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첫 만남 (2)
* * *
과거에,
그러니까 그 좆같은 도시에 갇혀 있을 때,
도시 자체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주먹보다 총알이 빠른 무법지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 사는 사람들까지 죄다 씹창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5년 내내 멍청이들이나 인성 문제 있는 놈들만 만나서,
그 새끼들이랑 줄창 총싸움 하고 놀았던 건 아니란 소리다.
5년짜리 배틀로얄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거기도 어쨌든 사회 비스무리한 곳이었으니까, 다양한 인간군상이 존재했다.
그 거지같은 도시에 신물이 나서 어떻게든 탈출할 방법을 강구하던 정상인들도 있었고,
저래가지고 이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의, 극소수의 호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정말로 아주아주 가끔씩은,
어디 믿을 놈 하나 없어서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그 구렁텅이에서,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가 되었던 이들도 있었다.
물론 진짜로 뒤를 맡겼다는 소리는 아니고.
모신나강 쓰는 놈이 전방에서 깝죽거리면 그건 동료가 아니라 짐덩이다.
짐덩이는 엄폐물로 사용할 수라도 있지, 시팔.
아무튼 간에,
그렇게 아지트에서 같이 생활하고,
내 보드카도 가끔씩 나눠 마시던 친구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과의 첫 만남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과 매우 비슷했다.
“제가 앞에서 미끼 할게요! 고기방패 할게요!
시키는 대로 뭐든 할 수 있어요!”
“…”
러시아어에 익숙해진 대가리가 상대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진 못 했지만,
두 단어만큼은 뇌리에 정확히 박혀들었다.
미끼. 고기방패.
그래.
그 쪼만한 년도 내 앞에서 이래 엎드려가지고 그렇게 외쳤지.
무엇이든 할 테니,
미끼가 되든 고기방패로 쓰든 괜찮으니,
제발 죽이지 말아 달라고.
물론 그 새끼 입도 만만치 않게 거칠어서,
실제 대화는 아마 온갖 비속어와 욕설이 가득 섞여 있었을 것이다.
걍 존나 개처럼 부려먹어달라고요 씨팔! 같은 느낌이었나, 아마.
“…일어나다.”
“앗, 네!”
그래. 그게 맞을 거다.
내 앞에서 목숨 구걸하던 새끼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 그 년이었으니까.
그 존나게 솔직한 모습이 맘에 들어서,
뭔 되도 않는 조건 붙여가면서 살려달라는 병신들과 다르게 빠꾸가 없어서,
대가리에 겨눴다 하면 거의 확정적으로 불을 뿜던 권총을 흔쾌히 치워 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뭐라고 했더라.
병신아. 미끼나 고기방패나 거의 뒤지는 거 확정인데,
뭐 하러 살려달라고 하냐?
“고기방패 사용할 경우, 너 높은 확률 박살나다.
현재 생존 의미 존재하다?”
그 말에,
조막만한 미친년은 대답했다.
지금 안 뒤지면 된 거지, 뭐.
“지금 안 죽으면 된 거죠!”
눈앞의 미친년과,
과거의 미친년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시간도, 장소도, 언어도 명백히 달랐지만,
알코올에 찌든 내 대가리는 그 둘을 합쳐서 섞어 버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래.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 개년아.
입꼬리가 저절로 끌려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눈 쪽의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는 듯하다.
그 좆같은 지옥에서 현실로 돌아오고 나서도 웃는 거 하나 제대로 못 하던 이 몸뚱이가,
지옥에서 같이 불타고 있던 옛 동료와 재회하자마자 빵끗 웃어제낀다.
“흐, 흐하하!”
“…?!”
참지 못하고 결국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금 컴플릿 보드카로 병나발을 불었다.
보드카 병을 내려놓고 다시 키보드를 붙잡은 내가,
특수 상호작용 키를 입력해서 숙소의 반대편 입구를 향해 손짓한다.
“반대 입구, 시체 많다.
그 곳 이동해서 무장하다.”
“어… 진짜요?
저 파밍해도 돼요?”
무언가 기대감을 품은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퉁명스레 대답할 뿐이었다.
“물렁물렁 고기방패, 가치 없다.
강도 높은 냉동육 좋다.”
“…”
한 대 맞고 픽 쓰러지는 게 방패냐, 종이지.
옛 동료와 판박이로 닮아 있는 이 미친년을 그리 허무하게 죽이면 찜찜해질 것 같았기에,
나는 그녀를 반대쪽 입구로 끌고 가서 시체들의 방어구들 중 괜찮은 것을 입혀 주었다.
헌데,
뭔 자신감인지 무기는 챙기려 들지를 않았다.
방탄 레벨 4 이상으로 머리와 몸통을 든든하게 둘러놓은 반면,
손에는 권총 하나 달랑 들고 있는 모습.
심히 언밸런스한 꼬라지에 내가 한 마디 했다.
“무엇? 무기 획득하지 않다?”
“아… 아니, 그게…
권총만 들면 안 될까요?”
“이것들 유사하게 취침 원하다?”
