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첫 만남 (3)
* * *
“우라아아아아!!”
도시에 가득하던 멍청이들 중에서도 특출난 병신들만 외치던 구호를 크게 질러대며,
단단한 고기방패는 그렇게 수풀을 헤치고 저 너머로 뛰쳐나갔다.
상식이 있으면 이 게임에서 저런 개지랄을 하진 않을 테니,
아마도 그녀의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 모양이다.
어쨌든 저걸 그냥 내버려 두면 정말 고기방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 것이므로,
혀를 쯧쯧 차며 재빨리 그녀를 따라 뛰어갔다.
갸아악 구와아악 하고 온갖 괴성을 내지르면서 저만치 앞을 달려나가며,
성능 확실한 어그로를 끄는 미친 스트리머.
이내 콩 볶는 소리가 전방에서 들리기 시작하자,
일직선으로 달리던 그녀의 경로가 마구 뒤틀리기 시작한다.
따닥! 딱!
“기야아아 햐아아악! 쏜다! 여기 쏜다!”
서둘러 나무 뒤로 숨었다.
상체를 내밀어, 소리가 들려온 방향 쪽으로 시선을 집중하여 세심히 살핀다.
저 멀리의 수풀 위로 거뭇한 형상이 튀어나온 채, 불꽃을 번쩍번쩍거리는 모습이 눈에 띈다.
침착하게 기계식 조준기의 가늠자를 가져다 대고, 방아쇠를 톡톡 당긴다.
탕! 탕!
“으아 씹, 뒤에도 있! 아, 저건 우리팀이구나!”
내가 쏘아낸 총알이 명중했는지, 몸통에서 연기 같은 것이 팍팍 튀었다.
피인지, 방탄복 파편인지 구분할 수는 없지만,
내 총알은 No.2 탄환이니 높은 확률로 방어구에 막혔을 것이다.
그러자 검은 형상이 흔들리더니 수풀 아래로 쏙 들어가 모습을 감춘다.
수풀 안쪽으로 소총탄을 몇 발 더 날려 주며, 미친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빠르게 달려간다.
“총소리 안 들리는데? 잡았나?”
팔에 한 대를 맞았는지, 붕대를 꺼내 감으며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스트리머.
나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박살 안 나다?”
“으아잇, 깜짝이야!”
내 목소리에 깜짝 놀란 그녀가 제자리에서 펄쩍 뛴다.
마우스를 내던지기라도 했는지 고개가 휙휙 뒤틀린다. 기괴하기 짝이 없다.
“접근 소리 안 듣다? 왜 발작하다.”
“아니, 말하고 있으니까 못 들은 거죠…!”
“너 청각 기관 하나 아니다. 개별 사용 가능하다.”
“그게 뭔 소리에요…”
내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린다.
하지만 어이가 없는 건 내 쪽이다.
말하면서 소리 듣는 걸 못 한다고?
그 거지같은 도시에서 귀때기를 듀얼코어로 못 돌렸으면,
난 결코 5년 동안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에 한 마디를 얹으려고 다시금 입을 열던 나는,
이내 말문이 막혔다.
그래.
여긴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그 도시가 아니다.
내 앞에 있는, 내가 상대하고 있는 이들은 그저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일 뿐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청각을 개화시키려 드는 놈은 나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강제로 비정상이 된 것이다.
기분이 좆같을 땐 보드카다.
재빨리 투명한 병을 집어 보드카 한 모금을 들이켜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Ура 함성 무엇이다?
너 정신 문제 존재하다?”
“…아니, 그!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거든요!”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방금 전의 우라 돌격에 대해 묻자,
뜨끔한 기색의 그녀가 황급히 변명을 해 온다.
“그럼 또 무엇이다? 소련 영혼 빙의하다?”
“소련… 아니, 그게 아니라! 이것도 미션이에요!
시청자들이 시켜서… 야이, 뭘 빨갱이야! 조용히 해이씨!”
말을 하다 말고 허공에다 버럭 화를 내는 꼬라지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이 대가리가 훼까닥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듯 했다.
“발작 심화하다… 소련 악령이다?”
“아, 저 스트리머라니까요! 시청자들이랑 대화한 거에요!”
“알았다, 고기방패 따바리쉬(동무).
치료 완료했을 경우 이동하다.”
“한 대만 맞아서 치료는 다 됐어요.
근데 따바리쉬는 뭐예요?”
그 물음에 답하지 않고,
나는 본래의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뒤를 따라오며 시청자들에게 따바리쉬의 뜻을 묻는 듯 했다.
이내, 등 뒤에서 스트리머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 빨갱이 아니라고요오!”
“사상 언급 안 하다. 불안하다?”
“…씨이, 쏴버리고 싶다.”
툭툭 때리니까 빽빽거리는 것이, 타격감이 상당하다.
아무리 봐도 그 쪼만한 년의 순한 맛 버전이다.
그 새끼였으면 이미 서로 간의 대화에 온갖 욕설이 푸짐하게 담겨 있었겠지.
