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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17화 (17/59)

〈 17화 〉 8. 제안

* * *

“다들 총 내려! 나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다!”

'워우, 살벌해라...'

총기에 맞아 다칠 일이 없다는 것을 머리론 알고 있어도, 실제로 총구가 이쪽으로 향하는 상황을 경험하는 것은 생각보다 색다른 일이었다.

겨울은 <마나 실드="">가 잘 펼쳐져 있는 상황인지 확인한 후, 이마의 땀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몸이 튀어나가서...”

“흠흠, 그럼 닉네임은 말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과를 받아들인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신은 과거pvp 랭킹 3위 유저였던, 한겨울 씨가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무슨 용건이시길래 이렇게 살벌한 분위기로 절 찾아오신 거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긴장되는 듯 몇 번 숨을 고르던 남자가 제안한 것은 바로 정부 기관으로부터의 스카우트였다.

“저희는 청와대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저희는 대통령 및 국정에 중책을 맡으신 분들을 경호할 유저분들을 구하는 중에 있습니다. 다른 분들마저 고 최형섭 국무총리님과 같은 노선을 밟아서는 안 되니까요. 그러던 와중, 각각 pvp랭킹 2위와 3위셨던 유저분들이 이 병원을 지키고 있다고 하셔서 찾아온 겁니다.”

“아, 그래서 제가 그 경호원 중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거죠?”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대우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억대 연봉은 물론이고, 공무원으로서 혜택이나...”

“굳이 입아프게 말하실 필요 없어요. 안 할 거니까.”

“...네?”

잘 못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남자에게, 겨울은 가벼운 비웃음을 날려 주었다.

“국가의 개들의 경호원이 되라니.정치권에서 지금까지 유저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는 알고 하시는 말씀이세요?”

이번 정부의 모토는 공정과 평등, 그리고 화합이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이 지향하는 정치 방식은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는 ‘분열정치’였다.

처음에는 남자와 여자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그 다음엔 세대간 갈등을 후벼파 사람들을 갈라세운 뒤 특정 계층에만 혜택을 몰아주어 기득권들을 설득해 표팔이를 하는 정치 방식.

안 그래도 성별의 차이, 세대 간의 차이로 쏠쏠히 이득을 보아 왔던 정치 세력이, ‘유저’라는, 더 공격하기도 쉽고 표 수도 적은 대상들이 나타났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언론에서는 유저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이 쏟아져나왔고,

정치인들은 시민들에게 지지를 얻기 위해 유저들을 배척하는 법안들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청와대, 대통령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피해자가 유저일 경우에는 무시하고, 그 반대로 가해자가 유저이며 피해자가 일반인인 사건은 크게 키워 가며 유저들을 혐오하는 감정을 부추켰다.

유저들을 향한 혐오 범죄가 얼마나 늘어나던 간에, 그 누구도 그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정치인이든, 대통령이든, 일반인이든.

정치인들이 원하는 것은 표심이었고, 일반인들이 원하는 것은 마음 편히 화풀이를 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사회적 약자가 된 유저들을 지켜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그런 위인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유저들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인 비난을 받고 활동을 접었었지.

이 모든 사건들에 대한 반발심이, 유저들이 힘을 얻은 지금 터져나와 부산이나 각 지방에서 이런 난리가 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비극들은 화합이라는 정치 모토는 버려둔 채, 유저들을 강제로 억압한 정치인과 언론들에 대한 반발심 탓에 일어난 일이란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모습이 참으로 우스웠다.

있을 때 잘 하던가, 모든 유저들의 마음이 떠나가 버린 상태에서 저런 식으로 스카우트 제안을 하면 받아들일 유저가 몇이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양심이 있으면 본인들이 직접 와서 사과와 함께 절이라도 하던가. 꼴에 양복 입은 부하 몇 명 보내서 자기 경호나 하라고 제안한다고?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그 잘나신 대통령과 정치인들 전부 제 손으로직접 죽이고 싶거든요? 그 사람들이 죽으면 민간이들의 삶에 얼마나 여파가 클지 걱정되어서 안 하는 건데, 자꾸 이런 식으로 자극하시면...”

겨울은 입을 다물었다. 방 안에는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총을 잡은 남자들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가소로운 모습들을 보며, 그녀는 허공에 마나의 선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을 그려넣었다.

드래곤으로 이루어진 내 몸의 반쪽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구태여 모든 것을 말로만 설명할 필요는 없다.

겨울은 가볍게 발을 한 번 굴렀다. 약한 진동이 방 안을 살짝 울렸다.

<상급 마법:="" 백상(Hoar="" Frost)=""/>

그리고 그 진동의 근원지에서 얼음들이 뻗어나오기 시작했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막대한 얼음 속성 마나에 감응해 얼어붙어 바닥을 채워나갔다. 얼음의 두께가 늘어나고, 성애와 서리 결정으로 뒤덮인 거대한 창문이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극저온의 마나에 사람들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천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옷마저 딱딱하게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온 몸을 감싸고 있는 옷이 단단한 얼음 덩이가 되었으니, 남자들의 움직임 역시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기사들처럼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동요하지 마라! 가만히 있어!”

