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27화 (27/59)

〈 27화 〉 12.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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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나는 일어나기 싫다며 뒹굴거리는 혜원에게 숙취해소제를 건넸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굳이 지금 꼭 나가야 해요?”

“너... 그래도 지금은 형식상으로 포로인데 그런 식으로 행동해도 되는 거냐?”

“우웅... 그럼 아침부터 왜 이렇게 분주한지부터 알려 줘요.”

“가면서 설명해줄 테니 일단 일어나. 강제로 끌고 가기 전에.”

내가 최후의 방안으로 마법진까지 그려가며 말하고 나서야 혜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기적거리며 간단한 세안을 생활 스킬로 끝마친 그녀는 금세 모든 준비를 마쳤다.

현관문 대신 베란다 창가로 나온 나는 마법을 캐스팅해 하늘로 솟구쳤다.

전화로 전달받았던 가족들의 집까진 자동차로 서너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지만, 마법을 통하면 도로에 구애받지 않고 목적지까지 일직선으로 갈 수 있으니 수십 분 내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걸리는 게 있다면... 내가 컨트롤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문제인데.”

게임상에서 150레벨의 마법사가 으로 낼 수 있는 평균적인 속도는 몬스터인 ‘와이번’과 비슷했다. 그리고 공식 게임 설정집에서 이 와이번의 비행 속도는 시속 200km가량.

‘그러니까 내가 낼 수 있는 속도도 대충 시속 200km언저리일 텐데...’

시속 200km라니. 비록 장롱면허지만 과거에 종종 운전을 해본 적은 있던 나였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시속 세 자릿수 이상으로 달려본 적이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것도 세 자릿수의 앞자리가 바뀔 정도로 밟아본 적은 생애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마력을 다루는 건 자신 있으니 괜찮을 것 같기는 해도, 잘못하다가 컨트롤을 실수해 빌딩에 박아버리면 말 그대로 대형 사고였다.

나와 혜원이야 직접 걸어둔 마나 실드가 있으니 멀쩡하더라도,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오겠지. 잘못하다가 사람이 다치면 몇몇 범죄자 유저들처럼 얼굴이 내걸리고 수배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으음...에라 모르겠다.”

더 생각하긴 귀찮아졌다. 마법으로 어찌저찌 다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에서였다.

나는 대충 속력을 최대한으로 높인 뒤, 핸드폰이 가리키는 목적지를 향해 날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침부터 이렇게 부산스럽게 집을 나선 이유가 뭔가요? 이젠 들을 수 있겠죠?”

툴툴대며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혜원의 입가를 한 대 툭 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이런 저런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는데, 뭔 깡으로 저러는 건지.

‘아니면 오히려 험한 꼴을 당하고 싶어하는 건가?’

실제로 그녀는 서큐버스였으니, 내게 그렇고 그런 쪽의 일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장 어제도 내게 옷까지 벗어 가며 유혹을 했었고.

물론, 우리 둘은 곧 헤어져야 할 테니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네가 원하던 일을 하러 가는 거지.”

“제가 원하던 일이요?”

“널 풀어주겠단 소리야. 대신 네가 생각했던 방식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어...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에게, 나는 자조치종을 설명해 주었다.

집안 사정 이야기는 적당히 빼 놓고, 친누나가 [헬반도] 소속 유저들에게 잡혀 갔으며 인질 교환 형식으로 두 사람을 교환하겠다는 이야기를 끝마쳤다.

이쯤 하면 모두 설명이 됐겠다 싶어 그녀를 바라봤더니, 어째선지 혜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왜? 뭔가 걸리는 게 있어?”

“그게, 그 인질 교환이라는 거... 잘 안 될 수도 있겠는데요.”

“뭐? 어째서? 너 정도면 꽤나 귀한 전투원일 텐데. 일반인인 우리 누나와 교환한다면 그쪽에서도 이득 아닌가?”

그녀의 불안한 정신상태를 반영하듯 혜원은 갑작스레 손톱을 씹기 시작했다.

“일단 제가 소속되어 있던 길드 [헬반도]의 유저들의 성향은 굉장히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이라서 중도파, 온건파 유저들을 굉장히 적대시해요. 괜히 다른 유저들을 적대해봐야 성가시니 선공을 하진 않지만, 대화를 하려 들지도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협상 테이블에도 안 나올 가능성이 크죠.”

그 말을 남긴 채 입을 꾹 닫고 있던 혜원은 뒤늦게 한 마디의 설명을 덧붙였다.

“무엇보다, 겨울 님의 언니... 아니, 누나라고 하셨나요. 그분이 지금 어떤 꼴을 당하고 계실지는 저도 잘...”

그녀는 나를 위해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자세한 설명을 하진 않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았다.

“...더 빨리 가야겠네.”

억지로 마력까지 끌어내 의 속도를 높인 나는 혜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럼 일단 넌 쓸모가 없는 거네.”

“그렇긴 하죠. 혹시 풀어주실 생각이 드디어 드신 건가요?”

“아니. 전혀. 무슨 위협이 될 줄 알고 풀어줘.”

“힝.”

내 단호한 대답에 일부러 훌쩍이는 소리까지 내 보는 혜원이었지만, 그런 단순한 연기가 내게 먹힐 리가 없었다. 나는 턱을 괴고 고민을 하다가, 문득 생각난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녀라면 혜원을 도망치는 일 없이 잘 간수할 수 있겠지.

“예진이한테 맡길까.”

그 소리를 들은 순간 덜컥, 하고 혜원의 움직임이 멈췄다. 눈물을 훔치는 연기를 하던 두 손이 그대로 굳어 버렸고, 그 손의 틈새로 보이는 동공이 시도때도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뭐든지 할게요. 부디 시켜만 주세요. 당장 발을 핥으라고 해도 할 테니까...제발 그분에게만은...”

“알았어. 집에다 적당히 던져 둘 테니까, 알아서 내 가족들을 지켜. 만약 배신하면... 알지?”

나는 핸드폰을 들어 특정 인물의 연락처를 띄운 화면을 보여 주었다. ‘예진’이란 두 글자를 담은 그녀의 눈에 물기가 어린 건 기분 탓이겠지.

재빠르게 고개를 연신 끄덕이던 혜원에게 관심을 거둔 나는 차분히 마음을 다잡았다.

인질 교환으로 사태가 해결이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하면 된다. 이미 생각해 둔 두 번째 방법이 있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찾았던 [헬반도]에 대한 정보 중에는, 간부진들 중 ‘무지개색 뿔을 달고 있는 오우거’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정신없는 색의 뿔을 달고 있는 관종은 내가 알기로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박우진.

몸이 이렇게 변한 뒤로 종종 연락을 하던 친구이자, 게임 내에선 함께 레이드도 돌았던 동료 중 하나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태창의 각성 이후 한 번도 연락을 받지 않았기에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헬반도]에 들어가 있을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덕분에 오히려 누나의 신변을 보호받는 데에 있어선 좋은 호재였다. 기억상으로 박우진은 나와 가장 말이 잘 통하던 놈들 중 하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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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심 기대했던그 오랜 친구와의 만남은,

최악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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