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56화 (56/59)

〈 56화 〉 24. 참교육은 언제나 달다

* * *

오빠가 그 수상한 연구시설에서 구출해 데려온 아이는 지인 신관 유저가 일한다는 믿을만한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극심한 영양실조 외에 신체에 치명적인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조금씩 요양시켜 주기만 한다면 금방 건강을 되찾을 것이란 확답을 받을 수 있었다.

예진은 안심과 함께, 신원을 알 수 없는 아이의 보호자로서 그녀가 치료받기 위한 모든 절차를 끝마쳤다.

그러나, 예상 외의 문제가 일어났다.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살려 둬. 일이 끝나면 내가 연락할게. 한시간보단 좀 더 오래 걸릴 것 같으니 편하게 쉬고 있어.

어느새 24시간을 훌쩍 넘은 오래된 메시지. 이 메시지 한 줄이 오빠가 사라지기 전에 남긴 마지막 연락이었다.

­넹.

­근데 언제 와요? 3시간 넘었는데?

­오빠? 하고 있는 일이 오래 걸린다면 연락이라도 해줘요. 다들 걱정하고 있어요.

­제발 대답 좀...

­어디에요?

원래부터 메신저를 잘 확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연락이 끊긴 지 세 시간부터 전화도 병행해서 걸었다. 적어도 전화만은 제때제때 받는다는 걸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사람으로서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엔 전화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감감무소식 그 자체였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오빠는 걱정을 받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역으로 우리 일행 중 유일하게 오빠보다 랭킹이 높은 예진 언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걱정해야 이치에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인간은 무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우수하고 강력한 유저였다. 단순한 순위가 모든 것을 결정하진 않는다는 것을 예림도 알았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방심하거나 자만하면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예림이 아는 그는 그렇게 간단히 무너져내릴 사람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전에 비해 기억력이 괴물같이 늘어나고, 마법 캐스팅 속도도 빨라지고, 점차 감정 변화가 줄어들어 무뚝뚝해져 가는 것 같아도... 오빠는 오빠였고, 그는 언제나 그녀들의 시선에선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믿고 기다려 볼...”

까, 라고 혼잣말을 끝내며 병원 침대에 눕기 직전, 예진의 뇌리에 옛 친구의 기습에 당해 온 몸이 결박당한 오빠의 하찮은 모습이 떠올랐다.

그 다음에는, 한밤중에 집에 찾아갔을 때 봤던 침을 흘리며 자는 귀여운 표정이 한 번,

그 다다음에는 목이 졸려 정신을 잃고 지려버린 걸 부끄러워하던 장면이 한 번,

마지막으론 정부가 내건 보석과 돈에 미쳐서 냅다 꺼림척한 일을 받아들이던, 자신이 알던 오빠답지 않은 멍청한 모습이 한 번씩 스쳐 지나갔다.

...역시, 오빠 역시 이런저런 면에서 크게 달라지긴 한 것 같았다. 여전히 예림과 그녀의 언니에게 있어선 그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인건 매한가지였지만, 요즘 들어 자꾸 허당끼를 보이곤 했다. 평소에는 실수하거나 판단히 흔들릴 리가 없는 상황에 당황해 이상한 선택을 한다던가, 방심한 탓에 자신에 비해 능력이 떨어지는 상대방의 기습에 냅다 당해버린다던가.

‘...드래곤은 한 번 사귄 친우를 소중히 여겨 배신당하곤 한다거나, 보석류에 환장한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오빠가 아무리 뿔이 달린 반룡이라곤 해도, 그런 본능에 섣불리 져버렸으리란 생각은 안 들었다. 분명 속내에 뭔가 다른 생각이 있었겠지.

...그래도 여전히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가 요즘 들어서 빈틈을 자주 보이는 건 사실이었으니.

“역시, 한 시간이면 끝난다더니 그 뒤로 하루가 지날 동안 연락이 없다는 건..”

이쪽에서 찾아가도 된다는 거겠죠, 오빠?

**********

예림이 걱정을 산더미처럼 끌어안은 채 일행과 함께 겨울과 헤어진 연구소로 찾아가고 있을 무렵, 겨울은 연구소에서 발견했던 실험체 목록 중 ‘반입 경로’에 적혀있던 주소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 주소의 위치는 중국의 한 변방 지역이었다.

허구한 날 걷는 대신 마법으로 날아다닌 덕에 향상된 컨트롤 실력과 용족 마법사 특유의 넘쳐나는 마력을 통해 시속 500km를 훌쩍 넘는 속도로 날아가는 중이었지만, 거리가 거리인지라 날아가는 도중 생각을 정리할 만한 시간은 넘쳐났다.

“예림이가 걱정하려나...”

저 아래, 힘을 되찾은 유저들의 반란으로 처참히 무너진 중국의 도시들이 보였다. 물론 무너진 건 일부 건물들이고, 대다수의 멀쩡한 건물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근심걱정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곳은 과거 게임 내에서도 유명했던 중국의 극단주의 길드가 지배하는 지역이었다. 듣자하니 기지국 건물들을 전부 부수고 이 근방에 지나가는 유성 역시 전부 파괴했다고 들었다. 인민들에게 탈출욕을 부추키는 외부의 선전과 매체를 원천차단하기 위해서라나. 덕분에 타국에서 경제 제제는 물론 테러 단체로 규정되어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망해가고 있었지만 마법과 스킬의 힘으로 어찌저찌 버티는 중이라고 들었다.

