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7. 지위역전
* * *
“...어라?”
나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난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네요. 밖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셋 중 유일하게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던 예진이 밖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바깥의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유리창 값만 배상하면 될 것 같았다.
‘만약 지나가던 사람이 맞았다면...’
으으,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일주일 전에도 사람들을 죽인 적이 있지만, 그때는 일단 피는 튀기지 않았었으니까.
아직 시체에 대한 면역은 그렇게 고드름에 꿰뚫린 시체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 까진 없었다. 오히려 피에 대한 두려움은 인신매매 미수 사건 탓에 더 심해진 감이 없잖아 있었다.
독에 중독되어 제대로 못 움직이는 상태에서 피가 계속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느낌을 겪어 본 사람이 있다면 피를 보는 것에 PTSD를 갖게 될지도 몰랐다.
오랜 커뮤질 덕에 고어물 낚시글로 비위를 단련한 나 정도니까 이렇게 정신적으로 충격받는 일 없이 버티는 것이었다. 아니면 단순히 몸이 바뀐 탓에 정신력이 강해진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앞으로 마법을 쓸 때는 한 번씩 더 생각하고 쓰기로 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피가 튀기는 건 차치하더라도,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되면 잠자리가 편치 못할 테니까.
“일단 마법에 맞은 사람이 없는 건 다행이간 한데, 밖에 사람들이 아예 없네? 별로 없는 것도 아니고...”
병원 근처는 번화가였고, 오늘의 요일은 토요일. 분명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놀러 나온 사람들로 붐벼야 할 거리가 썰렁하게 비어 있었다.
“아, 그건... 이것도 설명해드려야 하나?”
“설명해드릴게 뭐가 있어. 그냥 이러면 돼.”
스킬 사용을 단번에 성공시킨 걸 보고 현타가 온 듯 한참을 무기력하게 있던 두 사람이 내 질문을 듣더니 침대를 뒤지기 시작했다. 뭘 찾냐고 했더니 티비 리모컨을 찾는다길래, 내 베게 밑에 있던 걸 빼서 던져 줬다. 그걸 능숙하게 받아낸 예린이가 버튼을 몇 개 누르자 이내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아읏, 거기, 좋아앗♥
언니, 느끼는 모습 귀여워요..
티비가 켜지자마자 송출된 화면은 살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누가 이걸 보다가 채널 전환도 안 해 둔 채로 꺼놨는지 모르겠지만 대충 보니까 여자끼리 잔뜩 해대는 내용의 성인영화인 것 같은데...
“...저거랑 거리에 사람 없는 게 무슨 상관인데?”
“...”
“...”
두 자매는 아무런 대답 없이 채널을 돌렸다. 우리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바닥의 타일만 바라봤다. 힐끗 옆을 보니 그 표정 변화가 없던 예진이마저 얼굴이 붉어진 것이, 저런 쪽에는 전혀 면역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하지, 우린 다 모솔이니까.’
셋 다 모태솔로에 숙맥 중 숙맥인 이상, 남자친구는커녕 남사친도 몇 없으리라. 당연히 그쪽 경험도 전무하겠지. 이런 쪽에 면역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너희가 저런 영화를 직접 찾아본 것도 아니고, 단순 사고에 부끄러워할 것 없다며 그녀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려던 찰나, 금방금방 바뀌던 채널 전환이 멈추고 살색으로 가득한 장면 대신 공영 방송사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김형인 특파원입니다. 부산 해운대 아이파크에 나와 있습니다. 많은 고층건물들과 아파트에서 방화와...
헬기를 타고 있는 듯 요란한 프로펠러의 소리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반쯤 무너진 고층빌딩들과 검은 연기로 가득한 하늘까지.
현실이 아니라, 재난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뭐야, 전쟁이라도 났어? 저기는 또 왜 저래. 북한이나 중국이 드디어 미쳐서 전쟁이라도 선포했나? 아니, 저긴 부산이니까 위치상 일본?”
반파된 건물들을 가리키며 묻자, 한숨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전쟁은 아니고, 단순한 폭동에 가까워요. 그동안 평범한 사람들한테 핍박받던 유저들이 전국에서 건물을 부수거나 폭력 시위를 하며 깽판을 치고 있어요. 절도죄부터 살인, 강간까지 저지르는 죄의 경중도 다양하고요. 평범한 사람 백 명이 달려들어도 안 두려운 신체능력에다 스킬까지 사용할 수 있는 초인이 되었는데, 그동안 억눌러왔던 것들이폭팔하지 않는 게 이상하죠. 물론 저희처럼 저런 직접적인 복수를 원하지 않는 얌전한 중도파, 온건파 유저들도 많지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빠도 유저라서 차별받았던 경험은 많이 해 봤을 거예요. 저 같은 경우도 그냥 길을 지나가다가 물세례를 맞거나 얼굴에 침을 뱉는다던가 같은 일들도 경험해봤죠.”
