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7. 지위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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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기 싫다며 버둥거리던 예림을 끌고 내려온 병원의 정문, 우리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이런 위험한 시국에 누가 목숨까지 걸어 가며 배달부 일을 하나 싶었는데, 배달 일을 하시는 분도 유저였다. 심지어 일반적인 유저도 아닌 켄타우로스 종족이었다.
병원의 유리문 앞을 가득 채울 정도의 거구의 모습이 굉장히 위협적이라 그런지, 병원 측에서도 경계를 하기 위해 사람을 몇 명 보낸 모양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배달부에게 경계심 어린 눈초리만 보내고 있었지만, 핑크색 외투를 입은 아줌마는 언성을 높이며 켄타로우스 배달부와 싸우고 있었다.
“이젠 그 괴물들이 병원까지 공격하는 거냐? 양심도 없는 지옥에 떨어질 씨그럴 놈들 같으니!”
“아니에요! 전 그저 배달부일 뿐이에요. 몇 번째 말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저는 병원에 계신 분들을 딱히 해칠 생각은 전혀 없다고요!”
“변명을 들을 생각은 없어. 빨리 나가! 이곳에 너 같은 괴물들이 있을 자리는 없”
<하급 마법:="" 침묵(silence)=""/>
켄타우로스 유저에게 손가락질까지 해대며 막말을 하는 사람에게 간단한 마법을 걸었다. 사냥을 할 때 몬스터들이 죽는 소리가 시끄러울 때나 종종 사용하던 쓸모없는 기초 마법이 이런 데에 쓰일 줄이야.
푸른 마나의 기운이 막말을 해대던 아주머니를 감싸자, 병원 안의 그 누구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벌써 두 번째 스킬을 배우시다니...”
“아니, 그냥 적당히 마나만 조작하면 알아서 스킬이 발동된다니까? 딱히 하나하나 배울 필요도 없는데...이게 뭐가 어렵다고 그러는지.”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적어도 저희한텐 어려워요.”
"..."
두 사람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억지스러운 감탄을 뒤로하고, 나는막말을 해대던 아지매와 시선을 마주쳤다.
“...!”
도대체 무슨 짓을 했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눈을 부릅뜨는 아주머니. 예전이라면 이런 상황에선 기가 팍 죽은 채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했겠지만...
내가 누구?
‘판타지아 온라인 pvp랭킹 3위’
스킬도, 상태창도 있는 이상... 이런 잡몹이나 다름없는 아지매에게 쫄 리가 없지.
[하급 마법: 슬립]
저레벨 몬스터에게나 먹히는 양학용 cc기 스킬에 아줌마의 육중한 몸이 스르르 무너졌다. 그녀의 몸을 받아 옆에 있던 소파에 던져 놓고 나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전부 몰려 있었다.
경악, 선망, 두려움,놀라움, 감사함 등등 다양한 감정이 담긴 시선들이 느껴졌다.
그 중에서도 감사함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낸 사람은, 당연하게도 방금 전까지 곤욕을 치루고 있던 켄타우로스 유저였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저렇게 시비를 걸어와서... 유저들이 상태창을 각성했다는 뉴스 이후론 저런 종자들은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제가 진짜 극단주의를 지지하는 유저였으면 어쩌려고...”
나는 소파에 누워 세상 모른 채 자고 있는 아줌마를 한심함을 담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런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자연도태 되는 거죠 뭐. 밖에 나가서도 저러고 다니면 금방 죽을 테니까요.”
그렇게 간단한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평범한 사람은 가뿐히 뛰어넘는 높은 키에, 머리 위에 달린 뿔이 정말 신화 속의 종족과 꼭 닮아 있었다.
그렇게 현실에선 처음 보는 켄타우로스 유저의 신체를 감상하던 도중, 말 특유의 하반신의 거대한 그것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큼큼...”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깨달은 유저가 헛기침을 했다. 그 불편한 기색에 화들짝 놀라, 나는 애써 다른 곳을 바라보며 아무 일도 없었던 척을 했다.
하반신이 말인 켄타우로스들에게 맞는 바지가 있을 리가 없으니, 대부분의 켄타우로스 유저들은 저런 식으로 하반신에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는다고 들었다.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기에 신기해서 그쪽을 보고 있었지만... 하반신에 걸친 게 없다고 시선을 그곳에 두는 것은 당연히 실례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허허로이 웃던 그는 헬멧을 벗으며 허리춤에 묶여 있는 배달통을 꺼내들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플라스틱 용기 안에 깔끔하게 포장된 죽과 반찬들이었다.
“혹시,전복죽 시키신 분 맞으신가요?”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예진이가 준 카드를 건넸다. 원래는 내가 사야 하는데, 납치되어 있는 동안 지갑도 사라졌다고 하길래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갚아야지 뭐.
“네, 맞아요. 여기 카드요.”
카드를 받아들자마자순식간에 결제를 마친 배달부는 카드와 영수증을 돌려주며 꾸벅 인사했다.
“결제되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잘 가요.”
