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20화 (20/59)

〈 20화 〉 9. 배빵'100배'

* * *

마법사로 추정되는 서큐버스 유저는 꽤나 유저 간의 전투에 능숙한 것 같았다.

‘반응 속도도 생각보다 괜찮네.’

건물의 식당 안에서 밥을 먹고 있는 오빠와 예림이의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은신용 결계를 주변에 친 것도 좋은 판단이었지만, 그보다 더 눈여겨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상대방 유저의 정석적인 스킬 분배와 센스있는 움직임이었다.

<자세>로 강화된 각력으로 따라붙을 때마다 익숙하다는 듯 <점멸(Blink)>로 거리를 벌린다. 그리고 즉발로 사용할 수 있는 견제기를 통해 그 거리를 유지하며, 원거리 직업군인자신만이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위치를 고수한다.

원거리 직업, 그러니까 궁수나 마법사와 같은 직종들과 근접 직업군과의 일대일pvp는 이러한 거리 벌리기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거리 벌리기와 동시에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느냐가, 그 유저의 pvp실력을 결정짓는다.

단순한 거리 벌리기만 하는 사람은 하수.

스스로에게 유리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은 중수.

그리고 스스로에게 유리한 거리를 유지하며 상대에게 위협적인 스킬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을 pvp계의 고수라고 부른다.

그런 점에서 따지고 보면, 눈앞의 여자는 충분히 고수 그 이상의 경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예진은 pvp랭킹 2위였으며 그와 동시에 유망한 복서 지망생이었던 적이 있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더해, 하필 그녀의 복싱 스타일은 거리를 좁히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인파이터형 복서였다.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유사의 늪(Quicksand)="">, <산성 물결(Acid="" splash)=""/>

견제용 하급 마법들이 초당 서너 번씩 발동되며 쏟아졌지만, 그 어느 마법도 그녀의 발길을 막을 수 없었다. 스킬의 도움도 없이 사뿐거리는 스텝만으로 모든 스킬들을 파훼한 그녀는 다시금 목표를 향해 도약했다.

거리가 급속도로 좁혀지기 시작했다.

서큐버스 유저는 식은땀을 흘리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했다.

거리를 벌리는 데에 필요한 <점멸(Blink)>도 결국은 마법 스킬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한번 사용할 때마다 쿨타임도 있을뿐더러 캐스팅할 시간도 필요했다.

그러한 쿨타임과 캐스팅할 시간을 각종 견제기를 통해 벌어야 하는데, 그 견제기를 상대방이 모두 간단히 피해버렸다.

그녀는 이를 꽉 악물었다. 저 여자의 얼굴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pvp계열의 고인물 중 고인물, 뉴비 학살같은 양학을 즐기는 미친년. 그리고 그 양학하는 방법 역시 매우 유명했다.

[배빵성애자]라는 닉네임답게, 피격하는 부위를 상대방의 복부로만 한정하는 미친 듯한 변태력을 자랑하는 유저가 바로 저 년이었다. 자신도 그 피해자 중 한명이었기에, 그 극악한 뉴비 제초 방식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변태로 유명한 미친년이 이렇게나 강해졌을 줄이야...'

아무리 저 여자가 랭킹 2위일 정도로 강하다고 해도, 결국은 양학으로 유명한 변태.자신 역시 나름대로 일대일 전투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지금처럼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라면, 그 압도적인 위세를 떨치던 랭킹 1위와도 비벼볼 자신이 있을 정도로.

때문에 저런 변태를 만나 싸우게 되더라도, 잘 쳐줘봐야 백중세, 아니면 이쪽이 더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저 여자는 이 정도로 강하지 않았었으니까.

그러나 그 모든 판단이 오산이었다는 듯, 눈앞의 미친년은 웃으며 제게 달려오고 있었다. 동시에 캐스팅한 견제용 마법들은 이미 전부 빗나갔고, <점멸>을 사용하고 싶어도 캐스팅이 끝나기 전에 공격당할 것이 뻔했다.

‘젠장할...!’

이제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대로 더 망설인다면 저 여자의 주먹이 배에 닿을 것이었다. 그리고 위액이 역류할 때까지 배를 맞으며 온 몸을 유린당하겠지.

