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7화 (7/57)

〈 7화 〉 5년 묵은 뉴비 (3)

* * *

3킬. 탈출 실패.

2킬. 탈출 성공.

6킬. 탈출 성공.

세 판을 내리 돌리면서 기록한 유저 킬 수와 탈출 여부다.

킬의 대부분은 사지 파괴 후 추가데미지에 의한 사살이었다.

처음에는 상대의 무장과 자신의 탄환 간의 상성 때문에 거의 강제로 사지를 노려야 했었는데,

그걸 몇 번 반복하다 보니까 어느 새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게다가 유저들이 게임에 학을 떼게 하기 위해선 이 쪽이 효과가 더 뛰어날 것이다.

한 방에 보내는 것보단 천천히 돌려 깎으면서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그 좆같은 도시에서 멍청이들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생명에 직접적인 지장을 주지 않는 곳만 골라서 바람구멍을 내 주면,

그 당사자든, 주변에 있던 목격자든 간에 멘탈이 갈려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뭉쳐 있던 놈들이 흩어지면, 그 때부턴 각개격파당하는 거다.

꼴사납게 바퀴벌레마냥 여기저기로 도망가는 놈들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 지으며,

나는 보드카를 한 모금 홀짝였다.

투명한 컴플릿 보드카 병 속의 내용물이 벌써 반밖에 남지 않았다.

아니. 아니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반밖에 남은 게 아니라 반이나 남은 것이다.

지금껏 마셔왔던 양을 한 번 더 즐길 수 있는 거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유리병이 쥐어진 손을 휘적여 그 안의 보드카가 찰랑이는 것을 바라보던 나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향했다.

“...?”

하단의 알림 아이콘이 깜빡이고 있었다.

아까도 저런 게 있었나?

창고에 노획물들 대충 쑤셔 박고 총포상한테서 총알만 보충한 다음에 바로 게임 돌리느라 못 봤던 건가.

커서를 움직여 놈을 클릭해 보자,

거기에는 무수한 친구 추가의 요청이 쌓여 있었다.

“허?”

나한테 사지를 털려 죽은 놈들이 메시지로 쌍욕을 하려는 건가.

그렇다기엔 쌓인 알림의 개수가 너무 많았다.

놈들의 닉네임을 찬찬히 확인해 보니, [KOR]가 붙은 것들이 간간히 보인다.

KOR가 뭐였더라.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이내 답을 떠올렸다.

“아. 까리예(한국).”

위키에서 알아본 바로는 렉을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 국내 유저와 매칭된다고 하니,

한국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내가 한국인 유저들과 부대끼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허나 아직 중요한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나한테 어그로가 끌린 것인가?

서투른 한국어로 인터넷을 뒤져봐야 하나.

잠시 그렇게 고민하던 나는, 친구 추가 요청에 죄다 거절 버튼을 눌러 버렸다.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나한테 사지 박살난 놈들 중 하나가 하소연이라도 했나 보지, 뭐.

놈들에게서 신경을 끄고,

나는 다음 게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상인에게 잡다한 물건들을 팔아 넘겨 크레딧을 벌고,

그 돈으로 총포상에게서 AK소총의 탄환을 구매한다.

1번이나 6번 등의 고급 총알이나 특수한 탄종들은 총포상이 취급하지 않지만, 상관없었다.

No.2 탄환이면 충분히 유저들의 사지를 사지였던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2번 탄을 잔뜩 구매하여 30발들이 탄창 4개에 그득하게 채워넣는다.

게임 내에서 흔하고 또 싼 맛에 쓰는 총이라 그런지,

총 값도 총알 값도 모두 합리적이라 마음에 든다.

게다가 AK는 나에게도 무척이나 익숙한 총이었다.

그 좆같은 도시에서 멍청이들이 들고 있던 걸 뺏어 쓴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모신­나강만 쓰는 줄 알고 어떻게든 근접전을 벌여 보려던 병신들은,

한때 놈들의 친구 손에 들려 있었던 총에 그렇게 벌집이 되곤 했다.

그립지는 않은 그 추억을 떠올리며, 나는 창고를 열었다.

유저에게 뺏어온 방탄복과 헬멧을 꺼내어 창고에 집어넣었다.

꽤나 넓은 칸 수의 가방으로도 공간이 부족해서,

제일 좋은 것들 하나씩만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게 한이었다.

