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30화 (30/59)

〈 30화 〉 13. 양학

* * *

­와아아아아아!

본래 축구 경기를 하는 용도로 쓰였을 한 축구 경기장에는 단 네 명의 인영만이 서 있었다.

한바탕 싸우고 난 후인 듯 초록빛의 잔디들은 윤기를 잃은 채 곳곳이 파여 있었고, 잔디밭 주변의 콘크리트 바닥 역시 멀쩡한 부분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의 전투를 쉽게 볼 수 있는 관객석에는 각양각색의 종족의 모습을 한 유저들로 가득했다.

그 와중에 그들 사이에서 먹을거리를 파는 사람들이 있는 건지, 대부분의 유저들의 손에는 맥주와 안줏거리들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허리춤에는 당연하게도, 잡혀 온 일반인들을 끼고 있었다.

술과 이성을 즐기는 여러 유저들과, 저 아래에서 모두에게 싸움을 보여주는 모습이 사뭇 신화 속의 콜로세움을 연상케 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네 명의 인영 중 한 명인 예진은, 눈앞의 세 유저를 여유를 담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는 쓸만하네.”

대부분 행정 쪽에서 일하는 간부들이라 이런 유저들 간의 전투에선 쪽도 못 쓰고 나가떨어지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움직임이 봐줄 만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봐줄 만한 수준일 뿐, 상대하는 재미는 딱히 없었다.

가지고 놀아 줄 수는 있는, 그저 그런 장난감 정도.

예진이 그들에게 내린 평가였다.

“평소였다면 그냥 적당히 가지고 놀아 줄 생각은 있었겠지만...”

그녀는 방 안에서 각종 제압용 스킬에 신음하고 있을 겨울을 떠올렸다.

간단한 주박이나 제약을 거는 마법이 아닌, 무려 길드 내의 내로라하는 마법사 유저들이 힘을 모아 겹쳐 둔 제압용 상급 마법들인 만큼 랭커인 그녀라도 쉬이 풀 수 없을 터였다.

‘원래는 천천히 꼬셔서 내 매력에 빠져들게 할 생각이었지만...’

그 꼴보기 싫은 서큐버스 년이 문제였다.

겨울의 핸드폰에는 그녀가 설치해 둔 도청용 앱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녀는 실시간으로 겨울을 꼬시는 혜원의 매혹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름 예쁘장한 외모에 꼴리는 몸매를 하고 있어 봐줬더니, 은혜는 모르고 그런 배은망덕한 짓을 시도하다니.

술을 마셨다고 해서 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겨울의 옆에 있을 위험요소는 제거하는 것이 옳았다.

‘오빠의 조교가 끝나면, 그 년도 적당히 처리해야겠지.’

그래도 나름 같은 유저로서, 죽이진 않을 생각이었다.

먼 지방에 던져두거나, 외국 쪽으로 강제로 출국시키면 되겠지.

이별할 때의 국룰인 이별야스도 한판 거하게 벌일 생각이었다.

‘아니면 그냥 오빠랑 그 년이랑 나란히 조교해 버려?’

듣자하니 겨울의 친누나도 길드 건물 내에 구금된 상태라고 들었었다. 원채부터 좀 생긴 편이었던 겨울의 외모를 생각해보면, 그의 누나 역시 예쁠 것이 분명했다.

애초에 외모가 별로였으면 다른 길드원들에게 잡혀 오지도 않았겠지.

그렇다면, 누나와 겨울을 함께 먹는 것도 배덕감에서 오는 쾌감이 엄청날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만족스러운 생각에, 예진은 속으로 입맛을 다시며 눈앞의 세 놈팽이를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질렸어.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이젠 끝을 봐야겠...”

­...저 사람 누구?

­전 랭킹 3위? 새 길드장이 제압했다고 공표하지 않았었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관중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예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안녕, 예진아? 내 옛 친구에게 이야기는 잘 들었어.”

