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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14화 (14/59)

〈 14화 〉 7. 지위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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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냈는데, 얘네들은 아예 한 술 더 떴다. 사람들이 죽은 게 잘된 거라는 둥, 차라리 이런 현실이 전보다 낫다는 둥... 이 애들도 상당히 잘못된 가치관을 지니게 된 것 같았다. 문제는 내 마음도 저들의 이야기에 동조하고 있다는 거겠지만.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의 쫑긋거리는 고양이귀를 바라보았다. 하긴, 예진이는 나같은 것보다 훨씬 나쁜 경험을 많이 했을 것이다. 유저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 위에 동물귀만 달렸다 하면 늑대인간인줄 알고 내쫒거나, 시비를 걸기도 했으니까. 수인이란 종족이 따로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실제 늑대인간보다 수인들이 더 혐오범죄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런 점까지 따져 보면 저런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저런 생각들은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연장자로서, 더 올바른 마인드를 가지도록 이끌어 줘야 하겠지.

“그건 그렇고, 아무리 유저가 강하더라도 경찰이나 군대가 있잖아. 거긴 일 안 해?”

“얼마 전에, 그러니까 일부 극단적인 유저 커뮤니티들이 모여 성명문을 냈는데요... 읽어 보세요.”

예진은 자신의 스마트폰의 화면에 ‘성명문’이라 써져있는 문서를 띄워 이쪽에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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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 성명문

­핍박받았던 유저들은 일반인들에게 복수를 할 것임.

­공권력이 방해하려 든다면, 암습 스킬을 지닌 암살자 유저들이 가장 먼저 수뇌부를 노릴 것.

­죽기 싫으면 알아서 판단하시길. 참고로 암살자 직업의 은신 스킬은 군용 레이더에도 안 잡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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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로 이루어진 간단한 성명문이었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미쳐돌아가고 있었다. 일반 시민들한테 화풀이를 할 건데, 그걸 막으면 죽이겠다니. 그냥 미친놈들 아니야 이거?

“아니, 이런 단순한 협박이 통한다고? 일반 사람도 아니고 하나의 국가를 상대로?”

“얼마 전에 국무총리께서 암살자 유저의 습격으로 돌아가셨어요. 안전가옥의 가장 안쪽의 벙커에서 지내고 계셨는데, 범인은 발견되지 않았죠. 사인은 자상으로 인한 과다출혈 쇼크였어요.”

“참 우연히도, 그 국무총리님은 그 일이 일어나기 몇 시간 전에 기자회견에서 저런 극단적인 유저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셨었죠. 그 일이 있었던 뒤로 정치권은 침묵 중이에요. '어떤 방비를 하든 유저들은 목표로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사건으로 증명된 거죠.사람들은 그런 정치인들을 보고 시민들의 목숨보다 자기들 목숨이 더 소중해서 저러는 것 아니냐고 욕하고 있고요. 난리도 아니에요 지금.”

예진은 채널을 몇 개 더 돌려 다른 방송사의 뉴스를 화면에 띄웠다. 사람들이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평화시위고 뭐고 몽둥이랑 화염병을 들고 난리를 치는 모습이 역사책 속의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다.

"보세요. 정말로 난리도 아니죠?"

“...그럼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데? 저기 부산 해운대처럼 건물이란 건물들은 다 부서지고 난리인 건가?”

“수도권과 큰 도시들은 온건파인 유저들과 군인들, 정치인들이 합세해 치안을 유지하고 있지만...대부분의 지방은 현재 난리가 난 상태죠. 국토의 절반 이상이 무정부 상태라고 봐도 무방해요. 당장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요.”

“여기 근방은 괜찮고?”

“여기 근방 대부분은 유저들이 지키고 있기도 하고, 병원이나 학교 같은 기관은 대체로 안전해요. 극단적인 유저들도 병원이나 공공 기관을 건드리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되도록 공격을 피하는 중이거든요. 그리고 여기가 그 어디보다 안전한 이유는...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엔 뭣하지만,저희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것도 그렇겠네. 너희만한 고인물은 어디 가서 찾기 힘드니까...”

