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5년 묵은 뉴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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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의 기본적인 플레이는 파밍 후 탈출이다.
맵 곳곳에 드랍된 아이템을 줍거나,
유저와 NPC를 처치하여 그들을 벗겨먹은 뒤,
맵마다 정해진 탈출구로 도망치면 무사히 게임 한 판을 끝낼 수 있다.
물론 경쟁자들은 플레이어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가방에 아이템을 그득그득 채우고 빤쓰런할 생각에 싱글벙글하며 탈출구로 향하는 유저만큼이나 맛있는 먹잇감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까 파밍 후 탈출은 정말 기본적인 개념이고,
실상은 그 사이에 수많은 전투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타당!
“[이 새끼 여기 있 끄아악!]”
나를 발견하고 러시아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는 놈의 대가리에 총탄을 박아 주었다.
헬멧이 없는 머리에 깔끔하게 바람구멍이 뚫린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지나쳐 앞으로 나아간다.
방금 그 놈은 유저가 아니라 NPC, 시티즌이었다.
사람을 맞닥뜨렸으면 총부터 쏴제끼고 봐야지,
상대 다 들으라고 친절하게 쌍욕을 외쳐 주는 멍청이들이다.
그리고 시티즌은 무기와 장비를 제외하면 주머니에 뭘 넣고 다니질 않는다.
무장이 괜찮았으면 눈독이라도 들여 볼 텐데,
이 새끼는 방탄복도 없이 권총 한 자루만 달랑 들고 있었다.
나는 2번째 멍청이에게서 AK 소총을 뺏어들고 있었기에,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저 놈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아무튼 이걸로 3킬.
유저는 없고 죄다 시티즌 놈들인 게 아쉽지만, 아직 시간은 많다.
커다란 창고 안으로 진입했다.
깨진 창문 너머로 햇살이 비쳐 들어와, 온갖 물건들이 난잡하게 깔려 있는 내부를 밝힌다.
주변을 샅샅이 경계하면서 시멘트 포대 따위의 엄폐물들 사이사이로 숨어 다닌다.
인기척은 없다.
아무래도 이 근처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
타박타박.
“!”
그리 생각하기가 무섭게,
누군가의 발소리가 저 너머에서 들려온다.
내 기억으로 저 쪽은 창고의 반대편 입구인데.
총 소리를 듣고 여기로 흘러들어온 건가?
타박거리는 걸음소리는 불규칙하게 이어지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간다.
재빨리 커다란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상체를 기울여 머리를 오른편으로 슬쩍 내밀었다.
총을 든 사람 한 명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창고를 가로질러 걷고 있다.
여타 시티즌들처럼 허름한 사복 차림은 아니었다.
그럴싸해 보이는 방탄복과 무장 상태를 보아하니,
저건 유저가 분명했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 저 놈을 족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헬멧도 없고 방탄복도 싸구려인 나로서는, 정면승부를 걸면 도저히 답이 없다.
먼저 저 놈의 몸뚱이에 총탄을 갈겨도 내가 먼저 널브러질 확률이 아주 높았다.
지금 내 AK의 약실에 처박혀 있는 탄은 No.2.
방탄 레벨 2가 넘어가면 방어구의 내구도만 깎아먹고 데미지가 거의 안 들어가는 놈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시티즌 놈들을 조지던 것처럼 머리나 흉부를 노려선 안 된다.
AK의 총구가 향해야 할 곳은 놈의 사지다.
팔과 다리. 방탄복과 헬멧이 보호해 주지 못하는 부위를 집중적으로 조진다.
2번 탄환은 관통력이 약한 대신 데미지가 상당한 놈이니,
순식간에 놈의 사지를 박살낼 수 있으리라.
머리나 흉부 이외의 부위를 파괴하면 즉사는 하지 않아도,
데미지를 꾸역꾸역 넣으면 결국 뒤지는 수밖에 없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마친 즉시, 실전에 옮겼다.
키를 입력해 상반신을 옆으로 기울이며,
마우스를 끌어 무방비 상태에 놓인 놈의 다리를 정조준한다.
그리고 발사.
타타타타탕!