난생 처음 보는 괴이한 이상현상에 패닉에 빠진 부하들을 진정시킨 남자는, 선명한 세로동공을 띄운 채 이쪽을 응시하는 여자와 눈을 마주쳤다.

처음 보았을 때의 허술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단순한저 눈빛만으로 완전히 압도당하는 기분이였다.

방금 전까진 평범한 눈동자였는데, 갑자기 저런 식으로 변화하다니. 남자가 지금껏 보아 왔던 유저들 중 눈동자의 모습이 변화하는 종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속임수인가? 단순히 위압감을 주기 위한 트릭?'

저 눈동자의 정체가 어떻든 간에,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서리 덕에 몸을 떨던 그는 저 사람에게 감히 자신들이 대항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양복이 순식간에 이렇게 얼어붙은 것으로 보아방 안의 현재 온도는 북극이나 남극 이상의 극저온일 것이 분명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컨트롤하지 않았다면이 방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 죽었을 것이다.

‘능력의 강함과 컨트롤까지 완벽하다니. 매우 탐나는 인재지만... 아쉽게 되었군.’

이 정도의 강함을 지닌 사람이 경호원으로서 일해 준다면, 적어도 대부분의 권력가들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을 터. 마음 같아선 강제로라도 협력시키고 싶지만...

그건 결국 이쪽이 더 무력의 우위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총구를 앞에 두고도 태연한 모습을 보아 권총탄을 막을 수 있는 모종의 방법 역시 준비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진압봉은 물론이고총기조차 전혀 통하지 않을 상대를 무슨 수로 강제로 협력하게 만들 수 있을까.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을 인질로 삼는 방법도 있었지만, 너무 위험 부담이 컸다. 돈이나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고 그녀가 넘어올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고민했으나,딱히 기발한 방법이 떠오르진 않았다.

‘어쩔 수 없군.’

여기서 더 억지로 설득시키려 해 봤자, 잘못하다간 반발심만 살 것이 명백했기에 그는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다만 그 전에, 확실히 받아놓아야 할 답변이 있었다.

“한겨울 씨.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저희는 이곳에서 떠날 겁니다. 시간이 없으니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당신이 지지하는 유저들의 파는 어느 쪽이십니까?”

만약 그녀가 지방에서 반란에 가까운 폭력 사태를 일으키는 유저들과 같은 부류라면 군인들을 파견해서라도 처리해야만 했다. pvp랭킹 3위급의 유저가 이런 시내 한가운데서 난리를 피운다면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 감히 계산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는 굳이 처리를 해야 할 정도로 과격한 성향의 유저는 아닌 것 같았다.

“저는 극단적인 유저, 혹은 온화적인 유저 중 어느 쪽에도 낄 생각이 없어요. 절 귀찮게 하면 적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군이죠. 되도록 일반인들은 건들지 않을 생각이에요. 딱히 살인자가 될 생각도 없고, 법을 준수하면서 살 생각이죠. 물론 수틀리면 마법을 좀 쓰겠지만... 적어도 당신들에게 해가 갈 일은 없을 거에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모든 설명을 마친 그녀는, 이제 됐냐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젠 눈앞에서 꺼지라는 듯한 노골적인 눈초리에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잘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덧붙이자면, 제가 이후로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거에요. 오히려 좋은 소식들을 들으실 수도 있죠. 머리 위에 뿔이 난 마법사 유저가 일반인들을 보호했다거나, 같은 소식들이요. 저는 적어도 죄없는 일반 사민들까지 다치거나 죽는 걸 두고 볼 생각은 없거든요. 당신네가 지키는 사람들은 좀 다쳤으면 좋겠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올곧았다.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눈빛은 아니다.

"...어쨌든, 몸 조심하세요. 정치인들의 손발에 불과한 당신들은 무고한 사람에 속하니까 드리는 말씀이에요."

"감사합니다. 겨울 씨도 몸 조심하시길."

그 대답에 만족한 대장은 뒤에 나란히 서 있던 부하들에게 손짓하며 방을 나섰다. 자신을따라오라는 의미의 구호였다.

모두가 일시분란하게 방을 빠져나온 후, 남자는 닫히는 사무실 문 틈 사이로 겨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서리 결정들을 배경으로 삼아, 그녀의 백발이 마나의 흐름에 따라 사르르 휘날렸다. 마치 전설 속의 설녀와도 같은 모습에 전율이 일었다.

‘저 자는 우리가 감히 품을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품을 수 없는 존재라고 해서 호의를 사지 못 할 것은 없었다. 먼 과거, 드래곤에게 공물을 바쳐 환심을 샀다는 전설 속의 사람들처럼.

상부에 어떤 방식으로 그녀에 대해 보고할지 고민하며,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자리를 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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