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첫 만남 (1)
* * *
고급 아이템들의 스폰 확률이 산업 단지 내에서 가장 높은 숙소.
과자에 몰려드는 개미들 마냥, 한탕을 노리고 헌터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나는 그 정보를 되새기며,
숙소 근처의 수풀과 나무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숙소 안에서 스폰 되는 아이템이 아니라,
그 아이템을 손에 넣고자 숙소를 드나드는 유저들이었다.
숙소로 뛰어가는 놈의 두 다리를 박살내는 것을 시작으로,
숙소 근처에 있다가 총성을 듣고 다가온 놈,
안에서 파밍을 하다가 지레 놀라서 뛰쳐나온 멍청이 등등.
AK 소총 한 자루로 이 근방에서만 4명을 로비로 보내 버렸다.
숙소를 앞에 두고, 불쌍한 유저들은 땅바닥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쳐다보던 나는,
이내 총구에서 초연이 피어오르는 AK의 정조준을 풀었다.
숙소 건물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혹시나 숨죽이고 있다가 튀어나올 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경계하며,
안쪽의 소리를 포착하기 위해 입구에 슬쩍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곧 천장 쪽에서 쿵쿵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
뭐지, 이 인간은.
밖에서 난리가 나고 있는데, 이토록 태연히 파밍을 하고 있는 것인가.
숨을 죽이고 그 발자취가 만들어내는 패턴을 잠시 분석한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바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발소리.
그 스텝에서 다급함과 불안감이 한껏 묻어나온다.
이 새끼 이거,
자신 넘치는 놈인 줄 알았더니 그 반대였다.
내가 쳐들어오기 전에 한 탕 해먹고 그대로 튈 생각인 듯 했다.
히죽 미소를 지으며, 건물 안에서 대가리를 빼냈다.
그 다음에, 4명이 편히 잠들어 있는 숙소 입구의 반대편 쪽으로 살금살금 움직였다.
싸움을 피하려는 놈이기에,
온갖 총성을 흩뿌리고 난리를 쳤던 이 쪽 입구로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한 놈의 심리를 이용하여 반대편을 노린다.
적절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숙소 탈출을 시도하려는 이 멍청한 친구를 차분하게 기다린다.
이내,
문이 벌컥 열렸다.
미리 정조준을 하고 있던 나는,
황급히 뛰쳐나오는 녀석의 다리에 기계식 조준기의 가늠자를 가져다 댔다.
타다다당!
“아아악!!”
놈은 두 다리가 파괴되어 이동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채, 그렇게 비명을 질러 댔다.
그것을 들은 나는,
내심 놀란 마음에 눈썹을 위로 들어올렸다.
상대는 놈이 아니라 년이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왠지는 모르겠지만 게임 내 보이스를 켜 두고 있었다.
소리를 듣고 판단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게임인데 자기 목소리를 저렇게 노출시키다니.
심지어 무장도 방탄복에 권총뿐이다.
그냥 년도 아니고 미친년이었던 건가?
헛웃음을 지으며 그 여성 유저의 팔을 조준한다.
어찌 됐든 간에, 유저는 죽일 뿐이었다.
헌데, 가늠자와 겹쳐져 있던 상대의 팔이 갑자기 위로 번쩍 올라간다.
한쪽만 올린 것도 아니고, 두 팔을 모두 만세 하듯이 들어 올린 것이다.
그러더니, 나 보고 들으라는 듯이 애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살려주세요!!”
“...?”
이건 또 뭐야.
러시아어에 익숙해져 있던 내 대가리가,
한국어로 이루어진 외침을 한 박자 늦게 해석한다.
그러니까, 살려달라고?
서로 발견하기만 하면 총구 들이대고 쏴 죽이는 게임에서?
이건 지금껏 게임을 하면서 보지 못 했던 새로운 패턴이었다.
어이가 없긴 했지만,
죽이기 전에 한 번 뭐라고 하는 지나 들어 보기로 했다.
게임 내에서 대화를 걸어온... 이게 대화가 맞나.
어쨌든 그렇게 한 건 이 유저가 처음이었으니까.
항복 자세를 취한 상대에게 총구를 겨눈 채,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양손을 들어 올린 채,
자신의 두 다리를 박살낸 누군가에게 목숨을 구걸한 달퐁.
확률 낮은 도박이었지만, 다행히 이번만큼은 행운이 그녀의 손을 들어 주었다.
자신의 외침에 마음이 동했는지, 상대의 총격이 뚝 그친 것이다.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달퐁은,
이내 자그맣게 들려오는 발소리에 다시 긴장했다.
그녀는 두 손을 들어 올린 채로 고개를 슬그머니 돌려, 상대의 모습을 확인했다.
“...!”
AK 소총을 자신에게 조준한 채, 천천히 걸어오는 인영.
헬멧을 쓰지 않아 노출된 백금빛의 단발머리 아래로,
무척이나 예쁘장한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예쁘고, 귀여우면서도 어딘가 기품까지 느껴지는 이목구비의 조합.
게임의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극한까지 활용한 듯한 외모였다.
달퐁의 시야를 빌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시청자들이 크게 감탄했다.
[??? 얼굴 뭐냐ㅋㅋㅋ]
[와 커마 고인물!]
[ㅁㅊ 극한의 커마충이네;]
물론 아름다운 얼굴에 감탄한 것은 아니고,
그 고급스러운 미형을 만들어 낸 유저의 커스터마이징 실력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허나,
달퐁과 시청자들은 다시금 놀라게 될 수밖에 없었다.
“쉬또 자 후이냐?”
