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58화 (58/59)

〈 58화 〉 24. 참교육은 언제나 달다.

* * *

한국어를 여기서 듣다니. 잠깐 놀라긴 했지만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식별할 수 있는 증거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녀석들의 노림수를 알아챈 나는 그대로 마법을 이어서 영창했다. 한층 더 거대한 마나를 부여받은 마법진이 크기를 키웠고, 그 안에선 선명한 뇌격(雪?)이 날고 있던 유저들을 강타했다.

“크아아악!”

“꺄악!”

전투기 주변을 호위 중이던 유저들 대부분이 새까맣게 타서 검은 연기를 내며 저 아래로 추락했다.

아마 저들 중 죽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이 정도 상공에서 신체에 아무런 제약 없이 전투를 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금방 기절 상태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릴 것이다. 적어도 땅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 다음에는 뭐... 알아서 살 길을 찾겠지. <비행>을 다시 시전하든, 등 뒤에 달린 날개를 펼쳐 낙하하는 속도에 제동을 걸든 말이다.

만약 그들의 수준이 내가 예상한 것보다 한참은 낮아서 결국 죽는다면, 그건 내 책임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현재, 내 스스로의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 증거로, 현재 내 손 위에 생겨난 식은 ‘자연 속에 담긴 마나’만을 이용해 구축한 마법진이었다.

이 행성 곳곳에 떠다니는 자연적인 마나들은 내 몸에서 뽑아낸 마나에 비하면 그 순도도 굉장히 옅고 안정성도 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마나를 무한에 가깝게 사용할 수 있다는 굉장히 큰 장점이 있었다.

자연 속에서 순환하는 마나는 내 몸의 우월한, 마법사 몇을 데려오든 따라오기 힘든 마나량도 초라해질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다. 아마 나같은 드래곤의 후예가 아니라, 드래곤 로드를 데려와도 비교조차 하기 힘들 양이었다. 그도 그럴 게 로드라고 해서 대륙에 지진을 일으키거나, 해일을 일으키거나, 태풍을 만들어 대륙 하나를 휩쓰는 짓을 하진 못하니까.

...아니, 로드 정도라면 가능하려나? 아무튼, 지금 내 심정은 꽤나 즐거웠다.

일종의 무한하면서도 효율이 좋은 자원을 발견한 과학자의 심정이랄까. 거기에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잔뜩 있다는 점 역시 즐거운 기분에 한 몫을 톡톡히 했다.

물론 이런 방식의 마법 발현이 가능하다는 점 자체는 한참 전에 발견한 거긴 하지만, 실전에서도 이렇게 유용하게 쓰인다는 걸 알게 된 것과 그냥 가능하다는 걸 발견한 건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이제 마나 추적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다.’

아마 저 아래로 떨어진 놈들의 몸에서 검출되는 마나를 마법사들에게 검출해내라고 해 보면, 보나마나 자연적으로 일어난 번개에 맞아 떨어진 것이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얼굴도 목소리도 드러내지 않은 사람을 검거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조차 남기지 않는 것이다.

‘심증만 있어봐야 랭커를 압박하진 못할 테니까.’

안 그래도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는데 외국의 랭커들에게 시비를 건다?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짓이다. 심지어 증거도 없이 심증만 있는 상태라면 더더욱.

그런 상황에서, 눈앞의 이들은 참으로 대단한 이들이었다. 질 걸 알면서도 랭커에게 덤벼 오다니... 라고 생각하던 도중, 리더로 보이던 남자의 경악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어, 어떻게...”

나름 대장이라 실력은 있는지 그는 배리어를 통해 내 마법을 방어해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방금 전 내가 격추했다고 생각한 유저들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더 늘어난 동료들과 함께.

‘증원군인가.’

나는 부하가 걸려 빨갛게 달아오른 마법진을 살펴보았다. 중간에 출력을 강제로 줄이지만 않았다면 아마 폭발은 물론이고 마법을 시전한 대상인 내게도 내상을 입혔을 것이다.

