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16. 네임드
* * *
“점점 수도로 올라오고 있네요. 저 사람들이 자수한 경찰서가... 구미시. 부산에서 구미까지 선을 그어 보면 확실하군요.”
혜원이 손가락으로 지도에 그려진 이동경로를 훑으며 말했다.
그어진 붉은 선을 쭉 이어 본다면, 걸리는 곳은 수도 서울.
대한민국의 최대 도시이자,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해 있는 장소였다.
“인구 밀집 지역에 적대적인 최상위권 랭커 유저의 등장이라...”
“중국 꼴을 보셨듯, 이대로 가면 대형 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르죠.”
중국에는 과거 top 1000 안에 드는 랭킹권 천상계 유저들이 다수 존재했다. 아무리 인재가 없더라도, 그 많은 인구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라 쭉 늘어서 있는 랭킹 1000위 안쪽 랭커들 중 열에 하나는 중국인이었던 기억이 있었다.
랭킹 1000위 안쪽 정도면 가히 일인군단이라 칭하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그쯤 되면 근접 직업군이라면 단순한 신체능력으로 소총탄을 버텨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다.
만약 스킬을 사용한다면, 대전차포든 뭐든 현대 화기로는 죽이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괴물 하나가 탄생한다.
반면 마법사나 궁수와 같이 원거리 종류 직업군들은 그런 탱커류 유저들에 비하면 처리하기 쉬웠지만, 그들 역시 나름의 방어수단이 있었다.
만전의 상태라면 근접 직업군 유저의 육체 이상의 방어력을 발휘하는 마법사의 방어마법이나, 총알도 보고 피할 수 있는 궁수의 반응속도와 신체능력.
이쯤 되면 쉬이 알 수 있듯, 말 그대로 유저들 중에서도 ‘랭커’란 이름을 달고 있는 존재들은 현대 화기가 통하지 않는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중국은 그런 유저들에 대한 박해가 가장 심했던 나라 중 한 곳이란 점이었다. 한국의 차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내부의 유저들을 축출하는 데에 온 힘을 쏟았다. 막말로 ‘알라를 믿는 인간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라며 인간이 아닌 유저들을 학살하고 참수하던 이슬람 국가들과도 비견이 될 정도였다.
시민권이 박탈당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듣도 보도 못한 죄명으로 수용소에 들어가 생사조차 불분명해지는 등 유저가 된 이들은 인권이 말살당할 처지에 이르렀고, 자연스럽게 그들은 외국으로 탈출해 불법체류자 신세로 구걸을 해 가며 연명했다.
그러던 와중, 상태창이 정상화되며 많은 유저들이 그 괴물같은 힘을 되찾았다.
그 다음에 남은 일어날 일은 간단했다. 자신들을 쳐내고 버렸던 중국 정부에 대한 처절한 복수극이 시작되었다.
상하이, 베이징, 텐진 등등 많은 대도시들이 불길에 휩싸이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중국군들은 유저들의 공격에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유저들의 중국에 대한 공격은 도시를 다같이 기습하는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연스럽게 전장은 중국의 주요 도시가 되었다. 도시 내부에서 군대와 유저간의 시가전이 이루어졌고, 소규모 교전이 주를 이루는 시가전에서 총기가 통하지 않는 유저들 상대로 군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유저들 중에서도 약한 편인 자들을 제압하거나 죽일 수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사례들은 ‘반 중국군’의 주 전력인 상위 랭킹권 유저들에겐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미사일이나 전투기를 통한 폭격같은, 상위권 유저들에게도 피격 시 효과가 있는 ‘과격한 방식’으로 대응책을 실시하기엔 크나큰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들의 기반 시설들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포격이나 미사일로 유저들이 차지한 도시들을 공격하면 국가 차원에서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상하이나 베이징 같은 도시들의 고층 빌딩들을 잘못 건드렸다간 국가 전체가 부도가 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공격 대상이 된 도시들에서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의 생명을 져버릴 수도 없다는 점 역시 문제가 되었다.
한 도시에 어림잡아 수천만 명의 시민이 살아가는데, 이 위에 폭격 명령을 내린다? 당장 민심이 뒤집혀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또 그런 이유로 유저들의 기습공격을 내버려두면, 중국 내 주요 도시들이 전부 유저들에게 빼앗게 될지도 모르는 일. 말 그대로 답이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중국군의 고위 간부들은 이러한 사면초가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갈팡질팡했고, 결국 기존에 득세하던 중국 정부는 몰락했다. 유저 배척 정책을 지지했던 대다수의 수뇌부들은 전부 유저들의 손에 죽임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놀라운 점은, 이런 미친 짓을 벌인 유저들 대다수가 상위권 만 명에도 채 들지 못하는 평균적인 pvp유저들이란 점이었다.
하물며 일반적인 유저들이 단체로 행동해도 중국이란 거인을 무너트리는데, 이런 유저들을 손짓 한 번으로 학살할 수 있는 최상위권 랭커, 심지어 그 중에서도 세계 랭킹 4위가 도심지에 나타난다?
악몽과도 같은 사건, 9.11 그 이상의 사상자가 나오는 역대 최악의 사태가 터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막아야겠네요.”
나는 지도 위의 붉은 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부터 부탁은 해볼 생각이긴 했지만... 설마 도와줄 겐가?”
갑작스럽게 얼굴에 화색이 어린 김 대장이 질문하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예진이와 예림이를 바라보았다. 이번 일을 처리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왜요, 오빠?”
“아니, 너희 집...여기 아니야?”
나는 붉은 선에 가려져 있는 한 아파트 단지를 가리켰다. 지도에 적혀져 있는 단지의 이름은 백합아파트. 확실히 예진이네 집의 아파트 이름과 똑같았다.
요즘 집값이 떡상중이라고 내게 자랑하던 예림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러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집 주변에서 사람이 죽거나 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집값은 떨어지기 마련. 정말로 우연찮게도, 애인을 잃고 유저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한 또라이 겅듀가 이 아파트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잘못하다간 집값이 떨어지는건 물론이고, 아파트 한 채가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었다.
고렙 암살자의 참격은, 검사만은 못하더라도 콘크리트와 철근쯤은 가볍게 자를 수 있으니까. 심지어 랭킹권인 토끼겅듀라면 아파트 한 채쯤은 일도양단 해버릴지도 모른다. 당장 부산에서만 아파트 수 채를 무너트렸다는 보고도 있었으니까.
“잘못하면 집값 떡락하겠는데?”
“...아?”
의자의 시트 위에 의욕 없이 늘어져 있던 예진과 예림이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