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17화 (17/57)

〈 17화 〉 첫 방송 (1)

* * *

게임 스트리머.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여,

시청자들의 후원 등으로 돈을 버는 직업.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군침이 도는 직종이었기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게임 방송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로 플랫폼 하나가 튀어나왔다.

트와인(Twine).

게임 쪽의 컨텐츠가 주를 이루는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라고 한다.

어제 잠시 들렀던 달퐁의 방송도 아마 여기에서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병행해서 플랫폼을 돌아다니며 사전 조사를 진행했다.

꼬다, 감기다 라는 그 단어의 뜻과도 같이,

수많은 스트리머와 시청자들이 온갖 게임으로 얽히고설킨 채 북적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시티 오브 루인은 상당히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스트리머들의 플레이 순위를 살펴보니, 3위 아래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듯 했다.

시티 오브 루인, 줄여서 시오루가 한국을 포함해서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만큼, 이를 메인 컨텐츠로 삼아 방송하는 스트리머들 또한 상당히 많았다.

허나 그렇게 시오루를 주력으로 플레이하는 이들은 대다수가 남성 스트리머들이었다.

여성 스트리머는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단발성 컨텐츠로 사용하거나, 동료 스트리머들과 합동으로 방송을 진행할 때 가끔씩 플레이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소수 중에서도 진지하게 실력파를 지향하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보통은 어제 만났던 달퐁처럼 예능형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마디로,

나 같은 새끼가 난입하기에 딱 알맞은 상황이었다.

대가리에 5년 동안의 게임 속 생존 경험이 박혀 있으면서도,

상당히 고급진 여자의 몸뚱아리 또한 가지고 있다.

보통의 일자리라면 감점 요소인 미숙한 한국어까지 어필 포인트가 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스트리머에 최적화된 몸이란 말인가.

물론 시청자들의 채팅을 한순간에 읽어 내려면 좀 더 한국어 실력을 복구시켜야겠지만, 그 정도야 기꺼이 감수할 만한 사항이다. 어차피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반드시 필요로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냥 러시아 권에서 방송을 하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래선 ‘이리나’라는 인간의 개성이 상당히 깎여나가게 된다.

게임을 잘 한다는 특색이 있긴 해도, 이국적인 느낌은 싹 사라지게 될 것이다.

러시아에서 러시아 말 쓰는 러시아 여자가 어디 한둘인가.

러시아 권에서 방송하는 흔한 러시아녀.

한국에서 Cyka를 외치며 보드카를 들이키는 K­슬라브식 여성 스트리머.

어느 쪽이 훨씬 임팩트가 클 지는,

도시의 길바닥에 널브러져서 맥주나 들이키는 멍청이한테 물어봐도 백이면 백 똑같은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아니. 그 새끼들 빡대가리는 상상을 초월해서, 100퍼센트라고 확신하진 못 하겠네.

아무튼.

그 외에도 현실에서의 첫 친구…비스무리한 사람인 달퐁과의 인연도 있고,

한국의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에서도 내 닉네임이 오르내렸다고 하니까.

그런 화제성에 대한 어드밴티지까지 생각하면 한국에서 방송을 시작하는 게 옳은 판단이다.

“…!”

그러고 보니,

내가 메인 떡밥이니 뭐 화제가 됐다느니 같은 이야기는 전해 들었는데,

정작 그 커뮤니티에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이 참에 구경이나 해 보자는 마음으로 국내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를 검색하자, 사이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그 시루갤인가 뭔가 하는 곳인가.

마우스를 움직여 커서를 사이트 링크에게로 가져다 댔다.

허나,

내 손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다가,

결국에는 커서가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되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티 오브 루인이라는 게임에게 복수를 한답시고,

지금까지 게임에서 유저들을 내쫒기 위해 저질렀던 그 악질적인 플레이들.

그것들이 하나둘씩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게임으로 돈을 벌어먹고 살기로 결심한 이상,

일부러 유저를 쫒아내서 게임에 악영향을 주면 나 또한 손해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런 플레이를 지양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저질러 온 행동들은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이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데다가, 달퐁의 방송을 타고 퍼져나간 상태였다.

그렇게 커뮤니티와 방송을 통해 나를 접하게 된 사람들이,

과연 나에 대한 평가를 좋게 내려줄 수 있을까.

“후일라…!”

(멍청한 새끼)

컴퓨터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보드카 병을 집어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그 싸늘하고도 뜨뜻한 알코올의 기운에, 마음속의 부정적인 응어리들이 싹 씻겨 나간다.

아직 방송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뭐 이렇게 걱정이 많아, 시발.

그걸로 욕을 처먹게 돼도, 그냥 미안하다고 대가리 씨게 박으면서 피해자들한테 사과하면 되는 거지. 뭘 또 고민을 하고 앉아 있어.

정신 차려, 병신아.

이건 이제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야.

알코올에 절여진 대가리에다가 욕지거리로 채찍질을 가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는 다시 마우스를 움직여, 커뮤니티 사이트로 접속하는 링크 주소를 클릭했다.

평일 대낮임에도 활발하기 그지없는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 줄여서 시루갤.

그 사이트의 구조를 잠시 살펴보다가, 이내 검색창에 내 게임 닉네임인 5Ynoob을 입력했다.

