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57화 (57/59)

〈 57화 〉 24. 참교육은 언제나 달다.

* * *

"...제트기?"

그 굉장한 소음의 주인은 바로 제트기였다. 그것도 내 최대 속력 이상으로 빠르게 날 수 있는 초음속 제트기였다.

설마, 일개 유저 하나를 잡는다고 제트기까지 동원하겠냐 싶었지만, 그걸 진짜로 할 줄이야.

사실 지금의 내 행태를 보면, 전투기가 출동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말도 없이 영공을 침범했는데, 그게 초음속으로 비행이 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유저다?

마음만 먹으면 핵폭탄급의 위력을 낼 수 있는 수준의 유저이니만큼 냅다 요격 시스템으로 격추하려 시도하거나 전투기와 자국의 유저들을 보내는 것이 체계적인 국가라면 멀쩡한 반응이었다.

내가 놀란 이유는, 테러 단체로 규정되어 실시간으로 군대를 굴릴 여력마저도 잃어 가는 에서 지나가는 수상한 유저 하나 잡겠다고 전투기까지 동원할 줄은 몰랐을 뿐이었다...

...는 그냥 내 핑계일 뿐이고.

나는 즐겁게 웃으며 마법을 영창했다.

원래부터 을 손봐줄 생각은 있었다. 저쪽에서 먼저 이렇게 시비를 걸어 준다면 좋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추적하고 있는 암시장과 깊게 연관된 단체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단체가 바로 눈앞의 이었다. 저 유저들 중 하나를 생포해 정보를 캐내는 것도 각 국가의 인체실험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겠지.

은 처음에는 단순히 외국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소수의 중국인들이 만든 작은 길드에 불과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길드에 중국인들이 한둘씩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판타지아’를 즐기는 중국인들 중 어느 정도 스펙이 되는 사람들은 전부 이나 그 휘하 길드에 가입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은 중국 내부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비주류 취급에 배척받기 일쑤였다. 당연히 이런 중국 중심의 마인드가 기저에 깔려 있는 중국인들은 일부의 상식인을 제외하곤 외국 길드에 적응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들이 찾은 대체제가 바로 이었다. 순수 중국인으로만 이루어졌으니 갈등이 생길 이유도 없고, 죽도 잘 맞았다. 그들의 사상 역시 배척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덩치가 불어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력도 보강되어 은 길드원의 ‘질’ 면에서도 나쁘지 않았고, ‘양’ 쪽으로는 그 어떤 길드를 데려다놔도 압도하는 굉장한 스펙의 강력한 길드가 되었다.

예로부터 외세의 탄압이 있다면 탄압을 받는 집단의 결속은 더욱 강해진다는 말이 있다. 민족주의 성향이 짙은 중국인들이 모인 은 타 길드에서 한 번 이상은 쫒겨나거나 반강제적으로 퇴출당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다른 길드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단단히 뭉친 길드원들은 힘을 합쳐 복수를 시작했다.

이젠 웬만한 길드를 붙여놔도 일대일로는 우위를 가져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진 이들은, 자신들을 쫒아낸 길드들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그 목표가 된 대상 대부분이 약소, 중소 길드였던 탓에 대부분은 압도적인 의 물량공세 아래 맥없이 무너졌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유저들은 에게 그다지 적대심을 가지지 않았다. 길드마스터인 랭커 ‘은랑’은 그간 알려진 여러 선행들 덕분에 굉장히 선한 사람으로 유저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었고, 길드 간 전쟁 역시 다른 길드들 사이에서도 분쟁이 생기면 자주 일어나던 일이었으니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는 소리였다.

물론 의 길드원들 사이에 만연한 중화사상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자기 일만 아니라면 상관하지 않는 현대인들답게 이내 대부분이 에 대한 관심을 끊고는 했다.

내가 알던 은랑에게는 안타깝게도, 과거 약소 길드들을 쉽게 잡아먹은 후 기세가 오른 의 길드원들은 어느새 선을 넘기 시작했다.

초보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사냥터를 장악한 후, 중국인들만 사용할 수 있게 한다던가,

외국인들로 구성된 약소 길드를 착취하고 거슬리면 아얘 작살을 내버리는 일이 잦았고,

타 길드 혹은 프리랜서로 일하던 생산직 유저들을 납치해 소속 길드원들의 장비를 만들게 했다.

말 그대로 폭정이라고 봐도 충분할 의 만행을, 의 길드원들은 하나같이 당연시했다.

“당해주는 당신들이 잘못된 것. 이득을 위해서 경쟁 대상을 배려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요?”

