 대충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분명 주는 이점도 있지만 활용하기에는 어려우며, 각 종족마다 LV.1 때부터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패시브 능력들을 유저들은 ‘종족 특성’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종족 특성'들은 스킬이 아님과 동시에 1레벨부터 제공되는 패시브나 다름없기 때문에, 신체능력이 LV.1로 고정된 현실로 넘어온 유저들에게도 적용되었다.

용족 역시 ‘판타지아 온라인’의 종족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러한 쓸모없는 특성을 하나 지니고 있었다.

드래고니안, 그러니까 용족들의 신체 특성의 이름은 [반인반룡의 신체]. 마나 감응력, 즉 마력 스텟을 올려 주는 대신 나머지 스텟에 심하게 제약이 걸리는 일장일단이 있는 특성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딱히 다른 종족의 특성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없는 평범한 특성 같아 보이지만...

‘...숨겨진 사실이 하나 있지.’

사람들에게 ‘드래곤 하면 떠오르는 능력’에 대해서 질문한다면 많은 종류의 대답이 나올 것이다.

마법 적성, 거대한 신체, 특별한 눈, 뛰어난 지능, 긴 수명 등등...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나올 만한 대답한 한 가지로 정해져 있었다.

‘브레스.’

용족들은 자신의 마나의 일부를 투자해서, 자신의 속성 마나­내 경우는 얼음 속성 마나­의 응집체인 ‘드래곤 브레스’를 쏠 수 있었다. 문제는, 용족들의 경우엔 완전한 드래곤의 신체가 아닌 ‘반인반룡의 신체’이기 때문에 사용하게 된다면 들어간 마나에 비례해서 몸에 과부하가 오게 된다는 디버프가 있었다.

때문에 용족 유저들에게 ‘브레스’란,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서 마나를 투자하면 할수록 몸에 부하가 오는, 걸어야 하는 리스크는 큰데 돌아오는 이득은 적은 전형적인 쓰레기 특성이었다.

뉴비였던 시절의 나 역시 그들의 의견에 동의했고, 저번 여름에 장난삼아 몇 번 써봤던 이후로 ‘브레스’라는 종족 특성은 내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방금 전의, 그 소녀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첫 만남부터 브레스를 맞아보고 싶다고 했었던 독특한 닉네임의 유저. 그때의 경험 덕분에, 스킬을 전혀 못 쓰는 지금의 상태에서도 종족 특성인 '브레스'는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쿨럭, 어후, 씨발...”

기침을 한 번 할 때마다 바닥에 피웅덩이가 생겨났다. 아무래도 제대로 과부하가 찾아온 것 같았다. 나는 구석에 위치하도록 설정해 둔 상태창을 힐끗 체크했다.

[‘브레스’를 사용하셨습니다. 근력 및 민첩, 지능 스텟이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마나를 과도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마나 과부하’ 디버프가 적용됩니다.]

[체력이 매우 낮습니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빠른 응급처치와 휴식이 필요합니다.]

게임 속에서 캐릭터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우수수 떠오르던 붉은색의 알림창들이 잔뜩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이걸 현실 속에서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어, 비식비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드디어 미친 건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웃음 탓인지, 가슴 안쪽에서 점차 아릿한 통증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이러한 통증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머리가 아릿해지는 통증을 느꼈다. 아마 '판타지아 온라인'의 설정상, 이러한 증상은 '마나 과부하'라는 현상의 증상일 것이다. 실제로 상태창이 그러한 디버프가 걸렸다고 알려주기도 했고.

[마나가 부족합니다. 두통 및 멀미와 같은 증상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마나가 부족하다는 경고를 띈 알림창이 다시금 내 눈앞에 떠올랐다. 내 마력 수치 보정을 받아 늘어났던 마나의 전부를, 방금 전의 브레스에 때려박은 것이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쿨럭, 콜록..."

문제는, 그 여파로 몸에 가해진 과부하 및 상처들을 연약한 내 몸이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마나에 비례해 신체가 손상되는 ‘브레스’의 특성상, 나는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그 증거로... 몸통과 머리를 제외한 온 몸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얼음 속성 마나로 이루어진 브레스 덕분에 사지가 반쯤 얼어붙은 탓이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브레스가 휩쓸고 간 모든 사람들이 한 방에 명을 달리했다는 점이었다. 무대 아래쪽에 있던 사람들은 단 두 사람, 그러니까 내 브레스의 범위에서 벗어난 한 신사와 수인 소녀를 제외하곤 전부 꽝꽝 얼어붙은 얼음 동상이 되어버렸다. 최소한 저 가면을 쓴 인간들 중에 유저가 섞여있는 것이 아닌 이상, 저 얼음 속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으리라.

