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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26화 (26/59)

〈 26화 〉 11. 회상

* * *

역한 냄새가 났다. 흔히들 소독약 냄새라고들 말하는 거부감 드는 냄새.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보니 나는 침대 위가 아닌, 집에서 종종 쓰던 식탁 의자에 앉혀져 있었다. 당연하게도 팔다리는 전부 묶여 있는 상태지만, 그렇고 그런 걸 하기에는 침대가 더 좋지 않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근거를 찾기 위해 거실을 둘러보았다.

침대는 그대로 있고, 달라진 점이라면 바닥에 웬 비닐들이 잔뜩 깔려있다는 것뿐.

...분명 내가 잠들기 전에 들었던 문소리에 따르면, 이 집 어딘가에 아저씨가 있을­

“...안녕?”

등 뒤에서 친절한 인사말이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예상했던 대로, 주교 아저씨가 내 등 뒤에서 나타났다.

“어... 그런데 그 옷차림은?”

문제는, 내가 예상한 ‘다 벗은’상태의 아저씨가 아니라...

흰 가운과 고무장갑을 낀 채 거대한 톱을 들고 있는 아저씨였다.

“너의 ‘회개’를 위한 옷이란다. 이 물건은 너를 위한 성유물이고.”

네? 딜도가 아니라 톱이요? 잠시만요. 보아하니 저희의 이해관계가 여러모로 어긋난 것 같은데요.

"...농담하시는 거죠?"

"아니. 나는 진지하단다."

아무래도, 내가 아주 당찬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사이비 종교의 또라이력을 아주 제대로 무시해 버렸다.

­[그 무엇이든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저 주교가 그딴 연설을 할 때마다 단순히 사기꾼의 이야기로 치부했는데, 그 믿음이 진심이었을 줄이야. 살아생전 이런 미친놈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여러모로 신도를 돈으로만 생각하는 여느 사이비 주교들보단 나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신에 대한 믿음 자체는 진실이잖아?

그 덕에 나는 지금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겨울 신도... 악마의 몸에 갇혀 있어 내 목소리가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내 말을 듣고 있을지 몰라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는 지금 악마에게 몸을 빼앗긴 거란다. 뉴스를 봤다면 알겠지? 지금 이 한반도에 각종 악마들에게 몸을 빼앗긴 사람들이 나타났어. 너도 알겠지만, 내 의무는 그들 모두를 ‘인간’으로 되돌려 구원의 길을 전파하는 거란다.”

“자, 잠깐, 아저씨?”

“날 친근한 척 아저씨라 부르지 말거라, 이 악마야!”

그가 거칠게 외치며 톱을 내리찍었다.

“힉!”

내 상반신만한 톱이 내 얼굴 바로 옆에 떨어졌다. 조금만 위치가 어긋났다면 그대로 내 머리가 쪼개졌을 것이다.

“다행히도 넌 머리 위에 뿔만 자랐더구나. 그것만 자르면 괜찮을거야. 괜찮아. 안심해도 좋아. 조금만 지나면 원래의 한겨울 신도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그는 제정신이 아닌 듯 침을 줄줄 흘리며 악마의 상징인 뿔만 잘라낸다면, 나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개소리.’

바뀐 몸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의 몸에 돋아난 뿔이나 여러 신체부위를 자해하는 증상을 보이는 유저들이 굉장히 많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중에는 스스로의 뿔을 부러트린 사람들도 존재했다.

단순히 뿔만 자른다고 원래 몸으로 돌아온다면, 그렇게 자해를 하던 사람들도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겠지.

무조건적으로 주교의 말을 신봉하는 우리 가족들은 저런 말을 믿을지 몰라도, 난 아니었다.

애초에 뿔을 자르겠다니. 용족의 뿔은 중요한 신체적 요소임과 동시에 여러 신경 기관들과 연결되어 있는 중추기관 중 하나에 속했다.

단순히 ‘중요한 부위’수준이 아니라, 뿔이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족들의 뿔 내부에는 동맥이 모여 있기에 정도 이상 잘리면 과다출혈로 죽는다.