2번째 주무기 슬롯에 꿍쳐 두었던 M4인지 뭔지 하는 라이플도 창고 구석에 던져 넣는다.

그렇게 내 창고에는 유저들에게 뺏은 방탄복과 헬멧, 총기들이 조금씩 쌓여 갔다.

이제 2개째니까 쌓여간다는 말은 좀 그런가.

아무튼 방어구들의 내구도는 전반적으로 멀쩡한 편이었다.

유저들의 팔다리만 집중적으로 괴롭힌 덕분이었다.

방탄복은 내가 쓰고, 헬멧이랑 총은 팔아치워야지.

헬멧을 머리에 쓰는 순간 기껏 커스터마이징한 보람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일부러 헬멧을 쓰고 다니지 않기로 결심했다.

다만, 필요 레벨을 달성하지 못해서 자유시장을 이용할 수 없었기에,

저 뚝배기들은 주인을 찾지 못 하고 한동안 창고의 공간만 차지하게 생겼다.

빨리 레벨 업부터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유저 킬을 통한 경험치 획득이다.

게임 시작.

이번에도 맵은 산업 단지다.

이 거지같은 게임에 붙잡혀 있는 불쌍한 유저들을 구원하기 위해,

다시금 AK 소총을 둘러매고 전장으로 떠난다.

“아이씨...”

짧은 욕지거리가 산업단지의 숙소 건물 안쪽에서 새어나온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2층의 방들 중 하나에 바싹 엎드린 채로 투덜대고 있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이게 가능하겠냐고요.”

보통 과묵하기 그지없는 유저 캐릭터가,

계속해서 떠들어 대며 은엄폐를 의미 없게 만들고 있다.

꽤나 앳된 목소리의 그녀는, 주변으로 누가 올까 걱정하면서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말이 돼요, 님들?

보이스 켜놓고 이 겜을 어떻게 하냐고.”

누군가에게 말을 하듯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던 여성의 시야에는,

일반적인 게임의 화면 말고도 무언가가 한쪽 구석에서 꾸물대고 있었다.

[알면 죽닥치고 하라고 좀]

[이렇게 말하다가 죽겠네 ㅅㅂㅋㅋ]

[지가 한다 해놓고 왜 우리한테 뭐라 하냐]

그것은 그녀의 게임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던 이들의 메시지였다.

시청자들의 채팅이 휙휙 지나가며, 제발 입 좀 다물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허나 그 외침의 대상인 스트리머­ 달퐁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 안에 엎드려서 문 쪽을 경계하며 열심히 쫑알댔다.

그들의 말대로 주둥이를 다물었다간 금세 노잼이라며 태세를 전환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걸 내가 한다고 했어요?

미션으로 걸어둔 거였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님들이 선금을 박아서 억지로 뒷목 잡고 끌고 갔잖아!”

달퐁의 말대로,

그녀는 평소처럼 시티 오브 루인을 켜서,

유티즌(유저 시티즌)으로 맘 편히 산책을 하며 시청자들과 이야기나 좀 나누려고 했다.

누군가가 대뜸 10만원을 자신의 주머니에 쑤셔 넣고,

‘보이스 켜고 산업단지 숙소 권총런. 지금 당장’

이라는 메시지를 걸죽한 남자 보이스로 읊어대지 않았다면 말이다.

난데없이 돈으로 쳐맞게 된 달퐁은,

이내 시청자들의 등쌀에 떠밀려 헬멧도 없는 방탄복 차림으로 권총만 덜렁 든 채,

이 곳, 산업 단지에 내던져지게 된 것이다.

그것도 게임 내 보이스를 상시 활성화 시킨 채로 말이다.

은엄폐가 무척이나 중요한 이 게임에서 목소리를 마구 노출시킨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지만,

스트리머인 그녀가 선금까지 받아놓고 이것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물주가 까라면 까야지.

그 뒤로 어떻게든 뛰고 기면서 간신히 숙소까지 도착한 달퐁은,

따닥 딱 하고 근처에서 콩을 볶아대는 소리에 놀라 2층의 구석방으로 황급히 피신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이씨... 숙소는 왔는데,

파밍은 어떻게 하고 탈출은 또 어떻게 하라는 거야아...”

