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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22화 (22/59)

〈 22화 〉 10. 전조

* * *

“죄, 죄송합니다! 한 번만 살려 주세요! 더 맞고 싶지 않아아아아...”

몇십 분이 지나고서야 깨어난 서큐버스 유저의 첫 마디는 애원과 울음에 덮여 제대로 알아들을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흐어어엉...”

저렇게 심하게 우는 사람은 난생 처음 봤을 정도로 그녀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막상 저렇게 우는 모습을 보자 예진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는지,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며 무언가를 속삭였다.

­야, 닥쳐.

­히이익!

도대체 무슨 좋은 위로를 들었는지는 몰라도, 금새 울음을 그친 서큐버스를 보며 겨울은 예진을 칭찬했다.

“잘했어. 근데 뭐라고 속삭인 거야?”

“때린 거 미안하다고 했죠 뭐.”

“정당방위였을 뿐인데, 역시 예진이는 착하네.”

‘정당방위는 개뿔..!’

앞뒤 사정은 전혀 모르고 이야기하는 겨울을 째려보며, 서큐버스 유저, 혜원은 방금 전의 경험을 떠올렸다.

­­­­­­­­­­­

­야, 일어나.

혜원은 거칠게 뺨을 때리는 감촉에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그 미친년과 싸우던 기억이 꿈이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그녀의 기대를 배신했다.

눈을 막 뜬 그녀가 경험한 것은 복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이었다.

­아악!

그녀의 외마디 외침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상대방의 발길질은 계속되었다. 괜히 몸 전체가 무기라고 불리는 파이터가 아닌지, 집요하게 한 부위만 공략하는 그녀의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그 뒤로는 그저 고통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커헉!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마법을 캐스팅하려는 순간마다 배를 맞아야 했다.

통증은 스킬 사용에 필요한 집중력을 흐트러트렸고, 결국 마법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모인 마나는 마법진을 형성하지 못하고 흩어져버리기 일쑤였다.

이내 혜원은 반항하는 것을 포기했다. 배를 너무 맞아서 이젠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어버렸다.

­아, 아...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감촉에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예진은 물 좀 덜 마실 걸, 하고 후회하던 혜원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결국 지렸네. 그러게 스킬 쓰는 건 포기하라니까. 더 반항할 거야?”

“더, 더 반항 안할 테니까... 때리지 말아주세요. 아니,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약하게...”

축축한 다리를 끌며 그녀의 옷을 붙잡고 애원하니, 배를 향한 주먹질과 발길질이 조금 뜸해졌다.

­[끼이이...]

­[무서워... 저런 인간은 처음 봐.]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소환수들의 감정이 소환수와의 공유된 감각으로 느껴졌다. 고통을 느끼며 울먹이는 녀석들도 있었고, 예진을 보고 공포를 못 이겨 패닉에 빠진 소환수도 있었다.

그들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혜원은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방패막이로 부른 소환수들은 하나하나가 스스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문득, 단순한 고기방패 취급을 한 소환수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밀려들어왔다. 괜히 이런 못난 주인을 만나서 고생하는구나.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 혜원은 예진의 고개를 푹 숙이며 부탁했다.

“다른 아이들만은 건들지 말아 주세요... 저한테는 뭘 해도 괜찮으니까...”

예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을 기다렸어.”

그녀가 옷자락을 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소환수들의 흥미 어린 시선들을 감내하며, 혜원은 눈을 꼭 감았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상상하고 싶지 않아서.

­­­­­­­

...거기까지가 ‘방금 전’의 이야기였다.

"너, 혹시 쟤 막 일부러 괴롭히거나 그런 건 아니지?"

"에이, 아니지. 오빠도 내가 얼마나 착한지 알잖아?"

"착하긴 무슨."

피식 웃으며 대답하는 겨울이었지만, 딱히 단서도 없었고 예진이 굳이 이 유저를 괴롭힐 이유도 없었기에 넘어갔다.