자연적인 마나는 안정성이 떨어진다. 내가 방금 시전한 마법은 <상급 마법:="" 뇌격(thunderstroke)="">. 상급 마법을 한 번 시전하는 데에 부하가 걸릴 정도의 마법진을 펼칠 정도로 내 실력이 딸리진 않았다. 문제는 마나의 순도와 안정성이었다.

‘중급 마법 이상의 출력은 위험하겠네. 그 이상으로 무리하면 부하가 걸려 오히려 내가 내 마법에 당할 수도 있겠어.’

나는 상대방의 수준을 살짝 올리고, 내가 기용할 수 있는 마법의 수준을 살짝 낮췄다. 내가 본체의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저들을 이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계산 끝에 나온 값은 반반. 즉 승률은 약 50%였다.

50% 정도면, 충분히 걸어 볼 만한 확률이었다. 확률 0.0017%도 쌩으로 뚫어낸 전적이 있는 가챠 게임의 금손이 바로 나다.

‘뭐, 정 안되면 본 실력을 행사하면 되니까.’

그건 그렇고, 게임 내에서도 현실에서도 이렇게 이길 확률이 반반인, 백중세인 상황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게임 내에서 나는 몇몇을 제외하곤 적수가 없었고, 몸이 바뀐 뒤에는 웬종일 억압당하는 인생을 살아왔으며, 힘을 되찾은 후에는 모두의 위에 군림하는 드래곤의 후손이 되었다.

아마 내 인생곡선을 그려보자면 평평하게 가다가, 1년간 급속히 나락으로 떨어지고, 고작 몇 개월 전에 급격한 우상향을 그리며 주가가 하늘까지 치솟았을 것이다.

정확히 중간, 상대가 이길지 내가 이길지 모르는 승부를 해본 적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압도적이거나, 아니면 내가 밑바닥이거나. 내 인생은 늘 그래왔기 때문이었다.

<하급 마법:공허(Emptiness)=""/>

미리 영창해두었던 마법진이 빛을 내며 새겨진 마나의 통로를 따라 특정한 기적을 방출해냈다.

공허한 어둠이 주변 수 킬로미터를 장악했다. 일대가, 정확히는 저 지평선 너머­ 내 인지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일반적인 인간의 눈으론 적응하기에 시간이 걸리는 공허한 어둠 속, 황금색의 세로동공 두 개가 그 속에서 환하게 빛났다.

하급 마법인 <공허>. 이 마법의 효과는 이와 같이 단순했다. 공허한, 칠흑같은 어두움을 주변에 흩뿌린다. 이 마법의 범위 안쪽이라면 말 그대로 밤보다도 더 어두운 어둠 속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마법의 이름만 <공허>일 뿐, 실상은 빛마저 삼키는 공허와는 전혀 상관없는 마법이었다. 그야 그 기능이 단순히 어둡게 만드는 게 끝이었으니까. 진짜 상대방을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공허 속에 가두는 마법이었으면 적어도 <공허>는 하급 마법의 수준이 아니라 용언 마법쯤은 되었을 것이다.

일반인이나 저레벨 유저, 몬스터들의 눈이라면 쉽게 익숙해지지 못하는 탓에 저렙 몬스터들을 학살할 때나 쓰이는 이 마법은 자연의 막대한 마나를 빌려 온 덕에 수 킬로미터 바깥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하급 마법, 그 효과도 어두워지는 것이 끝. 야간 시야를 확보 가능한 스킬이 수두룩한 레인저 및 도적에겐 지금과도 같은 상황은 아무런 패널티가 없었다. 시야를 밝히는 마법을 쓸 수 있는 성직자나 마법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한 것이 있다면­ 앞서 말했듯 중국인들은 무협 덕후가 많다. 덕후까지는 아니더라도 무협과 판타지 세상 중 고르라면 무협을 택할 사람이 대부분이란 소리였다.