내가 한국어에 익숙해지면, 그런 날이 다시 오게 될까.
…아니.
내 뒤의 사람은 그 년이 아니다.
그냥 어쩌다 게임에서 한 번 스쳐지나가는 인연일 뿐인데,
멍청한 대가리가 벌써부터 보르시, 아니. 김칫국을 들이키는구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알코올의 씁쓸함이 아직도 입 안에 감도는 것만 같다.
뭔가, 그리워진다.
얼굴을 보고 싶은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냥 그립다.
사람이 그리운 건지,
그 빌어처먹을 도시가 그리운 건지.
미련이라곤 거기에 놔두고 온 고급 보드카들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아직, 나는 완전히 그 곳에서 벗어나지 못 한 모양이다.
“Cyka…”
“네?”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을 질질 흘리며,
나는 그년을 닮은 고기방패와 함께 탈출구를 향해 뛰어갔다.
한편,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의 주요 화제는 여전히 커마충 사지성애자였다.
일상이나 다름없는 1탄 6탄 논쟁과 기타 떡밥에 질려 있던 사람들은,
신박한 컨셉으로 등장한 5Ynoob, 대충 오이늅이라고 불리우는 유저에 대한 이야기로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들은 그 백금빛 여성 캐릭터에게 사지를 박살난 피해자들이 올려 놓은 스크린샷과 영상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며, 오이늅에 대한 모든 것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유저 레벨이 고작 3인 것은 그렇게 큰 관심을 받지 못 했다.
대충 갖고 놀기 좋은 부 계정을 무료 에디션으로 생성하는 일은 흔하디 흔했으니까.
이용자들이 초반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은,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한계까지 끌어다가 만들어 놓은 그 외모와, 사지에 강하게 집착하는 변태적인 플레이였다.
허나 피해자들의 영상이 속속들이 올라오고, 그것들의 분석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오이늅의 다른 요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
[2번째놈 영상 오이늅 동선 추측]
(이미지)
기둥 뒤에 붙어 있다가
상대 고개 돌아가는 거 보고 상자 타넘어서 지게차 옆까지 쭉 이동한듯
영상 시야에 지게차는 끄트머리만 나오는 거 보니까 이게 맞는거 같은데
[댓글]
= ?? 저게 안 걸린다고?
= 시야 딱 걸치는거봐ㅋㅋ 이거 맞다
= 이거 쟤가 좀만 더 고개 돌렸어도 보이는 거 아니냐
ㄴ 그게 맞긴 한데 지게차까지 고개 꺾을 생각은 못했을듯
ㄴ 저기서 지게차 확인할 생각을 어케함ㅋㅋ
= 와 시1발 앞으로 지게차 무조건 확인한다
ㄴ 그럼 저새끼 이제 컨테이너 위에 올라감ㅋㅋ
ㄴ 앆!!!!!
========
그것은 맵에 대한 이해도였다.
맵의 요소 하나하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유저를 철저하게 농락하는 모습.
그것은 단순히 맵의 구조를 외우는 수준을 넘어서,
유저의 시야가 해당 위치에서 엄폐물의 어느 부분까지 미치는지,
그 상황에서 시야 체크를 어디까지 하게 되는지 등등을 모두 궤뚫어보는 듯 했다.
게임 핵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잠깐 돌기도 했지만,
그저 상대의 위치를 기막히게 찾아내거나 에임이 비인간적인 것과는 카테고리가 달랐다.
맵의 구조 파악과 엄폐물 활용 및 응용, 그리고 시야 심리전은 결코 불법 프로그램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취약 지점을 교묘하게 피해 가며, 피해자의 근처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눈에는 결코 포착되지 않도록 운신하는 오이늅의 플레이.
결코 단순한 아마추어 유저의 그것이라고는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
[그니까 오이늅처럼 하려면]
상대 눈깔이 어디까지 돌아가는지 보고
시야 안 닿는 사각지대 타이밍 다 외워서
엄폐물 존내 왔다갔다 오르락내리락하면서
5미터 거리 안쪽으로 유지하면 되는 거임?
아ㅋㅋ 개쉽네
사람새끼면 다 할 수 있을듯ㅋㅋ
멍멍 시발련아
[댓글]
= 국내 개새끼 커뮤니티ㄷㄷ
= 시1발 이렇게 말하니까 쌉고였네 진짜
= 거리유지 진짜 씹변태새끼임;
========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오이늅의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고이다 못해 썩은 물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연습하다가 심심해서 부캐로 놀러 온 프로,
평범하게 플레이하다가 누군가에게 비슷한 농락을 당하고 흑화한 고인물 등등,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누군가 올린 게시물에 의해,
커뮤니티의 흐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
[이거 오이늅 아니냐???]
(이미지)
시오루 방송 찾아보다가
존내 익숙한 얼굴 보여서 개놀랐네 ㅅㅂ
점마 왜 저깄음?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