(뭐냐, 너?)
“...으어?”
상대의 입에서,
잘 다듬어진 미성의 여자 목소리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무언가 으르렁대는 듯이 거친 어투의 외국어였지만,
그 고급진 외모와 기묘하리만치 잘 맞아떨어지는 음성이었다.
상당한 임팩트를 주는 여성 유저의 등장에 채팅창이 시끌벅적해지는 사이,
달퐁은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지금 상대의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국 쪽 서버니까 당연히 한국인일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외국인이라니.
양 손으로 만국 공통인 항복 제스처까지 같이 취한 게 천만다행이다.
시티즌 NPC들이 내뱉는 외침과 비슷한 어감인 것으로 보아,
그녀는 아마도 러시아인일 터.
자신이 할 수 있는 외국어라고는 반쪽짜리 영어뿐이었지만,
달퐁은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헤, 헬로? 하와유? 암 베리 푸어 걸. 돈슛미 오케이?”
“...”
[암베리푸어걸ㅋㅋㅋㅋ]
[여기서 하와유가 왜 나오는데 ㅁㅊㅋㅋㅋ]
[이제 서방 언어 사용한다고 뚝배기 터질듯 ㄷㄷ]
어떻게든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는 달퐁의 서툰 영어.
백금빛 여성은 그것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달퐁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언어로 말이다.
“한국 언어, 이해하다. 이야기 가능.”
“?!”
달퐁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자신의 청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방금 그녀는 러시아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히 한국어였다.
서투르기는 하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한국어가,
너무나도 명확한 발음으로 들려 온 것이다.
그에 달퐁의 머리가 혼란해졌다.
극한의 커마충이 알고 보니 러시아 여성 유저였고,
그 러시아녀는 알고 보니 한국어가 가능했다니.
연속적으로 드러나는 반전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진 달퐁이었지만,
이내 멘탈을 다잡았다.
오히려 좋다.
커스터마이징 고인물에, 게임 실력도 좋은 듯 하고,
거기에 한국말도 할 줄 아는 러시아 여성 유저라니.
신기함을 넘어 기괴하기 그지없는 조합이지만,
방송적인 재미로 따지자면 두말할 나위 없이 좋았다.
스트리머로서 방송의 명장면을 뽑아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지금 한국말 한 거??]
[한국말 할 줄 아는데?]
[반전에 반전이었던 거임;]
[한국말 쓰는 커마충 러시아녀는 대체 뭔 조합이냐ㅋㅋㅋㅋ]
보라. 시청자들도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지 않은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우연찮게 만들어진 이 기회를 최대한 살려내야 한다.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달퐁은 절박하게 외쳤다.
“그, 제발 살려주세요!
저 진짜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에요!”
“...?”
시청자의 10만원 입금에 강제로 시작하게 된 숙소 권총런이었으니,
어찌 보면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
[이걸 우리 탓을 한다고?]
[누가 들으면 납치라도 한 줄 알겠네 아ㅋㅋ]
물론 시청자들은 물음표를 찍어대기 바빴지만 말이다.
달퐁의 외침에 의문을 표하듯이 상체를 잠시 기울이던 백금발의 그녀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무엇 목적으로 움직이다, 카레얀카(한국인 여성)?”
“카레얀카...? 아니, 그... 저는 그냥 탈출하려고 했어요!”
“탈출?”
“네! 탈출!”
탈출이라는 키워드에 달퐁이 고개를 마구 끄덕이자,
상대는 다시금 총구를 겨누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냥 탈출 목적 인간이, 이 곳 물건 왜 가져가다?”
“어...”
그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돌이켜 보면,
달퐁은 숙소에서 뛰쳐나오다가 다리를 파괴당했었다.
그리고, 달퐁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백금발의 그녀였다.
상대는 달퐁의 행적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오직 탈출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람이,
굳이 숙소 안을 헤집다가 빠져나올 이유는 없었다.
"...!"
그에 위기를 느낀 달퐁은,
상대가 총구에서 불을 뿜기 전에 재빨리 엎드려 보이며 필사적으로 빌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저 진짜 딱 하나만 챙겼어요! 그거 드릴 테니까 살려주세요!”
“너 머리 파괴할 경우 물건 모두 얻는다. 왜 너 살리다?”
네 뚝배기 부수고 다 뺏어 가면 되는데 뭐 하러 살려 주냐는 험악한 질문에,
달퐁은 흠칫하면서도 머리를 쥐어짜내 살 방도를 궁리했다.
자신이 생존하게 되면 상대에게 어떠한 이득을 줄 수 있는가.
그녀가 생각하기에,답은 하나뿐이었다.
“제가 앞에서 미끼 할게요! 고기방패 할게요!
시키는 대로 뭐든지 할 수 있어요!”
“...”
유저 캐릭터 자체를 소모품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
상대에게 자신의 목숨이 별 가치가 없음을 알기에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뚝배기 안 터질라고 애쓴다ㅋㅋㅋ]
[뭐든지 할 수 있어? ㅜㅑ]
[러시아 눈나한테 개처럼 부려지는... ㅜㅑ]
그 와중에 이상한 곳에 꽂혀서 ㅜㅑ를 외쳐대는 시청자들을 애써 무시하며,
달퐁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상대의 처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잠시 침묵한 채 그녀를 내려다보던 백금빛 단발의 그녀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일어나다.”
“앗, 네!”
그 한마디에 달퐁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상대는 어느새 총구를 내려 놓고 있었다.
달퐁은 그것을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떻게든, 그녀의 손에 죽는 것은 면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