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52화 (52/59)

〈 52화 〉 22. 좀비

* * *

좀비들은 하나같이 약했다. 근력에는 포인트를 거의 투자하지 않았던 나도 맨몸으로 학살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일반인들에 비해선 마치 모 게임의 좀비들처럼 훨씬 빠르고 강력했다. 심지어 달리기도 할 줄 알았다. 그 흑마법사가 노린주요 전파원은 같은 유저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이니 그 점을 고려하면 통제를 잘못하다간 매우 심각한 사태로 번질 수 있었다.

우리가 나선 이상, 그렇게까지 사태가 극단적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다리 하나가 날아간 경비원 좀비가 바닥에 쓰러졌다.검게 썩어버려 악취를 풍기는 피를 흘리던 녀석은 내 다리를 물고 싶은지 두 팔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역겹네.”

나는 연구소 입구에서 주운 파이프로 녀석의 팔을 부러트렸다. 팔이 슬슬 얼얼해 난타를 멈추고 나니, 팔다리가 부러져 기괴하게 뒤틀린좀비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어 보였다. 기껏해야 고개를 까닥이는 정도가 녀석에게 허락된 움직임의 범위였다.

속을 울렁거리게 하는 악취와 불쾌감은 여전했지만,샌드백을 치듯 파이프를 몇 번 휘두르니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기분이었다.

“...”

좀비는 머리를 쳐내거나,몸통을 통째로 날려버리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나는 두 가지 방법 중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었다.머리를 고드름으로 꿰뚫든,전신을 불로 태워버리든 말이다.

그러나 당장은 그럴 생각은 없었다.이 인간들을 살려낼 방법이 있었거든.

‘분명,그 남자는 인벤토리를 사용했었다.’

이렇게 좀비가 된 사람들을 살려내는 방법은 굉장히 제한적이었다.의지를 잃고 신체를 빼앗겨 본능대로 행동하는 시체를,다시금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리는 방법이었으니 당연했다.

가장 먼저,고레벨의 사제가 필요하다.

언데드를 구제하거나 정화하는 데에는 사제가 필요하듯,좀비가 된 이를 치유하기 위해선 사제의 축복이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준비물이 필요하다.

그 준비물이 뭐냐고 하면,바로 성수(??)다.성국의npc성녀와,최고 법당 안의 샘에서만 나오는 모든 어두운 기운을 몰아내는 정화 및 치유의 효능이 있는 물. 고위 사제의 축복까지 더해진다면 방금 막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기적까지도 행사할 수 있는 엘릭서 다음 가는 소비 아이템이었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훨씬 가치가 높았으니 일반적인 유저들에게 그 위상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유저들이 이를 구하는 데에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했지만,알다시피 우리 랭커들의 인벤토리엔 산처럼 쌓여 성수로 호수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남아돌았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고위 사제 역시, 과거의 인맥을 활용한다면 못 구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내게 게임 내에서 큰 빚을 진 유저들은 수도 없이 많았고, 그 중 실력파 사제만 골라도 한트럭은 될 거다.

‘그러니 인벤토리를 여는 방법만 알 수 있으면...’

성수가 있는 인벤토리만 열 수 있으면 이 사람들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건 시간문제다.아마 예상하건데 이 연구원들 하나하나가 나라의 귀한 엘리트 인력들일 테니,치료하는 데에만 성공한다면 자수정 광산에 대해선 충분히 값을 치루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겨울은파이프를 바닥에 던져 버렸다.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풀었으니,이젠 빠르게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드래곤의 피가 섞인 심장이 격동하며 마나를 방출하고,이를 자유자자로 다루어 마법진을 형성한다.눈으로 쫒기조차 힘든 속도로 사출된 마법들은 주변에서 튀어나오는 좀비들의 다리를 노렸다.

입구와 상층부의 모든 좀비를 정리한 겨울은 지하로 연결된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지하로 가는 문은 어째선지 단단한 합금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강화벽에 가로막혀 평범한 문으로 위장되어 있었다.마치 이 뒤에 있는 공간을 숨기고 싶은 것처럼.

만약 일반인이라면 이 벽 뒤에 빈 공간이 있다는 걸 깨닫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겠지만,그녀에게 이 정도의 장애물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용언 마법:이미르의="" 숨결(Ymir’s="" breath)=""/>

신화 속 서리거인의 숨결이 강화벽을 뒤덮자, 겨울은 마법 하나를 더 캐스팅했다.