그렇게 인사를 마친 켄타우로스 종족의 유저는 말발굽 소리 몇 번과 함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작별 인사로 손이라도 흔들어주려 했는데, 손을 들기도 전에 가버리다니.
“...대충 어림잡아도 웬만한 오토바이보다 빠르겠네. 앞으로는 켄타우로스 배달부의 시대가 오는 건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예진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예진이 그에 동조하며 입을 열었다.
“정말 그럴지도... 연료값이나 수리비도 안 나올 테니까. 순수한 신체의 능력만 저 정도니까... 저기에 스킬까지 쓰면 배달 속도도 더 빨라지겠죠?”
이쪽을 향한 질문이었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나는 켄타로우스 종족 캐릭터를 키우던 지인을 떠올렸다. 각종 이동기를 자랑하면서 빠르게 질주하는 속도는 가히 ‘판타지아 온라인’에서 나오는 종족 중 최속에 달했다.
아마 그 인간이 맵 전역을 일주하는 데에 20분이면 충분하다고 했었나. 판타지아 온라인의 맵을 일주하려면일반적인 인간 유저의 속도로는 이동기까지 써가며 몇 시간을 달려야 한다. 이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이동속도는 확실히 파멸적이긴 했다. 같은 유저들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는 속도라니.
나는 그러한 사실에 기초해, 앞으로의 켄타우로스 종족들의 전망을 희망적으로 이야기했다.
“아마 기존의 배달부들의 자리를 다 켄타우로스 유저들이 차지하지 않을까 싶네. 심지어 켄타우로스 종족은 인도로도 다닐 수 있잖아? 배달 시간이 확 줄어드는 건 필연이겠지. 덕분에 앞으로 켄타우로스 종족은 일단 직업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켄타우로스 종족은 미노타우르스, 리자드맨 종족을 선택한 유저들과 더불어 신체의 변화가 가장 심하고 극적인 유저들 중 한 부류였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배척하는 것이 본능인 인간들답게, 사람들은 그들을 괴물이라고 부르며 멀리하기 일쑤였다.
당연하게도, 평범한 문에 들어가거나 버스에 타는 등의 일상적인 생활마저 불가능해진 유저들은 전부 직장에서 잘리거나, 직장 동료들의 무언의 압박 속에서 자진으로 퇴사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터지고 일반인들이 극단적인 유저들의 공격 대상이 되면서, 켄타우로스 종족으로 변한 유저들이 오토바이 배달부를 대신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적어도 같은 유저인 그들을 공격할 사람들은 없을 테니까.
아마 유저들을 싫어하고 배척하는 음식집 사장들도 결국 손님이 안 찾아오고 바깥이 위험한 상태에서 일반인 배달부를 쓸 수는 없으니 언젠가 켄타우로스 종족들을 배달부로 뽑게 되겠지. 마침 켄타우로스 종족은 나름 게임 내 인기 종족이라 인구수도 꽤나 될 거였다.
대부분의 켄타우로스 유저들이 종족 특성인 [질주 본능]을 해결하기 위해 건물들이 없는 시골로 이주한 탓에 못 봤을 뿐이지, 그들은 수인과 인간, 늑대인간 다음으로 많은 인구수를 자랑하는 종족이었다.
만약 그들이 도시로 와서 배달부 일을 하게 된다면, 그들은 원하는 대로 도로를 달릴 수 있어 [질주 본능]의 페널티를 해결할 수 있게 되고 음식집 사장들은 배달 알바가 오토바이를 쓸 필요가 없으니 인건비가 줄어드는 기적의 상호이익이 성립한다.
‘평범한 배달부들은 다 실업자가 되겠구만.’
그 외에도,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밖에 못 나오는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의 사회 분위기는 꽤나 빠르게 변할 터였다. 켄타우로스 유저가 배달부로 쓰이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유저들의 취업길이 열리겠네요. 밖으로 못 나오는 위험한 지역에 사는 일반인들은 죄다 직장에서 잘릴 것 같고. 아마 유저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겠죠.”
“그러게. 나라가 한동안 난리겠네. 나도 이제 취업할 자리를 알아봐야겠어. 언제까지고 지원금을 받고 근근히 살 수는 없으니까...”
앞으로 우리나라의 사화가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해 대화하며, 나는 죽을 든 채로 병원 한바퀴를 돌았다. 시원한 겨울의 공기가 폐를 통과하니 온 몸이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간단한 산책을 하며 병원 밖도 잠시 구경했는데, 정말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 근처가 번화가인 만큼 거리마다 사람들로 가득해야 할 시간대인데, 한 블록에 서너 명 정도만 보일 만큼 온 사방이 한산했다.
사람들이 줄어든 만큼,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은 상태거나 열더라도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음식점 말고 다른 자영업자들도 난리가 나겠어...”
“그러게요.”
그렇게 잠시 주변 거리를 돌아본 우리는, 짧은 산책을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 이상 돌아다녔다간 추워서 뿔이 얼어 버릴 테니까.
걱정했던 위험한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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