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11화 (11/59)

〈 11화 〉 5. 병실에서

* * *

­꼬르륵.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난데없이 뱃속에서 부끄러운 소리가 났다. 내가 헛기침을 하며 잔뜩 홀쭉해진 배에 손을 올리자, 예진이 쪽에서 먼저 배가 고프냐고 물어 왔다.

“혹시 병원 식사 시간이 언제인지 알아?”

배가 고프다는 뜻을 돌려 말한 완곡한 대답에, 예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병원식이 언제 나오는지는 알고 있지만, 지금은 드시면 안 돼요. 일주일 동안이나 잠들어 계셨으니 평범한 식사는 그동안 파업한 상태였을 위장이 못 버틸 테니까요.”

“아, 그렇겠네.”

“일단 의사 선생님부터 불러 올게요. 아프신 곳은 없는 거죠? 혹시 많이 아픈데 일부러 티를 안 내고 참고 있다거나...”

그녀의 걱정 어린 말투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전혀 안 아파. 배가 좀 고픈 것 말곤 완전 멀쩡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알겠어요. 그럼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응, 알았어.”

그렇게 예진은 병실을 밖으로 다시 떠났다. 아마 몇 분이면 다시 돌아오겠지.

나는 그녀가 내게 건넸던 스마트폰을 살펴보았다. 신상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쓰던 것보다는 좋은 제품이었다. 잠금은 걸려 있지 않았다.

병원 와이파이에 이미 연결되어 있었기에, 인터넷에 쉽게 접속할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밀린 새로운 영상들이나 소설을 즐기고 있는데, 옆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음...언니?”

“어, 일어났어?”

예진의 동생, 예림이가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비몽사몽한 모습으로 눈을 비비며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소동물을 보는 것 같아 귀여웠다.

“언니가 아니었어... 그럼 누구?”

“아직 잠이 덜 깼나 보네. 더 잘래?”

바닥 밑으로 흘러내린 이불을 다시 덮어 주며 물으니, 눈을 감은 채로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더니 이불을 잡아 올리던 내 손을 순식간에 잡아끌었다.

"어어??"

­풀썩.

숙이고 있던 몸이 확 당겨져 침대 위로 엎어졌다. 이불로도 차마 가리지 못하는 예림의 굴곡에 얼굴을 붉히기도 잠시, 잠이 덜 깬 듯한 더듬거리는 손길이 내 허리와 목덜미를 순식간에 붙잡았다.

“히히, 못 가...”

순식간에 병원 침대 한가운데로 끌려 들어오게 된 나는, 그녀의 단단한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버둥쳤다. 얼굴의 표면으로 느껴지는 예림의 넓은 마음의 감촉은 분명 기분좋긴 했지만, 너무나 넓은 마음 사이의 골이내 입과 코를 아예 원천봉쇄한 탓에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읍,읍!”

입이 막혔으니 소리를 쳐서 예림이를 깨울 수도 없었다. 답은 내 힘으로 이 상태를 벗어나는 것뿐인데...

‘예진이도 각성했나 보네. 큰일 났다.’

나름 일반인 수준의 근력을 되찾은 나였지만, 온 힘을 다해 힘을 주어도 내 몸을 감싼 그녀의 팔과 다리는 요지부동이었다.

분명 예림이와 예진이는 둘 다 근접 계열 직업군이었다. 예진이는 그나마 민첩에 스텟을 투자하는 파이터 계열이었지만, 예림이는 힘에 모든 것을 투자하는 상남자 직업인 광전사 쪽이었다.

광전사, 흔히 버서커라는 이명이 있는 그녀의 직업의 특징은 근력에 보너스 스텟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광전사는 당연히 전사 계열 직종이기에 대부분의 스텟 역시 근력 쪽에 투자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러므로, 아마 대충 계산해 봐도 예림이의 근력 스텟은 150은 훌쩍 넘을 터. 근력 스텟이 두 자릿수도 안 되는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으...머리가 어지러워...’