그대로 검색 버튼을 누르려다가,

문득 내 닉네임을 부르던 달퐁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백스페이스 키를 연타해 ‘5Ynoob’을 지우고, 키보드를 떠듬떠듬 눌러서 그 자리를 ‘오이늅’으로 채워넣었다.

그 판단이 정답이었는지, 검색 키워드가 포함된 게시글들이 주르륵 펼쳐지기 시작한다.

아직 떡밥이 유지되고 있었는지, 가장 최근에 작성된 글의 게시 일자가 바로 1분 전이었다.

한 손에 보드카 병을 든 채, 커뮤니티 놈들이 펼쳐 놓은 대화의 장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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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늅 좆같은점...txt]

어제 늦게 퇴근해서 갤떡밥 보고 방송 드갔는데

배고프다고 바로 런하더라 시발련이

[댓글]

= 아ㅋㅋ 꼬우면 너도 백수하던가

= 남들 놀때 취직한 니잘못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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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오이늅 시1발련아]

(영상)

니때문에 벌써 여기에 존버타는 새끼 나오잖아

혹시나 해서 들가보니까 미친 시1발 마우스 집어던질뻔했네ㅋㅋㅋ

[댓글]

= 공포겜이누ㅋㅋ

= ㅋㅋㅋ이새끼 놀래갖고 에임 존나 떨리는거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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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절단충 멈춰!!!!!!!]

(이미지)

에임 오이늅급 아니면 좀 멈추라고 아ㅋㅋ

이새끼랑 교전 30초 넘게 했는데 팔 한짝만 작살난거 실화냐

짭이늅 수준 엌ㅋㅋㅋㅋ

[댓글]

= 저런 새끼를 30초동안 못죽인 니 에임도 레전드인데

= 넌 시발 30초동안 뭐했냐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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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30초좌한테 뒤진 당사자임]

(이미지)

오이늅 따라하다가 좆된건 맞는데

저새끼도 사지집착충이었음 ㅅㅂ

에임 딸리니까 내 또락스* 뚫어놓고 왜 모른척하냐 시발아

(*또락스 : 흉부)

[댓글]

= 시1발 똑같은 새끼들이었네ㅋㅋㅋㅋㅋㅋㅋ

= 이게 그 자강두천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 짭이늅끼리 똥꼬쇼 오지게 했누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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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어제 자 게시글들까지 훑어 본 것에 대한 소감을 말하자면,

업보니 뭐니 죄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내 플레이에 경악한 유저들이 떠나기는커녕,

내게 당한 피해자들과 함께 영상을 돌려보며 동선을 분석하고, 해당 장소의 새로운 활용 방법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 대고 있을 뿐이었다.

무언가 적대적인 제목들도 꽤나 있길래 나름 긴장했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면 별 거 아닌 내용들이었다.

방금 전에 봤던 게시글처럼 사지 집착 플레이를 따라 하던 놈들끼리 마주쳐서 유쾌하고도 병신 같은 해프닝을 일으키며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저 반응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나 혼자 유저들을 능욕하고 괴롭히며 날뛴다고 해서, 사람들이 대규모로 게임을 접고 진정한 망겜으로 변모하게 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5년 동안 도시에서 고생하며 얻었던 노하우들은 그저 새로운 떡밥거리에 불과했고,

유저들은 그에 즐거워하며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굴 뿐이었다.

안도감과 함께 허탈함을 느끼며, 보드카로 병나발을 불었다.

좋게 생각하자.

그렇게 지형지물을 활용해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며 사지를 하나씩 박살내는 플레이가 아니었다면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지도 못했을 거고,

숙소에서 뛰쳐나오는 달퐁의 다리를 쏴서 대화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면 그녀와의 인연도 없던 것이 되었을 것이다.

업보니 뭐니 하는 것도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으니,

그냥 마음 편하게 방송을 시작하면 되는 거다.

“후우.”

뭐 아무튼. 그렇게 됐다.

5년 동안 게임 속에 갇혀 살다가,

이젠 그 게임으로 먹고 사는 스트리머가 될 판이다.

멋대로 거기에 가둬 놓고 현실 A/S도 개판으로 해 놨으니,

거기서 얻은 몸과 능력으로 그쪽 게임 팔아먹으면서 살아도 불만 없겠지.

두 팔을 높이 들어 기지개를 한 번 쭈욱 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인터넷 방송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방송 송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서 설치한 뒤,

이걸 플랫폼에 연동시켜서 화면과 소리 등등을 내보내면 된다는데…

“삐즈뎨쯔…”

(좆됐네…)

뭔가 상당히 복잡하다. 프로그램이니 컴퓨터 내부 설정이니 건드려야 할 게 많다.

그저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였다.

그래도 아예 못해먹을 짓은 아니었으니,

처음부터 차근차근 해 보기로 하며 프로그램의 설정 탭을 화면에 띄웠다.

­띠링.

그 때,

어제 설치했던 음성 채팅 프로그램인 플레이챗에서 알림이 왔다.

거기에 등록된 친구는 한 명밖에 없을 텐데.

그런 생각으로 플레이챗을 열어 보니, 역시나 달퐁이었다.

온라인 상태가 되어 있는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온 것이다.

달퐁 :

[이리나 안녕하세여]

[조은 아침!]

Ирина :

[안녕]

[현재 아침 아니다]

달퐁 :

[저한텐 아침임ㅎ]

[지금 머해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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