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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16화 (16/59)

〈 16화 〉 8. 제안

* * *

내가 오랜 잠에서 깨어난 지 며칠 뒤, 나는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라는 의사의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예진이의 도움을 받아 퇴원 수속을 밟기 시작했다.

“오빠, 병원장님께서 부르셔.”

짐을 전부 챙긴 후 침대를 정리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예진이가 찾아와 말했다.

“응? 왜?”

“나야 모르지. 일단 찾아가 봐. 방 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내 손에 들려 있던 이불을 확 채가며 등을 미는 손길에,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야야, 알겠으니까 밀지 좀 마.”

그녀의 손을 몸에서 떼어낸 다음, 나는 예진이의 어깨를 툭 치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너 요즘 말이 짧다?”

“놓을 때도 됐잖아.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만데.”

“그건 그렇긴 하네.”

게임 속에서 알고 지낸 세월만 거의 몇 년째. 지금껏 존대를 해왔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됐고, 빨리 다녀오기나 해. 예림이랑 오빠 퇴원 기념으로 외식하기로 했잖아. 예약 시간도 얼마 안 남았어.”

“지금 몇 시지?”

나는 원래 시계가 걸려 있던 벽지 부분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멀쩡한 시계 대신, 괴상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지난 며칠간 예진이와 예림이가 스킬을 연습한답시고 남긴 흔적이었다.

­와! 처음으로 성공했어! 오빠! 봤어? 저 구멍 내가 뚫었­ 으극!

­좋아할 때냐! 벽에 저렇게 큰 구멍이 났는데! 시계도 박살났잖아!

파이터의 공격용 스킬 [권격술]로 강화한 주먹이 구멍을 뚫은 주범인 예림의 머리에 꽃히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났다.

그 사건 덕분에 방 안에 있던 시계는 완전히 고장났고, 또 방을 바꿔달라고 하기엔 양심이 찔린 우리는 아무말 없이 이 병실에서 지내기로 했었다.

덕분에 매번 시간을 확인하려면 직접 폰을 키거나, 예림이나 예진이에게 물어봐서 일일히 확인해야 했다.

“지금 몇 시냐고? 잠시만...”

내 질문에 이불을 품에 안은 채로 핸드폰을 확인한 예진이 대답했다.

“6시 10분. 참고로 음식점 예약해둔 시간은 7시야. 빨리 안 오면 먼저 출발할 테니까 알아서 하든가.”

“그래, 차라리 너네 먼저 가서 음식이라도 시켜 놔. 나는 적당히 이동기 스킬들 써서 가면 되니까.”

"...진짜 개부럽네. 남들은 스킬 쓰고 직접 뛰어 가야 하는데 마법사들은 이동기 몇 번 쓰면 도착이니...”

“꼬우면 근접직업 말고 마법사를 골랐어야지. 으딜 뚜벅이들이 고귀한 법사님들이랑 맞먹으려고.”

예진의 쫀득한 볼을 툭툭 건드리며 놀려대니, 얼굴이 금새 빨개지기 시작했다. 나는 예진의 주먹에 맞고 울먹이던 예림의 얼굴이 떠올라, 그만 까불대고 도망치기로 했다.

“그럼 이만! 먼저 가 있어!”

<하급 마법:="" 텔레포트(teleportation)=""/>

반경 300km내의 사전에 지정해둔 곳으로 순간 이동하는 스킬, 텔레포트. 나는 이 마법을 병원 곳곳에 설치해둔 채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진료실이나 화장실처럼 귀찮게 일어나서 걸어가야 하는 곳에 스팟(spot)을 지정해 두면 다리를 움직일 필요도 없이 텔레포트 스킬 시전 한번으로 원하는 곳에 순간이동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시 마법은 위대해! 법사가 최고다!”

그동안의 여러 굴욕으로 줄어든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중얼거리던 찰나, 갑작스럽게 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겨울 양?”

“핫! 아무것도 아니에요!”

텔레포트 장소로 지정한 곳이 원장님의 사무실 안쪽임을 잊고 있었다. 초면인 사람 앞에서 그런 혼잣말을 해 버리다니, 쪽팔림에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셔서 놀라셨죠?”

“아뇨 뭐... 겨울 양의 신출귀몰함은 병원 내에서 이미 유명하니까요. 순식간에 휙휙 순간이동을 하시는 모습이 많이 목격된다고 하더라고요? 간호사들이나 환자들 사이에선 이미 저희 병원의 마스코트처럼 여겨진다고들 하던데...”

“...마스코트요?”

어쩐지, 최근 들어서 나이 어린 꼬맹이 환자들이 나를 너무 잘 따른다 싶었는데 그런 내막이 있었던 거였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내 모습을 보고 모두가 흐뭇해하는 표정을 짓는 모습이 떠올라,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난 병원의 마스코트 따위가 아니라고. 아이들과 마법으로 놀아준 것도 단순히 애들이 귀여워서 한 일이지, 마스코트 취급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속으로 툴툴대며 사무실 안을 서성이자, 원장이 사무실 구석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앉으시죠. 차를 준비해뒀어요.”

“아, 감사합니다.”

그의 안내에 따라 편한 일인용 소파에 앉았다. 확실히 대형 병원 사무실의 의자라 그런지 품질이 좋았다. 온 몸을 감싸는 소파의 시트가 고급이란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차향이 좋네요. 어디선가 마셔 본 적이 있는 향이에요.”