팔다리가 잘리고, 외뿔마저도 부러져 완벽히 걸레에 가까워진 상태의 오우거를 잔디밭에 던져놓은 용은, 꽤나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용의 선명한 세로 동공이예진을 응시했고.

그녀는 알 수 없는 오한을 느끼며 투기를 강화했다.

“오빠한테 괴롭힘 당하고 혼나는 것도 좋지만... 싸움 구경도 재미있을지도?”

그리고 그러한 두 사람의 대치를 보며, 관중석에서 여유롭게 팝콘을 뜯고 있는 예림이 있었다.

*******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막았다.

당장이라도 이 머리를 어지럽게 할 정도의 고양감에, 마법을 난사해버릴 것만 같았다.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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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잡고아기만들기]

칭호: 합리적인 ­ 드래곤의 반려

LV.170

종족: 드래고니안(화이트)

상태: 정상

­기본 능력치

힘: 50(+34)

민첩: 47(+31)

마력: 508(+343)

지능: 132(+100)

종족 특수 능력치

얼음 원소 친화력: 10/10

직업군: 원소술사

직업군 특수 능력치

불 원소 친화력: 2/10

물 원소 친화력: 3/10

바람 원소 친화력: 10/10

땅 원소 친화력: 1/10

번개 원소 친화력: 10/10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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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적용되어 있는 버프

<하급 마법:="" 강철="" 피부(Steel="" skin)=""> (00:04:23)

<하급 마법:="" 고통="" 경감(relief="" of="" suffering)=""> (00:09:13)

<중급 마법:="" 산성="" 피(acid="" blood)=""> (00: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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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상태창을 펼쳐직접 걸어둔 버프들의 지속시간을 체크했다.

내 스킬트리는 어디까지나 공격 스킬에 치중되어 있는 만큼, 버프 스킬들은 스킬 레벨이 낮았다. 효율 역시 극악에 가까웠다.

그 증거로, 버프를 건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약발이 끝나가는 지속 시간들을 보면 답이 나왔다.

아마 용족 특유의 마력 스텟으로 금세 채워지는 마나가 아니었다면 응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과다한 마법 연산으로 따라오는 두통이야 뭐 감안해야 했고.

걸어놓은 버프 중 제일 중요함과 동시에 가장 먼저 끝나는 버프는 <용언 마법:="" 드래곤의="" 심장(Dragon="" heart)="">.

몸에 무리가 가는 버프인 만큼 지속시간 역시 매우 짧아, 겨우 10분이라는 조루 스킬다운 지속시간을 자랑했다.

나는 상태창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채로 '곧 지속시간이 끝난다'라는 의미를 전하기 위해 간헐적으로 깜빡이고 있는 문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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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언 마법:="" 드래곤의="" 심장(Dragon="" heart)=""> ­종족 제한 스킬­ (00:09:48)

­몸과 심장이 한시적으로 드래곤의 기관에 가까워진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마력 스테이터스를 지니게 되며, 모든 종류의 캐스팅 속도가 기이할 정도로 늘어난다. 그러나, 드래곤뿐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그렇듯 힘에 대한 과욕을 부린다면 그에 따른 최후는 덧없으리라.

(마력 스텟×2, 지능 스텟×2)/(지속시간 동안 천천히 전체 체력의 50% 감소, 체력이 절반 이하로 감소한 상태에서 사용 시 지속시간 종료 후 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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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를 마친지 10초. 단 10초만에벌써 가장 중요한 버프 스킬 지속시간의 1/60가 지났다.

버프가 풀린 상태에서 무리를 할 생각은 없으니 조금은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대부분의 버프들은스킬에 불과한 만큼마나가 넘치는 내 입장에선 쿨타임인 세 시간만 지난다면 재사용도 가능했지만, 구태여 시간을 그렇게 끌 필요는 없었다.

<드래곤의 심장="">의 지속시간인 10분 내에 모든 일을 끝낼 자신이 있을뿐더러, 여러 버프를 동시에 걸 때의 두통을 다시 느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점멸>을 사용해 건물 바깥으로 나온 나는, 즉시 <비행>으로 떨어지는 몸을 띄운 뒤 날아올랐다.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자, 저 멀리 내가 느낀 기척들의 주인들이 보였다.