그러니까, 눈앞의 저 대장 마법사 한 놈 빼고 전부 다<무도가>, 한국에선 <무술가>라고도 불리곤 하는 클래스였다.

방금 전, 마법을 녀석들에게 사출했을 때­ 베리어를 사용한 사람은 저 남자 한 명 뿐. 나머지는 기수식을 취해 방어력을 높이거나 무공으로 보이는 능력으로 공격을 빗겨냈다. 당연히 대부분이 <비행>마법을 캐스팅할 수 있는 마법사들인 줄 알았건만, 용의 눈으로 보아하니 실상 <비행>을 영창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저 대장 격인 남자였다. 저 남자가 자신의 날개로 스스로 날 수 있는 조인족 유저 일부를 제외한 다른 아군 전부를 자신의 힘으로 띄우고 있었다.

어쩐지 전격을 맞고 나가떨어진 적들이 빠르게 복귀한다 싶었다. 비행 마법을 저 사람이 영창하고 있었으니, 몇 명 추락하는 놈들 다시 끌어올리는 건 식은 죽 먹기였겠지. 하지만 나는 저들의 방식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명, 소대의 대장이 팀원의 대부분의 비행을 담당한다는 건...

...머리만 치면 알아서 떨거지들은 떨어져나간단 소리였다.

나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내 승률을 50%에서 95%로 상향조정했다.

적어도 저런 전략을 쓸 거면 마법사를 대여섯 정도는 더 넣어야 했다. 저 자가 내 정도의 능력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대장을 자르면 알아서 낙사해주는 인간들이라니. 무슨 세트 메뉴도 아니고. 순식간에 뜨거워졌던 머리가 팍 식어버렸다. 치열한 전투상황을 기대했는데, 기본도 안 된 녀석들이었을 줄이야. <적벽>이 인력난이, 특히나 마법사 쪽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면 심한 수준이 아니라 마법사의 씨가 마른 정도였다.

하여간, 더 이상 생각하기 귀찮아졌다. 나는 구상해둔 작전대로 변화 계열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자연 마나를 끌어모았다.

‘정면 승부에 특화된 무도가들이 야간 시야를 밝히는 스킬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기본적으로 마법사를 포함에 모든 직업군을 통틀어, 다대일 상황에선 한없이 비열해져야 승기를 잡을 수 있다. 무도가가 상대라면 더더욱. 그랬기에, 나는 추가로 마법 하나를 더 끼얹었다.

<중급 마법:="" 춤추는="" 빛(Dancing="" Lights)=""/>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느닷없이 갇힌 이들의 코앞에, 새하얀 섬광이 나타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름하야 눈뽕 전략. 참고로 저 춤추는 빛 속에는 상대방에게 실명 상태를 거는 마력 파장까지 담겨 있다.

우왕좌왕하는 녀석들을 감상하며, 난 녀석들의 머리를 칠 준비를 했다.

저 멀리서, 구조상 가만히 서서 기다릴 수가 없어 빙빙 돌며 공중을 선회하던 제트기가 이쪽을 향한다. 내가 순순히 잡혀 줄 생각이 없다는 걸 저들도 알아챈 거겠지.

그러나 그 전에, 나는 공포가 가득 느껴지는 한 인간의 눈빛을 받으며 이번엔 제대로 된 공격 마법을 영창했다.

총 출력은 타 하급, 중급 마법에 비해 약하기 짝이 없지만, 그 관통력만은 상급 마법에 달할 정도로 베리어를 깨는 데 특화된 이 마법은 가만히 서서 덜덜 떨고 있는 저 얼빠진 놈들의 대장을 쉽사리 침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엘리스의 송곳니(ALICE's="" fangs.)=""/>

날카로운 송곳니의 형상을 한 괴기스러운 마력 덩어리가 녀석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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