‘...한 백 명은 죽었나?’

조금 놀라운 점이 있다면, 학살로도 비춰질 수 있는 짓을 스스로 행했는데도 아무런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냐 나쁘냐를 따진다면, 지금의 내 기분은 좋은 쪽에 속했다. 날 상품으로 취급하던 같잖은 인간들을 깔끔하게 한 방으로 보내 버렸으니까. 비유하자면, 게임 속에서 한 곳에 모인 인간형 몬스터들을 스킬 한 번으로 깔끔하게 처리한 느낌이랄까.

“괴, 괴물...!”

소녀, 그러니까 내 지인을 산 주인처럼 보이던 신사는 이미 주저앉아 꼴사납게 벌벌 떨고 있었다. 사람들을 산 채로 얼어붙게 만들고, 그 여파로 꼴사납게 피를 흘리면서도 쳐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의 눈에 어떻게 비춰졌을 지는 훤했다. 아마 미치광이 싸이코패스 쯤으로 나를 보고 있겠지.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간에, 저 인신매매단 대부분과 그들의 고객들은 이미 죽었다. 그들의 처리에 대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기에, 나는 저 멀리서 이쪽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소녀의 이름을 외쳤다.

“야, 한예진! 너*콜록*맞잖아, 이 새끼야!”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앞으로 엎어졌다. 가장 먼저 바닥에 부딫힌 얼굴에서 강렬한 고통이 올라왔다.

“나 좀 부축해라! 다른 인간들 오기 전에 튀어야지!”

실제로, 이 경매장 바깥의 연회장에는 경비원을 포함한 사람들이 잔뜩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 상황을 알아챈다면, 우리가 무사히 도망칠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할 것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몰라주는 건지, 그녀는 느긋하게 무대로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딱히 그러진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어쨌든 간에,오랜만이네요, 오빠. 몰라볼 정도로 달라지셨네요.”

수인 소녀, 그러니까 예진이 이쪽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그렇게 태평하게 인사를 할 때가 아니라고 소리치려 했지만, 공교롭게도 입을 연 타이밍에 기도 안쪽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쿨럭, 야, 지금 그런 소리를 할 때가...”

“그리고, 미안해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우드드득.

땅에 주저앉아 있던 신사의 머리가, 돌아가선 안 될 각도로 꺾였다. 남자의 시체가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내게 속삭였다.

"동생이 잡혀 있어서요. 그 애만 구출하고 바로 돌아올게요."

그녀는 딱히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라는 듯, 바닥을 거칠게 찍어눌렀다. 대리석 바닥이 강렬하게 쪼개지는 것을 보며, 나는 그녀 역시 상태창을 각성했음을 깨달았다.

"...그정도 힘이 있는데 이곳에 잡혀온 거야?"

"방금 상태창 열어보니까, 스텟 보정치가 적용된다고 뜨더라고요. 저도 제가 이렇게 강해졌다는 건 몇 초 전에 안 거라. 사실 몇 달 전부터 변화가 없어서 상태창을 안 열어봤어요."

사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상태창을 무시하고 생활하곤 했다. 거진 일 년째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으니, 굳이 상태창을 열어 보면서 기대감을 키우는 것이 더 박탈감만 느껴진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생각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상태창을 체크하던 내가 특이 케이스인거지, 내가 평범한 유저였다면 자신이 각성한 것을 며칠 뒤에나 깨달았으리라.

만약 그랬다면, 나는 지금쯤 어느 부호의 '상품'으로서 비싼 값에 팔려갔겠지. 그리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구태여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기분만 더러워질 뿐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게임 속 유저들의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으니 기쁠 법도 한데, 예진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상태창도 정상화됐고, 스텟 보정치도 적용됐는데 기쁘지 않아? 내가 너였다면 지금쯤 신나서 방방 뛰고 있겠다."

"기뻐요. 엄청. 잘 티가 안 나는 것일 뿐이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나를 선명하게 지목하고 있었다. 예진이 특유의 냉랭한 표정까지 거기에 합쳐지니, 뭔가 말을 붙이기 힘든 기류가 형성되었다.

내가 입을 다물자, 드디어 내 쪽에서 시선을 거둔 예진이 입을 열었다.

"이제 진짜로 다녀올게요. 아, 그 전에..."

찰칵, 하는 금속음과 함께 내 목에 무언가가 걸렸다.

'...목줄?'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뭐라고?"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한예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잠깐, 쟤 게임 닉네임이 정확히 뭐였더라?'

나는 내 목에 채워진 가죽 목줄에 어색함을 느끼며, 알 수 없는 오한에 휩싸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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