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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10화 (10/59)

〈 10화 〉 5. 병실에서

* * *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내용이었다. 그 뒤의 기억은 없었다. 아마도, 예진이가 알아서 잘 해 줬겠지. 그녀가 실패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테니까,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예진이가 탈출에 성공했다는 점을 쉬이 유추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여긴 어디지?’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최근 들어 낯선 천장을 보게 되는 일만 두 번째라는 것을 실감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얀 벽과 병원 특유의 소독약 향기. 아무래도 탈출에 성공에 병원으로 실려 온 모양이었다.

맞은 곳이 아릿하기는 해도, 딱히 크게 아픈 곳은 없었다. 대신, 몸이 정말 오랜만에 움직인다는 듯이 삐걱거렸다. 마치 온 관절이 녹슨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일어나셨네요, 오빠.”

방의 문이 열리고, 예진이 걸어들어왔다.

“어어...왔냐?”

어색한 인사,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침묵. 우리는 어색한 기류를 버티지 못한 채 애꿎은 바닥 타일만을 바라보았다.

“으흠, 오빠. 지금 오빠가 쓰러지신 지 얼마나 지난 건지는 알고 계시나요?”

“아니. 방금 일어나서 시계도 안 확인했는데. 스마트폰도 어디 갔는지 안 보이고...”

“스, 스마트폰은 이걸 쓰세요! 예전에 쓰시던 건 그러니까, 찾아내긴 했는데 탈출할 때 충격으로 부숴졌더라고요. 고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서...버렸어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아직 약정 기간이 한참이나 남았지만,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처지에 그런 것까지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딱히 중요한 파일이나 문서도 없었고...

‘아, 폰게임 계정 하나 날아갔겠네.’

게스트 계정으로 플레이하던 게임이 하나 있었는데, 핸드폰이 사라진 이상 그 게임은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름 애정을 가지고 하던 게임인 만큼 약간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런 내 표정을 알아봤는지 예진이 내 손을 잡으며 질문했다.

“그, 오빠, 혹시 중요한 파일이나 그런 게 있었나요?”

“아니, 없었어. 그건 왜 물어봐? 어차피 고장난 걸 되돌릴 수도 없을 텐데...”

“아니, 아니에요. 그냥 혹시나 싶어서...”

뭔가 수상하긴 했지만, 딱히 나한테 무언가를 숨길만한 애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대충 넘어갔다.

“그래서, 내가 정신을 잃은 이후로 며칠이 지났는데?”

“일주일이요.”

“예상 범위 안쪽이네.”

일주일. 내 몸의 상태는 내가 아주 잘 알았다. 브레스를 사용하고 난 뒤에 완전히 걸레짝이 된 몸이, 거동에 불편함이 없는 지금 정도로 회복되기 위해선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길게는 한 달까지 생각했는데, 일주일 정도 잠들어 있었다는 것은 나름 양호한 편이었다.

그 이후로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간의 전형적인 안부 묻기가 오갔다.

유저가 된 뒤로 어떻게 지냈는지, 연락이 잘 안 된 이유는 무엇인지, 서로가 사적으로 알고 있던 게임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등등...

현실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 당시에 우리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 그러나 같은 유저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어려움이 많았기에, 안부를 물으며 천천히나마 사이를 진전시킬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유순해진 것 같고...’

과거의 그녀, 그러니까 현실에서 만난 적은 딱 한 번이었지만, 그 당시의 예진은 매우 까칠하고 다가가기 힘든 성격이었다. 비록 일방적인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만나는 자리였지만, 나는 나름 열심히 뽑아간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을 들을 생각에 기대에 차 있었다.

­그걸 물어봐서 뭐하게요?

­제대로 된 질문 아니면 대답 안 할게요.

­진짜 재미없다. 그런 개그는 어디서 배워오는 거에요?

문제는, 인터뷰에 임하는 그녀의 태도가 개차반에 가까웠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질문은 꺼내지조차 못했고, 막상 제대로 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도 영양가 없는 것들뿐.

그때 당시에는, 정말 주먹이 울 정도로 상대방을 짜증나게 하는 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었지.

그녀가 서버 pvp랭킹 top 10에 들지만 않았다면, 그리고 신기에 가까운 컨트롤 능력으로 온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유저가 아니었다면, 마지막으로 판타지아 온라인 방송인인 친구의 간곡한 부탁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인터뷰 자리를 냅다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인터뷰를 마치고, 막판에는 말싸움까지 한 뒤씩씩대며 돌아간 것이 현실에서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이후에, 마치 천사를 방불케 하는 인성을 지닌 그녀의 여동생이 나서 우리 둘 사이를 중재했다. 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와 그녀의 사이는 굉장히 틀어졌겠지.

그 중재 이후로, 예진은 내게 사과를 전해 왔다. 나는 그 사과를 쿨하게 받아들였고, 친구 추가도 했었다. 몸이 이렇게 변하기 전까지 아주 가끔씩은 동생분과 셋이서 함께 파티플레이를 하기도 했었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예진의 동생 역시 그곳에 잡혀 있다고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 함께 잡혔다던동생은 무사히 잘 구했고?”

“예림이 말하시는 거라면...바로 옆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어요. 커튼이 쳐져서 모르고 계셨나 보네요.”

