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적응 (2)
* * *
플레이챗을 설치하고 계정까지 어찌저찌 만든 뒤,
달퐁의 도움을 받아 설정을 끝마치고 그녀를 친구 목록에 추가했다.
시티 오브 루인에 이어 플레이챗까지, 첫 친구 타이틀을 그녀가 모두 따 간 것이다.
이내 달퐁으로부터 걸려 온 통화 요청을 수락하자,
띠링. 하고 음성 채팅이 연결되어 그녀의 앳된 목소리가 들리게 되었다.
“여보세요!”
문제는 그 소리가 귀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커다랗다는 것이었다.
그 곳에선 이보다 더한 굉음을 들어 왔기에,
나는 깜짝 놀라는 대신 미간을 찌푸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아, 블리엔(시팔)…! 음량 과다하다.”
“그건 오이늅 님이 줄여야… 어, 닉넴이 다르네.
이거 어떻게 읽어요?”
그녀의 음성 볼륨을 줄이고 있자, 달퐁이 그런 질문을 던져 온다.
그에 나는 내 플레이챗 계정의 닉네임에 시선을 주었다.
[Ирина]
원래 세계로 귀환하면서 이 몸뚱이에 부여받은 이름, ‘이리나’를 러시아어로 적어 놓은 것이다.
아무리 봐도 러시아권 이름인데, 이게 왜 한자까지 존재하는 한국인 이름이냐고.
“이리나. 본인 이름 러시아어 작성하다.”
“이리나? 아, 이름이 이리나에요? 오…”
“불만 존재하다, 카레얀카?”
“아니, 오 만 했는데 왜요?!”
어이없다는 듯이 그렇게 따져물어오는 달퐁.
그 억울한 목소리를 듣고 피식 웃었다. 역시 타격감이 상당하다.
방송 중이라 리액션이 더 찰진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툭툭 치는 맛이 있다.
볼 수록, 아니. 들을 수록 그 년을 생각나게 하는 스트리머다.
“농담하다.”
“그리고 카레얀카는 한국인 여자라매요! 저도 닉넴으로 불러줘요!”
“닉네임?”
“네!”
그야 어렵지 않지.
나는 보드카 병을 들어올리려다가 그 안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며,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고기방패.”
“아 뭔 고기방패에요! 겜 한참 전에 끝났는데!”
“허? 고기방패 원하므로 친구 요청 안 하다?”
“아니거든요!”
“유감 표하다.”
“유감이면 빨리 닉네임 불러 봐요.”
“Далпoнг.”
“…? 좀 발음이 요상한데.”
달퐁의 러시아식 발음에, 뭔가 미묘한 반응을 보이는 그녀.
상대가 눈 앞에 있었으면 틀림없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을 것만 같았다.
그러더니, 지금부터 본론이라는 듯이 외쳐 온다.
“아무튼, 책임져요 오이늅, 아니. 이리나 님!”
“?”
그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뭐라는 거야, 미친년이.
“무엇?”
“무엇? 할 게 아니라,
지금 님 때문에 제 방송 터지려고 하거든요?”
“방송 폭발하다? 왜?”
“아까 겜 하다가 말했잖아요.
한국 커뮤니티에서 님 유명해져가지고,
님 볼라고 지금 여기 한 5천 명 들어와 있다니까요?”
그녀의 설명에, 나는 눈썹을 슥 들어올렸다. 5천명씩이나?
아까 자기 방송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한 몇백 명 정도 들어온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그 규모가 훨씬 거대했다.
그 망할 게임이 정말로 인기가 있기는 한가 보다.
특이한 유저 하나 구경하러 몇 천명 단위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 정도니 말이다.
“…5천? 진실이다?”
“그래요! 이 사람들 때문에 지금 채팅도 제대로 못 보겠구만.
못 믿으시겠으면 한 번 들어와 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달퐁은 플레이챗의 채팅창에 링크 주소 하나를 올렸다.
그것을 클릭해 보니, 인터넷 창이 열리면서 누군가의 개인 방송으로 연결된다.
강조된 폰트로 상단에 적혀 있는 방송 제목부터 눈에 확 들어온다.
[달퐁) 시루갤 호감유저 오이늅이랑 듀오!!!]
그 문장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오이늅과 듀오밖에 없다.
시루갤은 뭐고, 호감유저는 또 뭐란 말인가.
가물가물한 머릿속을 뒤져 봐도 기억날 듯 말 듯, 떠오르질 않는다.
아니 근데 이 새끼, 나 때문에 방송 씹창났다고 징징대면서 떡하니 내 닉네임 적어놓는 건 뭔데. 아무리 봐도 물 들어올 때 모터 돌리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그런 감상과 함께 시선을 돌려서 시청자 수를 확인한다.
6,847명.
그리고 방금 막 6,900명을 돌파했다.
존나게 많긴 하네.
그 거지같은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몇 명쯤 되더라. 저거보단 많았던가?
오른쪽에 길다랗게 놓여 있는 채팅창을 살펴 보니,
무지막지한 속도로 채팅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것이 대략 7천의 힘인가.
[5천이 아니라 7천이였구연ㅋㅋ]
[힘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이리나! 이리나! 이리나! 이리나! 이리나! 이리나!]