"그래도 너만 보면 온 몸을 덜덜 떠는데. 뭔가 안좋은 추억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 난 오늘 쟤 처음 보는데?"

웃으면서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에 살기가 어려 있었다. '방금 전 일을 발설하면 죽여버린다'라는 의도가 담긴 살기에 혜원은 속으로 분을 삭였다.

‘대놓고 별의별 짓을 다 해놨으면서, 결계 안이라 안 들켰으니 정당방위로 넘어가려는 건가?’

혜원은 예진과 그녀의 두 일행을 째려봤지만, 이내 예진의 눈길에 시선을 깔았다. 상태창을 각성한 이후로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더 굴욕적이었다.

“일단 역소환부터 할까? 소환수들까지 다 챙기기엔 힘들어서.”

“그거 소환사에겐 무장해제 하라는 말이랑 똑같은 건 알죠 오빠?”

겨울은 혜원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푹 깔고 눈가엔 눈물자국도 있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결국은 예진을 먼저 공격한 괴한이었다.

그러니, 호의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겠지.

“소환수를 우리가 직접 죽여도 상관없어.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저항도 못 할 테니까, 광역 마법 몇 번 쓰면 다 목이 달아나겠지.”

소환수들은 전부 예림의 넥슬라이스에 의해 기절한 상태였다. 의식이 있지도 않으니 스킬을 피할 수도 없을테고, 그냥 죽여버리는 편이 사실은 마음이 편했다.

서머너 직업의 특성상 소환수들이 전부 죽어버리면 재계약을 하기 전까지 한동안 무력화되니까.

“지금 당장 역소환 할게요!”

당연히 소환수들이 죽는 건 싫었는지,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역소환 마법 캐스팅을 시작했다.

머지않아 모든 소환수들이 차원문 안으로 사라지고, 결계가 쳐져 있던 거리에는 네 사람만이 남았다. 이젠 드디어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자, 이제 예진이 네 차례야.”

겨울이 고개를 까닥이자, 예진이 주먹에서 우드득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우릴 공격한 목적이 뭔지 말해.”

“히이익! 말할게요! 말할 테니까!”

다시금 울음을 터트리며 발작하듯 대답하는 혜원은 부디 자비를 배풀어 달라는 듯 손을 비비며 입을 열었다.

“저, 저는 그러니까... 유저들의 단체인 [헬반도]에서 왔는데요...”

“아 그 길드? 들어본 적 있어.”

예림이 아는 척을 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돌아갔다.

“유저들 커뮤니티 중에서도 가장 일반인들에게 적대적이고 극단적인 사람들이 만든 길드래요. 부산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사람들도 다 그 길드 출신이고요. 아마 상태창 각성 이후에 다시 모여서 일종의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그리고 저같은 경우는 이제 지방뿐만이 아니라 수도권 쪽에도 피해를 입히기 위해 파견된 건데.. 우연히 예진 님을 만나게 되어서...”

“제압당했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끄덕거렸다.

“아마 제가 제압당했다는 게 드러나면, 세 분 모두 저희 길드의 주적이 될 거에요. 그러니 지금 곧바로 절 풀어 주신다면 제가 길드에 말을 잘 해 둬서, 보복성 조치가 없도록 할게요.”

경고성 어린 말에 예림은 겨울의 머리 위에 턱을 올린 채로 질문했다.

“이대로 보내주면 이 지역을 안 침범할 거니?”

“그게... 국내에서 가장 큰 도시가 있는 곳 중 하나니까요. 거기에 인구수도 많고, 완벽히 수도권이라기엔 애매한 위치라 군대가 오기도 어렵고요.”

"공격하기엔 딱 좋은 목표물이다 이거네?"

"네..."

“그럼 결국 널 풀어주든 말든 그 길드라는 녀석들은 이 근방에서 난리를 치겠네.”

예림이 한 마디로 그녀의 이야기를 정리하자, 혜원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침묵했다.

