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5년 묵은 뉴비 (1)
* * *
곧바로 시티 오브 루인을 설치해서 실행했다.
계정을 생성하는 부분에서 약간 헤매이긴 했지만,
어찌어찌 검색을 병행해 가며 이메일 계정부터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인증에 활용하여,
이내 게임 계정까지 손에 넣는 것에 성공했다.
닉네임은 5Ynoob.
5년 묵은 뉴비라는 뜻이다.
그냥 ‘이 겜 좆망겜’ 같은 느낌으로 별명을 정하려다가,
이상한 이름 사용하면 강제로 개명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팁을 보고 방향을 틀었다.
폐허가 된 도시를 문자화한 듯한 게임 타이틀 로고가 지나간 뒤,
곧바로 웬 사격 훈련장 비슷한 곳에 덩그러니 세워지게 되었다.
1인칭 슈팅 게임(FPS)의 기본적인 조작법을 익힐 수 있는 간단한 튜토리얼이었다.
오호. 이런 거라면 환영이다.
비록 맵을 전부 다 외우고는 있다지만,
나는 진짜 뉴비마냥 게임 시스템에 아직 적응이 안 되어 있는 상태였다.
5년 동안 슈팅 게임은 고사하고 게임 속에 갇혀 강제로 현실 FPS를 즐겨야 했기에,
아무리 한국인의 혼이 잠들어 있어도 곧바로 게임을 익숙하게 플레이할 수는 없었다.
컴퓨터 본체 위에 놓여 있던 헤드셋을 머리에 끼우고, 튜토리얼을 시작했다.
WASD와 마우스를 사용한 1인칭 게임의 이동법부터 시작하여,
앉기, 서기, 엎드리기, 발사, 재장전 등 FPS의 기본 조작을 익혀나갔다.
처음에는 상당히 버벅대며 지정된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조차 제대로 안 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조작법이 손에 익어가기 시작했다.
튜토리얼의 지시사항을 모두 끝내고도 한동안 보드카와 함께 훈련장을 뺑뺑이 돈 결과,
나는 이제 막 걸음마 떼는 아기에서,
쓸 만한 총잡이로 급속 진화하는 것에 성공했다.
처음에 마우스도 이상하게 잡는 꼬라지를 보고 좀 시간이 걸리겠거니 생각했지만,
이 몸뚱이는 사람 조지는 것 외에도 다른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타타타탕!
키보드를 두드려 캐릭터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우스로 적을 조준해 훈련용 소총을 자동사격으로 드르륵 갈긴다.
마우스를 쥔 손을 계속 움직여서 반동을 잡아주는 것까지 잊지 앉는다.
약간 탄착군이 퍼지기는 했지만,
표적의 좁은 머리 부분에 총알이 모두 틀어박혔다.
“Oy...”
5년 만에 게임하는 것 치곤 아주 양호한 에임이다.
아니. 양호한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상위권이라고 보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튜토리얼을 종료하고 로비로 빠져나왔다.
로딩이 진행되는 동안 잠시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양 손목을 몇 번 풀어 준다.
로딩을 끝내니,
이번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다.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대충 설정하고 넘어가려는 찰나,
다음 버튼을 누르려던 손가락의 움직임을 우뚝 멈췄다.
아니지.
놈들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
캐릭터의 외모에 큰 의미가 없는 이 게임에서 정성껏 외형을 꾸민다면,
게임의 본질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뉴비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방심을 하고 있는 유저들에게,
5년 동안 도시를 굴러다닌 짬의 매운맛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물론 이것에 낚이는 놈들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나 또한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실력이다.
그저 한 놈이라도 이 뉴비스러운 외형에 낚여서 접근한다면,
그것만으로 이 껍데기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다 .
보드카를 홀짝이면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커스터마이징을 진행한다.
외모는 지금의 내 면상을 참고했다.
좆을 잃어버렸다는 게 좆같긴 하지만,
어찌 됐든 사람 잡는 데 특화된 이 몸뚱아리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충분히 예뻐 보였다.
맨날 알코올에 절어 있거나 얼굴을 찌푸리고 다녀서 그렇지,
입 다물고 인상을 펴면, 고급지게 생긴 이목구비 덕에 약간 귀족 집 딸내미 같은 느낌이 나기도 했다.
이따위로 생긴 년이 재능은 왜 그딴 살벌한 일에 특화되어 있는 건지, 원.
덕분에 5년 동안 살아남아서 원래 세계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어이가 없기는 하다.
보드카와 함께, 커스터마이징을 뚝딱 해치웠다.
형평성 때문에 캐릭터의 체구는 남성과 여성 간에 그렇게 큰 차이가 없지만,
나머지는 내 모습과 빼다 박은 느낌이다. 머리칼은 조금 더 정돈되어 있긴 하다.
그러고 보니까 미용실 가는 거 까먹었네, 시발.
화면 속의 백금빛 단발머리를 바라보며 속으로 짧게 욕지기를 뱉은 나는,
캐릭터를 한 바퀴 빙글 돌려보며 최종점검을 마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우선 위키에서 배운 대로 창고부터 열어 무장을 점검했다.
장비는 2레벨 방탄복과 전술 헤드셋, 방탄기능 없는 8칸짜리 조끼가 있다.
방탄 최고 레벨이 6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저급 방탄복이다.
심지어 헬멧은 들어있지도 않다.
백금색의 머리칼을 그대로 드러낸 내 캐릭터가 지금 이게 맞냐는 듯이 내 쪽을 쳐다본다.
머리에 총 안 맞으면 되지, 임마.
무기는 토카레프 한 정과 도끼 한 개.
