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20. 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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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계열 마법인 나, 그의 완벽한 상위호환인 는 대상자의 몸을 시전자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만드는 스킬이다.
물론 게임상에선 캐릭터의 조종 기능만 잠시 탈취당하는 스킬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현실 속의 유저에겐 당연하게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유저들이 상태창을 각성하고 나서부터는 옛말이 된 지 오래였다.
“...당신은 누구지?”
시아의 몸에는 이미 내가 구사할 수 있는 cc기 스킬들을 최대한 때려박아 둔 상태였다. 만일을 위해서 앞서 시전했던 은 물론이고, 꽤나 무리까지 해 가며 특정 스킬들을 봉인하는 마법까지 걸어 두었으니 가만히 숨을 내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터였다.
시아 본인이어도 탈출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 그녀의 몸을 탈취한 자가 누구인진 몰라도 몸의 통제권을 순순히 포기하지 않는 한 얌전히 내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
“...주인님, 이게 다 무슨 일이죠.”
“아, 왔구나.”
내 등 뒤에 선 예진이와 예림이를 확인하니 확실히 든든해졌다. 우리 세 명을 한 번에 위험에 빠트릴 정도의 위기는 핵폭탄 정도 말고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시아의 몸을 빼앗은 존재가 당장 핵폭탄을 쏘라고 지시할 수 있는 국가 원수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위협이 될 리가 없으니, 마음이 편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니, 나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시아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아의 몸을 지배하는 데에 성공한 마법사와 마주한 것이었다.
“안녕. 넌 누구니?”
“...반갑다. 랭커 뿔잡고아기만들기, 그리고 배빵성애자.”
“...”
그런 굵직한 목소리로 민망한 닉네임을 말해 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된 상황이라, 나는 얼굴만 찌푸린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예진은 손부채질을 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와중에 아무런 내상을 입지 않은 예림만이 내 뒤에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저기, 내 닉네임은 왜 안 불러줘?”
“랭킹 23위. 네 닉네임은 그다지 가치가 없어 외우지 않았다.”
냉정하게 들릴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무미건조한 말에 예림은 할 말이 없어졌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전형적인 말 많은 인싸 성격인 그녀를 단박에 입을 다물게 하다니, 생각보다 대단한 녀석이었다.
그건 그렇고, 랭킹 23위면 세계에서 pvp를 스물 세 번째로 잘하는 유저라는 소리였다. 장비 및 스킬 숙련도, 각종 스텟 역시 최상위권에 도달했을 것이 자명한데, 가치가 없다니.
“그래서, 시아를 이렇게 만든 이유가 뭐야? 너희 둘 사이가 어떤 관계였든, 시아는 네게 꽤나 쓸만한 말이었을 텐데.”
시아는 마음만 먹으면 마음에 안 드는 인물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국가 원수들의 목도 며칠 내로 따고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직업 특성상 그림자에 몸을 숨길 수도 있으며, 각종 은신 전용 스킬들로 무장하고 있으니 범인으로 특정당하지 않은 채 완전범죄를 성공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그녀의 남자친구를 인질로 잡은 상태였다면, 그 상황을 유지시키며 명령을 통해 자신의 계획에 방해되는 인물들을 처리하는 게 단순 계산으로만 봐도 이득이었다.
“그 이유는”
“알아, 말해줄 수 없겠지. 그럼 말해주지 않아도 돼. 이젠 필요가 없어졌거든.”
나는 시아의 머리 뒤에 연결되어 있던, 미세한 마나의 실을 잡아챘다. 이 실의 정체는 바로 라는 마법의 매개체였다.
과거의 나였다면, 있는지조차 몰랐을, 미약하다는 것으로도 모자라 존재하지 않는 것에 가까운 마나.
그러나 그 정체를 파악하자마자, 그에 관한 정보들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올랐다. 의 발동 방식 역시 떠오른 정보 중 하나였다.
‘가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 거였구나?’
시전자의 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마나의 실을 통해 상대방의 의식을 짓누르는 방식이라, 꽤나 악취미적으로 설계된 마법이었다.
‘이런 스킬을 게임 속에서 사용하고 다녔었다니, 의외로 판타지아 온라인은 위험한 게임이었던 걸까... 어쨌든,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영양가 없는 잡생각을 쳐낸 나는 잡아챈 마나의 실에 드래곤 하트에서 막 뽑아낸 정순한 마나를 흘려 넣었다.
시아의 머리에 붙어 있던 이 실의 반대편에는 당연하게도 및 각종 정신계 마법에 능통한 시전자가 있을 터.
“어떻게 내 마법 스킬을 파훼한 거지..! 그런 종류의 스킬은 존재하지 않았을 텐데...?”
이쯤 되니 나에 비해 마나에 둔감하기 짝이 없을 상대방도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챈 것 같았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쪽도 실력있는 마법사라는 건가.
그러나 그의 다급한 물음에 이쪽은 딱히 대답할 거리가 없었다. 있더라도, 알려줄 생각은 없었겠지만.
“나도 몰라. 하니까 되던데?”
“그게 무슨 개같은 소리냐! 그런 짓이 쉽사리 가능하다면 지금쯤 다른 유저들은...”
“이쪽도 방금 깨달은 능력이라니까? 네가 믿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
원체부터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도 마나의 덩어리를 심심풀이 삼아 가지고 놀았던 게 도움이 된 걸까, 나도 모르게 새로운, 스킬이 아닌 순수한 내 능력을 깨닫게 된 것 같았다.