그 되도 않는 똥고집에 내가 바닥의 시체 네 구를 가리키며 그렇게 협박하자,
흐익, 하고 숨을 집어삼킨 그녀는 잠시 고개를 이리저리 떨어 댔다.
그러더니, 갑자기 허공에다 대고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
“아, 님들. 솔직히 이건 봐 줘요.
권총런 하겠다고 고집부리다가 뒤지게 생겼는데, 지금!”
“…?”
“인정? 인정해 주는 거지?
님들도 이 러시아 눈나 계속 보고 싶잖아. 그지?”
뭐지, 진짜로 미친년인가?
그 년은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내가 그녀와의 동행을 진지하게 재고하려 할 무렵,
상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 죄송해요. 제가 스트리머라 지금 방송 중인데,
지금까지 권총런 미션을 해가지고… 이젠 무기 먹어도 된대요!”
“…스트리머?”
“네!”
그 낯설면서도 익숙한 단어에 잠시 머릿속 깊숙한 곳을 뒤져보던 나는,
이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아하. 인터넷 방송.
자기가 게임하거나 노는 거 사람들한테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인간들.
눈앞의 그녀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던 모양이다.
‘권총런’은… 아마 권총만 가지고 뛰어다니는 미친 짓을 뜻하는 것 같고.
상관없다.
상대가 스트리머든 뭐든 간에, 어차피 지금은 내 고기방패니까.
제대로 게임도 못하고 내게 끌려 다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이 부디 이 망할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길 바랄 뿐이다.
그런 생각에,
그녀의 방송을 지켜보고 있을 시청자들에게 한 마디 했다.
“도망치다, 카레예츠(한국인 남성)들.
이것 게임 쓰레기 유사하다.”
“아하하하, 인정! 이상한 거 그만 좀 시켜요 님들!
근데 카레예츠가 뭔가요?”
다만 그녀의 반응을 보니 효과는 미미한 모양이었다.
그렇겠지.
지금 이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고,
나에게만 똥겜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혀를 쯧 차며 그녀의 질문에 대충 대답해 준다.
“한국 남자.”
“아, 그러면 아까 말하셨던 카레얀카도…?”
“유사하다. 한국 여자.
무기 신속 획득하다, 카레얀카.”
“앗, 네!”
내 손짓에 서둘러 시체 앞에 쭈그려 앉아 무기를 챙겨드는 그녀.
그동안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다른 놈들이 접근하지 않는지 살핀다.
맵 내의 핫플레이스로 찾아올 만한 배짱 있는 놈들을 죄다 죽인 것인지,
근처는 조용하기만 하다.
“다 챙겼어요!”
그 말에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T자형 총신에 가느다란 개머리판을 가진 것을 들고 있었다.
소총처럼 생겨먹진 않았는데, 저게 뭐였더라. MP 뭐시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기관단총이라.
기억 속의 그 년 역시 가벼운 총알 분무기를 선호했다.
다른 건 몇 번 들어 보다가 무거워서 빡친다고 바닥에 내던져 버리곤 했다.
비싼 총도 그렇게 막 던지다가 내 모신나강의 개머리판에 뚝배기가 쪼개질 뻔하긴 했지만.
아무튼.
뭐든 간에 권총보다는 훨씬 괜찮으니,
나는 별 말 없이 이동하자는 손짓을 보낼 뿐이었다.
가짜 러시아인과 고기방패는 가장 가까운 탈출구로 가기 위해 숲을 가로질러 갔다.
고개를 휙휙 돌리며 나무와 나무 사이들을 훑어보던 나는,
저 멀리에서 무언가 검은 형체가 꿈틀거리는 것을 포착했다.
“!”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람이었다.
저게 시티즌인지, 유저(헌터)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훌륭한 정찰 수단이 존재했다.
“고기방패.”
“네!”
“작동 시간이다.”
“네?”
나는 자세한 설명 대신 팔을 들고 검지를 쭉 뻗어,
정체불명의 사람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내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고기방패는,
이내 목소리에 의문을 품었다.
“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안 보이다?”
“네.”
“돌격할 경우 잘 보이다.”
“…으에?”
“돌격.”
당황한 듯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덤덤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멀리서 안 보이면 가까이 가서 봐야지, 뭘 으에 거리고 있어.
“상대 도망 이전에 돌격하다.”
“어, 그… 도와주시는 거죠?”
“뒤 따라가다. 걱정 금지.”
“…알겠어요.
저쪽 맞… 어?”
“?”
“아니, 야! 그걸 어떻게…!
하이씨…”
내가 뒤를 봐주겠다는 말에 그제야 조금 안심한 듯이 달려 나가려 하던 그녀는,
갑자기 멈칫하더니 허공을 바라보며 경악한다.
시청자에게서 무엇인가를 언질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허나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진짜로 상대가 멀리 가 버릴 것만 같았기에,
입을 열어 그녀를 재촉하려는 순간
“우,
우라아아아아아!!”
(Ура : 만세)
상당히 익숙한 함성을 고래고래 내지르며,
고기방패는 그렇게 숲 한가운데로 뛰쳐들어갔다.
진짜 미친년인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