'판타지아 온라인'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워낙 자유도가 높기로 유명한 게임이기에 플레이어 간의 전투(PVP)가 주 목적이 아닌 유저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현실에선 마련이 불가능한 자신의 집을 꾸미거나, 채집 혹은 수렵, 낚시 등의 컨텐츠를 즐기는 유저들 말이다. 이들 역시 신체능력 자체는 일반인들보다 훨씬 강했지만, 전투를 주 목적으로 키운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PVP를 주로 즐기던 유저들에 비해 본신의 힘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이 병원을 지키는 존재들이 그 PVP를 위주로 즐기는 유저들 중에서도 랭킹 0.01%내의 상위권 유저들이라면 어떨까. 비전투 성향인 유저들은 물론이고, PVP좀 해 봤다는 강한 스텟을 지닌 사람들도 되도록 이 병원을 피해가려 할 터였다.

"어떤 유저가 찾아오든 90퍼센트 이상은 단순한 스테이터스 스펙만으로 찍어누를 수 있죠. 만약 상위권 10%의 유저가 온다면..."

그녀는 주먹을 가슴에 모아 [자세]를 사용했다. 붉은 투기가 다시금 그녀의 몸을 감싸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상태에서제 얼굴을 보여주면 알아서 꼬리를 말고 도망가더라고요. 나름 PVP좀 하는 놈들은 다 제 얼굴을 알고 있으니까요"

서버 전 직업 PVP랭킹 2위였던 예진이와 34위였던 예림이. 수십만 명의 PVP유저 중 최상위권의 스펙을 자랑하는이 두 사람이 지키는 이 병원에 쳐들어오는 선택을 할 만한 미친 유저는 없을 것이다. 다들 판타지아 온라인의 유저였으면 예림이는 몰라도 예진이의 얼굴은 알고 있을 테니까. 적어도 생각이 가능한 머리가 달려 있는 한 그녀의 위협을 보면 달아나겠지.

"그럼 나는 안심하고 쉬어도 되겠네. 근데... 깨먹은 이 유리창은 내가 물어내야 하는 건가?"

"딱히 안 그래도 될 걸요.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유저들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것만 해도 병원 측에선 호재니까 딱히 물어내라곤 안 할 것 같아요. 저희가 다른 유저들의 침입을 막아 줄 테니까요. 일종의 공생 관계라고 볼 수 있어요. 여기 원장에게 말해두면 방도 바꿔줄 걸요."

"그럼 그렇게 하자. 이대로 내버려두면 감기 걸릴 것 같아. 일단 응급처치는 해 두자..."

나는 게임상에선 상대의 시야를 가리는 용도로 사용하던 얼음벽을 형성하는스킬을 최대한 약한 출력으로 사용했다. 마나가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생소한 감각과 함께,이내 얼음이 점차 부피를 넓혀 가며 깨진 유리를 치우고 빈 창문을 메꾸기 시작했다.

"얼음으로 고치면 오히려 더 추운 거 아니에요?"

창문이 다 메꿔질 즈음, 예림이의 질문에 나는 스킬에 들어가는 마나를 끊어내며 대답했다.

"적어도 바깥의 찬 바람이 들어오는 것보단 낫잖아.무엇보다 내 마나로 이루어진 얼음이니까 내 힘이 다하기 전까진 녹을 일도 없고."

"그건 그렇네요."

내 말에 수긍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예진이 갑자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녀는 핸드폰의 잠금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의사쌤이 원체 몸이 건강해서 죽 정도는 먹어도 될 거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죽을 주문했는데 지금 도착했다고 하네요. 제가 받아올테니 오빠는 누워 있어요."

그녀의 핸드폰에주문한 죽이 도착했다는 배달앱의 메세지가 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달을 하는 가게들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탄했다.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사람의 목숨보다도 가치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럼 그거 받으러 가는 김에 잠깐 바깥 좀 걷자. 여기 계속 있으려니까 좀이 쑤셔."

온 사방이 하얀색인 병실은 어딘가 자꾸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제안하니, 예진이 누워있던 예림을 발로 차며 대답했다.

"그러죠 뭐. 야, 일어나. 나가게."

"아­ 일어나기 싫은데... 안 나가면 안 돼?"

"안 돼. 밖에 나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네가 전위 서야지. 오빠는 법사고, 나는 파이터인데 건틀릿이 없으니 전위는 무리야."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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