실제로 게임상에서도 뿔이 잘린 채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과다출혈 상태가 되어 도트딜로 죽는 모습이 구현되어 있을 정도로 이는 공식 설정이었다.

현실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듯, 몇몇 미노타우르스 유저가 몸싸움을 하다가 특유의 괴력으로 서로의 뿔을 비틀어 부숴 죽음을 맞았다는 뉴스 속보를 본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나도 그렇게 죽을 것 같은데...젠장.’

당장이라도 이 끔찍한 공간을 탈출하고 싶었지만, 내 팔다리는 이미 조금도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묶여 있었다.

그는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거실의 침대 기둥을 돌렸다.

­철컥.

그러자, 침대의 몸채가 뒤집히며 그 아래에 있던 각종 잡동사니들을 드러냈다.

톱, 망치, 삽, 줄톱 등등.

그 잡동사니들에 묻은 피를 보아하니, 확실했다. 그는 이러한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조졌네.”

“그런 험한 말을 쓰다니! 언제나 예의바르던 겨울 신도답지 않아. 내가 금방 ‘회개’시켜주마.”

그는 뒤처리까지 하기에는 더 이상 시간이 없다며 내 뿔을 잡아챘다. 일단 겉표면은 손톱처럼 딱딱했기에 아픈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조금 뒤에 이 뿔이 저 톱으로 잘릴 거라는 걸 떠올리니 막막했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떠올려야 하는데, 머리는 멍하고 팔다리는 전부 묶여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약에 취한 탓인지 몸에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으드득.

끔찍한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뿔이 잘리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애원해도 그의 손길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키틴질 조직으로 되어 있는 겉껍질이 거의 다 파이고, 조금씩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할 즈음.

­끼이익.

조그마한 문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옆으로 곁눈질하자, 문이 열려 있는 상태인 내 방 쪽에 달빛이 살짝 들어온 것을 목격했다.

집 안 내부에 전부 커튼이 쳐져 있어 어두운 상태인 만큼, 그 잠깐 보인 달빛의 광채는 꽤나 선명했다.

천만다행으로, 작업에 집중하던 주교의 눈에는 띄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 찰나의 틈새에 달빛이 비춘 사람의 실루엣을 포착했다.

손발이 작은 편이고 키가 크며, 긴 머리를 한 여자.

누나였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시간과 관심을 끌기 위해 내 얼굴가에 있던 주교의 손을 물었다.

그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톱을 내팽겨친 채, 고통 어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누나는, 이 타이밍이 내가 만들어 준 기회라는 것을 알아챘는지 그대로 주교에게 달려들었다.

"죽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사람의 머리만한 벽돌을 쥔 채로.

­­­­­­­

나는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초록색 착신 버튼을 옆으로 드래그했다.

­...겨울이니?

오랜만에 듣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반가울 법도 했지만,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반가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왜 연락했어? 다시는 볼 일 없을 거라고 하더니.”

­...살려 줘.

나는 한때나마 내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 중 하나였던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창문 밖의 베란다로 나갔다. 오랜만에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무슨 일인데?”

­겨울아, 그때의 일에 대해선 지금도 할 말이 없지만, 한 번만 도와주지 않겠니...?

나는 편의점에서 사들고 온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 주 넘게 안 피었더니 폐가 차마 적응을 하지 못한 듯, 과민 반응을 보이며 수축했다.

“콜록, 그래서요. 뭘 도와달라는 건데?”

정말 웬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면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부모님이나 남동생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래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말지는 고민을 해 볼 생각이었다.

당장 저들이 죽는다고 해 봐야, 연을 끊은지 한참 지난 나에겐 다를 바 없는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이렇게 물어본 것은, 단 하나 때문이었다.

“누나와 관련된 문제네. 그치?”