그 말과 동시에, 예진은 일어나서 침대 주변의 커튼을 걷었다. 그러자 흔들리는 천 뒤로 예진과 똑 닮은 동생의 얼굴이 나타났다.

몸을 덮고 있는 이불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고, 숨소리도 고른 상태였다. 걱정한 것만큼 다치거나 충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은 모습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예림이라... 그런 이름이었지.”

말할 때마다 부르는 호칭을 그냥 ‘동생’이라고 고정한 덕에, 본명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림이 이름은 기억 못하셨으면서, 제 이름은 기억하고 있으셨네요.”

“첫 만남에 그렇게 싸가지 없이 굴었던 년 이름을 어떻게 잊어버리냐.”

“아 진짜, 그땐 제가 잘못했다니까요. 치사하게 자꾸 흑역사 꺼내오시네...”

그녀가 삐졌다는 듯 입을 내밀고 툴툴댔다. 그와 동시에 머릿결 사이로 튀어나온 동물 귀 역시 쫑긋거렸다.

“혹시, 한 번쯤 쓰다듬어 봐도 되나?”

별다른 생각 없이 대화를 하다 보니, 뇌의 필터링 없이 말이 나가 버렸다. 나는 멍청한 내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으며 후회했다.

머리를 쓰다듬는다니. 다 큰 성인이, 그것도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예진이가 그런 걸 좋아할 리가­

“네, 완전 괜찮아요! 쓰다듬어 주세요!”

짧은 바지 뒤에서 살랑이던 꼬리가, 끝부분만 휘어진 채 일직선을 그렸다. 저 꼬리 모양, 내가 알기로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만 나오는 모양인데. 설마, 아니겠지.

예상과는 사뭇 다른 그녀의 반응에, 어설프게 손을 내미니 그녀가 먼저 내 손에 머리를 들이댔다.

깔끔한 머릿결과 부슬부슬한 동물 귀의 털의 감촉이 손바닥에 번갈아 가며 느껴졌다. 다 큰 성인 여성의 머리를 이런 식으로 쓰다듬고 있다니. 객관적으로 보면 심히 배덕감을 유발할 수 있는 행위였지만, 딱히 성적인 흥분보다는 심적인 안정감이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골골골...

예진이 역시, 고양이들이 기분 좋을 때마다 내는 소리라는 골골송까지 부르는 걸 보니 정말로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고양이나 갯과 수인들은 이런 식으로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았다.

쓰다듬으면 쓰다듬을수록, 점점 고개의 각도가 낮아지더니 어느새 그녀는 내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마치 여러 매체에서 다루는 무릎베가 같은 모양새였다.

고양이나 개의 특성 자체를 닮아야 하는 개, 고양잇과 수인들이 쓰다듬기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필연이겠지. 그러니까 지금 내 허벅지에 얼굴을 묻고 있는 존재를 예진이가 아니라, 귀여운고양이 한 마리로 생각하기로 했다.

­­­­­

‘하아, 존나게 꼴리네. 확 잡아먹어 버릴까...’

그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허벅지 사이에 머리를 박고 있던 예진은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오랜 시간 알고 지냈던 오빠고, 가족 다음으로 소중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작에 선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ㅆ발, 발정기 주간인데 오빠도 한 번쯤은 참아주지 않을까...?’

사실 지금도 아래쪽이 살짝 젖은 상태였다. 물론 아무리 그녀가 변태라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라도, 눈앞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바로 성적인 흥분을 해대는 미친년은 아니었다.

그녀가 이렇게 과하게 반응하는 것은, 수인들의 종족 특성인 ‘발정기’ 탓이었다. 수인들이 한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발정기 시즌에 고생을 하는 이유가 바로 말도 안 되는 성욕 탓이었다. 그들에게 성범죄자 프레임이 씌여 기피하게 된 것도 상통하는 이유에서였다.

수인들 역시 그 안쪽의 존재는 범죄를 기피하는 이성적인 현대인이었기에, 다들 최대한 범죄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참으려 한다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그 한계의 경계선에, 지금의 예진이 도달한 상태였다.

‘이래서 오늘은 병문안 안 온댔는데...’

동생이 복숭아가 꼭 먹고 싶다고 하지만 않았으면, 그리고 오늘이 동생의 생일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발정기’가 찾아온 수인들은 그 상태이상이 끝날 때까지 집에 박혀 있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였고, 예진 역시 그와 다를 바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진 역시 결국은 일반인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달려들어 범죄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해주면 더 기분 좋나?”

그의 손이, 머리뿐만이 아니라 턱을 긁어주기 시작했다. 예진은 그에 대답 대신 더 큰 골골송으로 화답했다.

"후후, 좋나 보네."

아무런 의도도, 흑심도 없이 이쪽의 기분만을 생각한 호의만으로 이루어진 행동. 그리고 저 나긋나긋한 말투와 눈빛.

저런 순수하고 단순한 모습이 자신을 더 자극한다는 것을 모르는 게 제일 문제였다.

‘지금 배빵 한 번만 때리면, 죽겠지?’

남몰래 흘러내린 침을 닦아내며, 그녀는 속으로 참을 인자를 반복해서 새겨야만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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