게임 속에서 겪었던 그 끔찍한 농락을 떠올리며, 그녀는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설마 게임도 아니고 현실에서도 배빵을 시전하겠어? 라고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지만... 방금 전 자신을 바라보던저 년의 눈빛을 보고 깨달았다.

‘잡히면 무조건 배빵이야...!’

먼저 선공을 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찐득한 눈빛, 당장이라도 이쪽에 달려들어 이런저런 짓을 할 생각으로 가득해 보였으니까.

그 끈적한 욕망이 담긴 눈빛을 떠올린 그녀는, 결국 마지막 수까지 사용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미친년을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마법사나 소환사같이 마법 스킬을 주력으로 삼는 유저들의 마지막 비장의 수단이라는 메모라이즈 스펠(Memorize Spell)이 발동되었다.

메모라이즈 스펠. 특정 주문, 마법 스킬들을 미리 준비해 전투 시에 단 한 번만 준비해 둔 스킬을 즉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술이었다. 이를 통해 상급 마법 여러 개를 동시에 사용하거나, 캐스팅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마법도 즉발성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미리 캐스팅하여 메모라이즈(Memorize)해 두었던 고난이도의 상급 마법들이 그녀의 손길에 따라 나열되며 즉시 발동되기 시작했다.

<상급 마법­밴시의="" 통곡(Wail="" of="" the="" Banshee)=""/>

여자의 입에서 괴이하다는 묘사가 딱 어울릴 법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민감한 청각을 통해 타고 들어오는 괴이한 외침에 반사적으로 귀를 막은 예진은 곧바로 상대방과의 거리를 벌렸다.

녹색 차원문이 허공에서 드러나고, 우는 여성의 형상을 한 귀신, 즉 밴시들이 그 문을 통해 무리지어 나타났다.

“마법사가 아니라 서머너(Summoner)셨구만.”

마법사와 대부분의 스킬들을 공유하지만 일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대신 소환수를 통해 전투하는 직업, 서머너. 상대방의 직업을 알아챈 예진은자신을 내려다보는 밴시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쓰읍.

그리고 침을 닦았다. 소환된밴시들은 전부 미인의 형태에 게임 속 모습 그대로 안개를 통해 딱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었다. 그야 귀신이니까, 맞는 옷이 있을 리가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침을 닦아내며, 냉정한 판단력을 되찾기 위해 눈을 감았다.

소환사, 즉 서머너는 평범한 마법사에 비해 상대하기 까다로운 편이었다. 마법사와 스킬트리를 공유하는 탓에 사용할 수 있는 견제스킬도 귀찮을뿐더러, 소환하는 소환수 역시 대부분이 근접 직업군들의 접근을 방해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는 놈들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상대방은 나름대로 pvp에 일가견이 있는 고수. 잘못해서 방심하다간 자신이라도 한방 먹을 수 있었다.

게임 속이라면 pvp게임 한두 판 지더라도 랭크만 좀 떨어지고 별 상관 없겠지만­ 이곳은 현실. 잘못하다간 진짜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는 편이 좋았다.

그렇게 그녀가 마음을 가다듬는 사이, 또다른 마력의 흐름이 허공에 나타났다.

“아직 더 남았어.”

그런 외침과 함께, 서큐버스 유저는 간단한 주문을 외웠다.

아무래도 준비해둔 소환 마법은 저게 끝이 아니었는지, 이번엔 검은 색과 푸른 색의 차원문이 그녀의 곁에 나타났다.

<중급 마법:="" 인어의="" 조력(mermaid="" helping)=""/>

<중급 마법:="" 하피의="" 울부짖음(Harpy="" Howling)=""/>

자신의 몸보다도 큰 지팡이를 든 인어들이 거품으로 허공을 수놓았고, 짧은 단검을 든 미형의 하피들이 살기가 듬뿍 담긴 눈을 한 채 울부짖었다.

‘이 정도라면... 이길 수 있어!’

게임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언제나 자신을 지켜 주었던 든든한 우군인 소환수들. 그녀들의 늠름한 자태를 보니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샘솟았다. 이제부터 차분히 스킬을 배분하고 사용하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의 계획에 가장 방해가 될 두 사람 중 하나인 저 년을 내가 제거하게 된다면, 간부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도...!’