숨이 막히니 의식이 조금씩 흐려져 갔다. 이렇게 허무하게 질식사를 해버리고 마는 건가. 그것도 친한 지인의 여동생의 가슴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이없는 죽음을 선정해 수여한다는 상이 있다고 들었는데, 올해의 그 상의 수상자는 내가 될 것이 분명했다.

‘살, 살려...’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

“우음..?”

예진의 동생, 예림은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깊이 잠든 뒤엔 웬만해선 잘 일어나지 않는 그녀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깨어난 이유는 하나였다.

‘뭐지? 생리 터졌나?’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감촉. 생리가 터지는 일은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씩은 있는 일이었기에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이곳이 병원이고, 병원 시트를 더럽힌 일은 여러모로 처리가 곤란해지겠지만­ 큰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분명 예정일은 한참이나 남아 있었는데...’

유저가 된 후로 완전히 새롭게 변한 생리주기에 따르면, 다음 생리 예정일은 일주일도 넘게 남아있었다. 물론 완전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이번 납치 및 인신매매 미수 사건 당시에, 그녀는 심한 폭행에 며칠 동안 노출당했었다. 어쩌면 생리 주기가 불안정해진 것도 그 탓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자신의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들췄다.

“...어라?”

붉게 물든 상태일 줄 알았던 시트가, 전혀 다른 색을 띄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오, 오빠?”

오빠, 그러니까 현재는 생물학적으로 언니였지만, 과거에는 오빠였던 사람이, 자신의 가슴 속에 머리를 파묻은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오빠의 다리 사이를 중심으로, 따스하고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와 주변을 적시고 있었다.

인터넷을 뒤지던 도중, 우연히 용족들의 소변은 무색무취라는 썰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이런 식으로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천천히, 그러니까 오빠가 깨지 않도록 자리에서 일어난 예진은, 자신의 팔에 난 붉은 자국을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품에 정신을 잃은 채로 발견된 오빠 역시 같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거 설마...’

눈앞에 잠들어 있는 오빠, 그러니까 수현의 나이는 올해로 스물셋. 평범하게 잠든 사이에 오줌을 지릴 만한 나잇대는 전혀 아니었다. 관련 지병이 있다는 것 역시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이번 실금의 원인 제공자가 따로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러한 원인 제공자로서 유력한 범인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 그러니까 예림이었다.

예림은 잠버릇이 나빴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끌어안으려 드는 잠버릇은 사람에게도 적용되어, 예진을 꽉 끌어안아 귀찮게 한 적도 많았다.

문제는, 각성 이후에는 그러한 잠버릇이 단순한 헤프닝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말도 안 되는 근력 탓에 누군가를 끌어안으면,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은 자신이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품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실제로 얼마 전에 병원 침대 옆에 위치한 보조 침대에서 잠을 청하던 예진 역시 비슷한 꼴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녀 역시 비슷한 근접 계열 직업군의 유저라서 자력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다행히도 큰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았었다.

‘그런데 오빠는... 근력 스텟에는 거의 투자하지 않는 원소 마법사였었지, 아마?’

방금 전에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 수현의 머리는 자신의 가슴팍 한가운데 파묻힌 상태였다.

'분명, 내 잠버릇 탓에 숨이 막히는데도 근력의 차이 탓에 전혀 저항하지 못했겠지...'

...그제서야 모든 증거와 상황들이 들어맞았다.

자신의 나쁜 잠버릇 탓에 끌려온 오빠가 숨이 막힌 채로 정신을 잃었고, 자연스럽게 온 몸에 힘이 빠진 신체가 결국 스스로 생리 현상을 조절하지 못해 이 사단이 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오랜만에 오빠에게 혼날 수 있을지도?'

제대로 대형 사고를 쳤음을 깨달은 예림의 얼굴이,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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