넓은 창고 내부에 AK 소총의 발사음이 크게 울려 퍼진다.
기계식 조준기의 가늠자 너머로, 다리에서 피가 퍽퍽 튀는 것이 보인다.
놈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휙휙 돌리다가, 결국 기둥 뒤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내 위치를 파악한 녀석의 몸은 바닥으로 허물어지고 있었다.
다리 부위 파괴 후 추가데미지로 인한 사망. 계획대로다.
“흐흐흫.”
기념할 만한 유저 첫 킬이다.
나는 낄낄 웃으며 보드카 병을 집어 들어, 내용물을 한 모금 집어삼켰다.
40%의 알코올이 몸속으로 들어와 대가리에 채찍질을 가한다. 보드카 너무 좋아.
우선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는지 잠시 확인하고,
놈의 시체를 질질 끌어다가 구석에 처박아 놓은 뒤에야 몸수색을 시작했다.
파밍. 인간 파밍을 할 시간이다.
여타 인기 게임이 그렇듯이,
시티 오브 루인 또한 한국의 커뮤니티가 존재했다.
시티 오브 루인 줄여서 시오루를 가볍게 즐기는 라이트 유저들.
어느 정도 게임에 재미를 붙이고 좀 더 실력을 쌓아 보려는 중견 유저들.
대충 타 유저의 외형만 쓱 훑어봐도 견적을 낼 수 있는 헤비 유저들.
그리고, 인생을 게임에 갈아 넣은 고인물들까지.
이 현실 지향형 FPS 게임을 사랑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였다.
1탄 6탄(No.1 탄환과 No.6 탄환) 논쟁,
자유시장 수수료 폭탄,
아이템 나눔 등등.
오늘도 커뮤니티는 온갖 주제로 시끌벅적한 상태였다.
관통딸이나 치는 6탄충은 사지가 한방에 하나씩 박살나봐야 정신을 차린다며 어떤 1탄 신봉자가 과격한 언사를 내뱉던 와중,
누군가가 울분이 느껴지는 제목과 함께 게시물을 하나 업로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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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발 이새끼 먼데ㅋㅋㅋㅋ]
시민도 안 만나고 오랜만에 행복파밍하는데 시발
갑자기 총소리 나더니 다리 두 짝 박살나가지고
존내 놀라서 주위 둘러보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임
일단 대충 숨어서 다리 수술할라니까
십새끼가 이번엔 깔쌈하게 오른팔 날려버림
총은 맞았는데 시발 쏜 놈은 보이질 않고ㅅㅂㅅㅂ
존나 패닉 와서 다리병신 상태로 기어 다니는데
그새 왼팔까지 박살남
상대는 안 보이고 사지만 하나하나 박살나니까
시발 공포게임이 차라리 덜 무서울 거 같았음
그냥 시발 죽여 달라고 몸 존나 흔들어대니까
그제야 튀어나와서 턱주가리 조지고 따봉 날리더라
개미친새끼
(동영상)
내 시점임
엄살이 아니라 시발
니들도 한번 체험해 봐야 됨 이건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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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공포가 절절히 느껴지는 본문.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또 한 명의 뉴비가 당했다며 낄낄대면서도,
대체 얼마나 무서웠길래 이렇게까지 하소연을 하는지 궁금한 마음에 영상을 재생해 보았다.
작성자의 말대로,
그는 한가로이 복층 건물을 누비며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을 주워 담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들려오는 총소리와 함께 순간 그의 시야가 흔들렸다.
신체 상태를 알 수 있는 화면 구석의 상태창 속 사람 실루엣에서 두 다리가 검게 물들었다.
짧은 순간에 다리가 모두 파괴된 것이다.
3~4번의 총성 안에 양 다리가 죄다 작살나는 것을 보며,
구경꾼들은 그를 쏜 상대의 에임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추가 데미지를 과하게 입히지도 않고,
필요한 수량만큼만 총알을 박아 넣어 다리를 불능 상태로 만든 것이다.
화면이 잠시 크게 진동하며 작성자의 감정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내 고개를 휙휙 돌리며 범인을 찾아내려는 작성자.
허나 그의 주변에는 상자와 기둥 등의 오브젝트들만 가득할 뿐,
사람 그림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었다.