숙소가 그냥 평범한 맵의 건물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이 곳은 산업 단지 내에서 고급 아이템을 발견할 확률이 가장 높은 핫플레이스였다.

당연히 그만큼 유저들도 자주 발을 들이는 곳이기에,

권총과 방탄복이라는 빈약한 무장과 함께 주둥아리까지 오픈해 놓은 그녀로서는 생존율이 실시간으로 나락을 향해 치닫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달퐁은 조심스레 시청자들에게 협상을 시도해 보았다.

“님들...? 나 지금 권총만 들고 숙소까지 달려왔으니까,

어쨌든 이것도 숙소 권총런이 맞지 않을까요?”

그러자, 이내 짤랑. 하고 시청자의 후원이 도착했다.

[허허 님이 1,000원 후원했습니다.]

‘맞는 말이네요. 처맞는 말.’

어림도 없다는 듯한 후원 메시지와 함께,

채팅창이 그와 동조하여 ㄹㅇㅋㅋ를 도배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힐끔 쳐다본 달퐁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별 타격은 없었다.

“알았어요, 나쁜 놈들아.

이대로 보물방 돌진하다가 뚝배기 터지고 죽으면 될 거 아냐.”

[알면 시작해]

[아ㅋㅋ 오늘 방송 다 봤다]

[뚝배기 vs 또락스 배팅좀]

그녀의 자조적인 멘트에 한 술 더 떠서,

시청자들은 머리와 흉부 중 어느 곳을 먼저 파괴당해 즉사할지 내기 판을 벌이려 하고 있었다.

그에 어이가 없어진 달퐁이 한 마디를 하려는 그 때,

­타다당!

­따다다당!

“...!”

바로 근처,

정확히는 숙소 건물 근처에서 살벌한 총격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내 1층에서 타박거리는 듯했던 발소리가 멀어지더니,

다시금 교전의 소음이 달퐁의 귓가에 들이닥쳤다.

“지금이 타이밍이야!”

이후로도 몇 번이나 총소리가 메아리쳤고,

달퐁은 그 틈을 타서 가벼운 몸으로 숙소를 뛰어다니며, 괜찮은 아이템까지 파밍해 내는 것에 성공했다.

빅 케이스.

5x2의 공간을 잡아먹는 그 케이스의 뚜껑을 열어보면 8x8의 공간에 물건들을 담아낼 수 있는,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다.

허나 그녀는 웃을 수 없었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도 탈출에 실패하면 말짱 꽝이었다.

게다가 케이스가 옆으로 상당히 길다란 지라,

죽어도 아이템을 보호해 주는 안전 보관함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운이 좋은 건지, 없는 건지... 씨이.”

[아니 여기서 빅케가 나오네ㅋㅋㅋㅋㅋ]

[와 저거 100만원짜리 아님?]

[이제 숙소 나가다가 뚝배기 터질 예정]

[자 또락스 드가자~! 자 또락스 드가자~! 자 또락스 드가자~! 자 또락스 드가자~!]

연신 또락스(흉부)를 연호하는 시청자가 매니저에게 도배로 인한 10분 채팅금지를 당하는 동안,

달퐁은 용기를 내어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숙소의 오른쪽 입구로 나아갔다.

총성이 왼쪽에서 주로 들려왔으니, 오른편으로 탈출하면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권총런의 빠른 질주 속도를 믿고,

그녀는 입구 문을 박차며 밖으로 튀어나갔다.

허나 불행하게도,

밖에서 대기하던 사냥꾼은 그러한 심리까지 모두 꿰뚫고 있었다.

­타다다당!

“아아악!!”

기다렸다는 듯이 들려오는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곧바로 피격을 당해 시야가 확 흐려지게 되자 달퐁이 비명을 질렀다.

이내 화면 구석의 상태창에서 두 다리의 실루엣이 새까맣게 변했다.

다리가 모두 파괴되어 기동력을 거의 상실하게 된 것이다.

순식간에 도망이라는 선택지가 사라지게 된 달퐁은,

잠시 응전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자신의 영 좋지 않은 에임으로는 권총으로 상대를 잡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대신에,

달퐁은 시청자들에게 볼 거리를 선사해 주는 스트리머로서 최선을 다 하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려 항복의 뜻을 표하며,

게임 내 보이스로 애절하게 외친 것이다.

“살려주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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