사실 경쟁형 게임에선 당연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판타지아’는 단순히 경쟁만을 일삼는 게임이 아니었다.

동료, 친구를 만들고, 그들과 함께 여행하며, 때로는 여관에서 함께 휴식하고, 때로는 거대한 보스 몬스터를 힘을 합쳐 잡아내거나 전설 속의 무기를 재현하는 등 자유도를 폭넓게 보장해주는 게임.

이런 ‘판타지아’에는 당연하지만 경쟁을 목적으로 하는 유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히 낚시, 요리, 독서 등등 다른 목적으로 접속한, 그들이 이야기하는 경쟁 대상과는 거리가 먼 유저들마저 은 척살의 대상으로 삼았다.

초보자들을 존중해주고 도와주는 문화나, 거대 길드들이 약소 길드를 자신들의 영지 내에서 활동하도록 내버려두거나, 생산직 유저들을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풀어두는 것 역시 이해와 배려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일종의 규칙 혹은 규율이자, 유저들 간에 암묵적으로 지켜지던 매너였다.

이러한 암묵적인 규칙을 깨버린 은 결국 전투력으로 모든 길드를 줄 세워 보면 세 손가락 안쪽에 꼽힐 정도로 강해졌다.

그러나, 자신들이 쌓은 업보는 돌아오는 법이었다.

에 속해 있는 두 명을 제외하곤, 1위부터 1000위의 최상위권 랭커들이 전부 한 자리에 모였다. 거기에 더불어 전투력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던 수백여 길드들은 ‘적벽 타도’라는 슬로건 하에 연합을 형성했다.

그렇게 ‘판타지아’게임 내의 시간상, 황제력 208년 11월의 어느 날.

은 몰락했다.

하위권 유저들을 착취해 조달한 길드 자금은 전부 빼앗겼고, 생산직 유저들에게 만들기를 강제했던 장비들은 파괴되었으며, 그 넓은 영지 역시 대부분이 길드전에 참여했던 길드들의 것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유저들은 이를 그들의 길드명과 유명 소설의 대사건을 연관지어, ‘적벽대전’이라 부르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고, 은 그날 이후 몇 년이 지난 지금, 현실 속에서 전성기의 위세를 어느 정도 되찾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납작한 모양의 신형 전투기들 몇 대와 레벨 100은 우습게 넘어갈 유저들 수십.

확실히 최상위권 랭커의 수는 떨어지지만, 중상위권 수준의 유저는 넘쳐난다는 다운 구성이었다.

‘그건 그렇고, 전투기 조종사들은 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군 관련 인물은 전부 추방하거나 처형했다던데.’

전투기 조종석 쪽에서 희미한 마력 향이 나오는 탓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 와서 딱히 알아낼 방도도 없었다.

나는 오랜만에 후드티를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다.

얼굴을 가려봤자, 내 정체를 특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초음속으로 비행이 가능한 데다가, 레벨 100즈음의 유저들의 호위를 받는 전투기들을 단신으로 이겨먹을 수 있는 마법사 유저는 세상에 몇 없었다. 아마 동아시아에 출신 유저 한정으론 나뿐이겠지.

그걸 알면 어쩌겠는가. 나는 측에서 의심해도 내가 절대 아니라고 잡아뗄 생각이었다.

어차피 심증만 있을 뿐, 저들에겐 내 얼굴이 직접적으로 찍히지 않는 이상 물증이 없었다. 입고 있는 옷은 집에 돌아가는 대로 태워 버리면 되니까, 옷만 성공적으로 처분하면 별달리 문제가 될 일은 없다.

중국 정부가 남아있다면 여러 정황을 들어 우리 정부에 항의를 넣고 반발하겠지만, 중국 정부는 몰락하고 국제 사회 전반적으로 테러 단체 취급받는 유저 단체, 만이 남아있는 이 넓고 버려진 땅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미쳤다고 전력이 한참 우위인 우리나라에 선전포고를 하진 못할 테니까.

'꼬우면 나보다 세든가.‘

역사는 강자의 입장에서 쓰여진다. 나는 지금은 행방이 묘연한 중국의 두 랭커가 한꺼번에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중국산 유저가 몇 명이 나오든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의 강점은 물량과 템빨. 그 중 전에 만난 흑마법사 같은 특이 케이스가 아닌 이상 게임 속의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는 현재 은 이빨 빠진 호랑이 같은 존재였다.

잡생각을 하는 동안 완성된 주문이 사출되려던 순간,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

귓가에 그대로 꽃히는 한국에에 나는 잠시 마법 캐스팅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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