<상급 마법:헬파이어(Hellfire)=""/>

차갑게 냉동된 합금판에 고열의 지옥불이 엄습하자,강화벽은 이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뒤틀리더니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캬아아악!

기분 좋게 비밀 통로 안으로 입성하려던 순간, 먼지구름 뒤로 수많은 인영들이 나타났다. 당연히 의지가 있는 사람은 아니고, 좀비였다.

“...소음에 자극을 받았나?”

벽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듯 그 뒤에서 수십의 좀비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섬뜩한 장면이었지만,이보다 더한 꼴을 수도 없이 보아 왔던 겨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벽 뒤에 갇혀 있던 악취에 얼굴을 살짝 찌푸렸을 뿐.

<비행>을 사용해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날아오른 겨울은 벽 내부를 둘러보았다.무슨 연구를 하던 실험실이었는진 모르지만,꺼림척한 냄새가 물씬 났다.

위치한 지역은 사람 없는 한적한 구역.거기에 일 층에는 화기까지 들고 있는 경비원들도 있었다.물론 이미 좀비가 되어 총을 쏘기는커녕 바닥의 탄창을 밟고 넘어지는 놈들이 다수였지만.

물론 거기까지만 보면,평범한 국가에서 감추고 있는 연구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겨울은 자신을 따라오는 좀비 떼의 발을 자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입구는 마치 일반적인 벽처럼 위장되어 있는 상태였고,지금 보이는 좀비가 된 연구원의 수 역시 심상치 않았다.거기에 눈앞의 기둥에 적혀 있는‘27’이란 숫자.

당장 이 방의 규모만 해도 웬만한 건물 하나는 통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데,자신의 짐작이 맞다면 이 규모만한 섹션이 최소한 스물 여섯 개는 더 있다는 소리였다.

‘이 곳에서 도대체 뭘 연구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한번 무슨 짓을 해놨는지 구경이나 해 볼까.’

드래곤은 게으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의문이 생기면 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생물이었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이젠 그녀에게 너무나 익숙한 환경이었다.

오히려 바깥의 환한 햇빛을 본 기억이 더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러나,그녀는 이런 굶주림은 익숙하지 않았다.

‘어째서,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

배고프다.목이 마르다.

극히 일부의 케이스를 제외하면 어떤 약물을 주입하든,어떤 실험을 받든 간에 적어도 밥과 물은 원하는 만큼 든든하게 챙겨 줬었다.그나마 그 식사로 생긴 여력으로 어떻게든 정신줄을 부여잡고 버텼다.그런데 이제는 그런 식사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아니,정확히는 아무런 실험이나 관심조차 주어지지 않았다.아무도 이 실험실에 찾아오지 않은 지 벌써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는 이 방 안에선 식사가 나오는 주기만이 시간의 흐름의 척도였으니,식사 제공이 끊긴 지금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식사는 차치하고,그녀는 누구라도 좋으니 당장 자신에게 말을 걸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디를 보아도 달라지는 것 없는 검은 시야만이 가득한 방 안에 혼자 이러고 있으니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어쩌면,이런 자신의 생명을 극한까지 몰아가는 지금의 상황 역시 실험의 일환일지도 모른다.자신이 살든 말든 실험자들은 그다지 신경쓰는 편이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귀한 실험체인 유저가 아니라 일반인에 불과했다. 정확히는, 이곳의 과학자들에게 적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은 일반인.

‘여기 들어오면 빚을 갚아 준다는 엄마의 말을믿는 게 아니었어.아무리 힘들었어도,바깥 생활이 그리워...’

이젠 몸 안이 실시간으로 바싹바싹 말라 가는 게 느껴졌다.사람이 삼 일 동안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죽는다고 들었는데,내 사인은 그럼 탈수인가.참 스스로다운 같잖은 사인이었다.

문득,흐린 기억 속에서 햇볕에 말라죽은 벌레를 가지고 놀곤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자신의 꼴이 그 기억 속 하찮은 벌레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잘 떠오르지도 않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걸 보니,이게 그 소설에서나 봤던 주마등인가 보다.이젠 정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주린 배를 부여잡은 채 모든 것을 포기한 그녀는,독실의 문 앞에 눈을 감고 드러누웠다.

이대로 잠들어서 고통 없이 죽는다면,아무런 소원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귓가에 희미한 발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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