유저들 입장에서 통신 및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모든 직업군이 , 등으로 수백 km, 특정 직업군이나 특정 스킬을 습득한 상태에선 거리상 지구 반대편으로도 메신저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테니 딱히 문제될 것은 없겠지만, 내가 일반인이라 생각하면 답답해서 못 살게 뻔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그 극단주의 덕분에 현재 내 핸드폰은 완벽하게 먹통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난 딱히 통신 계열 마법에 스킬 포인트를 투자하지 않았기에, 이 정도 거리에서 메신저 계열 마법을 쓸 수는 없었다. 때문에 현재는 그녀들에게 따로 연락할 만한 수단 자체가 없었다.

‘설마, 내가 없다고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조금 오래 걸릴 것 같다고, 가만히 쉬고 있으라고 전했으니..’

시아나 혜원이는 차차하고, 예진이나 예림이는 현실에서든 게임에서든 나를 철썩같이 믿고 따르던 애들이었다. 잘 쉬고 있으라고 했으니 잘 쉬고 있겠지.

이 극단주의자들의 영토만 벗어나면 어떻게든 연락은 가능해질 것이다. 와이파이만 되면 요즘 시대에 불가능한 걸 찾기가 더 빠를 정도니까. 카틱이든 뭐든 적당히 한마디 보내 놓으면 되겠지.

‘아, 결계다.’

듣기로는 일반인들이 자신들의 영토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극단주의 단체가 설치해 둔 대규모 결계라고. 세계에서 가장 큰 결계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봤던 것 같다.

대규모 결계는 그 결계가 보호하는 구역의 크기에 따라 그 강도가 결정된다. 보호하는 구역이 넓으면 약해지고, 좁으면 강해지는, 밀가루 반죽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원리였다.

물론 특수한 처리를 한 구역이나, 여러 겹으로 결계를 설치할 경우 달라지긴 하지만, 무려 한 나라의 국토 일부를 감싸고 있는 결계에 그런 부가적인 효과를 부여할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이 정도의 결계만으로도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을 수 있다. 웬만한 다이너마이트나 바주카포를 들고와도 못 뚫을 테니까. 적어도 같은 유저나 타국의 군대를 동원해야 뚫어낼 수 있을 터.

물론 내 입장에선 들키지도 않고 통과할 수 있는 초보적이고 미약한 가림막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굳이 결계를 통과해서 간다는 위협을 불사할 필요는 없지...조금 아쉽지만.’

저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지 않는다면, 굳이 티를 내서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나는 고도를 높여 구름 위로 올라왔다. 기온이 낮아지는 게 맨살로도 느껴질 정도였지만 몸에 보호 마법을 검으로써 해결했다. 딱히 보호 마법이 아니더라도 이정도 추위는 동화율이 올라간 뒤로 문제되진 않았지만, 극저온의 환경 탓에옷이 꽁꽁 얼어붙어 딱딱한 고체가 되는 감촉이 싫었기에 마법을 쓰지 않고는 불편해서 못 견딜지도 몰랐다.

나는 고도를 높여 구름 위로 올라왔다. 기온이 낮아지는 게 맨살로도 느껴질 정도였지만 몸에 보호 마법을 검으로써 해결했다. 딱히 보호 마법이 아니더라도 이정도 추위는 동화율이 올라간 뒤로 문제되진 않았지만, 옷이 얼어붙어 딱딱한 고체가 되는 감촉이 싫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가려던 찰나, 구름 아래서 누군가가 따라붙었다. 이내 한 명에서 수십 명으로 늘어나는 기척. 보아하니 저 아래서 내 기척을 느낀 누군가가 비행 마법을 자유자재로 시전할 수 있는 마법사와 조인 유저 몇 명을 보낸 것 같았다.

“不?行??!??????者。(미확인 비행체 발견! 유저로 추정된다.)”

“???????!(당신은 타국 영공을 무단으로 침입했다!)”

“??! 不上?下, ?????!(당장 거기 서! 즉시 멈추지 않으면 압송하겠다!)”

역시 유저우월주의는 물론 중화사상에 찌든 길드의 부산물들답게 중국어로 뭐라뭐라 외치긴 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머리가 좋아진 후로 여러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 중 중국어는 없단 말이지.

나는 그들의 외침에 대답을 해주는 대신, 입고 있던 후드로 얼굴을 가린 채 은신 마법을 시전했다. 게임 내에서도 상위권 길드였던 놈들답게 추적자들 중에서도 나름 실력자가 있는지 내 은신 마법을 꿰뚫고 여전히 따라붙는 자들이 있었지만, 기어를 점진적으로 올려 보니 속력이 네 자릿수를 넘어갈 때쯤 대부분이 떨어져나갔다.

“날 따라붙으려면 적어도 제트기나 은랑(?)정도는 데려와야지.”

은랑, 중국 최대 길드인 의 길드마스터이자 한국과 일본의 몇몇 최상위권 랭커들과 비슷한 수준인 세계구급 랭커 유저였다. 세계랭킹 두 자릿수 내에 위치한 유이한 중국 랭커이자, 중국 랭커 중에는 가장 실력도 매너도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자였다.

중국의 총인구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유저 사태 이전에도 를 탄압해온 중국의 역사를 떠올려보면 세계 랭킹 두 자릿수 안쪽의 랭커가 두 명이나 나왔다는 것도 대단한 업적이었다.

하여튼, 은랑은 내 게임 친구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의 막장 행보로 추측하건데 아마 십중팔구 길드 마스터 자리에서 내려왔을 터.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으려나.’

예전 친구놈의 생각을 하고 있자니, 옛날 추억들이 종종 떠올랐다.

그리움에 사무치는 옛 추억들을 곱씹으며 하늘을 날던 도중, 따라붙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번엔 일반적인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소음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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