"이런 걸로 자랑하고 싶진 않긴 한데...난 멱살도 잡히고 뺨도 맞아봤어. 그래서인지 저 사람들의 마음까지는 이해가 가... 물론 그게 저들의 행동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 그동안의 유저들이 받아온 핍박과, 일반 시민에게만 유리한 법들의 제정은 점점 유저들의 인내심을 한계에 가깝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오죽하면 일부 극단적인 유저들 커뮤니티 사이에서 일반인들은 증오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일 정도니까.
나만 해도 상태창이 정상화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게 이유 없이 내게 시비를 걸어 왔던 사람들이었으니까...
아마 예림이와 예진이가 아니었다면 티비 속의 저런 사람들과 비슷한 짓을 하고 다녔을 것 같다.
솔직히 지금 당장 날 욕하고 괴롭혔던 사람들을 내 눈앞에 데려다 준다면, 전부 죽이진 않더라도 팔다리 하나씩 불구로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아, 버스에서 내 뺨을 때렸던 아저씨는 특별히 뺨에다 직접 고드름을 박아넣어 줄 생각이다. 물론 내 눈에 띄면 말이지.
그나마 집 밖에 잘 안 나가는 나마저도 이 정도나 울분이 쌓여 있는데, 다른 일반적인 유저들이 받았을 핍박이나 테러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런 식의 규모까진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빠도 그럼 잘 알겠네요. 그동안 우리 유저들이 참아온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거."
“나도 유저니까 당연하지. 특히 내가 다른 종족이었으면 더했을지도 몰라. 악마족이나 늑대인간 종족들은 밖에 나가면 매일 한 번씩은 물세례를 받거나 시비가 걸린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나마 건물 정도만 부순 정도라 다행인가... 나는 솔직히 악마나 늑대인간 유저들이 집단 학살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거든. 특히 늑대인간들. 종족특수능력 탓에 광폭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그것 때문에 제일 많이 핍박을 받았으니까.”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답을 맞추셨네요. 짐작하신 대로,얼마 전에 유저들이 일으킨집단 학살극이 있었어요.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늑대인간 유저 몇몇이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무차별적으로 행인들을 찾아 죽였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군에 의해 사살당하긴 했는데, 그때까지 그들이 죽인 사람의 수만 수백에 달한 탓에... 아주 난리가 났죠. ”
“...와우. 그건 조금 심각하긴 하네.”
"이런저런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그 사건 때문에 사람들이 주말인데도 밖에 안 나오려고 하는 거에요. 전국에서 상시다발적으로 테러나 그에 준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두번 다시 그런 학살이 일어나지 않을 보장이 없다 이거죠. 다들 죽기는 싫은 건 한마음이니까."
"뭐, 다 자업자득이지. 기득권층 대부분이 나서서 유저들을 핍박했으니까..."
딱히 그 학살 사건의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심지어, 일반인들의 차별과 핍박에 자살을 택한 유저들의 수를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학살은 우리를 핍박하거나 노골적인 차별에 무관심으로 일관한 사람들에 대한 나름 합리적인 복수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극단적인 유저들의 무책임한 범죄행각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동안 참아 왔던 세상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울분 탓에 그들의 행위가 정당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이 이렇게 변한 뒤로,자꾸만 생각이 저런 쪽으로 흐른다. 유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죽어도 상관없다거나,세상에 인구가 이렇게 많으니 환경오염 해결을 위해선 살처분이 시급하다는 등등의 말도 안 되는 생각들.솔직히,정신과라도 가야 하나 고민했다가 실제로 거길 갔다가는 내가 정신병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안 갔었다.
문제는, 원래도 자꾸 그런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저번에 상태창을 각성한 뒤부터 더더욱 인간의 목숨을 파리목숨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여기게 되는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조만간 진짜 정신과를 찾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짝짝. 나는 내 뺨을 스스로 두드리며 부정적인 생각을 씻어냈다. 여기서 제일 연장자인 내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면, 예진이나 예림이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이 갈지도 모른...
“맞아요,나쁜 일인 것만은 아니죠.저희를 나쁘게만 봤던 시선이,이제는 아예 두려워하는 시선으로 달라졌으니까요. 단순히 저희를 업신여기는 것보단 일방적으로 저쪽에서 이쪽을 두려워하는 편이 더 낫죠.이제 저희가 길가를 걸어갈 때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즐겁지 않아요? 남들이 저희를 볼 때마다 두렵다는 표정을 짓는 거.”
"저도 동의해요. 생판 처음 보는 사람한테 난데없이 욕을 듣는 건 아무리 저라도 기분이 나쁘거든요. 차라리 사람들이 좀 죽어서 상황이 이렇게 되는 편이 더 살기 편리하달까...유저라는 사실을 밝힐 때마다 욕을 듣는 건 이제 질렸어요."
“...”
사람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게 된 것은 아무래도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