소모품은 8발들이 탄창 2개, No.3 탄환 50개,
5번 사용 가능한 기본 치료킷 하나.
위키에서 구린 총이라고 소문난 토카레프에, 총알도 3번이다.
탄환의 넘버링은 보통 1에서 6 사이의 숫자로 설정되어 있다.
총탄의 규격마다 그 정도가 조금씩 다른 것 같기는 한데,
일반적으로 총알에 부여된 번호는 그 탄환이 관통할 수 있는 방탄 레벨을 의미했다.
3번 탄환의 경우, 방탄 레벨이 3인 방어구까지 숭숭 뚫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높은 번호를 부여받아 관통력이 상승하게 될 경우 그만큼의 페널티도 있었으니,
해당 총알이 방어구를 성공적으로 뚫어 몸에 박히게 되었을 때, 신체에 가해지는 데미지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탄환이 그냥 깔끔하게 몸을 뚫고 나가는 것보다 애매하게 뭉개진 총탄을 몸 속에 처박아 버리는 게 현실적으로 저지력이 더 크다는 것을 반영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리하여 No.3는 관통력도 중간, 데미지도 중간쯤에 위치한 녀석이다.
그냥 있으니까 사용하는 거지, 굳이 찾아 쓸 필요까진 없는 애매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게임 중에 뒤져도 물품이 남을 수 있게 해 주는,
가로 2칸 세로 2칸의 안전 보관함이 있었다.
스타터 패키지조차도 구매하지 않은 무료 계정이라,
초반 자원이 아주 빈약하기 그지없다.
이래서 무료 계정으로는 대충 맛만 보고 바로 패키지 사라는 거였구나.
대가리에 얹힌 헤드셋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위치를 조절하고,
게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전체 지도를 열었다.
익숙한 지형들이 쫙 깔려 있는 화면에서,
나는 사전에 눈여겨보았던 지점을 클릭했다.
산업 단지.
지형지물이 다양하고 엄폐물도 많은데다가,
파밍 아이템도 후하게 주는 뉴비 특화 맵.
랜드 마크 역할을 하는 것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어서 위치 파악하기도 편하다고 하는데,
5년차 뉴비로써 동의하는 부분이다.
대충 뭐가 어디 있는지 감만 잡으면,
누가 뒤통수 때려서 기절시킨 뒤에 아무 데나 떨궈 놔도 곧장 길을 찾을 수 있는 동네다.
물론 그 새끼는 가슴과 이마빡에 총알을 한 발씩 박아 줬다.
맥주병에 물 좀 섞어서 줬다고 사람 통수를 때려?
누군 그것도 못 마셔서 허덕일 때가 있었는데. 버릇없는 새끼 같으니라고.
아무튼 간에, 나는 산업 단지에서 첫 게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화면이 전환되자, 내 캐릭터 옆에 웬 낯선 놈이 AK 소총을 들고 멀뚱히 서 있었다.
저게 시티즌(시민)이었나, 그랬을 거다.
게임 속에서 NPC로 등장하고, 저놈들 중 한 명이 되어서 게임을 시작할 수도 있다.
시작할 때 무장을 못 챙겨가는 대신, 랜덤으로 무장을 지급해준다고 한다.
존나게 껄렁하고 불량스러운 옷차림인데 왜 시티즌이냐고 의문이 들 법도 하지만,
그 좆같은 도시에 자리를 잡은 멍청이들의 평균 상태를 알고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고증 끝내주네.
그 놈이 시티즌이라면, 내 캐릭터 플레이어의 정식 명칭은 헌터였다.
무료 계정의 빈약한 무장 탓에,
유저 캐릭터인 헌터보다 오히려 NPC 시티즌 놈이 더 잘 차려입고 있는 상태.
더러운 자본주의의 실태에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명의 뉴비가 되기 위해, 나는 내 캐릭터를 선택하여 게임을 시작했다.
시간대는 주간.
지금부터 산업 단지로 사냥을 나선다.
로딩이 끝나고,
5Ynoob이라는 닉네임을 지닌 캐릭터가 눈을 떴다.
나는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온갖 스프레이 낙서로 도배되어 있는 익숙한 건물과, 자동차가 곳곳에 쓰러진 도로.
익숙하기 그지없는 산업 단지의 풍경이다.
그 곳에서 있었던 온갖 멍청이들과의 싸움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문득 숙소 건물 옥상에서 모신나강을 쓰던 놈 하나가 기억난다.
근본도 없이 스코프를 달고 내게 저격전을 걸어오던 그 건방진 새끼.
결말이 어떻게 됐더라.
아. 내 맞사격에 스코프 박살나서 도망가던 걸 잡아 족쳤었지.
누군 맨눈으로 가늠자 사용하는데, 그거 망가졌다고 호다닥 도망을 쳐?
이래서 근본 없는 놈은 안 돼.
녀석을 떠올리던 내 입가에서 웃음이 비죽 흘러나온다.
자신이 지금 기뻐서 웃는 건지,
기껏 돌아와 놓고 다시 그런 꼴을 보게 됐다는 것에 어이가 없어서 웃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토카레프 권총의 탄창을 뽑아, 그 안쪽을 확인했다.
No.3 총알이 그득하니 채워져 있다.
좀 더 사실적인 FPS를 표방하는 게임답게,
이 망할 게임은 화면에 표시되는 인터페이스를 최소화한 대신 온갖 동작들을 구현해 두었다.
탄창 확인은 그 수많은 동작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토카레프가 총알을 가득 머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곧바로 발을 움직여 뛰기 시작했다.
최우선적인 과제는 보다 좋은 무기를 얻는 것.
궁극적인 목표는,
유저 놈들에게 유사 뉴비의 쓴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