마법 시전자의 마나를 통한 역추적이라니, 그 어느 스킬도 가지고 있지 않는 사기적인 효과였다.
그렇게 실에 흘려넣은 순수한 마나가 닿은 지점은... 우리나라의 지역구 기준으로 충주시의 한 학교 안.
나는 을 사용해 그 남자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예진이와 예림이 및 미리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링크해 두었던 정부기관 소속의 유저들에게 보냈다.
“...이 정보는.”
지도가 잘 전달됐는지, 예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 일을 벌인 범인의 좌표야. 알아서 추적해서 생포해 와.”
“알겠습니다.”
“잡아 오기 전에 한 대 패도 괜찮죠?”
‘가치가 없다’는 혹평을 들었던 게 분했던 건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두 주먹을 마주치며 예림이가 질문했다.
“알아서 해. 팔다리를 뽑든 몸통을 지지고 볶든 상관없으니 죽이지만 마.”
“네! 금방 다녀올게요!”
그 말만 남긴 채, 두 자매는 건물의 옥상과 외벽을 뛰어넘어 가며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녀석의 마나 패턴은 이미 숙지해 두었고, 위치 추적 마법 역시 마나의 흔적을 감추는 계열 마법을 섞어 그의 피부에 걸어 두었다.
온 몸의 피부를 뜯어내거나, 내 추적 마법을 그가 역으로 간파해내지 못한다면 그는 영원히 내가 정보를 보낸 사람들에게 추적당하게 될 것이다.
방금 전의 살벌한 대화를 들은 놈의 공포에 가까운 감정이, 녀석에게 정신지배를 당한 시아의 흔들리는 동공에서 느껴졌다.
“연결은 끊을게. 알아서 잘 도망가 봐.”
이제부턴 유저들 중에서도 우수한 편인 청와대 소속 유저들이 그를 추격할 것이고, 무엇보다 두 최상위권 랭커가 내 명령에 따라 범인이 잡힐 때까지 이를 악물고 쫓아갈 것이다.
거기에 추격전이라면 각종 경험으로 도가 튼 경찰 및 특수부대 인력들이 그녀들에게 통신을 통해 각종 조언 및 지휘를 맡게 될 텐데...
거기에 더불어, 녀석의 마법적인 수준을 보면 마찬가지로 최상위권에 속하는 랭커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정신계 마법에 스킬 포인트를 잔뜩 투자한 걸 보아하니 아마 도주기는 사용하길 포기한 유저일 것이다.
그런 점까지 감안했을 때, 그가 성공적으로 도망칠 가능성은 정확히 0%였다. 막말로 우주선을 타고 우주정거장이라도 가지 않는 이상, 내 위치 추적 마법은 계속해서 유지될 테니까.
“이 개”
연결을 끊기 직전, 울분이 가득 담긴 욕설이 날아왔던 것 같지만, 나는 관대한 마음으로 용서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몇 시간, 길게 쳐 줘도 하루 이내에 생포되어 내 눈앞에 대령될 게 뻔하니까.
나는 두 사람의 기척이 저 멀리 멀어져 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고 쓰러지는 시아를 받아들었다.
“후, 이 뒷수습을 어쩌나...”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규칙적으로 숨을 내쉬며 곤히 잠들어버린 시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우선 전투 덕에 부서진 주변을 적당히 마법으로 메꿔 둔 다음, 곤히 잠에 든 시아를 깨우지 않게 조심히 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창문이 열려 있어서인지 냉동고와 다름없어진 방 안의 온도에, 나는 방한 마법을 펼치고 이불 위에 시아를 내려두었다.
“후우, 오랜만에 몸을 좀 풀어서 그런가, 갑자기 졸리네”
분명 잠은 그동안 충분히 자 두었을 텐데, 왜 갑자기 이렇게 졸린 거지.
불과 몇 시간 전에는 에너지 드링크도 마셨는데
점차 흐려지는 시야에 더 이상 의식을 유지하지 못한 채, 나는 그대로 시아의 옆에서 잠에 빠져들었다.
동화율이 상승했습니다.
상태창 한 켠에 떠올랐다 사라진, 짤막한 문구를 확인하지 못한 채로.
“젠장할! 일이 이렇게 되다니, 성공까지 코앞이었는데!”
남자는 임시 주거지로 삼고 있던 학교의 과학실의 교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러나 아직까지 마지막 비장의 한 수는 걸리지 않았다.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전세 역전을 넘어서, 자신에게 엿을 먹인 그 년에게 설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벤토리.
남자의 명령에 허공에 아공간(???)이 형성되었다.
아공간 안에서 게임 속에서 사용했던 장비들을 전부 꺼내 착용한 남자의 모습은, 마치 중세시대의 역병의사를 떠올리게 했다.
‘그동안은 정체를 숨기느라 사용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미 위치가 특정되었고, 정체도 반쯤은 드러난 상태에서 물불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아공간에서 여러 아이템을 꺼낸 남자는, 화학실 내부에 있는 여러 장치들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없으니, 이번 작업은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만 했다.
"데님!"
"우우..."
남자의 부름에, 거대한 대검을 든 거한이 웅얼거렸다. 대답이라고도 하기 애매한 발음과 역하기 짝이 없는 입냄새에 남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학교 밖의 운동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잠시 후면 나를 적대하는 유저들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들을 이곳에 들이지 말도록."
"우우우!"
오랜만에 받는 명령다운 명령에 기뻐한 데님은, 그 즉시 밖으로 뛰쳐나가 잠시 후에 찾아올 전투를 고대했다.
자신에게 어떤 미래가 찾아올지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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