그러나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눈앞의 미친년, 예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하피, 인어, 그리고 밴시라...’

하나같이 모두가 헐벗고 있는 데다가 인간의 취향에 가까운 미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큐버스 유저에겐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예진은 몬무스물 역시 ‘가능’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는 마음씨가 넓은 여자였다.

‘가능.’

이런 좋은 기회를 준 저 소환사에게 예의를 다하고자, 진심을 다할 생각으로 그녀가 손바닥을 모았다. 흔히들 합장(??)이라고 하는 자세였다.

그러자 온 몸을 감싼 붉은 투기와는 다른 종류의 황금빛 기(?)가예진의 양 손에 모여들었다.

[무파 기술 ­관음수(?音手)]

예진의 등 뒤로, 황금색을 띄는 백여 개의 손이 나타났다.양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면 백 개의 손바닥들이 천수관음(?手?音)의 손처럼 피어난다는 무공. 그러나 게임 속에서 예진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이 스킬을 어떤 식으로 부르는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배빵 100배."

손가락을 그러쥔 손들은 전부 주먹의 형상을 띄게 되었고, 백여 개의 주먹들이 그녀들의 소환수에게 작렬했다. 변태적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님 매우 놀랍다고 해야 할지.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컨트롤로 자신의 주먹을 오직 소환수들의 배에만 때려넣고 있었다.

­[꺄아아악!]

­[아파, 아파아아!]

­[끼에에에엑!]

각자의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떨어진 소환수들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부류의 통증에 바닥에 누워 바르작거렸다.

저릿저릿한 통증이 배 안쪽을 울리고, 공기가 빠지는 듯한 신음이 흐느끼듯 흘러나온다.

­[커헉, 꺽...]

­[헤윽, 숨이 안 쉬어져...]

­[욱, 우엑!]

호흡기가 복부의 고통 탓에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해 나오는 귀여운 괴성들. 예진은 이러한 소리를 참으로 좋아했다.

그녀는 그 끌림을 참지 못하고 한 하피를 들어올려 배에 생 주먹을 거칠게 박아넣었다.

­[끼이이익!]

그 하피는 울음을 터트리며 공포감 어린 시선으로 예진을 올려다보았다. 하피는 신체구조상 말만 하지 못할 뿐, 인간과 거의 비슷한 지능을 지닌 지성체였다.

그런 하피는, 눈앞의 여자가 자신들의 어떤 행동을 원하는지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들이 울부짖는 것을 보고 좋아하고 있었다.

"하아... 미치겠네."

뻑.

평범한 신체가 아니라 모래로 가득한 샌드백을 치는 것과도 같은 소리. 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진 하피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다만, 그 방향이 바깥쪽이 아닌 안쪽으로 휘었다는 게 평범한 경우와 약간 다른 점이었다.

­[커헉, 꺽...]

맞은 부위를 그러쥐며 허리를 굽혀 배를 보호하는 하피. 같은 곳을 또 맞기는 싫다는, 통증을 피하는 생물의 본능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렇게 바닥에 쓰러진 채로 구토와 과호흡 증상을 보이는 하피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예진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준 채 푸르게 멍이 든 하피의 배를 살짝 쓰다듬었다.

­[히이이익!]

또 같은 부위를 때리는 줄 알았는지, 하피가 제 배를 쓰다듬는 손을 붙잡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듯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는 하피를 보며 예진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였다.

"걱정 마. 더 안 때려. 나머지는 다른 사람의 몫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침묵 속에 예진을 바라보던 모든 소환수들이 시선을 돌렸다. 눈을 마주쳐 눈에 띄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저 하피와 같은 꼴을 당하고 싶어하는 소환수는 아무도 없었다.

런 소환수들의 반응을 보고 피식 웃은 예진은 아직까지도 하늘 위에 떠 있는 유일한 존재를 바라보았다.

‘아아...’

그녀의 사나운 눈빛을 보고자신의 미래를 짐작한 소환사는 전의를 상실한 채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용언 마법이 직격하자, 투명한 결계는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찢겨나갔다.

만족스러운 위력에 미소를 지은 것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결계를 뚫자마자 보인 광경에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저거.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니지?"

예림이 역시 머리가 어질어질한 듯, 머리를 짚으며 답했다.

"...몰라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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