“신경써서 고른 보람이 있군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사실 내가 아는 차 향이라곤 녹차나 커피 정도밖에 없지만, 예의상 한 말에 저리 좋아하니 양심이 조금 찔렸다. 사무실 한구석에 다기나 찻잎 세트들로 가득하기에 해본 소리인데...

‘나중에 같이 차나 마시자고 하진 않겠지?’

나는 차를 싫어한다. 특히 쓰거나 떫은 것들은 더더욱. 이 차 역시 조금 마셔보니 그런 맛이 나는 부류인 것 같았다.

끔찍한 맛에 썩어들어가는 표정을 다잡으며 찻잔을 내려놓으니, 원장은 그런 나와 눈을 마주치며 용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뭐, 사담은 여기까지 하고. 겨울 양, 아니 겨울 씨. 제가 이곳에 당신을 왜 불렀는지는 알고 계신가요?”

겨울 양에서 겨울 씨로 바뀐 호칭에, 나는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성별이 바뀌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경계심을 조금 끌어올려야 할 것 같았다.

“아뇨. 원장님이 절 왜 이곳에 불렀는지는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있어요. 기껏해야 퇴원하지 말고 남아서 병원을 지켜달라는 제안 정도?”

그러나 어차피 이 병원에는 우리가 빠져도 입원한 상태인 몇몇 유저나 그 일행들이 주거하고 있다.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닌 이상 이 병원을 공격 대상으로 선정할 사람들은 없을 터.

무엇보다 최근 들어서 심각한 상태인 지방 지역들을 제외하면 치안이 회복되고 있다는 뉴스도 종종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안심하고 외식 약속을 잡은 것이기도 했고.

내 예상대로, 원장의 용건은 우리가 남아서 이곳을 지켜 달라는 제안은 아닌 듯 보였다.

“물론 그렇게 해 주신다면야 감사하겠습니다만, 저희는 조금 다른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들어오시죠.”

원장의 신호에, 내 등 뒤에 있던 문을 통해서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대충 열 명은 되어 보이는 그들은 하나같이 허리춤에 권총과 진압봉을 갖추고 있었다.

보아하니 저런 무장 상태와 엄숙한 분위기에 내가 놀라서 기가 죽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나는 진작에 그들이 문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유저가 아니라는 깨닫고 아예 경계 대상에 포함시키지도 않았을 뿐.

‘물론 총기류까지 챙겨 온 건 의외지만... 권총탄쯤이야 [마나 실드]에 막힌다고 들었으니까.’

극단적인 유저 커뮤니티들은 대부분 폐쇄되거나 각종 쓸모없는 혐오성 글들로 가득했지만, 계속 둘러보다 보면 유저의 스킬들과 관련된 종종 좋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몇몇 방어용 스킬들의 강도라던가, 범위공격형 스킬들의 범위 같은 것들 말이다.

실제로 군대와 교전한 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성향의 커뮤니티 유저들에 따르면, lv100 이상의 마법사가 펼치는 <마나 실드="">로 권총탄까진 막을 수 있으며 소총탄을 막기 위해선 다른 스킬들도 동반해야 한다고 했었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도, 마나의 총량에 따라 내구도가 변하는 <마나 실드="">는 소모값도 거의 없는데 웬만한 기본적인 평타나 공격 스킬들은 전부 막아낼 수 있는 가성비 갑인 스킬 중 하나였다. 물론 이런 마나 실드의 대안으로 실드를 파괴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스킬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마나 실드의 가성비가 말도 안 되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과거, 암살자 캐릭터들이 pvp랭킹을 휩쓸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에는 암살자들에게 원콤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시 활성화 시켜두고 게임하곤 했었지.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똑 닮아 있었다. 다만 막아야 하는 것이 암살자의 칼날이 아닌, 총탄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마나 실드로 권총탄을 막을 수 있다'는 정보는 커뮤니티가 원산지기에 완벽히 신임할 순 없는 정보였지만, 콘크리트 벽을 간단히 뚫어냈던 예림이의 [검기]도 내[마나 실드]에 막힌 걸 생각해보면...

'[검기]를 사용한 상태에서의 찌르기가 권총탄보단 관통력이 좋을 텐데, 권총탄도 충분히 [마나 실드]로 막을 수 있겠지.'

적어도 권총탄이 검기처럼 콘크리트 벽에 20cm가 넘는 깊이의 구멍을 뚫을 순 없을 테니까.

저들이 가져온 저 가방 안쪽에 rpg라도 들어 있지 않는 이상, 잘 때를 제외하곤 상시 [마나 실드]를 발동한 상태로 다니는 내게 피해를 입할 방법은 전혀 없었다. 때문에, 나는 전혀 기죽지 않은 상태로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둘러싸인 상태에서도 아무런 동요가 없는 모습, 솔직히 간지나지 않는가. 남자들이라면 한번쯤 꿈꿔봤을 영화 속 남주인공 같은 모습에 사라졌던 자존감이 다시금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내 여유로운 표정을 잠시 지켜보던 양복을 입은 남자들 중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남자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으며, 매우 정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놀라지 말고 들으시길 바랍니다. 저희 측 주장에 따르면,당신이 서버 pvp랭킹 3위라는원소술사 [뿔잡고아기만...”

“잠깐, 멈춰! 아니, 닥쳐! 그런 진지한 어조로 내 닉네임을 말하지 마!”

나는 냅다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그 남자의 입을 두 손으로 막아 버렸다.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에내 스스로마저도 놀랄 정도였다.

소파에 편히 누워 있던 내가 급발진을 하자 놀랐는지, 주변의 남자들이 권총을 꺼내들었다.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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