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53화 (53/59)

〈 53화 〉 23. 비밀

* * *

유저들이 힘을 되찾은 뒤, 더 이상의 인권을 훼손하는 극악무도한 실험은 없었을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유저가 된 뒤로 연락이 끊긴 친구들도 어디선가 무사히 생활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오산이었다.

“...이건.”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로 가득한 수조 안, 각종 종족들의 신체 일부가 둥실둥실 떠다니며 기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리나 팔, 귀 같은 특정한 부위부터, 무슨 용도였는진 몰라도 잘린 성기나 도려내진 내장, 뇌와 같은 부위도 종종 보였다.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걸 보니, 벌써 상태가 좋지 않은 일부는 썩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바깥의 좀비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비하면 덜하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역했다.

무엇보다, 실험을 위해서인지 세세히 조직 하나하나를 잘라낸 모습은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만약, 운이 좋지 않았다면 암시장에 팔려나갔던 나 역시도 저런 운명을 맞았을 수도 있단 소리니까.

“...왜 정부에서 이런 용도로 쓰이던 곳에 날 보낸 거지?”

이번에 우리가 정부 측으로부터 받은 업무는 말 그대로 연구소에서 좀비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막아 좀비화 질병의 전염을 원천봉쇄 하는 일.

말만 들으면 매우 어려워 보이지만, 겨우 레벨 10~20대의 초보자 유저들도 몇 개체쯤은 썰어버릴 수 있는 좀비들만 이 연구소 근방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으면 되는 일이다. 이 정도의 수준은 단순히 무장한 군대만 파견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가까이 가지 않고, 접촉만 하지 않으면 전염될 가능성은 0%에 수렴했으니까.

군대를 못 믿겠다면 여기서 어떤 광경을 보든 순순히 입을 다물고 있을 정부 측 유저들을 기용하면 그만이었다. 그들 수준이 객관적으로 우리 셋보다 한참 떨어진다고 해도 이 정도조차 처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외에도 이 연구소와 내부의 좀비들을 처리할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그 많은 방법들 중 우리 셋을, 그것도 이 연구소의 실체를 알고 나면 분노할 것이 분명한 세 위협적인 랭커 유저를 파견한다는 선택을 한 것일까.

혹시 우리가 그 허술한 비밀 벽을 알아채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건가?

아무리 정부인사들이 유저들의 능력을 잘 모른다고 해도, 5층 학교 건물도 한번에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초인들이 그렇게 간단히 속아넘어가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터.

‘누군가, 우리가 정부에게 적개심을 가졌으면 하는 인물이 정부 내부에 있다.’

유저들은 인체실험에 대해 엄청난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외부로 외출하지 않고 방구석에 박혀만 있던 유저들 대다수가 납치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한때나마 국내에서 강력범죄 중 납치 범죄 비율이 매우 큰 폭으로 올랐던 적도 있었고, 실제로 경찰들이 범인 검거, 피해자 구출에 실패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유저들 사이의 공포심은 나날이 늘어갔다.

그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유저, 그 중에서도 국내 제일의 전력인 세 사람을 이런 곳에 아무런 언사 없이 보낸다는 건 명백한 의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확신에 차 이야기했지만, 물론 어디까지나 현 상황에 따른 추측일 뿐이었다. 누군가가 내 추측을 훔쳐듣고 억측이라고 반박하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내가 믿는 구석이 있다면, 몸이 이렇게 변한 뒤로 이런 직감은 거의 틀리는 일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김 대장에게 연락이라도 해 봐야 하나.”

사적인 연락처를 알고 있는 정부 측 인사는 그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도 어디까지나 군 내부 인물. 한 나라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이니 내 편에 서줄 리가 만무했다. 내가 필요한 정보를 이쪽에 유출시킬 리도 없었다. 그동안 보아 왔던 그는 융통성 있는 남자였으나 본분에 한해선 한없이 충직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유일한 답은...

“...좀비가 아직도 남아 있었나?”

기감에 잡힌 미세한 인기척. 파악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매우 미약한 것이 일반적인 좀비는 아닌 듯 싶었다. 평범한 좀비라면 이렇게 기척이 미미할 수가 없었다.

‘살아있는 생명체인가? 호흡하는 소리가 들려.’

생명활동이 정지된 채 움직이는 좀비가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 난리통에 생존자가 존재한다니 놀라울 따름이지만, 금방이라도 말라죽을 것만 같은 힘없는 숨소리에 나는 빠르게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거대한 해치로 막혀있는 방 안, 아마 바깥쪽에서 안쪽을 향해서만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코팅된 유리벽 내부에는 삐쩍 바른 사람 한 명이 벽에 기댄 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기대했던 이 연구소에서 일하던 직원이 아니라 피실험자, 즉 이곳에 인체실험을 목적으로 잡혀들어온 유저 같았다.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이 아닌, 갇혀서 실험을 당하던 피해자인 만큼 그녀에게서 원하는 정보들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일단은 사람을 살리는 게 먼저였기에 나는 로 벽을 넘어갔다. 방금 전 비밀벽을 돌파할 때 그랬듯무작정 문을 부쉈다간 방 안에 파편이 튀어 다칠 수도 있었으니까.

많이 지쳤는지 지척까지 다가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불쌍한 아이에게, 나는 선뜻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아?”

********

빼빼 마른 상태에다, 뱃거죽은 등에 거의 달라붙은 상태.

나는 그녀를 마법으로 재워 둔 다음 간단한 버프 마법을 몇 개 걸어 두었다.

포만감을 느끼게 해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력만이라도 돌아오게 하는 건 가능했다. 아마 이걸로 어느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겠지.

을 사용해 바깥에서 좀비들을 처리하기로 했었던 예림이와 연락했다.

­예림아, 바깥쪽은 전부 처리했지?

­이미 전부 끝낸 지 오래에요. 오빠는 왜 안 나와요?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이면 좀비가 아무리 많아봐야 진작에 다 처리됐을 텐데.

­재밌는 공간을 발견했거든. 네 쪽으로 사람 한 명을 보낼 거야. 상태가 꽤 좋지 않은데, 일단 인간과 신체구조가 다른 유저인 만큼 언니랑 함께 내가 저번에 보내줬던 연락처로 연락해서 그쪽으로 데려가.

­아니, 갑자기 그렇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잖아? 아니면 네가 말했던 ‘벌’이라도 받고 싶은 거야?

그녀는 제 언니와 함께 우리 집에 얹혀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자신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벌을 내려도 좋다고 장담했었다. 도대체 왜 그런 요구를, 그것도 제 언니처럼 선을 넘어 벌을 받는 게 아닌데도 자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 주기로 했다.

­...저기? 내가 말이 좀 심했나?

그런데 그 ‘벌’을 입에 담은 뒤로 한참이나 답이 없길래, 내가 말이 너무 심했나 하고 후회하려던 찰나 늦은 대답이 돌아왔다.

­받고 싶어요...

­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오빠는 그 아래서 계속 계실 거에요?

­여기서 알아볼 게 조금 더 있어서. 조금만 이곳에 더 있다가 뒤따라갈게. 먼저 가 있어.

그렇게 모든 통신을 마친 나는 눈앞에 놓인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연구를 진행하던 도중에 습격을 받은 건지, 아무런 패스워드나 보안장치조차 걸리지 않은 채 방치된 기기들이 수두룩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볼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