[시루갤 화력 어질어질하누 ㅅㅂ]
[내 5렙갑빠 내놔 십련아]
[팔로우챗에 1분제한 건거 맞음?]
[형아!!!!!! 채팅창 나도 좀 쓰자고!!!!!!]
[아ㅋㅋ 좀만 더 쓴다니까]
[헤으응 러시아 눈나 헤으응 러시아 눈나 헤으응 러시아 눈나]
[도배충 좀 쳐내 시1발]
내 대가리가 미처 해석할 틈도 없이, 온갖 문장들이 휙휙 쓸려올라간다.
토종 한국인이어도 저 채팅들을 딜레이 없이 모두 읽어내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5천 아니다. 7천 근접하다.”
“네? 7천이요?
…어, 미친. 진짜네.”
내 말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달퐁.
플레이챗의 목소리와 방송의 오디오가 겹쳐지기에, 그녀의 방송을 음소거시켰다.
“아무튼, 보셨죠?
5천, 아니. 7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리나 님 보려고 여기까지 왔어요!”
“확인하다.”
“책임져달라는 건 농담이구요,
그, 방제에 적힌 대로 같이 듀오 해 주시면… 안될까요?”
“…”
뒤로 갈수록 뭔가 조심스러워지는 그 요청에, 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게임은 몇 판 더 진행할 예정이었으니, 그리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도시의 그 년을 닮은 이와 동료가 되어 함께 돌아다니는 것이 나에게 묘한 기쁨을 주기도 했고.
또한 수천 명들 앞에서 유저들을 실컷 농락해 주면,
그만큼의 인원이 참혹한 현장을 간접체험하고 충격을 받게 될 터.
그렇게 이 망할 게임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킴으로써,
게임에 발을 들이려 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행복회로를 돌리며, 입을 열어 긍정을 표하려 했다.
허나, 내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게 불안했는지 달퐁이 먼저 치고 나온다.
“그, 맨입으로 부탁드리는 건 아니고…!
원하시는 총 같은 거 있으면 제가 사 드릴 수 있어요!”
“…!”
원하는 총기를 구해 준다는 말에,
곧바로 모신나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5년의 대부분을 함께 해 온, 길다란 나무의 몸체가 반질거리는 소총.
수많은 멍청이들을 납탄 한 방에 저세상으로 보내고,
가끔은 방망이가 되어 놈들의 뚝배기를 박살내던 그 녀석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허나, 이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른 총도 아니고 모신나강만큼은 내 힘으로 직접 손에 넣고 싶었다.
쓸데없는 자존심일 수도 있지만,
그 투박한 볼트액션 소총은 내게 있어서 그만큼 상징적인 무기였다.
내 힘으로 그 지옥을 5년 동안 버텨냈다는 증거이자,
어디에서든지 반드시 살아남아 보이겠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하얀 붕대가 둘둘 감긴 나의 애병.
실물로 하나 구할 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은데. 여기는 한국이라서 힘들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달퐁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어… 아니면 제가 그, 한국어 선생님 해 드릴 수도…”
“동의하다.”
“…네?”
“듀오 게임. 시작하다.”
“앗! 진짜죠? 어예! 제가 초대 드릴게요!”
그리도 좋을까.
하긴, 스트리머로서 7천 명 가까이 되는 대인원을 자신의 방송에 유치시킬 수 있으니 신날 만도 하다.
게임의 알림 탭에 도착한 초대장의 수락 버튼을 누르자,
나와 달퐁의 캐릭터가 나란히 서서 게임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백금빛의 단발과 고급진 외모를 그대로 드러낸 채 방탄복과 전술 헤드셋만 걸치고 있는 내 캐릭터와는 정반대로,
달퐁의 캐릭터는 방탄 성능 확실한 헬멧과 방탄복을 착용하고 두건과 온갖 복장으로 몸을 꽁꽁 싸매어 위장률을 높이고 있는, 말하자면 성능에 충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극명히 대비되는 그 풍경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캐릭터 피부 안 보이다. 미라 흉내내다?”
“좀 싸매긴 했는데… 님 캐릭이 더 이상하지 않아요?”
“슬라브 스타일. 총알 회피할 경우 문제 없다.”
“아니, 뭘 회피를 해요! 한 대라도 맞으면 그냥 훅 가겠구만!”
그러한 달퐁의 태클에,
나는 손가락으로 매끈한 턱선을 매만지며 내 캐릭터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서 부족한 것이라면, 역시 그거지.
“흠. 인정하다. 방어구 부족하다.”
“그렇죠? 제가 헬멧 하나 구해”
“다이아스 의상 없으므로 슬라브 스타일 아니다.
그것들 착용할 경우 완벽하다.”
“…”
“혹시 Ушанка(우샨카) 또는 비니 모자 존재하다?”
“…고인물들은 다 이래요, 님들?”
결국 정체불명의 흰 마크가 새겨진 어두운 색상의 비니를 하나 얻어 쓴 뒤에야,
나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사냥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 대기하다. 보드카 지참 필요하다.”
“보, 보드카요?”
“CheekiBreeki한 사냥 위하여 필수 음료이다.”
“치키브리키는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