“그럼 못 풀어주겠는데. 우리 지인들도 다 이 근방에 살고 있어서. 이곳을 공격한다면 우리들이 집을 잃거나 지인들이 다치게 돼. 여기서 널 풀어줘봐야 예비 적대 단체에게 힘을 더해주는 꼴이지.”

“...그게, 제가 잘 말해 볼 테니까... 이 근방은 공격하지 않는 방향으로...”

“그렇게 자신없는 말투로 이야기하면 믿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단호하게 혜원의 말을 끊어버린 겨울은 각종 디버프 마법들을 캐스팅했다.

<중급 마법:="" 불규칙="" 맥박(irregular="" pulse)=""> <중급 마법:="" 제한명령(limitorder)=""/>

겨울이 이끌어낸 마나가 혜원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마나를 온 몸으로 보내는 혈류를 제한하는 <불규칙 맥박=""> 과 마나 사용 한계치를 낮춰버리는 <제한명령>. 둘 다 걸리면 마법사 캐릭터에게 굉장히 치명적인 스킬이었다.

대신 맞추기가 매우 힘든 근거리 스킬에다 캐스팅 시간도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거야 이렇게 상대방이 제압되어 있는 상황에선 별 의미 없는 단점이었다.

“이제 내가 마법을 풀어 주거나, 다른 마법사 유저가 손을 대기 전까진 마법 스킬들을 제대로 못 쓸 거야. 아무래도 지금 풀어주기엔 조금 불안하니 일단 데리고 있자. 그 극단적인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놈들도 당장 얘가 어디로 사라졌는진 모를 테니까.”

"그럼 얘는 누가 데리고 있는데요? 저희 다 집이 다르잖아요. 어디 폐가에 묶어두기엔 확실히 좀 그렇고..."

"예진이가 낫지 않을까? 예진이 집이 가장 넓고 크잖아. 그렇지?"

“...네?”

겨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예진에게서가 아니라, 혜원에게서 돌아왔다.

"그, 겨울 님의 집에서 지내면 안될까요...?"

“왜? 이런 말을 하긴 뭣하지만, 우리 집은 좁은데다가 내 개인 사정이 있어서. 여자, 그것도 서큐버스 유저랑 같이 지내기엔 좀...”

겨울이 얼굴을 긁적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예진이 알 수 없는 눈길을 보내며 그에 동의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알아채고 파드득 몸을 떤 혜원은 냅다 겨울에게 절을 하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괘, 괜찮으니까! 무슨 짓을 하셔도 괜찮으니 저 좀 데려가 주세요..! 저 가사일도 잘하고 예의도 바르고 잠버릇도 얌전해요! 제발...”

“아, 알겠으니까 이것 좀 놔!”

혜원이 울먹이며 이쪽에 매달린 끝에, 결국 혜원의 신원은 겨울이 맡게 되었다.

“그럼 난 먼저 가 볼게. 원래대로라면 식사 후에 바로 헤어졌을 텐데, 벌써 시간이 너무 늦어졌다.”

분명 밥을 먹은 건 대낮인 점심때였는데,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해져가고 있었다. 아무리 해가 빠르게 지는 겨울임을 감안하더라도 대충 서너 시간은 지났을 터.

집에 가서 밀린 웹툰이나 방송들을 찾아봐야 하는데 시간을 너무 낭비해 버리고 말았다.

빠르게 이동할 준비를 마친 겨울은 <비행>마법을 캐스팅해 혜원과 함께 날아올랐다.

“다음에 놀러 갈게 오빠.”

“히익!”

...어째 예진이의 마지막 작별 인사는 조금 살벌한 느낌이 들었지만, 굳이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 다들 몸 조심하고, 곤란한 일 있으면 연락하고.”

“네 오빠. 다음에 봐요!”

“집 도착하면 연락해 오빠.”

그렇게 서로 몇 번 손을 흔들어 준 뒤, 겨울은 마력을 조정해 속도를 높였다. 고층 건물이 눈앞을 막으면 <점멸>로 통과하는 식으로 빠르게 날아가니 집까지는 금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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