상대를 찾지 못하자,
그는 우선 구석으로 가서 수술 킷을 꺼내들었다.
박살난 양 다리를 치료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금 총 소리가 타당 울려 퍼지고,
작성자의 시야가 흐려진다.
상태창의 왼팔 실루엣이 까맣게 변한다.
이제 사지 중 멀쩡한 것은 오른팔뿐.
그가 발작적으로 머리를 돌려대며 적을 찾으려 했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그 신출귀몰한 상대와 맞서는 것을 포기하고,
현저하게 느려진 이동속도로 어떻게든 건물을 빠져나가려는 작성자.
타당!
그런 그의 희망을 지워버리듯이,
정체불명의 상대는 마지막 오른팔마저 단숨에 파괴해 버렸다.
시야의 움직임이 그 자리에서 우뚝 멈췄다.
절절하게 느껴지는 공포감에,
구경꾼들은 무심코 팔을 한 번 쓸었다.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농락당하는 것은 그들 역시 몇 번씩 겪어 보았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실 지향형 FPS답게 몰입감이 업계 최고 수준인 이 게임에서,
미지의 탄환에 꿰뚫려 시야가 점점 흐려지는 것을 체험해 보면 상당한 무력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미친 듯이 상반신을 좌우로 흔들어대고 있는 작성자를 가엾게 여기며,
한편으로는 곧 그의 앞에 나타나게 될 사지성애자의 모습을 기대했다.
이내,
작성자의 귓가에 타박타박 하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움직임을 멈추고,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야를 돌리는 작성자.
그는 마침내 자신의 사지를 모두 박살낸 범인을 목도하게 되었다.
드디어 상대의 얼굴을 보게 된 구경꾼들은,
순간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남자보다 조금 더 호리호리한 체형의 여자 캐릭터.
헬멧을 쓰지 않아 드러나 있는 그녀의 얼굴은,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커스터마이징의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낸 듯한 모습의백금빛 단발 미인이었다.
잿빛의 눈을 한 그녀는, 작성자가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곧바로 AK 소총을 겨누어 불꽃을 뿜어냈다.
그에 작성자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며,
바닥으로 털썩 무너진다.
작성자의 말대로,
구경꾼들은 상대가 엄지를 척 들어 올리는 모습을 어렴풋이 포착해낼 수 있었다.
커마(커스터마이징)충에 사지변태라니.
그 혼돈스러운 조합에 사람들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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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이게 뭐가 무서움ㅋㅋ 오늘 시오루 못 키겠다 시발
= 존나 잘 숨네; 어디 있다 튀어나온 거임 저거
= 아니 실력도 실력인데 시1발 커마 미쳤나ㅋㅋㅋㅋㅋ
= 이겜 커마가 저렇게까지 되는 거였음??
= 사지 집착하는 러시아 눈나... 헤으응
ㄴ 딱 봐도 꼬추새낀데 ㅈ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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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포감과.
다른 게임 캐릭터 얼굴을 가져다 놓은 듯한 극한의 커스터마이징.
거를 타선이 없는 그 요소들에,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망설임 없이 추천 버튼을 눌렀다.
곧 작성자의 글이 추천 게시판으로 올라가고,
커뮤니티를 어슬렁거리며 떡밥에 목말라 하던 사람들은 그 정체불명의 백금빛 여성 캐릭터에 대해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1탄 6탄 논쟁 중에 피어난 떡밥이었기에,
자연스레 1탄 신봉자들이 영상의 깔끔한 사지 파괴를 예찬했다.
반대로 6탄 신봉자들은 전혀 효율적이지 않은 짓이라며 그녀를 까 내리기 시작하면서, 한층 더 판이 커지게 되었다.
거기에 이 커마충에게 사지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이한 다른 피해자들까지 속속들이 등장하자,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는 뜨겁게 불타올랐다.
첫 유저 킬 이후로 사지를 활용한 유저 농락에 재미를 붙인 이리나가 신나게 게임을 하는 동안,
그녀는 어느 새 커뮤니티의 주요 떡밥으로 등극하여,
이용자들의 시간을 살살 녹이는 주범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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