거대한 축구장과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한가운데서 싸우고 있는 네 사람, 그리고 그들을 구경하며 환호성을 지르는 유저들까지.

저기에 메테오 하나 떨구면 꽤나 장관이겠다 싶었지만, 축구장 하나 짓는 데에 얼마가 드는지 떠올린 나는 그 계획을 취소했다.

무엇보다 저 안에 우리 누나가 있으면 더 곤란하니까. 파괴력 있는 마법들은 조금 자중하기로 했다. 그 대신 쓸 수 있는 마법은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자, 그럼 가볼까?”

나는 경기장을 목적지로 잡고 <비행>마법의 속력을 높였다.

그렇게 일직선으로 날아가던 도중, 무지갯빛 반사광이 눈에 띄었다. 축구장 바깥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는 오우거 하나. 누가 봐도 내 옛 친구이자, 지금은 배신자인 그 녀석이었다.

<하급 마법:="" 사일런스(silence)=""/>

그 녀석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주변에 침묵의 결계를 생성한 나는, 녀석을 단번에 제압하기 위한 공격을 준비했다. 일종의 쾌락과도 같은 고양감을 누르고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 나는 그의 도주로를 차단할 마법부터 준비했다.

<하급 마법:="" 아이스="" 볼트(ice="" bolt)=""/>

병원에서 사용했던 마법과 같은 스킬이었다.

순식간에 사람의 머리만한 거대한 고드름이 허공에 형성되었다.

여기까지는 병원에서 사용했던 일반적인 <아이스 볼트="">와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지만.

<아이스 볼트="">, <아이스 볼트="">, <아이스 볼트="">...

수백 번의 반복적인 영창을 단 수 초 만에 끝내고 나니, 주변의 하늘이 전부 고드름만으로 채워지는 장관이 나타났다.

모든 캐스팅이 끝난 뒤 나는 가슴에 손을 올려 내 마나를 확인했다. 용족 특유의 마력과 <드래곤의 심장="">의 효과로, 줄어든 마나는 이미 완벽하게 채워져 있었다.

더한 마법들도 연사가 가능하지만, 경기장 내의 다른 유저들이 나를 알아채면 곤란하니...

지금만큼은 가장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인, 얼음 속성 마법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 마법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잠시 후에 느낄 해방감을 상상하며, 나는 천천히 그를 제압할 얼음 속성의 상급 마법을 영창했다.

“...어라?”

고드름의 그림자를 보고 나서야 이상함을 알아챈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와 그대로 시선이 마주친 순간,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입을 쩍 벌린 채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구며 절망하는 모습이, 꽤나 재밌어서.

그 와중에 도망갈 방법이라도 모색하려는 듯 [자세]와 여러 도주용 스킬들을 활용하려는 듯 싶었지만,

수백 개의 얼음으로 이루어진 화살비가 하늘을 수놓으며 그의 움직임을 제약했고,

<상급 마법:="" 백상(Hoar="" Frost)=""/>

모든 것을 얼리는 냉기의 폭풍이 주변에 엄습하여, 그의 발을 옭아매었다.

순식간에 하반신 전부가 얼어붙은 그에게, 나는 말했다.

"너희 길드장 나오라고 해. 할 말 있으니까."

­제한 시간은 일 분, 시간을 못 지키면 팔다리 하나씩을 가져갈게.

내 제안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그는, 핸드폰을 연신 두드리며 부하들을 부르기 위해 울부짖었다.

안타깝지만, 핸드폰의 전파와 부하를 부르는 외침은 전부 침묵의 장막에 막혀 바깥으로 전해지지 못했다.

애초에 내 제안은 <사일런스>가 지속되는 한 그가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금 말하지만, 이는 단순한 화풀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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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동화율: 0.17%)

겨울의 상태창의 한 구석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메세지가 작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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