아마 가족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누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응... 그게, 얼마 전에 자기들을 [헬반도]라고 소개한 유저들이 찾아와서...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누나와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영생을 약속한 교주가 먼저 죽고 난 뒤, 큰 충격을 받고 시골로 이사를 갔다.

그 이사의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 나와 누나가 자신들의 신을 죽였다며 집에서 내쫒긴 적도 있었고, 남동생이 자살 시도를 하거나 가출을 하는 등 별의별 사건이 다 있었다.

참 감사하게도, 그들이 이사를 간 지방은 현재 여러 유저들이 깽판을 치고 다니는 난장판과 그리 다를 바 없는 구역에 위치해 있었다.

문제는 정이 많은 나와 닮은 우리 누나, 한봄은 정이 너무 많다 못해 몸 밖으로 흘러넘칠 지경을 자랑하는 존재라는 점이었다.

마음씨 착한 호구. 그게 딱 우리 누나를 수식하는 데에 가장 알맞은 단어였다.

친구들 사이의 별명 역시 호구 혹은 흑우인 그녀는 나머지 가족들이 시골로 이주한 뒤로도 그들과 관계를 유지했다.

예전처럼 편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관계.

종종 전화로 안부를 묻고, 명절이 되면 찾아가진 않더라도 과일 세트 정도는 보내주는 관계를 그녀는 유지했다.

그런 그녀가 시골의 본가로 찾아가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아, 누나가 거기에 가 있으면 제가 나서서 엄마랑 아빠를 보호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고?”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연을 끊고 나서 좀 괜찮아졌으려니, 생각했던 가족들은 아무래도 상상 이상으로 이기적이었다.

“그래서, 당신네들이 부탁한 일 때문에 호위 하나 없이 경차 한 대 끌고서 누나가 거기까지 찾아간 거네? 그러다가 유저들한테 잡혀서 끌려갔다는 거잖아, 그렇지? 그리고 그 헬반도니 뭐니 하는 유저들이 찾아와서 인질을 풀어줄 비용을 요구한 거고.”

­...

통화의 반대편에선 대답이 없었다. 그들 역시 딱히 할 말이 없어 보였다.

“후우...”

나는 배란다의 난간에 그대로 머리를 박았다. 골이 아파와서였다. 문득 며칠 전 누나에게서 왔던 메시지의 내용이 떠올랐다.

­[아픈 곳은 없구?]

­[다 나았어. 이젠 완전 멀쩡해. 오늘 내로 퇴원할 예정.]

­[그러면... 혹시 엄마나 아빠랑 한 번만 이야기해 보지 않을래?]

­[생각 없어. 내가 그런 권유 하지 말라고 했지? 아예 연 끊는다니까.]

­[...알았어. 미안.]

'그때 대답을 조금이나마 잘 했더라면...'

누나가 진심으로 가족들을 보호해 주기를 원했다면, 나는 그에 따랐을지도 모른다. 그럴 만한 힘도 있었고, 단순히 결계 정도를 쳐주는 건 쉬운 일이었으니.

만약 저 당시에 조금이라도 대답을 잘했다면누나는 내게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을 것이고,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겠지.

“[헬반도]라고 했죠?”

나는 마침 집 안에서 이불을 덮은 채 술냄새를 풍기며 잠들어 있는 혜원을 바라보았다.

­...혹시 어려울 것 같니? 그렇다면 어떻게든 군대에 요청해서...

“의외로 말이 통하는 상대일지도 모르죠.”

나는 이 사태를 최대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떠올렸다.

인질 교환.

여러 역사 속에서 나타났던, 인적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전쟁을 하던 국가 사이에서 매일같이 이루어지던 협상이었다.

아마 주력 전투원 중 하나일 혜원과, 아무런 능력 없는 누나를 인질로서 바꿀 수만 있다면 저들 역시 환영하고 만족할 만한 좋은 협상이 될 것이다.

"도와줄게요. 그 대신..."

나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제 도움의 대가가 어떨지는 기대하셔도 좋아요. 도움을 받았으면, 값을 치뤄야 하는 법이잖아요. 그렇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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